백의 지평선
[COC 플레이로그] 이 여름은 공란이어야 하니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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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이 쨍쨍 밝게 내리쬐고, 엄청난 열기가 바람을 타고 흐르는 계절.
앙헬 에스메랄다:아야..
앙헬 에스메랄다 ,뒤통수를 매만지며 바닥에 떨어진 것을 확인합니다
:뒤를 돌아 내려다보면 보이는 것은...
앙헬 에스메랄다:
:햇빛이 반사된 빛이라고 하기엔 어쩐지 오묘하고, 몽환적인 색채의 빛입니다.
앙헬 에스메랄다:아, 아름답네요
:그 빛 너머를 기웃거리며 살펴보면, 3층에 있는 한 교실의 창문이 열려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앙헬 에스메랄다:아, 네. 안녕하세요
앙헬 에스메랄다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합니다
:"그래 안녕, 나는 네 담임이 될 선생님이란다."
앙헬 에스메랄다:아, 담임선생님이시군요
:담임 선생님을 따라 처음오는 학교의 계단을 올라 3층으로 가면, 귓바퀴를 아릿하게 긁어대는 매미 울음소리와 맑고 높은 수업 종소리가 한데 뒤섞여 전학생인 당신을 열렬히 맞이합니다.
앙헬 에스메랄다:아.. 흠흠..
앙헬 에스메랄다 ,환하게 미소지으며 인사를 끝마칩니다
:긴장된 목소리를 꾹꾹 눌러담고, 밝게 인사를 마치면 그제야 당신이 반년 간 머무르게 될 교실과 학생들의 면면이 눈에 들어옵니다.
:깔끔하게 정돈된 교실은 열어둔 창문으로 불어든 바람에 반투명한 커튼이 크게 휘날리고 있습니다.
앙헬 에스메랄다:
:어쩐지 그 자리를 가리키는 담임 선생님의 표정이 썩 좋지 않습니다.
:창가 옆자리에 앉아, 심드렁한 표정으로 창 밖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사람.
앙헬 에스메랄다:안녕? 잘부탁합..해
:친절하게 인사를 건내보았지만...음, 무시하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말에 멀찍이 앞자리에 있던 친구가 교과서를 빌려주러 옵니다.
앙헬 에스메랄다:..?
앙헬 에스메랄다 ,상황이 의아하지만, 일단 공부에 집중하기로 합니다
:...라고, 마음을 먹긴 했다만...
앙헬 에스메랄다:아, 종이비행기 날린게 너였구나?
:당신이 그리 말하자, 샤벳이 그제야 고개를 돌려 당신을 바라봅니다.
샤벳:...소각장이 아니라 너한테 떨어졌다는 말이지?
샤벳 , 한번 더 당신을 스캔하듯 바라보더니 작게 중얼거립니다.
샤벳:조만간 소원이 이뤄지려는 건가...
앙헬 에스메랄다:소원? 무슨 소원같은게 있어?
샤벳:별 거 아니니까 신경꺼라.
:무심하게 툭, 말을 내뱉은 그는 이내 교과서를 한 장 부우욱 찢어, 종이 비행기를 접습니다.
앙헬 에스메랄다:하하...
:그렇게 다 접힌 종이비행기는 그대로 창문 밖으로 내던져집니다.
앙헬 에스메랄다:음.. 샤벳...?은 수업 내내 계속 종이비행기만 날리는거야?
샤벳:그렇지, 뭐.
샤벳 , 또 종이 비행기 하나를 슝-... 창 밖으로 날립니다.
앙헬 에스메랄다 ,시선이 날아가는 종이비행기를 따라갑니다
샤벳:수업이 지루하니까, 시간이라도 버려야지 어쩌겠나.
앙헬 에스메랄다:수업에 집중하지 않아도 되는거야?
앙헬 에스메랄다 ,해맑게 웃으며 묻습니다
샤벳 , 잠시동안 조용히 눈을 마주칩니다.
샤벳:그러는 너도 수업은 안 듣고 나랑 실없는 소리나 하고 있지 않나?
앙헬 에스메랄다:하하...
앙헬 에스메랄다 ,멋쩍은듯 웃습니다
샤벳:...
앙헬 에스메랄다:짝꿍이니까 친해지고 싶었거든요
샤벳 , 교과서 한 페이지를 북 찢더니 세모 모양으로 접어서 건넵니다.
앙헬 에스메랄다:음? 이건 왜 주는거야?
샤벳:빌린 교과서를 찢고 놀고 싶진 않을거잖나?
앙헬 에스메랄다:빌린 친구한테 못할짓이니까요.. 고마워
앙헬 에스메랄다 ,종이를 받습니다
샤벳:고마우면 쳐다보는 짓은 앞으로 적당히 해라.
샤벳 , 그리 말하며 '또' 종이 비행기를 날립니다.
앙헬 에스메랄다:날리면서 아까 말한 소원을 담는거야?
앙헬 에스메랄다 ,쳐다보지 말라는 말은 애써 무시하며 묻습니다
샤벳:그런 셈이지.
앙헬 에스메랄다 ,손가락으로 자기 가리키기
앙헬 에스메랄다:운이 나쁘면 이렇게 되는군요
샤벳 , 눈을 마주치며 무언가 말하려는 듯 싶다가, 한숨이나 한 번 쉬고 또 종이 비행기를 날립니다.
앙헬 에스메랄다 ,한 번 웃어주고는 종이비행기를 접어봅니다
앙헬 에스메랄다:
:얼기설기 접어서 손가락으로 띄워보낸 종이 비행기가 창틀을 넘어 둥실둥실 바람에 몸을 싣습니다.
앙헬 에스메랄다:아야...
앙헬 에스메랄다 ,손으로 이마를 문지르지만, 안 보이게 피식하고 웃습니다
:그때, 종소리가 울려 퍼지며 담임 선생님이 수업 종료를 알립니다.
:당신과 세 발짝 정도 떨어진 곳에서 어물거리며 샤벳과 당신을 번갈아 보던 그들 중 한 명이 조심스레 입을 엽니다.
앙헬 에스메랄다:저말인..미안 말버릇이 잘못들어서, 나? 왜?
앙헬 에스메랄다 ,일단 가봅니다
:당신이 의아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면, 갑작스레 당신의 손목을 덥석! 잡더니 그대로 교실 밖으로 우바박 끌고 나갑니다.
앙헬 에스메랄다:우와악!
:그 학생은 그제야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하더니, 다시 입을 엽니다.
앙헬 에스메랄다:어? 그러면 샤벳은?
:그 말을 들은 학생은 교실 안을 흘끗 바라보았다가, 미묘한 표정을 지어내며 그냥 가자는 말만 내뱉을 뿐입니다.
앙헬 에스메랄다:음.. 어쩔수 없네요. 그러면 부탁할게
:정말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친절하게 다가와준 같은 반 학생들 덕에 식사시간도 외롭지 않게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앙헬 에스메랄다:아, 나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응? 뭔데?"
앙헬 에스메랄다:아까 샤벳이 왜 무섭다고 한거야?
:당신의 질문에, 친구의 표정이 꽤 미묘해집니다.
앙헬 에스메랄다:아하.. 그래서 종이비행기를 그렇게 날려도 지적을 안하신거구나
:"응? 아, 음, 그렇겠지?"
앙헬 에스메랄다:하하..
:"걔는 급식실엔 안 나타나."
앙헬 에스메랄다:그러면 도시락같은걸 먹는걸까?
:"그건 우리가 신경쓸 건 아니지."
앙헬 에스메랄다:그런 애는 아닌거 같은데...
:"아직 걔가 어떤 애인지 몰라서 그래, 너 이번에 전학왔잖아."
앙헬 에스메랄다:그래도 짝꿍이라 친해지고 싶으니까, 좀 더 말 걸어볼래
:"너... 진짜 담력 세구나..."
:빈 옆자리에는 몇 페이지가 뜯긴 교과서만이 펼쳐져 있을 뿐입니다.
:다음 날, 샤벳은 4교시가 다 되어서야 얼굴을 비쳤습니다.
앙헬 에스메랄다:
:연신 꼼지락거리고 부스럭거리는 것이 신경 쓰여 흘긋 바라보면, 어제와 달리 반창고 투성이가 된 손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
앙헬 에스메랄다:어라? 다친거에요?
샤벳 , 슬적 눈을 흘겨 당신을 바라보다가, 작은 한숨 소리를 흘리고선 입을 엽니다.
샤벳:신경 꺼라.
앙헬 에스메랄다:에이, 그러지 말고
샤벳:...
앙헬 에스메랄다:그래? 일진같은거는 아니지?
샤벳:궁금한가?
앙헬 에스메랄다:솔직하게는, 그렇지?
샤벳:그렇게 궁금하면 몸으로 확인시켜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앙헬 에스메랄다:하하...알겠어, 그만 물어볼께
샤벳 , 작게 무어라 꿍시렁거리며 또 종이 비행기를 슝~ 날립니다.
앙헬 에스메랄다 ,무심히 비행기 날리는걸 지켜봅니다
앙헬 에스메랄다:아, 샤벳. 4교시 이후에는 어디갔던거야?
샤벳:그건 또 왜?
앙헬 에스메랄다:그냥? 일단은 짝꿍이잖아요
샤벳:...사생활이다.
앙헬 에스메랄다:흐음.. 그렇구나
앙헬 에스메랄다 ,사생활이니 관심을 끊어줍니다
:가볍게 대화를 나누고, 마저 수업을 듣고 나면 얼마 안있어 수업 종료를 알리는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앙헬 에스메랄다:하하.. 알겠어요
앙헬 에스메랄다 ,자의반 타의반 승락합니다
:대체 어디서 갖고 온건지 모를 다 헤져가는 공을 차고, 던지고... 가끔은 말싸움도 끼고.
앙헬 에스메랄다:
=
:흙바닥에 무릎이 갈리는 감각과 함께, 주위로 친구들이 몰려듭니다.
앙헬 에스메랄다:...아야...
:상처를 확인해보면 조금 절뚝일 수는 있어도 부축을 받을 정도로 심각한 상처는 아닙니다.
앙헬 에스메랄다:아냐, 괜찮아 보건실이 1층이기도 하고..
앙헬 에스메랄다 ,혼자 가겠다고 합니다
앙헬 에스메랄다:치료 좀 받고 올게요, 먼저 하고 있어
앙헬 에스메랄다 ,보건실로 터벅터벅 걸어갑니다
:보건실로 향하는 당신의 뒤로 걱정섞인 시선이 달라붙지만, 그리 오래 가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혼자 처치를 하자니 물품이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앙헬 에스메랄다 ,끙차
:폭삭, 침대에 드러누웠습니다.
앙헬 에스메랄다 ,흠칫
앙헬 에스메랄다:아, 선생님 오셨나요?
앙헬 에스메랄다 ,침대에서 고개만 빼꼼
:고개를 빼꼼 내밀어보면, 기대했던 선생님 대신 서있는 샤벳과 눈이 마주칩니다.
샤벳:...여기서 뭐하고 있나?
앙헬 에스메랄다:그.. 보건실이니까..?
샤벳:...
샤벳 , 익숙하다는 듯이 책상 서랍 따위를 뒤져댑니다.
앙헬 에스메랄다:음? 치료라도 해주시게요?
앙헬 에스메랄다 ,웃는 얼굴로 되묻지만, 일단 하라는 대로 합니다
:치료라고 해도 고작해야 간단히 연고만 발라주고 반창고나 붙여주려나 했는데,
앙헬 에스메랄다 ,멍하니 쳐다보다 말을 겁니다
앙헬 에스메랄다:치료가 굉장히 능숙하네요?
샤벳:자주 해봤으니까.
앙헬 에스메랄다:혹시 의사가 그런게 되고싶은거야?
샤벳:딱히 의사 같은 직업엔 흥미 없다.
샤벳 , 처치를 마무리 해주고선, 다 됐다고 중얼거립니다.
앙헬 에스메랄다 ,치료부위를 이리저리 봅니다
앙헬 에스메랄다:꼼꼼하네, 고마워
앙헬 에스메랄다 ,환히 웃어줍니다
샤벳:...고맙기는.
앙헬 에스메랄다:..그런데, 하나만 물어봐도 돼?
샤벳:뭔가?
앙헬 에스메랄다:아무리봐도 일진은 아닌거 같은데..
샤벳 , 뭔가 고민하는 듯 잠시 뜸을 들이다가, 살짝 시선을 굴리고선 입을 엽니다.
샤벳:검도를 배우고 있긴 하지.
앙헬 에스메랄다:검도면.. 정말 멋진걸 배우고있구나?
샤벳:그리 멋지다고 할만한 것도 없는데...
앙헬 에스메랄다:그래도 멋진걸? 그거때문에 조퇴하는거야?
샤벳:...곧 대회가 있어서.
앙헬 에스메랄다:엄청 열심히 하네요..
샤벳:상관없다.
앙헬 에스메랄다:..진짜 멋지네요
샤벳:수업시간이랑 겹칠텐데?
앙헬 에스메랄다:그래도, 샤벳이 말하는것만 보면 엄청 가보고 싶어지는걸요?
샤벳:...나중에 결과로만 들어.
앙헬 에스메랄다:하하...
앙헬 에스메랄다 ,웃으며 얼버무립니다
샤벳:...혹시라도 스스로 찾아와서 귀찮게 굴 생각은 하지 마라.
앙헬 에스메랄다:그런거라면.. 무리해서 안갈테니까
샤벳:그래, 좋은 결과가 있다면.
샤벳 , 옅게 미소지어보입니다.
:샤벳이 해주는 말들은 분명 떠돌고 있는 소문과는 정 반대되는 이야기들이지만, 어쩐지 그의 목소리와 단어 하나하나에서 진심이 느껴집니다.
:바람결에 몸을 실은 커튼이 그런 두 사람을 부드러이 감싸고, 마치 여름에 꾸는 짙은 파랑의 꿈을 보여주듯이 너울거립니다.
샤벳:...이따 교실에서 보자.
:그렇게 먼저 보건실을 나가는 샤벳의 뒤를 이어, 달려온 것처럼 보이는 친구가 다가옵니다.
앙헬 에스메랄다:앗..
:꿈속에 잠시 머물러있다가 나온듯, 어쩐지 멍한 정신은 시선을 무릎으로 잠시 내려보냅니다.
:교실로 올라가자, 오늘은 땡땡이 치지 않고 자리에 앉아있는 샤벳이 보입니다.
앙헬 에스메랄다:[하하.. 좀 부끄럽네요]
샤벳:[생각 좀 해보고.]
샤벳 , 피식 웃습니다.
앙헬 에스메랄다 ,살짝 나른한 표정이지만, 잠은 깬듯
샤벳 , 가만히 그런 당신을 바라보다가, 책상에 끄적이며 조그마한 천사날개를 낙서해둡니다.
앙헬 에스메랄다:[뭐야, 귀엽네요]
앙헬 에스메랄다 ,살짝 고민하다가 목검같은걸 그려봅니다
샤벳 , 눈을 몇 번 깜빡이며 그것을 바라보다가, 이런저런 낙서를 잔뜩 그리기 시작합니다.
앙헬 에스메랄다:[♥]
:책상과 교과서에 이런저런 낙서도 하고, 끄적이며 할 수 있는 게임 따위도 하면서 딴짓을 이어갑니다.
앙헬 에스메랄다:앗..
앙헬 에스메랄다 ,고개를 꾸벅하곤 교과서랑 필기구를 들고 뒤로 나갑니다
:당신이 뒤로 나가는 것을 가만 바라보던 샤벳은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놓고, 당신의 옆으로 가서 함께 섭니다.
앙헬 에스메랄다:왜 따라나온거야?
앙헬 에스메랄다 ,작게 속삭입니다
샤벳:혼자는 외롭잖나.
:그의 말마따나, 같이 벌 받는 사람이 한 명 늘었다고 미묘하게 위안이 되는 기분입니다.
:다음 날, 샤벳은 오늘도 보이지 않습니다.
:뉴스에서 가뭄이다 뭐다 하던 걸 본 것이 엊그제 같은데.
:"자- 얘들아, 제출까지 10분 남았다. 떠들지 말고 어서 해라-"
앙헬 에스메랄다:3개? 알겠어요
:신문은 오늘 날짜로 인쇄된 지역 신문입니다.
앙헬 에스메랄다 ,읽어봅니다
앙헬 에스메랄다:
:...어라,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무언가 잘못되고 있는걸까요?
앙헬 에스메랄다:
:당신이 받은 충격과는 별개로 시간은 잘만 흐릅니다.
:그가 보건실을 앞에 두고 손톱을 물어 뜯으며 초조한 기색으로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앙헬 에스메랄다:음? 저분 보건선생님 아니셔?
:"응? 어, 그렇네?"
앙헬 에스메랄다:아, 보건선생님께 드릴말이 있었는데
앙헬 에스메랄다 ,친구들과 일별하고 보건선생님한테로 향합니다
:보건선생님은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있는지 당신을 눈치채지 못한 채로 어쩌지, 어쩌지, 하고 중얼거리며 문 앞을 기웃거리고 있습니다.
앙헬 에스메랄다:저.. 선생님? 괜찮으신가요?
:당신이 말을 걸자, 보건 선생님이 퍼뜩 놀라더니 당신을 돌아봅니다.
앙헬 에스메랄다:아뇨, 전에 보건실에 안계셨어서
앙헬 에스메랄다 ,꾸벅
:"아, 어응, 그래..."
앙헬 에스메랄다:..네?, 아 넵. 도와드릴게요
:"고마워... 책상 위에 진료 차트가 있거든? 그거만 가져다주면 된단다."
앙헬 에스메랄다:..좀 별나신 분이시네요
앙헬 에스메랄다 ,보건실 내부를 살펴봅니다
:어두컴컴한 보건실의 불을 켜고나면, 책상 위에 놓인 차트가 보입니다.
앙헬 에스메랄다 ,일단 진료차트부터 챙기기로 합니다
앙헬 에스메랄다:일단 챙겼는데..
앙헬 에스메랄다 ,샤벳 곁에 다가와 어깨를 조심히 두들겨 봅니다
:당신의 손길에 잠에서 깬건지, 샤벳이 살짝 인상을 쓰며 으음, 하는 소리를 내더니 눈을 뜹니다.
앙헬 에스메랄다 ,환하게 웃으며 기다리는중
샤벳:...앙헬?
샤벳 , 부스스 몸을 일으킵니다.
샤벳:여기서..뭐하고 있나?
앙헬 에스메랄다:좋은 아침이야, 샤벳
샤벳:...그냥 좀 피곤해서.
앙헬 에스메랄다:그렇긴하네요.
샤벳 , 손으로 살짝 입을 가리고 나른하게 하품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입니다.
앙헬 에스메랄다:샤벳이 나간다고 했던 검도대회, 언제라고 했지?
샤벳:내일인데, 그건 왜?
앙헬 에스메랄다:1교시에서 본 신문에는 어제라고 나와있어서요?
샤벳 , 잠깐 무언가 생각하는듯 눈을 굴리다가, 아, 하는 소리를 낸 뒤 대답합니다.
샤벳:그건 다른 대회.
앙헬 에스메랄다:아, 그런가요?
샤벳 , 잠시 눈을 마주친 채로 조용히 있다가, 짧게 한숨 소리를 내쉽니다.
샤벳:잊어버릴리가.
앙헬 에스메랄다:그럴거 같기는 했는데, 노력이 허사가 되면 안타깝잖아요?
앙헬 에스메랄다 ,다행이라는 표정
샤벳:......그래서, 겨우 그거 물어보려고 깨웠나?
앙헬 에스메랄다:하하..
앙헬 에스메랄다 ,장난스레 대꾸합니다
샤벳 , 피식 웃음을 흘립니다.
샤벳:내일이 지나고 나면 그런 생각도 없어지겠지.
앙헬 에스메랄다:내일 대회끝나고 나서는 학교 생활 성실히 하려고요?
샤벳:할 일이 끝나면 제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앙헬 에스메랄다:그래, 그러면 일진 소리도 싹 사라질걸?
앙헬 에스메랄다 ,자기가 도와주겠다는 투로 말합니다
샤벳:딱히 안 없어져도 상관없다.
앙헬 에스메랄다:그러면 학창시절이 재미없어질걸요? 그러지 말고 나랑도 좀 더 친해지자
샤벳:...
앙헬 에스메랄다 ,환히 웃습니다.
앙헬 에스메랄다:이거 기분 좋아하면 되는거지? 그렇죠?
샤벳:...그렇게 생각한다면 말리지는 않겠다만...
앙헬 에스메랄다:알겠어 샤벳,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앙헬 에스메랄다 ,좋은게 좋은거지 같은 표정
샤벳:...그래, 뭐.
앙헬 에스메랄다:음..
앙헬 에스메랄다 ,시간 확인
:아직 점심시간이 끝나기까지는 꽤 시간이 남았습니다.
앙헬 에스메랄다:시간도 넉넉하니까요, 조금 더 있을까 하는데, 방해될까?
샤벳:...마음대로 해.
샤벳 , 뭔가 말하려는 듯 싶다가, 입을 꾹 눌러 닫고는 등을 돌려 누워버립니다.
:말소리가 오고가지 않는 보건실 안에는 다시 잠들어버린 샤벳의 숨소리와 시계의 초침이 째깍거리는 소리가 울립니다.
:그 안에 품고 있는 눈빛의 색과 감정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조차 자각하지 못한 채 마냥 바라보게 됩니다.
앙헬 에스메랄다 ,홀린듯이 바라보다가 커튼을 쳐줍니다
앙헬 에스메랄다 ,그리고 맞은편 침대에 걸터앉아 더 가까이에서 바라봅니다
:커튼을 쳐 햇빛을 막아주면, 한결 편한해진 표정이 됩니다.
:멍하니 앉아있던 당신이 정신을 차린 것은 점심시간을 끝내는 종이 울렸을 때 입니다.
:점심시간이 끝났다는 종이 한참 전에 울렸는데도, 혈기 왕성한 학생들답게 교실은 여전히 왁자지껄합니다.
:한참 꼼지락거리며 뭔가를 하고 있길래 바라보면...
앙헬 에스메랄다:오늘은 교과서가 아니네?
샤벳:교무실.
앙헬 에스메랄다:..
샤벳:가져가도 되냐고 물어보긴 했다만.
앙헬 에스메랄다:아하
샤벳 , 어깨를 한 번 으쓱이고는 몇 장 나누어줍니다.
앙헬 에스메랄다 ,따라서 종이비행기를 접기 시작합니다
:선생님의 눈치는 전혀 보지 않고 이내 창문을 연 샤벳은, 접어두었던 종이 비행기를 심심할 때 마다 창 밖으로 하나씩 날려댑니다.
앙헬 에스메랄다:..실력은 안늘었지만요
샤벳:아무렴 어떤가.
앙헬 에스메랄다:하하...
샤벳:마지막 하나니까, 조금 이따가 쉬는 시간에 날릴 생각이다.
앙헬 에스메랄다:하긴, 대회 관련된 소원이니까
샤벳:...그렇지.
샤벳 , 그 말을 끝으로 입을 꾹 닫곤, 종이 비행기를 만지작거리기만 합니다.
:곧 수업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립니다.
샤벳:같이 날리러 가겠나?
앙헬 에스메랄다:그런 영광이라니 거절 못하지
앙헬 에스메랄다 ,장난스레 대꾸하며 손을 잡습니다
:그 손을 잡고 이끌리는대로 따라가보면,
:학생이 함부로 올라와도 되나 싶지만, 옥상 문은 생각보다 수월하게 열립니다.
샤벳:교실에서보다 여기서 날리는 편이 더 멀리 날아가겠지.
:그리 말한 샤벳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어냅니다.
샤벳:같이 날리겠나?
앙헬 에스메랄다:정말로 영광인걸요?
앙헬 에스메랄다 ,웃으며 종이비행기를 받아듭니다
샤벳:영광이라니, 그런 거창한 말을 붙일것까지야.
:종이 비행기를 받아들고, 난간 너머를 향해 손을 들어 올리면, 이내 뒤에서 당신의 손을 겹쳐잡는 손길이 느껴집니다.
샤벳:여기에 무슨 소원이 담겨있는지 알고 있나?
앙헬 에스메랄다:글쎄.. 명확하게 말을 안해줘서..
샤벳:맞아, 원래는 대회 우승의 소원이었지.
샤벳 , 작게 심호흡을 합니다.
샤벳:너도 알겠지만, 육체적인 충돌이 일어나는 경기에서 부상은 자주 있는 일이다.
앙헬 에스메랄다:그건.. 좀 너무한 소원아니야?
샤벳:내 나름대로 신경쓴 소원이다만.
앙헬 에스메랄다:신경을 다른데 쓴게 더 질이 나쁘네요
샤벳:...상관없어.
앙헬 에스메랄다:..샤벳, 무슨 일 있어?
샤벳:아무 일 없었다.
앙헬 에스메랄다:그렇다고 해도..
샤벳:...
샤벳 , 조심스레 맞잡았던 손을 놓습니다.
샤벳:그럼, 네 소원을 대신 담겠나?
앙헬 에스메랄다:내 소원이요? 흐음..
샤벳:상관없다.
앙헬 에스메랄다:음..
앙헬 에스메랄다 ,장난스레 웃습니다
샤벳 , 잠깐 눈을 옆으로 흘겼다가, 작게 미소짓습니다.
앙헬 에스메랄다 ,슈웅~ 하고 종이비행기를 같이 날립니다
:손에서 떠난 종이 비행기가 짙푸른 하늘에 둥실 떠오릅니다.
샤벳:역시 비가 왔어서 그런지 멀리 가지 못하네.
앙헬 에스메랄다:당연히 이루어질거니까, 멀리 갈 필요 없다는거 아닐까?
샤벳:...그러려나,
샤벳 , 잠시동안 멍하니, 종이 비행기가 날아갔던 궤적을 그리듯 눈을 움직이다가 고개를 돌려 당신을 바라봅니다.
샤벳:그만 내려갈까?
앙헬 에스메랄다:그럴까요?
앙헬 에스메랄다 ,손을 내밉니다
샤벳 , 조심스레 그 손을 잡습니다.
샤벳:교실 앞까지만 같이 가지.
앙헬 에스메랄다:아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된거야?
샤벳:...새삼스럽지만, 시간 참 빠르네.
앙헬 에스메랄다:당연하지
앙헬 에스메랄다 ,선물이라든가 준비해둘테니까 라고 덧붙입니다
샤벳 , 부드럽게 미소를 지어내며 웃습니다.
샤벳:고맙다, 진심으로.
앙헬 에스메랄다:저야말로 고마워요, 샤벳
:두 사람은 교실 앞에서 인사를 나누고선 각자 가야할 곳으로 향합니다.
:분명 잘하고 오겠지, 라는 생각의 아래에서 초조한 감정이 꿈틀거리는 건 아무래도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어서 지각한 사실을 용서받고 자리에 앉는 것이 좋겠어요!
:아직 대회는 진행 중일텐데요?
앙헬 에스메랄다:
=
:홀로 혼란 속에 던져진 당신과는 달리, 교실 내에 있는 모두가 그 사실을 평범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당신의 여름에 명명히 새겨진 그 이름을 쉽게 들어낼 수 없잖아요?
앙헬 에스메랄다 ,자신을 급식실에 데려다줬던 친구를 찾아 심각하게 묻습니다
앙헬 에스메랄다:이게 뭐하는거에요?
앙헬 에스메랄다 ,당황스러운 일에 말이 잘 나오지도 않습니다
:당신의 말을 들은 그 친구는 떨떠름한 표정을 감추지 못합니다.
앙헬 에스메랄다:..
앙헬 에스메랄다 ,약간은 핼쑥한 표정으로
:담임 선생님은 당신에게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가도, 비탄에 젖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입니다.
앙헬 에스메랄다 ,급히 보건실로 향합니다
:보건실에는 당신이 찾는 존재 대신, 웬일로 보건 선생님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앙헬 에스메랄다:선생님 샤벳. 샤벳 여기에 있나요?
:당신이 그 이름을 언급하자, 보건 선생님은 눈에 띄게 겁을 먹은 표정을 지어냅니다.
앙헬 에스메랄다:선생님도 아셨던 거에요?
앙헬 에스메랄다 ,옥상으로 향합니다
:급히 계단을 뛰어 올라 옥상의 문을 잡으면, 이게 웬 걸, 열리지 않습니다.
앙헬 에스메랄다 ,문구를 봤음에도 철컹철컹 몇 번 더 열어보려고 시도합니다
:아무리 시도해보아도 문이 열릴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앙헬 에스메랄다 ,긴가민가하는 마음으로 소각장으로 향합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을 담아 정신없이 소각장으로 향합니다.
:멀쩡한 것은 하나도 없고 전부 타들어간 재의 형태와, 떨어져나간 흔적입니다.
앙헬 에스메랄다:
:하얗고 검은 것들 사이, 유일하게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짙푸른 종이 비행기 하나가 눅눅히 젖은 채로 떨어져 있습니다.
앙헬 에스메랄다 ,종이비행기를 잡아 조심히 펼쳐봅니다
:종이 비행기를 펼쳐보면 빗물에 부옇게 번져있는 글씨가 드러납니다.
앙헬 에스메랄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정이 쏟아집니다.
:그의 말마따나 함께한 시간은 찰나에 불과한데도, 비어버린 공란은 시간에 비해 너무도 크게 느껴집니다.
앙헬 에스메랄다 ,종이비행기를 확인해봅니다
:낡고 누렇게 해진 종이를 접어 만든 것 같은 종이 비행기입니다.
앙헬 에스메랄다 ,종이비행기를 펼쳐봅니다
:무엇 하나 이해할 수 없는 문장 뿐이지만...
앙헬 에스메랄다:정말 터무니없는 이야기같긴한데..
앙헬 에스메랄다 ,헛웃음을 흘립니다
앙헬 에스메랄다:못 해볼것은 또 아니네
앙헬 에스메랄다 ,[기억의 영창]을 시전합니다
앙헬 에스메랄다:
=
:주문을 영창해도 크게 달라진 것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앙헬 에스메랄다 ,보건실로 달려갑니다
:기대에 찬 발걸음이 다다른 곳은 보건실입니다.
:아름답게 미소짓고 있는 샤벳과 눈이 마주칩니다.
샤벳:...앙헬,
샤벳 , 그렇게 말하는 것 치곤, 이 상황이 기쁜듯, 미소를 지우지 않습니다.
앙헬 에스메랄다:내 소원도 함께 날려놓고, 그러길 바란거에요? 정말?
앙헬 에스메랄다 ,장난스런 미소를 짓습니다
샤벳:...그래, 솔직히 말하면 그러지 않길 바랬지.
앙헬 에스메랄다:그러면, 내 소원도 이루어진거지?
:이내 비가 그친 한여름의 풍경이 스며듭니다.
ED1. 네가 있는 여름
비워지지 않은 추억 | SAN + 1d5
수고하셨습니다!
한여름의 중간, 그 날씨를 여실히 체감하며, 당신은 새로 전학오게 된 학교의 교정으로 들어섭니다.
학기 중의 전학이라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긴 하지만...
운이 좋아서 학생들 사이로 잘 스며들 수 있기를 바래야겠죠.
그렇게 학교 안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뒤통수에 무언가가 콕ㅡ, 하고 닿았다가 바닥으로 톡 떨어집니다.
종이 비행기입니다.
웬 종이 비행기인가 싶어 확인해보면, 어쩐지 익숙한 얼굴 삽화와 글씨들이 프린트되어 있습니다.
교과서를 찢어서 만든 모양입니다.
누가 만든건지는 몰라도 수업에 관심이 없나봐요.
고개를 들어 출처를 찾으려 하면, 반짝, 하고 눈을 시리게 하는 빛이 스칩니다.
기준치: | 80/40/16 |
굴림: | 73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뭔가 있는걸까요?
반투명한 하얀 커튼 뒤로, 한 인영이 잠시 아른거리다가 모습을 감춥니다.
저 사람이 범인인가?
그때, 계단 쪽에서 당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어머, 네가 새로 전학 왔다는 학생이니?"
"마침 수업 시간이라 우리 반 올라가고 있던 참이니까, 같이 올라갈까?"
네, 전학은 처음이라 어색해서..하하...
드르륵, A-3반. 미닫이 문이 열리고, 당신을 단상 옆으로 세우는 담임 선생님의 목소리가 교실에 울려 퍼집니다.
"모두 주목ㅡ"
"오늘 전학생 온다고 미리 얘기 했었지? 자, 자기소개 한 번 해볼까?"
안녕, 얘들아. 앙헬 에스메랄다라고해
스페인에서 살다가, 얼마전에 이사왔어
간단하게 앙헬이라고 불러주면 돼, 잘 부탁해
그 사이로 그늘이 졌다가 햇빛이 비추는 학생들은 대체로 얌전하고 모범적인 모습입니다.
당신이 전학생이라고 함부로 따돌리거나 배척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학기 중간에 전학 온 것치곤 운이 좋은 편일지도요.
"모두 전학생한테 친절하게 잘 대해주고. 앙헬, 자리는... 저기 오른쪽 맨 뒤에 빈자리 보이지?"
"저기 가서 앉으면 된단다."
기준치: | 77/38/15 |
굴림: | 57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저 자리를 주게 되어 미안해 하는 듯한 눈치인걸요.
얌전하던 학생들도 힐끔힐끔 눈치를 보는 것이... 영 이상합니다.
책상들 사이로 곧게 난 길을 따라 맨 뒷자리로 향합니다.
더운 열기를 머금은 바람이 창문 새로 휘잉- 소리 내며 들어와 커튼을 크고 둥굴게 흩날립니다.
새하얀 오로라같이 일렁이는 커튼이 차츰 가라앉으면, 당신의 짝꿍이 될 사람의 얼굴이 보입니다.
새하얀 머리칼은 햇빛을 받아 은은하게 금빛으로 빛나는 듯한 착시를 주고, 그와 어울리는 샛노란 눈이 닫혔다가 뜨이기를 반복합니다.
꼭 인형 같네요.
하하..원래 존댓말 썼더니 입에 안붙네
싸늘한 시선으로만 힐긋 쳐다보는 게, 쉽게 친해지긴 힘들어 보입니다.
이런 사람이 짝꿍이라면... 조금 불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름조차 들을 수 없었어서, 교복에 붙어있는 명찰로 겨우 확인했습니다.
샤벳 아드복트, 라는 이름입니다.
"자, 이제 다들 교과서 펴렴. 전학생도 하나 빌려주고."
당신 옆자리로 잠깐 시선이 쏠리는가 싶더니...
흠칫 놀라며 황급히 제자리로 돌아가네요.
명백히 겁을 집어먹은 표정이었습니다.
...뭘까요, 이 상황?
아, 고마워 깔끔하게 쓰고 돌려줄게
옆에서 계속 들려오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집중이 곧잘 깨져버리고 맙니다.
뭘 하고 있는건가 싶어 고개를 돌려보면, 책상 위에 놓인 페이지 찢긴 교과서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아?
일순, 뒤통수에 종이 비행기의 코가 닿았던 감각이 되풀이됩니다.
위로 한 번, 아래로 한 번... 마치 상대를 훑어보는 듯한 눈동작으로 당신을 스캔해내더니 입을 여는군요.
꽤 능숙한 솜씨네요.
후끈한 여름 바람을 타고 둥실~ 허공을 가르던 종이비행기는 햇빛과 구름을 한껏 머금고 또로록 고개를 기울이더니, 이내 아래로 사라집니다.
...그리고 또 다시 부욱- 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부담스러우니까.
바람만 잘 타면 멀리까지도 날아갈테고, 왠지 그렇게만 된다면 소원도 이뤄줄 것 같고.
뭐, 보통은 바로 아래로 떨어지긴 한다만.
기준치: | 10/5/2 |
굴림: | 75 |
판정결과: | 실패 |
태양 빛을 한껏 받은 종이 비행기는 잠깐 반짝하며 푸른 하늘을 삼키더니, 자유롭게 부유하다가......
으응...?
바람이 반대로 불자 그대로 바람을 타고 되돌아와, 당신의 이마에 콕 찍힙니다.
옆에서 푸흡, 하는 웃음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하고 바라보면, 샤벳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어내며 딴청을 피웁니다.
"그럼 다들 점심 맛있게 먹어라-"
교실 곳곳에서 드르르륵, 의자를 끄는 소리와 곡소리가 동시다발적으로 들려옵니다.
그와 함께, 전학생인 당신과 친해지고 싶은 학생들이 주춤주춤 다가오기 시작하는군요.
"저기... 앙헬? 잠깐 이쪽으로 와볼래?"
"갑자기 끌고 나와서 미안!"
"그... 샤벳이 너무 무서워서 그 자리에선 도무지 입이 안 열리거든......"
"일단, 지금 다들 점심 먹으러 가니까 우리랑 같이 밥 먹으러 가자. 급식실 안내해줄게."
덩달아 교실 안을 잠깐 돌아보면...
샤벳은 그새 교실을 떠난건지 보이지 않습니다.
왁자지껄한 아이들 사이에 자연스레 녹아들어, 당신은 급식실에 자리를 잡고 식사를 시작합니다.
물론, 주변에선 밥을 먹으면서도 조잘조잘 대화가 오고가고 있지만요.
오, 음. 입에 든 건 다 먹고 답해달라 하는게 좋을 것 같은걸요.
"아...그.... 뭐라 해야하나..."
"걔, 엄청 유명한 일진이거든. 소문으로만 듣긴 했는데... 선생님한테도 엄청 대든다고 하고..."
"그래서 다들 좀... 피하는 편이야. 잘못해서 엮이기라도 하면 맞을지도 몰라..."
"그, 그러니까 너도 최대한 엮이지 않게 조심해."
그런데 샤벳도 밥먹으러 왔을텐데, 이런 말 해도 괜찮아요?
"학교 여기저기서 뜬금없이 나타난다는데, 여기에선 한번도 보인 적이 없어."
옆에서 대화를 듣던 한 학생이 갑자기 끼어들더니 말합니다:
"그래도 다행이지 않아? 걔가 여기 나타났다가는 다들 긴장해서 체하고 말걸?"
"혹시 몰라, 어디서 삥이라도 뜯을 수도 있잖아?"
"좀 오래 보다보면 생각이 바뀔걸..."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그 뒤로도 한껏 당신을 걱정하는 말이나 실없는 농담들을 주고 받고서, 오후 수업을 준비하러 교실로 돌아갔습니다.
친구의 말마따나, 진짜 일진이라도 된다는 건지, 샤벳은 점심 이후로 내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땡땡이를 이렇게 대놓고 치는데... 교과목에 들어오는 그 어떤 선생님도 그의 부재를 지적하지 않습니다.
다들 필사적으로 샤벳의 존재를 지우개로 지워내듯, 그가 없는 풍경을 안심하고 즐기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 좀 쌀쌀맞은 면은 있어도 그렇게 나쁜 애는 아닌 것 같았는데 말이에요.
수업 중임에도 당당하게 뒷문을 열고 들어왔죠.
공부에 흥미가 없다는 증거가 되어주듯, 가방조차 없이요.
아무 눈치도 보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와 당신의 옆자리에 앉은 샤벳은 인사도 없이 버릇처럼 교과서를 뜯고, 종이 비행기를 접습니다.
기준치: | 77/38/15 |
굴림: | 21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이곳저곳에 긁힌 흔적도 있고...
어제 점심 이후로 보이지 않는가 싶더라니, 어디서 싸우고 온 걸까요?
점심때부터 안보여서 조금 걱정했는데?
정말 신경쓸 일 아니니까 걱정 하지 마.
그러니까 더 물어보지 마.
어쩐지 이렇게 잠깐 떠들고 난 뒤에는 시간이 더 빠르게 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점심은 또 그새 사라져버린 샤벳없이, 반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가서 떠들고 웃으며 먹게 되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교실로 슬슬 돌아갈까, 생각하던 차,
"야, 오늘 날씨도 좋은데 운동장에서 잠깐 놀다 들어가자!"
라며 한 친구가 제안합니다.
단체로 신나게 뛰어놀던 도중, 당신은 옆으로 끼어들어오는 태클을 피하지 못하고 그만 흙바닥에 꿍, 넘어지고 맙니다.
rolling 1d3
(
)
3
3
"앙헬! 괜찮아?!"
"미안... 보건실까지 부축해줄까?"
1층에 보건실이 있으니 혼자 금방 다녀올 수 있을겁니다.
보건실에 들어가보면, 커튼 칸막이가 있는 침대 네 개가 보이고 보건 선생님이 사용하시는 책상이 놓여 있습니다.
선생님은 잠시 외출이라도 나가셨는지 보이지 않네요.
...
아까까지는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상처가 욱씬거리고 아픕니다.
의자에 앉아있기 불편한 정도에요.
함부로 뒤지기에도 좀 그렇고...
일단은 선생님을 기다리면서 침대에 잠시 누워라도 있을까요?
그렇게 푹신한 편은 아니지만, 그대로 반쯤 열린 창문 너머로 아른하게 들려오는 친구들의 목소리와 그늘진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와 커튼을 살랑살랑 건드리는 것이...
생각보단 안락하네요.
전혀 졸리지 않았는데도 눈꺼풀이 무거워지며 잠이 들려던 그때,
드르륵ㅡ!
보건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당신을 바라보는게, 당신이 여기 있는 걸 보고 놀란 눈치인걸요.
다쳐서 왔지요..?
이리 와서 앉아봐라.
생각과는 달리 굉장히 능숙한 솜씨로, 당신의 상처를 섬세하게 치료해줍니다.
아니다, 자주 다치는건가?
그냥, 보건 선생님이 자리에 없는 경우가 많아서 혼자 해결하다보니 실력이 늘었을 뿐이다.
빨리 치료 안하면 더 아파질테니까 한 것 뿐이야.
인사할 필요 없어.
자주 다치고, 뭐 하고 있는거 있어요?
한 번 보고싶다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연습해야 하니까 말이다.
다른 친구들도 이 사실을 알아주면 일진이라는 오해를 안할텐데
저들이 뭐라하던 나 스스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고, 난 떳떳하니까.
구태여 바로잡을 필요도 곧 없어질테고.
대회말이야, 보러가면 안될까요?
...그리고, 어차피 유명한 대회도 아니라서 재미 없을거다.
누가 보고 있다고 하면 집중 못할 것 같으니까.
결과는 말해주는거에요?
역시 소문은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 그게 진실인지는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적어도 당신은, 그 소문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네요.
창틀을 비집고 내리쬐는 태양볕이 하얀 커튼에 두 사람의 그림자를 그려냅니다.
실제로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음에도, 그림자는 각도 때문인지 서로 어깨를 맞대고 앉아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맞붙은 그림자의 거리만큼, 두 사람의 마음도 가까워졌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 속에서 샤벳과 시선이 얽힙니다.
빛을 가득 담아, 금빛으로 빛나는 눈이 당신을 똑바로 마주합니다.
말없이 섞이는 그 틈으로 한여름의 내음이 기분 좋게 스며들고...
"앙헬! 괜찮아? 보건실에 있어?"
저 멀리서 산통을 깨며 다가오는 목소리에 샤벳이 먼저 반응해,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한참 안 돌아오길래 가다가 쓰러진 줄 알았잖아."
"어라, 치료 다 했네? 부축해줄테니까 교실로 올라갈까?"
..하하, 미안해요 치료가 좀 늦어져서
그러면 좀 부탁할게
상냥한 손길로 치료받아, 상터를 틈없이 가려둔 채입니다.
동시에 5교시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수업이 시작됩니다.
한낮의 태양은 조금씩 저물어가고, 그 빛줄기를 따라 새파란 하늘에 실구름이 하나하나 걸립니다.
고리타분한 선생님의 목소리와 미지근한 바람에 무심코 꾸벅, 졸음 인사를 하고 나면, 당신 책상 쪽으로 넘어와 있는 손과 펜이 보입니다.
[졸린가? 그러다가 책상에 머리 부딪히겠어.]
끄적거리던 펜이 짧은 필담을 적고 빠져나갑니다.
[그래도 완전히 졸면 깨워줄거지?]
[짝꿍이잖아]
수업이요? 글쎄요...
참지 못하고 튀어나오는 키득거림이나 펜끼리 부딪히는 작은 소리들이 겹쳐집니다.
그러던 도중에, 선생님의 목소리가 끼어듭니다.
"거기 맨 뒷자리! 수업 시간에 집중 안할래?"
"아까부터 계속 딴짓하는 거 봐줬더니 정신을 못차리고, 뒤로 나가서 서 있어!"
죄송합니다
선생님은 그런 샤벳을 잠시 바라보는듯 싶다가,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한 채 '뒤에 나가서도 딴짓하면 혼난다-'라고 말한 뒤 고개를 돌려 다시 수업에 집중합니다.
나도 잘못한 게 있기도 하고.
...물론 그 다음 수업부터는 대회가 목전이라 연습하러 가야한다며 조퇴한 샤벳 때문에 내내 혼자 들어야 했지만요.
아예 등교를 하지 않은건지, 아니면 어디서 땡땡이를 치는건지...
알 수가 없네요.
워낙 자유분방한 사람이라 마냥 옆자리에 붙여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요.
쿠르릉 쾅ㅡ!
굳게 닫아둔 창문 너머로 굵은 빗줄기가 주룩주룩 내립니다.
다행히도 비가 내려주네요.
바깥은 어두운 반면, 교실은 꽤 밝은 분위기가 이어집니다.
수업 시간이면 늘 묘하게 얼어있던 친구들의 표정이 한결 밝습니다.
음...
설마하니, 샤벳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요?
선생님의 안내에 학생들이 한 층 분주해집니다.
"앙헬, 거기 신문 1면에 있는 기사 세개만 잘라줄래? 여기랑... 여기에 붙일거야."
책상 위에 놓인 커다란 하드보드지를 가리키며 같은 조 조원이 말합니다.
하드보드지 위에는 스크랩된 뉴스 기사들이 어지럽게 붙어있습니다.
당신의 책상 위에는 신문과 가위나 밀려들어왔습니다.
1면에 큼지막한 헤드라인을 달고 있는 기사를 오리면 되겠어요.
차례대로 오려내면서 가볍게 읽어볼까요?
기준치: | 80/40/16 |
굴림: | 13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이 세 번째 기사 내용, 어제 샤벳이 당신에게 해줬던 말과는 다른 내용인걸요.
대회에 나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했는데, 기사 내용대로라면 대회는 어제 끝난 것이니까요.
앞의 두 기사도 그렇습니다.
당신이 알고 있는 상식과는 영 딴판입니다.
...당신이 잘못 보고 있는걸까요, 아니면,
기준치: | 66/33/13 |
굴림: | 68 |
판정결과: | 실패 |
그렇게 정신을 반쯤 빼고 지내다가, 간신히 되찾고나면 어느새 급식실.
눈앞엔 입으로 먹는지 코로 먹는지 몰랐던 빈 식판이 놓여 있습니다.
급식실로 오면서도 그러했듯, 친구들의 손에 이끌려 교실로 질질 끌려가던 차,
저 복도 끝, 보건실 앞에 서있는 인영이 보입니다.
길고 하얀 가운을 걸치고 있는, 누가봐도 보건 선생님으로 보이는 사람입니다.
"나 보건 선생님 진짜 오랜만에 뵙는 것 같아."
친구들은 저마다 보건 선생님의 출현 빈도...에 대한 말을 한마디 씩 얹습니다.
까먹고 있었네, 이따 교실에서 봐요
"아, 아.... 놀래라..."
"무슨 일이니? 어디 아, 아파서 왔니...? 아픈거면 미안하지만 오늘은 좀 힘들 것 같은데..."
제가 함부로 약품을 사용했었는데, 그거 사과드리려고 왔습니다
"그, 미안하면 혹시 선생님 좀 도와줄래...?"
"그, 나, 나는 교무실에 가 있을테니까 그곳으로 가져다주렴-!"
잔뜩 겁을 집어먹은 듯 보이던 보건 선생님은 당신을 곧장 보건실 안으로 밀어넣더니, 그대로 도망치듯 복도 너머로 뛰어가버립니다.
뭐가 그렇게 무섭길래...
고작해야 다섯 걸음 정도면 가져올 수 있는 물건인데...
뭐가 그렇게 무서웠던걸까 싶어 안을 더 살펴보면,
세번째 침대의 커튼을 걷어내고서야 보건 선생님이 무서워 한 존재를 확인합니다.
아침부터 내내 보이지 않던 샤벳이 침대 위에 곤히 잠들어 있습니다.
...애초에 보건실로 등교한건가?
샤벳은 여기있었구나
보건선생님이 부탁하신게 있으셔서..
샤벳 너는?
학교에서 잠깐 잘만한 곳은 보건실 밖에 없잖나.
혹시 지금 뭘 물어도 괜찮을까?
내가 나가는 건 소규모라 신문에는 안 실릴 정도니까, 다른 대회가 맞을거다.
그렇다면 다행이네, 샤벳이 대회 날짜를 착각한줄 알았어서
모두 아침부터 무거워지는 눈꺼풀 참아가면서 공부하는데
편안히 자는거 보니까 괘씸해서요?
괜히 귀찮은 일에 엮이는것 보다야 낫지 않나, 싶기도 하고.
다른 사람은 모르겠다만, 너는 괜찮을 것 같다고는 생각하긴 했지.
...그래도 생각은 더 해보는 게 좋을걸.
괜히 나 때문에 너까지 오해받지 않게 말이다.
진심으로 걱정되서 하는 말이니까 흘려듣지 마.
그나저나, 난 좀 더 잠이나 잘까 생각하는데.
... 계속 여기 있을 생각인가?
원한다면, 조금 더 머물렀다가 가도 괜찮겠어요.
어쩌면 점심시간이 끝나고 함께 교실로 올라갈 수도 있을테고요.
시선 끝에 바깥의 풍경이 새어 들어옵니다.
차츰 얇아지는 빗줄기가 창문을 토독, 토도독, 옅게 두드리고, 천천히 먹구름이 걷혀 햇빛이 희미하게 비추기 시작합니다.
고요한 풍경과 일상의 작은 소리가 알맞게 어우러집니다.
서서히 움직이던 시선의 종착지는 어느새 정자세로 누워 자고 있는 샤벳의 얼굴입니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머리카락과, 감긴 눈에 촘촘히 드리운 속눈썹이 유독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먹구름이 흩어지고,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어 창 안으로 들어옵니다.
빛이 눈가에 머물자, 잠든 와중에도 눈이 부신지 설핏 눈살을 찌푸리는 모습이 보입니다.
...생각해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가는 시간입니다.
햇빛을 가려주지 않고 깨웠어도 괜찮았을텐데 말이에요.
구태여 그러지 않은 이유를 달자면,
조금은 더 이 평화로움을 즐기고 싶었다던가, 찌푸린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던가.
그 정도로 설명할 수 있겠네요.
노곤노곤 잠을 자고 있던 샤벳을 깨우고, 비몽사몽한 그를 데리고 교실로 돌아갑니다.
샤벳과 함께 문을 드륵 열고 들어가면, 누군가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삽시간에 고요가 찾아옵니다.
아마도 오늘 내내 나타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샤벳이 등장한 탓이겠죠.
자리에 앉으면 어느새 비가 그친 풍경이 보입니다.
푸릇한 이파리 끝에 모여드는 물방울이 똑, 똑, 떨어지는 광경을 배경 삼아 수업이 시작됩니다.
...물론, 샤벳은 여전히 수업에 집중하는 법이 없습니다.
이번엔 교과서가 아니라 파란색 종이로 종이 비행기를 접고 있습니다.
어디서 가져온거에요?
교무실에서 훔쳐온건 아니지?
음..
조금만 줄 수 있어?
창문 밖으로 날려 보낸 종이 비행기들은 공기에 가득한 눅눅한 물기를 한껏 머금었는지, 멀리 날아가지 못하고 날리는 족족 아래로 떨어집니다.
나중에야 알게된건데, 바로 아래에는 소각장이 있으니 열심히 접은 보람도 없이 떨어진 종이 비행기들은 곧장 태워질테죠.
그럼에도 샤벳은 꿋꿋이 종이 비행기를 접어, 단 하나의 종이 비행기만 남기고 전부 날려버렸습니다.
아, 물론 당신도 거기에 동참했고요.
재밌었으면 된거지.
아, 그거는 안날리게요?
대회가 끝나면 안 날리겠구나
그와 동시에, 샤벳이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한 손에는 종이 비행기를 쥐고, 다른 한 손은 당신에게 내밉니다.
도착지는 학교 옥상입니다.
바깥으로 나가보면, 비 온 뒤 느껴지는 청명한 비냄새가 풍깁니다.
하얗게 변한 뭉게구름과 새파란 하늘을 담은 물웅덩이도 곳곳에 보이네요.
그 위를 샤벳과 함께 지나면, 찰박거리는 소리가 무척이나 청량하게 들립니다.
이윽고 새하얀 난간에 다다르면, 학교 전경이 전부 내려다보입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종이 비행기를 건넵니다.
마지막이니까.
샤벳이 나지막이 속삭이듯 말합니다.
대회 관련된거 아니야? 우승이나 그런거 말이에요
다만, 이번엔 다른 소원을 빌까 싶어서 말이다.
같이 날리자고 했는데, 알려주지 않으면 섭하겠지.
운이 나쁘면 죽기도 하지.
그래서 만약, 내게 그런 운 나쁜 일이 일어난다면, ...
네가 나를 잊어주길 바란다. 꿈을 꾸었던 것처럼.
그게 이번 소원이야.
안 다치게 해주세요 같은 소원이면 몰라도..
그리고, 샤벳은 나 말고 친한 사람 없잖아
그러면 완전히 잊히는건데도?
오히려 그 편이 더 좋을지도 모르고.
그러니까, 신경쓰지 않아도 돼.
난 그런 소원 빌고 싶지 않아, 적어도 행복을 바라는걸요?
개인적인거도 상관없어?
[샤벳이랑 더욱 절친이 되게 해주세요]
이걸로 할래
그 하늘에 집어삼켜질 듯이 동일한 색을 띈 종이 비행기는 고요히 허공을 부유하다가 이내 미끄러지듯 아래로 떨어져갑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샤벳이 미묘한 표정으로 입을 엽니다.
이제 슬 조퇴하고 연습하러 갈까 싶어서 말이다.
그렇다면 어쩔수 없네요
응원 한 마디만 부탁해도 될까?
모두 쓱싹 이겨버리고, 당당하게 우승하고 오세요
...
다음 날,
아침 등굣길이 어째서인지 싱숭생숭합니다.
아침부터 추적추적 약하게 내리는 여우비 때문만은 아닐 거에요.
아마 슬슬 샤벳이 출전한 대회가 시작하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교실 앞에 다다르면, 샤벳이 없을 때엔 늘 소란스럽던 교실이 웬일로 잠잠합니다.
무슨 일인걸까요?
설마 담임 선생님이 벌써 들어와 계신...
...헉, 불안한 마음 때문에 걸음이 느렸던 탓일까요?
앞문 창문 너머로 이미 담임 선생님이 교실 안에 계십니다.
급히 교실로 들어가 죄송하다고 고개를 꾸벅거리자, 담임 선생님은 별 말 없이 자리에 들어가 앉으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그렇게 자리로 가서 앉으면, 빈 옆자리가 보입니다.
늘 찢어진 교과서가 펼쳐져 있던 책상 위로.. 새하얀 국화 꽃다발이 놓여져 있습니다.
...?
국화꽃?
누가 이런 질 나쁜 장난을 친거죠?
"자, 오늘 조례 시간은 샤벳의 49제를 기리는 시간으로 보내도록 하자. 다들 조용히 묵념."
...49제요?
그러면, 지금까지 당신과 대화한 샤벳은 무어란 말인가요?
기준치: | 65/32/13 |
굴림: | 66 |
판정결과: | 실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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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전부가, 당신의 여름에 존재했던 샤벳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 진실 앞에 덩그러니 남겨진 당신에게로 현실이 들이닥칩니다.
꿈을 꾸는 것처럼, 자신을 잊어주길 바란다는 샤벳의 목소리가 귓가에 잔흔처럼 머뭅니다.
그 허상의 존재가 함께 어울렸던 기억을 기어코 갉아먹으려 합니다.
하지만, 잊고 싶지 않잖아요?
분명, 분명히 어딘가에 있을겁니다.
그 존재가 머무를만한 곳에, 분명...
샤벳이 죽었다 그런 말은 없었잖아
일진이라서 무섭다고 했으면서
이게 무슨
애써 변명하듯이 내뱉은 말은...
"...네가 귀신 보고 있는거라고 하면 놀랄까봐 그랬어."
"다들 그 자리에만 앉으면 자꾸 귀신이 보인다고 그래서 피했던건데... 너는 전학생이라 아무것도 모르니까..."
"일진이라고 하면 그래도 좀 피하지 않을까 싶어서 그랬던거야."
저 선생님, 잠시 보건실을 좀 다녀와도 될까요?
당신이 들어오는 것과 동시에 화들짝 놀라며 무슨 일이냐고 물어오는군요.
"그게, 오, 오늘은 안... 나타났더라..."
억지로 그런 말만을 쥐어짜내 전해줄 다름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겁을... 실례했습니다
옥상 문 손잡이 옆에는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옥상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열리지 않습니다.] 라고 쓰인 태그가 붙어있습니다.
사실, 이제 남은 곳은 그곳밖에 없잖아요?
걸음을 옮기는 중에도 갖은 생각과 감정이 차올라 갑갑함을 물려줍니다.
그런 갑갑함을 강하게 자극하는 것은 아무도 없는 소각장입니다.
이젠 정말 갈만한 곳이 없는데.
허탈한 시선 끝에, 소각장 주변으로 군데군데 떨어져있는 종이 비행기들이 보입니다.
기준치: | 77/38/15 |
굴림: | 92 |
판정결과: | 실패 |
어쩌면, 이게 마지막 남은 하나 일 것입니다.
샤벳이 당신의 여름에 존재했다는 유일한 추억일지도 모르고요.
필체가 익숙하네요.
그야, 샤벳과 필담을 나눌 때 보았던 필체니까요.
제 소원은 그렇게 뭉게버리시고는..
당신의 여름에 멋대로 나타났다가 멋대로 사라진 샤벳.
정말 이기적인 사람이지 않나요?
종이 비행기는 영원히 날 수 없다는 것을 그동안 내내 보여줘놓고,
자신을 잊으라는 소원을 기어코 담아낸 것은-
바라면서도, 바라지 않는 소원.
그 공란에 어떤 의미를 메워넣어보려고 해도,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습니다.
그때,
콕ㅡ
당신의 뒤통수에 무언가 살포시 닿았다가 바닥으로 톡 떨어집니다.
... 낯선 종이 비행기입니다.
이것의 출처는 어디일까, 무심코 고개를 들어보면,
옥상에서 반짝, 하고 눈을 시리게 하는 어떤 빛이 스칩니다.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몽환적인 하나의 색채, 라고 표현하면 될까요.
적어도 누군가가 당신에게 기회를 건네주었다는 것 만은 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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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거의 사그라들던 희망엔 자그마한 불씨가 켜집니다.
...다시 처음부터 찾아보는거에요.
어딘가에서, 아직도 종이 비행기가 날고 있을지 모르잖아요.
당신의 여름을 담은 종이 비행기가.
가장 의미가 깊은 곳이니까요.
그 안쪽으로 들어가보면,
활짝 열린 창문과 오로라처럼 너울거리는 커튼,
그리고 그 너머로 아른한 실루엣으로 보이는 샤벳.
하늘하늘 나풀거리는 커튼을 잡아 젖히면,
한 여름의 햇빛보다도 찬란하게 빛나는 금빛 눈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왜 찾아온건가.
잊어달라고 했었을텐데, 분명.
정말 고맙다, 잊지 않아줘서.
고마워, 돌아와줘서
다시금 시작된 매미 울음소리, 나뭇잎 사이를 스치며 청량한 노래를 자아내는 하늬바람, 구름 사이로 내리쬐는 햇살의 물결.
채워진 공란을 따라 다시 차오른, 우리의 여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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