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 지평선

[COC 플레이로그] 너를 내게 되돌려줄 100시간 본문

COC 플레이 로그 (캠페인)/크리그어, 100시간 연대기 (예아&네오)

[COC 플레이로그] 너를 내게 되돌려줄 100시간

CB_PL_ 2023. 1. 8. 20:48

시나리오 링크(인포): https://posty.pe/9knwb5

* 크리그어 페어로 플레이한 탓에 해당 시나리오의 네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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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ㅡ 다음 뉴스입니다. 연합 정부는 파이로젠 바이러스에 대한 치료제 생산 공장을 올해 안으로 2배 이상 늘릴 것이며, 감염자에 대한 수용시설 또한 확충할 것임을 발표하였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학자들 사이에서 치료제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음에 대한 원인은 찾지 못하고 있으며-......
 
당신은 건조한 표정으로 어제자 재방송인 뉴스 화면을 바라보다 시선을 돌렸습니다.
 
정오를 살짝 넘긴 시간, 병동 앞 대기실은 tv 화면의 뉴스 소리나 간간히 들리는 대화 소리를 제외하곤 조용합니다.
 
... ...
 
좀비 사태가 발발한 후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24시간 안에 감염된 사람을 좀비로 만드는 파이로젠 바이러스에 의해, 인류는 이대로 멸망되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좀비 사태 이후 25개월이 지난 후의 12월 25일.
 
학자들에 의해 바이러스에 대한 치료제가 개발되었고, 인류는 이를 희망이자 구원이라 불렀습니다.
 
물론, 치료제의 공식이 적힌 낡은 노트를 작성한 사람이 네오고, 그것을 가져온 사람이 당신이라는 사실은-
 
아주 소수의 정부 관계자만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요.
 
당신은 가방에서 며칠 전에 당신 앞으로 왔던 편지를 꺼내 펼칩니다.
 
 
 
:몇 번이고 반복해 읽어 내용을 거의 다 외워버린 편지는 구겨지다 못해 너덜거리기까지 합니다.
 
...- 치료제가 완성된 후인 이듬해 1월,
 
연합정부는 파이로젠 바이러스와의 싸움을 전면적으로 공표했습니다.
 
하지만 희망을 갖기도 잠시, 사람들은 또 한 번의 절망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치료제가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치료제를 투여 받은 후, 완전한 인간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치료제를 투여했음에도 바이러스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비활성화 상태로 몸 안에 남아있는 사람들 또한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바이러스의 돌연변이 같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학자들은 치료제를 조금씩 바꿔나가며 계속해서 실험을 거듭했지만, 불특정 다수에 대해 치료제가 효과를 보이지 않는 현상에 대한 이유를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인류가 직면한 또 하나의 난관이 있었습니다.
 
만들어져야 하는 치료제의 양에 비해 공장과 자원은 부족했습니다.
 
치료제를 투여한다고 모두가 인간으로 돌아오는 것도 아니니, 결국 정부는 그들을 수용소에 모은 후, 생존자들에 의해 신원이 확인된 이들부터 순처적으로 치료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연합정부는 당신의 말에 따라 노트의 작성자인 네오를 찾는 것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으나, 알다시피 정부는 그것 말고도 할 일이 많으니까요.
 
멸망 이후 조금씩 회복하기 시작한 세계는 평화로웠던 시절보다 모든 것이 몇 배로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당신 역시 세계를 재건하기 위한 생존자의 일원으로, 남들보다는 아니더래도 꽤나 바쁜 일상을 보내왔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어느 날.
 
마침내 정부가 당신에게 연락을 걸어왔습니다.
 
몇 달을 기다려야 하는 다른 감염자들과는 다르게, 네오에게는 발견 후 1주일이라는 짧은 시간 만에 치료제의 투여가 결정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당신이 이곳, 아리마테아 병원으로 찾아온 것입니다.
 
안전지대의 외곽에 위치한 이 병원은, 좀비 사태 이후 폐병원이 된 곳을 통째로 감염자들을 위한 시설로 바꾸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병원보다는 수용소라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지요.
 
편지와 함께 본인 확인을 거치고 접수를 마친 당신은 네오가 있다는 7층으로 안내를 받았습니다.
 
감염자들이 입원하고 생활하는 병동은 외부의 출입이 차단된 폐쇄 병동인지라, 병동 앞 면회실에선 당신을 포함해 스무명 남짓한 사람들이 저 안에 있을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길고 긴 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ㅡ 11월 14일 12:50 pm.
 
 
 
:정오를 넘기고 오후 1시에 가까워질 때, 당신은 비로소 직원이 당신의 이름을 호명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김예아 님, 안으로 들어가시죠."
 
짧은 복도를 지나, 당신은 굳게 닫힌 철문 앞에 도착합니다.
 
직원이 카드를 직자 문이 열리고, 병동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중앙 스테이션과 주위를 둘러싸는 별실들과 처치실, 면회실,
 
심지어, 약소하지만 '환자들'을 위한 휴게공간까지.
 
 
 
:겉보기에 이곳은 평범한 병동입니다.
 
습관적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 당신이었지만, 그럴 틈을 주지 않고 직원은 빠른 걸음으로 당신을 한 진료실 안쪽으로 안내합니다.
 
진료실은 한쪽 벽 가운데 널찍한 유리창이 있는 것만 빼면 평범합니다.
 
 
김예아: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91
판정결과: 실패
 
 
 
:방 안에 이런 구조물이라니, 특이하네요.
 
반대쪽 방은 불이 꺼져있습니다.
 
진료실 안으로 들어온 당신이 자리에 앉자, 손에 들린 차트를 확인하던 의사가 입을 엽니다.
 
 
레나 리센:안녕하세요, 김예아씨. 저는 72병동 담당의사 레나 리센입니다.
 
'네오 샤프슈체' 씨의 보호자, 맞으시죠?
 
 
김예아:...네.
 
 
레나 리센:그럼, 이미 DNA와 지문으로 본인 확인을 하긴 했지만, 잠시 확인을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그는, 책상 옆에 있는 리모콘을 들어 버튼을 하나 누릅니다.
 
그러자 얼마 후,
 
쾅-! 하는 소리에, 당신은 고개를 돌립니다.
 
고개를 돌린 당신의 시야에는 불이 켜진 유리창 너머, 그리고 그 안에 서있는 네오의 모습이 들어옵니다.
 
그 날, 헤어진 후 처음 보는 모습인데, 당신이 기억하는 대로의 모습인가요?
 
그는 지금 바이러스의 감염자, 좀비잖아요.
 
 
 
:창문 너머에서 낮은 신음소리가 들리고, 창과 맞닿은 손끝과 이마에서 흐르는 피가 뭉개집니다.
 
환자복을 입고, 무표정한 얼굴로 유리창 너머에 서있는 모습입니다.
 
당신을 알아본건지, 아니면 그저 빛에 반응한건지.
 
색이 바랜 보랏빛 눈동자의 동공은 희게 번뜩입니다.
 
 
레나 리센:...- 저 사람이 네오 샤프슈체 씨가 맞습니까?
 
 
김예아 , 숨을 크게 한번 들이마시며 말합니다.
 
 
김예아:...네. 맞아요.
 
 
 
:당신의 대답을 들은 그는 차트에 무언가를 적곡, 다시금 버튼을 누릅니다.
 
불이 꺼진 반대편 방에선 더이상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
 
멍한 표정의 당신만 창에 반사될 뿐입니다.
 
 
레나 리센:보시다시피 지금 상태에선 면회가 불가능합니다.
 
면회가 허용되는 건 치료 진전 3단계부터입니다.
 
이미 편지에 동봉된 안내자료를 보셨겠지만... 다시 한 번 더 설명 드리겠습니다.
 
치료제는 어제 오후 1시에 투여된 상태입니다. 네오 샤프슈체씨는 현재 2단계의 상태이고요.
 
치료제를 처음 투여 받은 환자는 100시간동안 1단계부터 4단계를 거치며 서서히 인간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100시간 후에 5단계가 되어 완치 판정을 받을 경우 퇴원이 가능합니다.
 
 
레나 리센:첫 치료시 완치율은 대략 30% 정도이고, 4단계에서 5단계로 넘어가지 못한다면 이곳 병원에 격리하여 추가적인 치료를 받게 됩니다.
 
완치된 환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좀비일 때는 의식도 기억도 없는 상태라고 합니다.
 
치료제가 투여되고 서서히 기억이 돌아오죠.
 
현재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학자들은 바이러스가 뇌에 침입한 결과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또한 약물 부작용인지, 바이러스 때문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3, 4단계의 환자들이 이따금씩 액팅아웃-...
 
그러니까,... 발작을 하며 공격성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레나 리센:이런 일이 일어날 경우 안정제 투여 후 독방에 격리하는데, 그러면 수 시간 후에 괜찮아지므로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 제가 드릴 설명은 여기까지 입니다. 질문 있으신가요?
 
최대한 대답 해드리겠다만, 대기 인원이 많아서 시간을 오래 할애해드리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김예아:...아니요, 딱히 없어요.
 
 
레나 리센:그럼, 내일 같은 시간에 방문해주시면 면회가 가능할 것입니다.
 
... 행운을 빕니다.
 
 
김예아:... ...
 
 
김예아 , 말없이 고개를 숙인 채 끄덕입니다.
 
 
 
:짧은 인사 후, 진료실을 나서면 직원은 당신을 출구로 안내합니다.
 
그가 입구 옆에 출입 카드를 찍자 병동의 자동문이 열리고, 앞서 밖으로 나간 요원이 다름 차례의 대기자를 호명하는 바로 그 순간,
 
 
 
:"거기 비켜!!!"
 
- 하는 소리에 뒤를 돌아볼 새도 없이, 당신의 뒤에서 달려온 누군가가 당신을 밀치고 문 밖으로 뛰쳐나갑니다.
 
 
김예아:
민첩
기준치: 75/37/15
굴림: 3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당신은 가까스로 중심을 잡고 벽을 짚어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보균자가 탈출했다!!"
 
"72병동 환자 탈출, 지원 바란다!!"
 
당신을 밀치고 병동을 뛰쳐나간 건 환자 복을 입은 '보균자'입니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지 비틀거리면서도 날쌘 걸음으로 복도를 달리는 그를 피해 복도의 대기자들이 양 옆으로 갈라집니다.
 
하지만 그는 이내 지원 요청을 듣고 반대쪽 복도에서 나타난 다른 직원들에 의해 붙잡혀, 사지에 억제대가 채워집니다.
 
 
 
:이 모든 과정이 5분도 안 되는 찰나에 이루어지고, 짧은 탈출이 끝난 그는 장정들의 팔에 들려 병동 안으로 짐짝처럼 운반됩니다.
 
"나가게 해줘, 나는 인간이야, 갇히기 싫어, 나가게 해줘-..."
 
고통스러운 울음소리는 무거운 철문 뒤로 사라지고, 복도엔 무거운 적막이 감돕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직원은 다음 차례의 보호자를 호명하고, 남은 대기자들은 다시금 순서를 기다립니다.
 
하지만, 아마도,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겁니다.
 
 
 
:바이러스에서 완치되지 못한다면, 내 소중한 누군가는 평생을 저 안에 갇혀 지낼지도 모른다는 것.
 
...
 
과연, 당신의 소중한 이는, 당신의 곁으로, 인간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하늘엔, 꼭 당신의 마음처럼 먹구름이 가득 끼어 있습니다.
 
 
ㅡ 11월 14일 3:40 pm.
 
 
 
:집으로 돌아오면, 당신을 기다리던 로버트가 꼬리를 흔들며 당신에게 달려옵니다.
 
날이 흐린 탓인지, 불을 키지 않은 거실은 어둑하네요.
 
-지금 당신이 살고 있는 이 집은 연합정부가 생존자들에게 제공한 안전지대의 아파트, 그 중에서도 제일 넓고 좋은 축에 드는 곳입니다.
 
4인 이상 가족들에게 주어지는 넓은 아파트에서, 당신은 로버트와 단 둘이 살고 있는 것이나, 매달 나오는 지원금 같은 것 덕에-...
 
멸망 이후의 과도기에도 부족한 것 없이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야, 노트를 완성한 건 네오지만 가지고 온 것은 당신이니까요.
 
 
김예아 , 달려온 로버트를 꽉끌어안다가 놓아줍니다.
 
 
김예아:(그래도 현관 앞에 엎어짐)
 
 
 
:풀썩, 현관 앞에 엎어진 당신의 옆에서 로버트가 알짱거립니다.
 
부스스 일어나 옆에서 애교를 부리는 로버트를 쓰다듬으며 집 안을 멍하니 둘러보면, 정돈되지 못한 부분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러고보면 한동안 그 편지의 내용 탓에 정신이 쏙 빠져나가버려서, 집안일을 조금 소홀히 한 감이 없잖아 있었네요.
 
100시간이 지나기까지 남은 시간은 앞으로 약 72시간.
 
설령 30%밖에 되지 않는 희망이어도, 그보다 더한 확률에 목숨을 걸었던 적도 있잖아요?
 
언젠가 네오와 함께 이 집으로 돌아올 때, 난잡한 집안을 보여주면 분명 잔소리부터 할게 뻔하니까요,
 
 
 
:우선 너저분한 거실부터 치워봅시다.
 
소파 위에 쌓인 겉옷들, 탁자 위의 다 마신 컵들, -
 
구석구석 먼지도 꽤 쌓였었네요.
 
 
김예아 , 드러눕고 있다가 주섬주섬 일어나서 집안을 청소합니다.
 
 
김예아:
민첩
기준치: 75/37/15
굴림: 28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옷들을 차곡차곡 개서 걸고, 컵들을 치우고, 먼지까지 닦아내니 너저분하던 거실이 티끌하나 없이 깨끗해졌습니다.
 
완벽해요!
 
자, 그 다음은 침실입니다.
 
매일 잠을 자는 공간이니, 그만큼 정돈되지 못하는 공간이죠.
 
구겨진 이불과 카페트, 책들과 서류들이 널브러진 책상, 구석구석 쌓인 개 털과 그 위를 구르는 양말...
 
그동안 왜 치울 생각을 안하고 있었을까요?
 
 
 
:이제서야 돌아보니 상당히 어지럽습니다.
 
 
김예아:(아-...)
 
(귀찮아서 안한것 같기도하고...)
 
민첩
기준치: 75/37/15
굴림: 53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불과 카펫을 반듯하게 하고, 책과 서류들을 정돈해 책상을 정리하고, 양말을 하나하나 주우며 다닙니다.
 
... 양말 짝이 안 맞는데요? 어디로 간거람.
 
 
김예아:...
 
(로버트봄)
 
 
 
:로버트는 순한 눈으로 당신을 올려다보고 있습니다.
 
음-...
 
에이. 로버트가 뭘 알겠습니까.
 
선량하게 털을 뿌리고 다니는 귀여운 반려견일 뿐입니다.
 
 
김예아:로버트, 이거 찾아와.(남은 양말 한쪽을 보여주며)
 
다른 한쪽 찾아와.
 
 
 
:로버트는 킁킁거리며 양말의 냄새를 맡더니, 방 곳곳에 코를 쿡쿡 박으며 돌아다니기 시작합니다.
 
찾게 되면 알아서 쫓아오겠죠.
 
주방을 치우러 갈까요?
 
 
김예아 , 주방으로 비척비척갑니다.
 
 
 
:주방의 상태도 꽤 어지럽네요.
 
언제 마지막으로 정리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냉장고와 며칠은 밀린 설거지거리, 거의 꽉 차가는 쓰레기통...
 
정말 정신이 없기는 했나봐요.
 
 
김예아:
민첩
기준치: 75/37/15
굴림: 2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아-...예전에 AOC 들어가기 전에도 이런 상태였던 거 같은데...)
 
 
 
:능숙한 손길로 그릇을 한데 모아 씻고, 냉장고의 오래된 음식들을 정리하고, 쓰레기통을 비웁니다.
 
이야. 주방에서 빛이 나는 것 같네요.
 
그렇게 한바탕 청소를 끝내고 마무리로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면, 상쾌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힘내서 청소를 한 덕에 깨끗해진 집 안을 돌아보면 뿌듯하고, 또-...
 
힘이 쭉 빠지며 배가 고파옵니다.
 
아까 냉장고를 정리하기도 했고, 마침 저녁시간이기도 합니다.
 
 
 
:장이라도 보러 나갈까요?
 
 
김예아 , 잠깐 테이블에 몸만 엎어진채로 있다가 배고픈 것을 느끼고 주섬주섬 일어납니다.
 
 
김예아:(밥은 먹고 살아야지...)
 
 
 
:당신이 주섬주섬 일어나면, 입에 양말을 문 로버트가 총총 뛰어옵니다.
 
어머나. 결국 찾아냈나 봅니다.
 
 
김예아 , 양말을 받아내고 머리를 쓰다듬어줍니다.
 
 
김예아:로버트, 장 보러 갈까?
 
 
 
:기분 좋은 멍! 하는 울음 소리를 내는군요.
 
산책도 겸해서 같이 나가봅시다.
 
 
김예아 , 대애충 준비하고 나옵니다.
 
 
 
:장바구니를 들고 얼마간을 걸어 아파트 근처에 위치한 마트로 향합니다.
 
길목에 위치한 상가들은 문을 닫은 곳보다 연 곳이 더 많습니다.
 
재정비를 거쳐 곧 오픈을 앞두고 있다는 가게들도 보여요.
 
아침에 들렀던 외곽에선 병원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없었는데 말이에요.
 
거주구역을 주변으로 상권이 발달하는 것은 당연한 걸까요.
 
저녁 시간이 가까워져서인지, 마트 안엔 장을 보러 나온 사람이 꽤나 많습니다.
 
 
김예아 , 아무리 그 때 이후로 성격이 죽어도 고기의 대한 사랑이 사라진 것은 아닌지라 일단 고기 사러갑니다. (있으면)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만해도 고기 공급이 그리 많지 않았는데, 조금씩 공급이 늘어나고 있더랬죠.
 
좀 비싸긴 하지만요.
 
 
김예아:(로버트봄)
 
간식?
 
 
 
:조용히 쫓아만 오던 로버트가 간식 소리를 듣자마자 헥헥 거리며 꼬리를 미친듯이 흔들어댑니다.
 
귀엽군요.
 
 
김예아:(기여워)
 
 
김예아 ,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간식을 삽니다.
 
 
김예아:집에서 먹자.
 
 
 
:멍! 하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
 
그렇게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준비합니다.
 
사태 전과 비교하면 조촐한 편인 저녁상이지만, 이렇게 제대로 끼니를 챙긴 것도 오랜만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 달그락거리는 식기의 소리와, 사료를 먹고 있는 로버트의 소리를 제외하면, 집 안은 고요합니다.
 
그리고 그 정적을 간간히 메꾸는 것은 윗집에서 들리는 티비 소리, 옆집 가족들의 대화 소리, 웃음 소리.
 
 
 
:분명 불이 환하게 켜진 집 안에 있는데,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툭 떨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지금 느끼는 감정에 이름을 붙인다면, 어느 이름이 붙게 될까요.
 
외로움? 그리움?
 
잘 모르겠습니다.
 
무어라 정의내릴 수 없는 묘한 기분에, 식사를 마치고 일찍 잠이라도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옵니다.
 
 
김예아 , 빠르게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까지 해준 뒤에서야 침실로 들어가 침대에 쓰러지듯 눕습니다.
 
 
 
:폭, 침대에 쓰러지듯 누우면, 불현듯 과거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정확한 날짜는 이제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언제였나, 이스트베일의 마을에서 누웠던 침대가 떠오릅니다.
 
로버트는 그때처럼 당신의 옆에서 몸을 말고 누워있는데, 침대에 걸터앉아 당신을 쓰다듬어주던 이는 그 자리에 없습니다.
 
아직까지도 그 손길이 머리에 닿는 느낌 만큼은 생생한데, 그때 무슨 대화를 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시간이 오래 지난 탓일까요.
 
어쩌면, 내일 네오를 만났을 때 기억이 돌아오는 건 당신도 마찬가지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깜빡,
 
잠에 들어갑니다.
 
 
ㅡ 11월 15일 1:00 pm.
 
 
 
:다음 날,
 
당신은 시간에 맞춰 병동에 도착했습니다.
 
어제와 같은 직원이 오늘은 당신을 진료실이 아닌, 네오가 있다는 병실로 안내합니다.
 
"면회 시간은 오후 다섯 시까지 입니다."
 
안내를 마친 직원은 당신을 그 자리에 두고 다른 곳으로 걸어갑니다.
 
앞에 놓인 것은 이제 문 하나군요.
 
 
 
:... 들어갈까요?
 
 
김예아 ,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쉰 뒤 들어갑니다.
 
 
 
:작은 병실 안은 낮인데도 커튼을 쳐 놓아 어둑합니다.
 
유일한 광원인 TV에선 대기실에서 나오던 것과 같은 뉴스가 틀어져 있고, 작은 화장실과 냉장고, 벽에 붙은 서랍장 등이 보입니다.
 
그리고, 방 안을 제일 크게 차지하는 침대에 앉아있는 네오까지.
 
그는 멍한 표정으로 TV화면을 바라보다가, 정확히 당신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립니다.
 
헤어진 후에 이렇게 만나는 것은 몇 년 만인가요.
 
가까이서 본 그는 당신이 기억하는 마지막 모습보다 훨씬 마르고 수척한 모습입니다.
 
 
 
:좀비로 변하고 난 후 생긴 상처인지, 몸 군데군데엔 붕대나 반창고가 붙어있습니다.
 
 
김예아: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56
판정결과: 보통 성공
 
 
 
:당신은 문득, 이 작은 방의 천장에 cctv가 달려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러고보니 면회 전 서명했던 동의서에 감염자와 일반인의 면회는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감시카메라가 있는 방에서 이루어진다, 라는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게 바로 이런 것이었나 봅니다.
 
 
김예아 , 잠깐 보다가 저어쪽에 있는 의자 질질 끌고 와서 침대 앞에 의자를 놓고 거기에 앉습니다. 그리고 침대에 얼굴 박고 엎어집니다.
 
 
네오 샤프슈체 ,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쿡, 하고 찌릅니다.
 
 
네오 샤프슈체:... 저기?
 
 
김예아 , 네오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올려 다시 정자세로 앉습니다.
 
 
김예아:...왜.
 
 
네오 샤프슈체:갑자기 왜 그러나 싶어서.
 
그나저나.. 이름, 김예아 맞지?
 
한 번 듣긴 했는데,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게 맞나 싶어서.
 
 
김예아:...맞아. 제대로 기억하고 있어.
 
... ...지금, 나 기억나?
 
 
네오 샤프슈체:솔직히, 아니.
 
어렴풋이 중요한 사람이었던가, 하는 기분은 들지만...
 
기억은 전혀.
 
 
김예아 , 그 말을 듣고 입술을 꾹 깨물다가 말합니다.
 
 
김예아:... 그렇구나-...
 
어쩔 수...없는거니까.
 
... 기억나는 건 뭐 뭐 있어?
 
 
네오 샤프슈체 , 글쎄다- 하고 중얼거리며 고민에 빠진듯한 표정을 지어냅니다.
 
 
네오 샤프슈체:엄청 어두운 방에 있던 건 기억나.
 
다른 사람도 많았는데.
 
 
김예아:...거의 없는 것 같네.
 
 
네오 샤프슈체 , 어깨를 으쓱입니다.
 
 
네오 샤프슈체:내 이름도 기억 못하다가 의사가 말하는 거 듣고 알았는 걸 뭐.
 
 
김예아:하아...긴.
 
그렇겠지이...
 
 
김예아 , 손을 꼼지락 하면서 말합니다.
 
 
네오 샤프슈체:아, 하나 더 기억나는 게 있긴 해.
 
언제였었나는 기억 안나는데, 그 어두운 방에서 나온 다음인 건 확실하거든?
 
그땐 혼자 있었는데, 어디서 빛이 보이길래 그쪽으로 갔었어.
 
거기서 너랑 비슷한 새카만 걸 본 것 같기도 하고.
 
 
김예아:...- 어제 얘기인가보네.
 
 
네오 샤프슈체:어제 있던 일이야?
 
엄청 오래전 일 같이 느꼈는데.
 
 
김예아:...그때 아니면 그런 식으로 만난 적은 없었으니까... 있어도 아주 예전일테고...
 
 
네오 샤프슈체 , 으음, 하는 소리를 냅니다.
 
 
네오 샤프슈체:맞다,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말야.
 
 
김예아:...?
 
 
네오 샤프슈체:너 혹시 뭐 하는 사람?
 
다른 사람들은 다 6인실 4인실 쓴다는데, 나는 계속 혼자 있었거든.
 
혹시 너랑 관련 있나 싶어서.
 
 
김예아:...- 나라고 해야할지...
 
...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치료제를 만들 수 있는 공식이 적힌 노트가 있어...그걸 내가 연합정부한테 줬었어.
 
... 나 말고 너가 쓴 노트지만...
 
 
네오 샤프슈체:앞 얘기만 듣고 너가 쓴건가 했는데.
 
 
네오 샤프슈체 , 곰곰 고민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다가, 가볍게 웃습니다.
 
 
네오 샤프슈체:뭔가 쓴 기억은 전혀 없거든.
 
 
김예아:...백신 때문인지 바이러스 때문인지는 몰라도 기억상실 증상이 있다고 하니까...
 
...곧 돌아오겠지.
 
 
네오 샤프슈체:그러려나.
 
 
김예아:내가 그런걸 쓰기에는... ...
 
...
 
 
김예아 , 조금짜증난다는 표정으로 네오를 보다가 표정을 풉니다.
 
 
김예아:... 기회가 없었으니까.
 
 
네오 샤프슈체:-기회?
 
 
김예아:... 꿈에서 누가 거래를 하자고...했다고 너가 말해줬었어...
 
그 거래가...치료제에 대한 공식을 알려주는거였고...
 
근데 알려주는대신...너가 감염이 된다고...했었대...
 
그래도 너는 그걸 수락했었고...
 
 
네오 샤프슈체:헤에-
 
진짜 치료제가 맞을지도 모르는데 그걸 수락했다고?
 
나 진짜 대책 없는 사람이었네.
 
 
김예아:지금처럼 좀 깨달았었으면-...차암...
 
 
네오 샤프슈체 , 조금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가, 살짝 미소를 띈 채 입을 엽니다.
 
 
네오 샤프슈체:근데 사실, 그걸 깨달았어도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
 
누구 하나든 희생해서라도 난관을 넘어서는게 인간 아니겠냐.
 
솔직히, 인류 구하는 데에 한 명이면 싼 값이지?
 
 
김예아:... ....
 
 
김예아 , 그 말을 듣고 손으로 얼굴을 짚으며 한숨을 쉽니다.
 
 
김예아:어떻게 기억 잃어도 사람이 똑같은지...(꿍얼꿍얼)
 
 
네오 샤프슈체:칭찬이냐 욕이냐-
 
 
김예아:욕.
 
 
네오 샤프슈체:그럴거같더라.
 
 
김예아:알면... ... 아니다- 기억 잃은 애 대리고 뭐하겠다고...
 
 
네오 샤프슈체:o O (달관?)
 
뭐, 하여튼.
 
결과적으로는 살았으니까 된 거 아냐?
 
살아있다는 말이 어울릴지는 잘 모르겠지만?
 
 
김예아 , 진짜 화난 표정으로 노려봅니다. (어차피 안보이니까)
 
 
네오 샤프슈체 ,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조용히 속삭이듯이 말합니다.
 
 
네오 샤프슈체:... 화났냐?
 
 
김예아:... 솔직히.
 
화났어.
 
물론 지금 화내도 소용없지만... 어차피 무슨 말을 하든지 기억 없어서 못 알아들을 테니까.
 
 
네오 샤프슈체:...그-... 미안?
 
 
김예아:... ... 필요없어.
 
 
네오 샤프슈체 , 가만히 바라보다가 손으로 입을 슬 가리고선 고개를 슬적 돌려버립니다.
 
 
김예아:... 나중에 제대로 받을거야.
 
지금 말고.
 
 
네오 샤프슈체:...그으으래-...
 
 
김예아 , 머리를 손으로 꾸욱 한번 눌렀다가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김예아:오늘은 이만 갈래.
 
 
네오 샤프슈체:아직 의사 안 왔는데?
 
 
김예아:(아놔)
 
 
김예아 , 다시 의자 위에 털썩 주저앉습니다.
 
 
네오 샤프슈체:너 없으면 또 나 혼자 뭐 하라고.
 
TV도 계속 같은 소리만 하고 있고, 눈도 이래서 할 수 있는 것도 사실 없는데.
 
 
네오 샤프슈체 , 제 눈 밑을 손끝으로 톡톡 건드립니다.
 
 
김예아:...알았어.
 
 
김예아 , 다시 침대에 얼굴 박고 엎어진 채로 웅얼거립니다.
 
 
네오 샤프슈체 , 조용히 바라보고 있다가, 조금 낮아진 목소리로 중얼거립니다.
 
 
네오 샤프슈체:역시, 아직 인간이 아니라서 좀 그래?
 
계속 얘기하다 보니까 느끼는건데.
 
기억도 완전하지 않고, 아무리 치료제를 받았다고 해도, 사람 먹는 괴물인건 여전하잖아.
 
...
 
 
김예아 ,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들어올립니다.
 
 
김예아:나는 인간이 아니라고 해도 상관없어.
 
좀비가 아니더라도 우리 둘 다 인간이 아니였었으니까.
 
내 파트너인데... 믿고 등을 맡기는 파트너가 인간이 아니라고 피하지는 않아. 그냥...
 
그냥... ... 정말로 화난 것 뿐이야.
 
화는 나는데 기억도 없는 애 붙잡고 화내는 건 좀 아니니까. 기억이 돌아오면 그때... 다 얘기하고싶어.
 
 
네오 샤프슈체:...-돌아오지 않으면? 그때는 그럼 어쩔건데?
 
항상 최선의 결과만 나온다는 보장은 없잖아.
 
...너는 모르겠지만, 지금 내가 떠올리는 기억들은 다 안개낀 것처럼 흐릿한 것들 뿐이야.
 
유일하게 선명한게 뭔지 알아?
 
물어 뜯고, 찢던 기억이야, 사람을.
 
 
네오 샤프슈체 , 헛웃음 짓습니다.
 
 
네오 샤프슈체:...
 
차라리 그때 정말 죽었는게 나았을지도 몰라.
 
 
김예아 , 그말에 입술을 꾹 깨문채로 옷 소매로 눈을 비빕니다.
 
 
 
:어느새 독을 삼키는 것처럼 고통스러워 보이는 표정을 지은 채 말하던 그는, 고개를 숙이고 시선을 아래로 떨굽니다.
 
깜빡, 당신이 눈을 감았다뜨는 그 짧은 순간순간마다 그의 표정이 변해갑니다.
 
흔들리는 눈동자, 바르르 떨리는 팔, 조금씩 웅크러드는 몸.
 
어느 순간, 아주 오래전의 기억처럼 그의 눈에 그림자가 깃듭니다.
 
일순간 홱, 고개를 든 그는 곧장 당신에게 달려듭니다.
 
쿵- 하고 바닥으로 밀쳐진 당신의 목이 삽시간에 조여들고,
 
 
 
:툭, 툭,
 
당신의 얼굴 위로 따뜻한 액체가 떨어집니다.
 
붉게 충혈된 눈동자에서 흐르는 것은 눈물입니다.
 
기억을 헤집고 다니는 그 살기 어린 눈은 슬플 정도로 익숙하면서도, 여전히 섬찟합니다.
 
분명 목이 졸리고 있는 쪽은 당신인데, 왜 고통스러운 듯 울음을 흘리는 것은 저쪽일까요.
 
 
김예아 , 눈을 한번 감았다 뜨며 익숙한 듯 제압을 시도 합니다.
 
 
김예아:
근력
기준치: 80/40/16
굴림: 72
판정결과: 보통 성공
 
 
 
:깜빡, 눈을 감았다 뜨면 상황은 가볍게 역전됩니다.
 
원래부터도 당신보다 근력이 약했는데, 이렇게나 야위어있으면 어려울 것도 없잖아요.
 
당신이 그를 제압하고 거의 직후, 보안 요원들과 의료진들이 방 안으로 들어옵니다.
 
보안요원들은 당신의 팔 밑에서 발버둥치는 네오를 다시 제압하며 당신을 의료진에게로 인도합니다.
 
의료진은 당신을 황급히 방 밖으로 떠밀듯이 안내합니다.
 
"괜찮으세요? 잠시 나가 계셔야 할 것 같습니다."
 
 
 
:-라는 의례적인 말과 함께요.
 
 
김예아:... ...
 
 
김예아 , 고개를 돌려 방안을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끄덕입니다.
 
 
 
:밖으로 안내되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얼추 정리된 듯, 레나 리센이 당신에게 다가옵니다.
 
 
레나 리센:... 이게 어제 말씀드렸던 상황입니다.
 
진정제를 주사했으니 곧 괜찮아지겠지만, 원칙적으로 이런 상황이 있으면 최소 24시간동안 면회가 제한됩니다.
 
따라서, 내일은 면회가 힘드실 것 같습니다.
 
 
김예아:...
 
 
레나 리센:상태가 안정되는 것을 지켜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주세요.
 
 
김예아 , 그 말을 듣고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이런 상황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직접 겪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는 법입니다.
 
놀란 탓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지, 심장이 평소보다 빠르게 뛰는 느낌입니다.
 
 
ㅡ 11월 15일 5:20 pm.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오고나면, 언제나처럼 로버트가 당신을 반깁니다.
 
다만 어제와는 다르게, 당신의 눈치를 보는 것만 같은 모습이네요.
 
낑낑거리는 작은 소리를 제외하면, 집 안에서는 그 어떤 소리도 나지 않습니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네오와 대화를 나누던 것이 찰나의 환상처럼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예전 같았다면 지금쯤 소파에 늘어지게 앉아서 반겨줬을텐데, 따위의 감상이 뒤를 따라옵니다.
 
...
 
 
 
:닫힌 병실 문의 틈새에서 들려오던 네오의 울음 섞인 비명소리와 의료진들의 급박한 대화 소리가 환청처럼 아른거립니다.
 
소란스러웠던 병동과 다르게, 어제와 비슷한 적막함이 집 안에 가득 차올라, 익사할 것만 같습니다.
 
무언가 시선을 완전히 돌려줄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TV라도 틀어서 가십거리라도 찾아볼까요?
 
 
김예아 , 낑낑거리는 로버트를 바라보다가 가볍게 안아주며 말합니다.
 
 
김예아:나 괜찮아, 정말이야.
 
 
김예아 , 그렇게 말하며 집으로 들어와 TV를 킵니다
 
 
 
:지잉- 하는 소리를 내며 전원이 들어온 TV에서는, 최초로 치료제에 의해 인간으로 돌아온 OO씨에 대한 인터뷰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럼 다음 질문을 해볼게요. 선생님이 파이로젠 바이러스에서 완치하실 수 있게 된 가장 중요했던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치료를 받을 때, 제 아내가 매일같이 병원을 찾아왔어요. 옛날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보여주면서 제가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계속해서 이야기해주고, 저를 지지해줬어요.
 
아내의 정성이 통했는지, 어느 순간부터 제가 인간이라는 확신이 들고 아내 곁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면에서 감성적인 멜로디가 흐르기 시작합니다.
 
"저는 그때를 절대 잊을 수 없어요. 서서히 시력이 돌아오면서 아내의 얼굴이 처음으로 다시 또렷하게 보였던 그 순간-......
 
 
 
:제 아내가 없었으면 저는 아직도 병원에서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옆에 앉은 사람의 손을 꼭 붙잡습니다.
 
당신은, 그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추억이 담긴 물건들, 기억이 되돌아오도록 도와주는 것-...
 
어쩌면 그것들이, 네오가 인간으로 되돌아오는 데에 도움이 되어줄 열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의 기억을 자극할만한 물건은, 이 집에 있는 것은 그가 남긴 노트가 전부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뭔가 썼다는 사실조차 기억이 안 난다더랬죠-...
 
그렇다면, 그에게 중요한,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 있을법한 곳은-
 
 
김예아:...같이 살던 집...?
 
 
 
:불현듯 떠오른 그 장소를 인터넷으로 검색해보기로 했습니다.
 
거리가 아주 멀지만 않다면, 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지도에서 우리가 살던 도시를 클릭하자, 작은 안내 메세지가 뜹니다.
 
[ 해당 구역은 오염구역이므로 일반인들은 출입을 삼가해 주세요. ]
 
 
김예아 , 깊은 한숨
 
 
 
:... 좀비 사태를 조금씩 해결해나가기 시작한 이후, 세계는 크게 세가지 구역으로 나뉘었습니다.
 
캘버리 교도소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인간들이 생활하는 도시, 안전구역.
 
좀비들을 모두 '청소'했지만, 아직 사람들이 살지 않는 빈 도시인 청결구역.
 
그리고, 여전히 좀비들이 남아있는 오염구역.
 
당신은 네오와 헤어진 이후 쭉 안전구역에서 생활했었기에 위협이 없었지만, 아직 바깥엔 좀비들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만약, 정말로 그곳을 찾아갈 것이라면 당신은 다시 한 번 좀비들이 있는 도시로 향해야 합니다.
 
 
 
:최악의 경우엔 당신이 물릴지도 모르고요.
 
... 어떻게 하고 싶은가요?
 
 
김예아 , 잠깐 고민에 빠진 모습을 보이다가 가기로 합니다.
 
 
 
:그곳으로 가고자 마음먹은데엔 여러가지 이유를 붙일 수 있겠지만, 역시 가장 어울리는 것은-
 
그가 돌아오기를 바래서겠죠.
 
네오가 인류를- 그리고 당신을 위해 희생했던 것처럼, 이번엔 당신이 위험을 감수할 차례인 것입니다.
 
오랜만의 여정길에 오르기 위해, 당신은 창고에서 낡고 헤진 가방을 꺼냅니다.
 
네오와 함께 안전지대를 향해 걷던 시절에 사용했던 배낭은 아직도 쓸만한 상태입니다.
 
배낭 안에는 그때 사용했던 물건들이 아직도 몇 남아있습니다.
 
 
 
:오래된 라디오, 찌그러진 생수병, 유통기한이 지난 약 상자 등...
 
...
 
가방의 내용물을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그와 함께 펼쳐보던 지도까지 넣으며 준비를 마칩니다.
 
하루 정도의 여정인데다가, 그래뵈도 먼 곳이니 로버트는 집에 두고 가는 편이 좋겠죠.
 
짐을 싸던 당신의 옆을 묵묵히 지키던 로버트가 애교를 부리듯 당신의 손에 머리를 밀어옵니다.
 
여정의 시작은 내일이 될테니, 그때까지 푹 쉬어둘까요.
 
 
김예아 , 로버트의 머리를 쓰담아줍니다.
 
 
김예아:내일 나갔다 올게. 잘 기다릴 수 있지?
 
 
 
:로버트는 작게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다가도, 씩씩하게 멍! 하고 짖습니다.
 
 
김예아:나 괜찮아. 세계도 구했고, 최강이기도 했잖아. 여기서도 마찬가지였고...
 
이정도는 별거 아니야.
 
 
김예아 , 예전처럼 웃으면서 말합니다.
 
 
김예아:네오도 나한테 나쁜짓 했잖아. 그러니까 이정도 쯤은 용서해주겠지. 그렇지?
 
 
 
:멍멍! 하고, 대답이 돌아옵니다.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반대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예아:살아서 돌아올게. 그러니까...지금 좀 쉴래.
 
 
김예아 , 그렇게 말하며 쉬러갑니다.
 
 
ㅡ 11월 16일 9:00 am.
 
 
 
:다음날 아침, 당신은 일찍이 도시의 버스 정류장으로 향합니다.
 
예전에 살던 집은 안전지대에서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또 얼마간의 거리를 걸어야 하는, 꽤 멀리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뭐, 그렇게 돌아다녔던 것 치고는 가까운 편이겠지만요.
 
'ㅡ그 다음, 날씨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며칠간 계속해서 흐린 날씨가 지속된 반면, 오늘 내일은 고기압으로 맑은 날씨가 계속될 것입니다. 일부 지역에선 오늘 저녁과 밤 사이로 짧게 비가 내릴 수도 있겠습니다-......'
 
오랜만에 듣는 라디오 방송이네요.
 
당신은 조용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옛날 노래들을 듣습니다.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내리고,
 
이제 버스 안의 승객은 당신 뿐입니다.
 
창 밖으로는 빠르게 풍경이 변화합니다.
 
곧, 도시를 빠져나간 버스는 고속도로를 달립니다.
 
도로에 군인들을 태운 군용 트럭이 지나가는 모습도 보입니다.
 
그렇게 긴 긴 도로를 달려, 마침내 종점의 버스정류장에 도착합니다.
 
 
 
:당신이 버스에서 내리면, 버스 기사가 말합니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오염구역인데, 알고 가는겁니까? 몰랐다면 다시 태워줄테니 돌아가요."
 
 
김예아:알아요. 괜찮아요.
 
 
 
:"그렇다면야 뭐, 조심하세요. 좀비한테 물리지 마시고요."
 
그렇게 말한 버스 기사는 어깨를 으쓱하고, 운전대를 돌립니다.
 
부웅- 하는 소리와 함께 방향을 돌린 버스는 곧 지평선 너머의 점으로 사라집니다.
 
여기서 목적지로 가려면-...
 
지도는, 버스가 사라진 반대 방향인 서쪽을 가리킵니다.
 
 
ㅡ 11월 16일 1:27 pm.
 
 
 
:어제와 다르게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아래 햇빛이 쨍하게 비치고, 아스팔트에선 더운 열기가 올라옵니다.
 
이렇게 도로 위를 걸으니, 3년 전, 네오와 함께하던 시간이 풍경에 겹쳐보입니다.
 
낮에도 밤에도, 지도를 보고, 걷고 또 걸으며 하루하루를 생존해 나갔었죠.
 
그리고 그보다도 더 오래전엔, 빛이 반짝이는 도로의 중심에서 걸어나가며 시시콜콜한 농담을 주고 받기도 했었고-
 
아득한 기억으로 넘어가면, '지각' 이라도 하게 될까봐 온갖 짐을 다 들고 그 시절의 안전지대 거리를 주파하기도 했었죠.
 
 
김예아:(...)
 
(갑자기 빡친다)
 
 
 
:가끔은 힘들고, 가끔은 불안하고, 가끔은 즐거운 시간들이었었죠.
 
그때는 항상 옆에서 같이 걸었었는데.
 
그 길로 한 시간 가량을 걸어나가면, 마침내 도시의 입구에 도착합니다.
 
[여ㅡㅡ부터 ㅡㅡㅡ입니ㅡ.] 라고, 오염구역임을 나타내는 빨간 해골 마크가 그려진, 일전엔 도시의 이름이 쓰여있었을 간판이 당신을 반깁니다.
 
도시 안으로 들어가 얼마간 걸으니, 곧 익숙한 거리와 풍경이 나타납니다.
 
도시의 뼈대는 당신이 기억하던 것과 같지만, 5년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적막하고 황량합니다.
 
 
 
:긴장을 안은 채 주위를 둘러보며 걷지만, 이 텅 빈 도시에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는 당신이 유일한 듯 보입니다.
 
당신의 그림자가 조금 길어질 때쯤, 눈 앞에 드디어 익숙한 집 한 채가 보입니다.
 
5년만에 돌아온 '집'을 본 기분이 어떤가요?
 
 
김예아:...이상하네. 분명 예전에는...당연했는데 지금은... 당연하지가 않아.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은 바래고, 당연하지 않게 되어가는 것이 시간입니다.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어쩌면- 지금 이 집보다도 황량한 도로 위를 걷는 것이 더 익숙해져버렸을지도 모릅니다.
 
...
 
집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
 
 
 
:바닥의 쓰레기들과 망가진 내부는 생존자들이 다녀간 듯합니다.
 
하지만 그런 흔적들마저 두꺼운 먼지에 덮여있는게, 마치 이 안에 5년이라는 시간이 고여있는 것만 같습니다.
 
주방과 이어진 거실, 당신과 네오, 각자의 방.
 
가구들과 벽지... 모든 것이 당신의 기억 속의 그대로입니다.
 
감회에 젖으며 거실 안으로 한 발을 떼던 그 때,
 
끼이이이익- 하며,
 
 
 
:경첩의 마찰 소리가 뒤에서 들려옵니다.
 
......
 
아까 들어올 때 문을 닫고 들어왔던가요?
 
 
김예아:...
 
 
 
:이곳은 오염구역. 언제든 좀비가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을 곳입니다.
 
싸워야할까요? 아님, 도망가야할까요?
 
마른 침을 삼키며 천천히 뒤를 돌아본 그곳엔-
 
야옹-, 하고 짧게 울음소리를 낸 고양이가 있습니다.
 
녀석은 당신을 보고도 경계하지 않고 당신에게 다가와 다리에 몸을 부빕니다.
 
오렌지색 털에, 목에는 '토비'라는 작은 이름표가 걸려있는 것이- 원래는 사람 손에 키워졌나봅니다.
 
 
김예아:...
 
 
김예아 , 아 하는 소리를 내며 여러감정 섞인 표정을 짓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인간이라 그런지, 고양이- 토비는, 당신에게서 통 떨어지지를 않습니다.
 
 
김예아 ,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떨리는 손으로 고양이를 쓰다듬습니다.
 
 
 
:부드럽지만, 긴 시간을 떠돌던 탓에 끝이 조금은 거칠어진 고양이의 털이 손을 간지럽힙니다.
 
야옹거리면서 당신의 손길을 가득 만끽하던 토비는, 곧 소파 위로 폴짝, 뛰어 올라가더니 그곳에 자리를 잡고 앉습니다.
 
... 이만 집을 마저 돌아볼까요,
 
다시 버스를 타려면 적어도 5시 전엔 떠나야 하니까요.
 
 
김예아:...
 
 
김예아 , 고양이가 올라간 소파를 봅니다.
 
 
 
:먼지가 가득 쌓인 소파입니다.
 
문득 돌이켜보면, 예전에 이 소파에 '모두'가 모여서 영화를 보곤 했었죠.
 
그때 봤던 영화라도 같이 보면 기억이 조금은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그 영화 DVD가 남아있을 때의 이야기지만요.
 
 
김예아 , 있나 슬쩍 봅니다.
 
 
 
:소파 옆에 놓인 수납장을 뒤져보지만, 다 망가진 것들 뿐입니다.
 
아... 어쩐지 아깝네요.
 
 
김예아:(아쉽지만 B급 영화 다시 보기싫다.)
 
(...아닌가. 그거라도 보고싶나)
 
 
 
:다시 모두와 함께 모여서 볼 수 있다면 어떤 영화를 보던 상관 없을지도 몰라요.
 
 
김예아 , 액자를 봅니다.
 
 
 
:아주 오래전, 세계를 구한 영웅 동료들과 다같이 찍은 사진입니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배경으로, 이상한 스웨터를 입은 채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이네요.
 
중앙에서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고 서있는 당신과 네오의 모습이 유독 선명하게 잘 보입니다.
 
 
김예아 , 가져갈 수 있나?하고 크기를 봅니다.
 
 
 
:두 손에 쏙 들어가는 정도의 크기니까, 충분히 가져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예아 , 주섬주섬 가방에 집어넣은 뒤 가방을 다시 매며 문득 바닥에 있는 신문에 눈이 들어와 신문을 봅니다.
 
 
 
:맨 위에 [ 속보 ㅡ 정체불명의 바이러스 전 세계 창궐 ] 이라는 헤드라인이 큼직한 글씨로 적혀있는 신문입니다.
 
오래 전의 물건이다보니 글자들이 드문드문 번지고 닳아 있습니다.
 
 
김예아:음...
 
이때 둘 다 당황했었던 기억이...
 
 
김예아 , 괜히 안 좋은 생각이 들어 일단 자신의 방 먼저 갑니다.
 
 
 
:익숙한 방 안으로 들어서면, 곳곳에 널브러진 옷가지와 깨진 창문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한 켠에 놓인 옷장의 문은 거의 떨어져 나갈 듯 삐걱이고, 사용감과 먼지가 공존하고 있는 침대, 그리고 그 옆에 놓인 협탁 위에는 오르골이 하나 놓여져 있습니다.
 
 
김예아 , 옷장을 봅니다.
 
 
 
:생존자들이 다녀간 탓인지 남아있는 옷이 거의 없습니다.
 
남는 시간에 리폼했던 옷들 몇 개가 남긴 했지만, 그 외에 별 다를 것은 없습니다.
 
기왕 여기까지 온 거 이거라도 챙겨갈까요.
 
 
김예아 , 내 오옷...하면서 챙깁니다.
 
 
김예아:(다시 만들면 되긴 하지만)
 
 
김예아 ,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오르골을 봅니다.
 
 
 
:좀비 사태가 일어나기 전의 어느 생일 날, 네오가 당신에게 선물했었던 오르골입니다.
 
생각해보면, 이 오르골에 든 노래의 제목은 아직도 모릅니다.
 
제목이 뭐냐고 물어봐도 끝까지 대답해주지 않았었거든요.
 
 
김예아 , 틀어봅니다.
 
 
김예아 , 이게 무슨 노래일까 아직도 생각합니다.
 
 
 
:선물을 준 당사자가 기억을 잃은 이상 제목을 알아낼 방법은 없겠네요.
 
... 어쩌면 다시 듣고 기억해낼지도 모르지만요.
 
 
김예아:한 번 들려줘야지.
 
 
김예아 , 챙깁니다.
 
 
김예아 , 마지막으로 네오방으로 갑니다.
 
 
 
:문고리가 너덜너덜해진 네오의 방에서는 오래된 책 냄새가 특히 많이 납니다.
 
한쪽 벽에 나란히 선 옷장과 책꽂이는 당신의 방에 있던 옷장과 비슷하게 성한 곳이 거의 없어 보이고,
 
반대편 벽에 있는 책상과 침대 위에는 쓰레기나 구겨진 종이 따위가 올려져 있습니다.
 
 
김예아 , 옷장을 봅니다.
 
 
 
:당신의 옷장과 별반 다를 것은 없어보입니다. 다른 생존자들이 옷을 꺼내간 옷장 안에는 후드 점퍼 한 벌만 덩그러니 남아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저거 엄청 즐겨 입었던 것 같은데 말이죠.
 
 
김예아 , 결국 안 버리네...하는 표정으로 챙깁니다.
 
 
김예아 , 책꽂이를 봅니다
 
 
 
:공부하는 건 지독히도 싫어하는 것 같아보였는데, 의외로 책 읽는 취미가 있대서 신기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심지어는 종류도 별로 가리지 않는건지, 읽는 책의 주제가 매번 바뀌기까지 했었죠.
 
드문드문 꽂혀있는 책들은 당신의 눈에도 꽤 익는 책들입니다.
 
지금은 눈이 안 보여서 직접 읽기는 힘들테니까, 옆에서 읽어주는 것도 나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간단한 시집 같은 것들도 있으니, 읽어주기 어렵지도 않을거고요.
 
 
김예아 , 몇권 꺼내서 챙깁니다.
 
 
김예아:아이고...어깨가 무거워지네...진짜 무겁네...
 
 
김예아 , 침대를 봅니다.
 
 
 
:이불은 생존자가 가지고 간 것인지 보이지않고, 여기저기 낡은 흔적이 보이는 침대입니다. 당신의 방에 있는 것과 별 다를 바는 없습니다.
 
저 아기자기한 인형들만 빼면요.
 
언제였는지는 몰라도, 당신이 재미삼아 선물했던 것들인데, 질색하던 것 치고는 머리맡에 항상 두고 자는 걸 본 적이 있었죠.
 
그 말을 한 다음날부터 네오의 방 문이 항상 잠겨있었던가요.
 
지금 다시 선물해도 질색하려나요.
 
 
김예아 , 질색하는게 보고싶으니 두개만 챙깁니다.
 
 
김예아:(보라돌이~ 투비~(맞나?)
 
 
김예아 , 책상을 봅니다.
 
 
 
:당신은 책상 위에 덩그러니 놓여진 노트를 하나 발견합니다.
 
어쩜, 이것마저 보라색이네요.
 
펼쳐보면 5년전의 날짜와 함께, 일기같은 감상들이 몇몇 적혀 있습니다.
 
사이사이에는 당신과 함께 본 연극이나 영화의 티켓, 영수증, 팜플렛 따위가 꽂혀있기도 합니다.
 
다이어리, 그런걸까요?
 
 
김예아 , 엄청 아기자기하다 하는 생각을 합니다.
 
 
김예아 , 재미있게 보다가 마지막 문장보고 덜그럭합니다.
 
 
김예아:... ...
 
너어는 맨날...
 
...
 
 
김예아 , 괜히 울 것 같아서 바로 가방에 넣고 방을 나옵니다.
 
 
 
:방을 나오고 시계를 보면, 5시가 되기 전까지 30분 정도가 남았습니다.
 
오후의 햇빛이 쏟아지는 거실은 고요하고 평화롭습니다.
 
이런 나른한 주말의 오후엔 네오와 함께 소파에 늘어지게 앉아서 TV를 보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시시콜콜한 농담을 주고 받기도 했었는데 말이에요.
 
포옥, 하고 먼지 쌓인 소파에 냅다 몸을 뉘이고 보면, 그리운 기분이 듭니다.
 
당장에라도 그가 소파에 기대 서서, 뭐하고 있느냐고 물어볼 것만 같습니다.
 
... 치료제 투여 후 100시간. 그 시간만 지나면, 다시 예전같은 일상을 되찾아갈 수 있을까요?
 
 
 
:하지만, 만약 돌아오지 못한다면-...
 
그 때, 당신의 주머니 안에서 우우웅, 하는 진동이 울립니다.
 
핸드폰을 들어 확인해보면, 네오가 있는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입니다.
 
받을까요?
 
 
김예아 , 받습니다.
 
 
 
:띡, 전화를 받으면, 건너편에서 목소리가 넘어옵니다.
 
"안녕하세요, 김예아씨 맞으신가요?"
 
 
김예아:...네.
 
 
 
:"금일 네오 샤프슈체씨의 상태가 안정되어서, 내일, 어제와 같은 시간에 면회가 가능하실 것 같습니다."
 
...레나 리센의 말대로네요.
 
내일 5시면, 100시간의 길었던 카운트다운이 끝날겁니다.
 
오늘 찾은 이것들이 그가 돌아오는 데에 도움이 된다면 좋겠는데 말이에요.
 
 
김예아 ,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알았다는 말을 합니다.
 
 
 
:삑, 전화를 끊고 보면, 어느새 시간은 5시에 가까워졌습니다.
 
돌아가는 버스를 타려면 슬슬 이동해야겠어요.
 
 
김예아 , 고양이를 찾다가 그쪽으로 가서 고양이 앞에 갑니다.
 
 
 
:야옹, 하고 고양이가 늘어지게 울어댑니다.
 
여기 두고 가기엔... 역시 좀 그렇죠?
 
 
김예아:...너도 같이 갈래?
 
 
 
:고양이는 조용히 당신과 눈을 마주할 뿐입니다.
 
 
김예아 , 조심히 안아듭니다.
 
 
 
:고양이는 저항없이 안아들립니다.
 
... 조금 무거울지도요.
 
 
김예아 , 조금 무겁지만 일단 대리고 버스를 타러갑니다.
 
 
 
:오후의 햇빛은 아까와 다를 게 없는 텅 빈 거리에 긴 그림자를 만들어냅니다.
 
터벅, 터벅.
 
나아가는 발걸음은 익숙합니다.
 
...
 
그때, 골목을 걷던 당신은 문득, 당신의 그림자가 이상한 것을 발견하고 멈춰섭니다.
 
태양을 등지고 선 당신의 앞으로 길게 늘어지는 그림자는 유독 길고, 흔들리는 게,
 
 
 
:마치 또 다른 사람의 그림자가 겹친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생존자일 거라고 희망적으로 생각하기엔-
 
실로 익숙하고, 오랜만에 듣는 불쾌한 신음소리가 들립니다.
 
 
김예아:...
 
 
김예아 , 달립니다.
 
 
김예아:
민첩
기준치: 75/37/15
굴림: 68
판정결과: 보통 성공
 
 
 
:깊게 생각할 겨를 없이, 탓- 하고, 당신은 빠르게 달려나갑니다.
 
골목을 달리며 좀비를 피해 도망치지만, 그것은 포기하지 않고 당신을 쫓아 달립니다.
 
품 안에 안긴 고양이가 길게 야옹-, 하고 울고, 뒤를 쫓아오는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가 싶던 그때,
 
탕-!!
 
긴 총성이 울리고, 뒤를 쫓아오던 것이 그대로 쓰러집니다.
 
무거운 짐을 들고 달리느라 가빠진 숨을 헉헉거리며 고르고 있으면, 중무장한 군인이 성큼성큼 걸어오는 것이 보입니다.
 
 
김예아:......
 
 
 
:그는 움찔거리는 좀비를 보더니, 다시 한 번 총을 들어 총알을 두어번 더 발사하고, 시체를 발로 몇 번 건드려본 후에야 무전기에 대고 짧게 말합니다.
 
"감염자 사살 완료."
 
그리고는 고글 너머의 눈동자를 돌려, 당신을 바라봅니다.
 
"물리셨습니까?"
 
 
김예아:...아니요.
 
 
 
:"... 생존자, 민간인 발견. 안내하겠다."
 
"자, 따라오시죠."
 
 
김예아 , 말없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는 죽은 좀비의 다리 한 쪽을 잡고 질질 끌고 가더니 도로 한 구석에 던져놓습니다.
 
당신의 앞길엔 시체에서 흘러나오는 피와 함께 검붉은 발자국이 새겨집니다.
 
군인을 따라 걸어가면, 도로에 큼직한 군용 트럭과 몇 명의 군인들이 보입니다.
 
아까 이곳으로 올 때 봤던 것과 같은 종류의 트럭입니다.
 
그들은 당신을 보며 자기들끼리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김예아:
듣기
기준치: 70/35/14
굴림: 6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생존자를 공격하고 있었습니다.'
 
'잘했어. 시체는 청소반이 알아서 처리하겠지.'
 
'...저 사람, 감염이 안된 건 확실하고?'
 
'그런 것 같은데.'
 
'혹시 모르니까 검사해보죠.'
 
'그나저나,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아?'
 
 
 
:'착각이겠지.'
 
 
김예아 , 그 대화를 듣고 조금 귀찮다는 생각을 합니다.
 
 
 
:대화를 하던 사람 중 한 사람이 당신에게 걸어오더니 말합니다.
 
"감염자는 아닌 것 같지만, 혹시 모르니 검사를 좀 하겠습니다. 손을 좀 주시겠습니까."
 
 
김예아 , 고양이를 들고 있던 터라 조금 어기적하더니 겨우 손 한쪽을 건네줍니다.
 
 
 
:그는 주머니에서 작은 키트를 꺼내더니, 당신의 손을 잡고 검사를 시작합니다.
 
저건, 안전지대 내의 '감염자'들을 가려낼 때 사용했던 일회용 진단키트네요.
 
잠시 뒤에, 당신이 비감염자임을 확인한 군인은 다시금 입을 엽니다.
 
"민간인이 오염 구역에서 뭘 하고 있던겁니까. 태워 드릴테니 안전지대까지 같이 가시죠."
 
 
김예아:...
 
 
김예아 , 딱히 별 말 안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군용 트럭에 능숙하게 탑니다.
 
 
 
:당신을 태운 군용 트럭은 도시 몇 곳을 더 들린 후에야 도시를 떠납니다.
 
먼지 쌓인 창 너머로 보이는 뻥 뚫린 도로와 황무지는 석양빛을 받아 온통 불타오르는 것만 같아요.
 
트럭 안은 덜컹이는 바퀴 소리와 화물칸의 좀비들이 이따금씩 내는 기괴한 신음소리를 제외하곤 조용합니다.
 
...
 
어느새 지평선 아래로 해가 완전히 가라앉아 주위가 어두워지고, 트럭은 안전지대에 도착합니다.
 
당신이 사는 곳을 물었던 군인들은, 당신을 그 근처 적당한 곳에 내려주며 말합니다.
 
 
 
:"함부로 오염 지역에 가지 마십시오. 위험합니다."
 
그리고, 이내 트럭은 도시의 밤 속으로 사라집니다.
 
 
김예아:......
 
 
 
:밤이 되어 쌀쌀해진 공기는 습하고 무겁습니다.
 
집으로 돌아갈까요.
 
 
김예아 , 잠시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보고 있다가 집으로 돌아갑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당신은 문득 골목의 한 담벼락에 빼곡히 붙어있는 크고 작은 종이들을 보고 발걸음을 멈춥니다.
 
[ 사람을 찾습니다. ]
 
[ 가족을 찾고 있어요. ]
 
[ 위와 같이 생긴 사람을 보신 분은 연락 주세요. ]
 
...
 
... 따위의 글씨들과 함께, 다양한 사람들의 사진이 붙어있습니다.
 
 
 
:대체로 행복해 보이는 사진 속 얼굴들과 절박함이 느껴지는 글씨들이 적힌 종이들은 어두운 가로등 조명 아래서 밤바람에 쓸쓸히 팔락입니다.
 
당신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리고 네오는, 운이 좋은 편이라는 사실을.
 
당신들에게 주어진 이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들이, 이 세상엔 훨씬 많다는 것을.
 
담벼락을 바라보고 있던 당신의 이마에 톡, 하고 빗방울 하나가 떨어집니다.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지만, 몇 걸음도 가지 않아 비가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아, 이래서야 다 젖고 말텐데 말이죠-......
 
...
 
집으로 돌아오면, 9시가 넘은 시간입니다.
 
품에 안겨있던 고양이는 마치 이곳이 제 집이라도 되는 냥 폴짝 뛰어내려서 안으로 들어가고,
 
그 뒤를 낯선 존재의 등장에 왕왕 짖어대기 시작한 로버트가 따릅니다.
 
 
김예아 , 짖는 로버트를 보며 진정하라고 하면서 헛짖음 훈련 때처럼 해봅니다.
 
 
김예아:(이럴 때는 어떻게 하더라...합사를 해본 적이 있어야지...)
 
 
 
:짖음이 멎지를 않네요.
 
어쩐지 앞길이 막막합니다...
 
...우선은 비를 맞아 젖은 몸부터 어떻게 할까요.
 
 
김예아 , 급한대로 간식용 뼈다귀 쥐어주고 씻고 옷 갈아입으러 갑니다.
 
 
 
:비에 젖은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고 나오면, 간식 덕에 조금 얌전해진 로버트와, 거실 소파 위에 앉아서 골골대고 있는 고양이, 토비가 보입니다.
 
괜찮...은가?
 
간식의 힘은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
 
 
김예아 , 일단 짐이든 가방을 대애충 거실 쪽으로 끌고 온 뒤에 로버트 붙잡고 일단 간단하게 훈련합니다.
 
 
 
:다시 토비를 보고 짖어대기 시작한 로버트를 진정시키고, 그나마 짖음을 멎게 하는데엔 2시간이 조금 더 걸렸습니다.
 
여전히 경계하고 있는 눈치지만, 짖지는 않으니까... 일단은 된걸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김예아:(내일 갔다 오고 나서도 괜찮을까...)
 
 
 
:오랜만에 오래 걷기도 했고, 시간도 늦어지고, 슬슬 피곤하니 좀 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자는 사이에 사고만 치지 말아주면 좋겠네요.
 
 
김예아 , 지친몸을 이끌고 침대에 쓰러지듯 눕습니다.
 
 
ㅡ ?월 ?일 ?:?? .
 
 
 
:....-눈을 뜬 당신은 더럽고 헤진 옷을 입고, 낯설지만 어딘가 눈에 익은 거리에 서 있습니다.
 
손에 쥔 야구 배트에선 핏방울이 떨어지고, 당신의 발 밑엔 좀비들의 시체가 즐비합니다.
 
이곳은, 당신이 생존하며 지나쳐 온 수많은 장소들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그때와 다르게 당신 곁에 네오는 없네요.
 
이것이 과거이고 꿈 속이라면, 당신의 옆에 있어야만 할텐데.
 
무의식의 인도에 따라, 그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보면, 또 다른 좀비 한 무리가 당신을 공격해옵니다.
 
 
 
:팔과 다리가 반사적으로 움직이며 손에 쥔 무기를 휘두릅니다.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좀비들이 쓰러지고, 허공엔 살점과 핏방울이 흩날립니다.
 
계속 몰려드는 무리를 죽이고, 또 죽이던 끝에,
 
당신은 등 뒤로 다가오던 마지막 좀비를 향해 무기를 휘두르고,
 
퍽, 익숙한 소리와 함께 그것이 쓰러질 때 깨닫습니다.
 
시야에 가득 들어찬 보랏빛. 당신이 쓰러트린 마지막 '좀비'가 네오였다는 사실을요.
 
 
 
:땅에 쓰러진 좀비, 음, 아니, 네오라고 해야할까요.
 
그는, 당신을 올려다보며 작은 목소리로 당신의 이름을 연신 불러댑니다.
 
...-
 
번쩍, 하고 꿈에서 깨어나면 방은 아직 어둡습니다.
 
쿵쾅대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숨을 크게 몰아쉬고 나면, 아직도 생생한 손끝의 감각에 양손이 떨려옵니다.
 
어느새 당신의 옆으로 다가온 로버트와 토비가 당신을 걱정하는 듯 머리를 비비적대고, 손을 햝아댑니다.
 
 
김예아 , 숨을 헐떡이다 이내 진정하며 자기도 모르는 새에 흐르고 있던 눈물을 닦습니다. 그리곤 로버트와 토비를 쓰다듬습니다.
 
 
 
:야옹거리는 소리와 작게 그르릉대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 지금 시간은 오전 5시.
 
아주 이른 시간이지만, 아무래도, 다시 잠들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바람이라도 쐬면 좀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면, 새벽의 습하고 짙푸른 공기가 방 안에 가득 들어찹니다.
 
창 밖에서는 어느새 동이 터오고 있네요.
 
...
 
 
 
:서로의 손을 잡고 바라보던 그 날의 아침이 떠오릅니다.
 
허튼 생각하지 말고 살아남으라던 말, 믿고 있으니까 빨리 와달라고 했던 말-
 
그 말들 덕분에, 혹은 때문에, 지금 이 순간까지도 꾸역꾸역 버티며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당신에겐 또다시 100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소중한 이를 떠나보낼 100시간이 아닌, 되돌아올 100시간.
 
이제 남은 시간은 12시간 남짓입니다.
 
 
 
:함께 보았던 그날의 아침 해를 덧대며, 당신은 오늘도 아침을 맞이합니다.
 
... 만약 그가 돌아오지 못한더래도,
 
당신은 계속, 그를 찾아가줄 수 있나요?
 
 
김예아:...돌아올 때까지, 찾아갈거야.
 
 
ㅡ 11월 17일 8:30 am.
 
 
 
:악몽으로 일찍 깬 탓에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집 밖으로 나섭니다.
 
오늘 집으로 돌아올 땐 이 길을 함께 걸을 수 있을까요.
 
산책이라도 할 겸, 평소 다니던 길과 다른 길을 걸으니 처음 보는 꽃가게와 베이커리를 발견합니다.
 
선물이라도 사가볼까요?
 
 
김예아 , 뭘 좋아했더라 하는 생각에 베이커리로 갑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갓 구운 빵의 달콤한 냄새와 함께 다양한 종류의 빵과 디저트, 샌드위치, 케이크들이 보입니다.
 
조촐하게 카페도 겸하고 있는지 가게 안쪽엔 테이블과 의자들도 놓여있네요.
 
여기서 아침 겸으로 먹을 빵을 사도 괜찮을지도요.
 
 
김예아:(아침으로 빵은 별로인데-...)
 
 
김예아 , 네오가 좋아하는 빵이랑- 피자방 삽니다.
 
 
 
:직원이 빵들을 잘 포장해서 건네줍니다.
 
빵 특유의 몽글몽글한 향기가 훅 끼쳐오네요.
 
좋아해주면 정말 기쁠 것 같은걸요.
 
 
김예아 , 자기는 피자빵을 먹으면서 빵 잘 챙겨서 갑니다.
 
 
김예아 , 꽃도 사야지-하고 꽃집도 갑니다.
 
 
 
:가게를 연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꽃들의 종류가 다양하진 않지만, 알록달록하고 다양한 꽃들과 식물들이 보입니다.
 
살짝 습한 공기에는 꽃과 식물의 향기가 진하게 배어 있습니다.
 
 
김예아 , 문득 어디서 본 게 생각났는지 붓꽃이 있는지 봅니다.
 
 
 
:가게 한 켠에 기억 속의 꽃과 닮은 꽃이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김예아 , 그걸로 삽니다.
 
 
김예아:(좋아하려나?)
 
 
김예아 , 그래도 모르니 일단 가지고 갑니다.
 
 
 
:반쯤 충동에 의한 구매였긴 하지만, 선물로 주기 위해 산 꽃다발과 빵, 그리고 집에서 가져온 물건들까지.
 
양 손은 무겁지만 이걸 보고 좋아할 네오의 모습을 생각하면 어쩐지 덩달아 기분이 좋아져, 발걸음이 가벼워집니다.
 
그런데, 병원 앞으로 향하던 당신은 병원 앞 횡단보도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을 마주합니다.
 
성별도, 나이도 제각각이지만, 그들은 공통적으로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피켓과 판넬, 확성기 같은 것을 들고 있네요.
 
 
김예아:
민첩
기준치: 75/37/15
굴림: 3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횡단보도를 건너던 당신은 병원 앞으로 밀려드는 사람들과 부딪힙니다.
 
순간 중심을 잃었지만, 다행히도 넘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당신을 밀치고 지나간 사람들은 병원 앞에 모여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일제히 구호를 외치기 시작합니다.
 
"좀비는 사람이 아니다! 괴물이다!"
 
"괴물은 사람이 될 수 없다!"
 
... 그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거대하게 꿈틀대는 악의가 형상화된 것 같습니다.
 
 
 
:치료제가 개발되고, 좀비로 변한 사람들이 원래대로 돌아오고.
 
그렇게만 된다면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을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번'과 달리 이번엔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님을 깨닫습니다.
 
... 네오가 설령 인간으로 되돌아온다고 해도, 그가 이전처럼 인간으로 인정받고, 일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그 스스로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어쩐지 복잡한 마음이 듭니다.
 
 
김예아:... ...
 
 
김예아 , 괜히 예전의 일이 생각나 착잡해집니다.
 
 
김예아 , 어떻게든 병원으로 들어가 네오가 있는 병실로 갑니다,.
 
 
 
:병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제처럼 방 안의 침대에 앉아있는 네오의 모습이 보입니다.
 
병실 안의 TV에선 아까 그 시위 장면이 뉴스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ㅡ 감염자들을 위한 치료시설 중 하나인 아리마테아 병원 앞에서 오늘 아침, 시위가 열렸습니다.
 
이들은 파이로젠 바이러스에 대한 특별 입법안 중 4단계의 환자들이 제한적으로나마 시설 밖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신설 조항에 반대해 시위를 벌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시위대는 해산되고 있으나, 이 조항에 반대하는 자들이 많은 탓에 연합정부는 다른 시위가 열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으며-......
 
TV의 화면을 바라보는 네오의 표정은 어쩐지 어두워 보입니다.
 
 
 
:... 꺼버리는게 좋으려나요.
 
 
김예아 , 리모컨을 들어 tv를 꺼버린뒤 의자를 가져와 침대 옆에 앉습니다.
 
 
김예아:안녕, 나왔어.
 
 
김예아 , 예전과 비슷한 밝은 목소리로 말합니다.
 
 
 
:당신의 목소리를 들은 네오는 흠칫 놀라며 당신과 눈을 마주칩니다.
 
 
네오 샤프슈체:아, 왔어?
 
뭣 좀 생각하느라고, 온 줄도 모르고 있었네.
 
 
김예아:그런거 같아 보이더라-
 
오늘은 내가 뭔가 좀 가져왔어!
 
 
네오 샤프슈체:... 이상한 건 아니지?
 
 
김예아:아니야-
 
예에전에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같이 살았던 집에 갔다왔거든.
 
그리고 꽃이랑 빵이랑... 가지고왔어. 아, 뭐 먹으면 안되나?
 
 
네오 샤프슈체:뭐.. 괜찮지 않을까?
 
딱히 먹는거 주의하라는 말은 없었거든.
 
먹지 말라 했어도 안 들었을 것 같긴 하지만.
 
얼마만에 빵이냐,
 
 
네오 샤프슈체 , 눈에 띄게 즐거워합니다.
 
 
김예아 , 손에 사온 빵을 올려둡니다.
 
 
네오 샤프슈체 , 냅다 입으로 가져갑니다.
 
 
김예아:너가 좋아하던 거였는데- 기억나나?
 
 
네오 샤프슈체:...- 어렴풋이?
 
자주 먹었던 것 같긴 해.
 
 
김예아:솔직히 지난번에 만난 이후로 어떻게하면 기억이 돌아올까 생각하다가 예전 집에 간거였거든.
 
거기서 너랑 내 물건이랑-그리고 다른 애들이랑 사진찍은거나 그런거 가져왔어.
 
 
네오 샤프슈체 , 마저 먹으면서 듣다가 문득 생각난 게 있다는 듯 입을 엽니다.
 
 
네오 샤프슈체:... 사진은 못볼텐데.
 
 
김예아:눈 돌아오고 나서 보자, 그럼 되겠네-
 
 
네오 샤프슈체:언제가 될 줄 알고.
 
 
김예아:글쎄? 언제가 되든 난 기다릴 수 있어.
 
뭐, 3년 가까이 기다렸는데 더 기다리는 것 쯤이야.
 
 
네오 샤프슈체:하긴.
 
우리 사이에 기다리는 일이 뭐 대수라고.
 
 
네오 샤프슈체 , 농담하듯이 웃으며 말합니다.
 
 
김예아:-... 그으 다른 애들 없는걸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아, 그리고- 책이랑 너가 쓴 다이어리도 있는데-
 
 
네오 샤프슈체:(쿨럭)
 
 
김예아:다이어리에 재미있는거 많더라.
 
 
네오 샤프슈체:야.
 
멋대로 남의 사생활 캐고 그럴거야?
 
 
김예아:그치만- 안볼 수가 있냐.
 
 
네오 샤프슈체:습.
 
 
김예아:읽어줄까?
 
 
김예아 , 그렇게 말하며 키득거립니다.
 
 
네오 샤프슈체:됐거든?
 
 
네오 샤프슈체 , 틱틱대는 것 치고는 웃고 있습니다.
 
 
김예아:...-이번에는 같이 크리스마스 보낼 수 있겠지?
 
 
네오 샤프슈체:그-...건 모르는 일이긴 해.
 
같이 보내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마음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고.
 
 
김예아:난 마음만으로도 충분한데-...
 
너 은근 너무 깊게 생각하는거 알지?
 
 
네오 샤프슈체:그런가?
 
 
김예아:어.
 
 
네오 샤프슈체:나름 고민 없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김예아:말이 되는 소리를 해.
 
누가봐도 고민 많아보이고만...
 
 
네오 샤프슈체 , 눈을 데굴 굴립니다. 그래보인다고? 진짜?
 
 
김예아:누가 모를 줄 아냐. 나만큼은 아니지만 너도 생각보다 표정에서 잘 드러난다고.
 
 
네오 샤프슈체:....-
 
다음부턴 더 철저하게 숨겨야겠다.
 
 
김예아:야아-.
 
고민 있으면 말을 해줘-
 
나 서운하다??
 
 
네오 샤프슈체:그으으러라지.
 
나름 말 못할 고민도 있는 법이라고.
 
 
김예아:나빴어-...
 
 
네오 샤프슈체:너도 비밀 하나 쯤은 있을거 아냐?
 
그런건가보다 해.
 
 
김예아:있?나?
 
 
네오 샤프슈체:-?
 
 
김예아:(고민해보기)
 
나-...거의 다 말해준 것 같기도 하고?
 
 
네오 샤프슈체:너도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사람이 어떻게 비밀 하나도 없을 수가 있냐?
 
 
김예아:그치만- 딱히 숨길 비밀만한 것도 없는데?
 
내가 안 말해준 거 있었나?
 
 
네오 샤프슈체:나야 모르지??
 
 
김예아:...-아. 그렇겠네.
 
 
네오 샤프슈체:... 기억이 다 있었어도 똑같애.
 
너가 말 안한 걸 내가 알리가 없잖아.
 
내가 말 안 하면 너가 모르는 것처럼.
 
 
김예아:아니 그래도 진짜 다 말해준 것 같은데-...
 
나 거짓말 잘 못한다고.
 
 
네오 샤프슈체:그건 그렇긴 하네.
 
 
김예아:ㅡ3ㅡ
 
 
네오 샤프슈체:근데, 거짓말은 몰라도 숨기는 건 은근 잘 하던 것 같은데.
 
전에... 언제더라. 너한테 한 번 속았던 기억이 있었는데.
 
 
김예아:아- 그건 날이 날인데! 안 할 수가 없다고!
 
 
네오 샤프슈체:아 설마 만우절이었냐?
 
 
김예아:어.
 
콘라드가 하자길래 재미있어서 같이했는데.
 
 
네오 샤프슈체:이놈이나 저놈이나.
 
차라리 너 혼자였으면 억울하진 않았을 것 같은데.
 
 
김예아:그래놓고 나는 안 혼냈으면서-
 
 
네오 샤프슈체:너는 몰라도 걔는-
 
뭔가 좀 기분 나빠. 지는 느낌이라고.
 
 
김예아:그러니까 맨날 싸우지.
 
 
네오 샤프슈체:어차피 항상 말려줄거면서.
 
 
김예아:그래도 구경은 하는데. 재미있었어.
 
 
네오 샤프슈체:싸움 구경이 재밌는 건 맞지만,
 
좀 말려라.
 
 
김예아:특히 나이아가 제일 재미있어하던데.
 
 
네오 샤프슈체:그 자식은 뭐, 원래 그러잖냐.
 
기대도 안해.
 
 
김예아:하긴- 그렇지.
 
그래도 구경 어느정도 하고 나서 말려주잖어.
 
그리고 오데트랑 질리한테 잔소리 듣고 ㅋ.
 
 
네오 샤프슈체:ㅋㅎ.
 
그러고보면, 걔들은 다 잘 지내려나.
 
 
김예아:...은퇴 전에... 물어봤는데 콘라드랑 오데트는 다른 안전지대에 신원 확인됐다고 했고...
 
질리랑 나이아는 계속 우리 수소문하고 있다고 있다더라.
 
물론 3년전이긴 하지만.
 
 
네오 샤프슈체:...-
 
 
네오 샤프슈체 , 작게 한숨을 쉽니다.
 
 
네오 샤프슈체:죽지만 않았으면 좋겠네.
 
나중에 또 다같이 모여서- 그... 뭐냐...
 
아, 영화.
 
또 같이 봐야하지 않겠나, 싶어.
 
 
김예아:지금이라면 B급 영화도 잘 볼 수 있는데...
 
가보니까 DVD다 망가졌더라...
 
 
네오 샤프슈체:새로 구하는 수 밖에.
 
누가 팔기는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김예아:웅...
 
그래도 나름 잘 모아놨는데-...
 
아...그리고 미고는... 당연하겠지만 잘 모르겠어-...
 
 
네오 샤프슈체:그쪽은 별로 기대 안했어.
 
애초부터 잘 안 보였잖냐.
 
 
김예아:혹시 궁금해할까봐-
 
어디서 치료제 연구 도와주고 있을지도 모르고...
 
 
네오 샤프슈체:아니면 골방에 틀어박혀서 영화나 보고 있을지도 모르지.
 
 
김예아:그럴려나-...
 
 
김예아 , 잠깐 무언가 생각하더니 아 하며 오르골을 꺼냅니다.
 
 
김예아:(오르골 틈)
 
이건 기억나?
 
 
네오 샤프슈체:....아-, 이거 내가 선물해줬던거였나?
 
 
김예아:응- 근데 진짜 끝까지 제목 안 알려준거.
 
그래서. 제목 뭐야?
 
(끈질김)
 
 
네오 샤프슈체:...-
 
안 알려줄거야.
 
 
김예아:알려줘-...
 
궁금하다고-
 
 
네오 샤프슈체:...싫어.
 
 
네오 샤프슈체 , 고개를 휙 돌려버립니다.
 
 
김예아:알려줘어-...
 
 
김예아 , 네오 손 붙잡고 늘어집니다.
 
 
네오 샤프슈체:나중에 직접 알아보던가.
 
열심히 찾아보면 어디서든 알아내지겠지.
 
 
김예아:나빴어-
 
알려주면 세상이 멸망하나, 그래봤자 너 혼자 민망해 하는것 말고 더 있냐고.
 
 
네오 샤프슈체:그 하나가 중요한거라니까?
 
 
김예아:민망한게 뭐 어때서-
 
 
네오 샤프슈체:그게-
 
아니다, 말을 말자.
 
 
김예아 , 불만스러운 표정을 하다가 손을 놓아줍니다.
 
 
김예아:됐다 그래-
 
 
네오 샤프슈체 , 놓아진 손을 몇번 쥐락펴락하다가 뭔가 찾는 것처럼 허공에 살짝 휘적거립니다.
 
 
김예아 , 그것을 보고 있다가 다시 손을 잡습니다.
 
 
네오 샤프슈체 , 손을 꼭 붙잡고 있다가, 무안한 듯 입을 엽니다.
 
 
네오 샤프슈체:... 잡고 있다가 갑자기 놓으니까 어색해서.
 
 
김예아:음-
 
 
네오 샤프슈체:뭔가 허전하기도 하고.
 
손장난 칠거라도 좀 있으면 좋은데.
 
 
김예아 , 그것을 듣고 있다가 잡고 있는 손을 깍지를 낀 뒤에 가져온 인형 두 개를 다른 손에 들려줍니다.
 
 
김예아:이건?
 
 
네오 샤프슈체 , 인형을 몇 번 만지작거리다가 늘어지게 한숨을 쉽니다.
 
 
네오 샤프슈체:이상한 거 없다매.
 
 
김예아:내가 준 소중한 생일선물 보고 이상한 거라니.
 
 
네오 샤프슈체 , 뭔가 곰곰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지어냅니다.
 
 
네오 샤프슈체:...-그래도 이상한 거 맞잖아.
 
누가 이런 사람한테 인형을 선물하겠냐고.
 
전혀 안 어울리잖아.
 
 
김예아:둘 다 기엽고만 왜.
 
 
네오 샤프슈체: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니까?
 
 
네오 샤프슈체 , 투덜거리면서도 딱히 인형을 내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네오 샤프슈체: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다음 생일 때 또 인형 주기만 해봐.
 
오르골 하나 더 얹어주고 그것도 제목 평생 안 가르쳐 줄거니까.
 
 
김예아:아- 그럼 나닮은 인형 만들어서 주면?
 
네오 샤프슈체 , 바로 뭐라 하려다가 멈칫합니다.
 
 
네오 샤프슈체:... 그건 좀 생각해보고.
 
 
김예아 , 웃음소리를 냅니다.
 
 
김예아 , 네오 손으로 손장난 치면서 말합니다.
 
 
김예아:...-아직도, 인간 아닌 것 같아서 살기 싫어?
 
 
네오 샤프슈체:...-
 
조금은.
 
 
김예아:... 어떻게 하면 그런 기분 안 들것 같아?
 
 
네오 샤프슈체:그건 잘 모르겠어.
 
분명 정답을 알고는 있을텐데, 기억이 안 나는 느낌이라 해야 하나.
 
 
김예아:내가 이렇게 옆에 있어줘도... 똑같을 것 같아?
 
 
네오 샤프슈체:...-그것도 잘 모르겠어.
 
같이 있는게 싫진 않아.
 
오히려 반갑기는 해.
 
근데 계속, 갑갑한 기분이 들어.
 
구체적으로 하자면, 내가 여기 있으면 안될 것 같은 기분?
 
 
김예아:...-
 
 
김예아 , 기분이 미묘해지는지 손을 꽉잡습니다.
 
 
네오 샤프슈체:왜 그런 느낌이 드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막연히, 위험하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
 
 
김예아:-... 어떻게 하면 기억나는지도...모르겠지?
 
 
네오 샤프슈체:그런 편이지.
 
 
김예아:... ...나는 네오 여기 있어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같이 집에 가고 싶고... 얘기도 하고 싶고... 놀고 싶어.
 
그래서 어떻게 해야 그런 생각 안 들게 될까 계속 생각했어.
 
...그때 헤어지고 나서, 다시 이렇게 만날 수 있다고 혼자 되새기면서 살았어.
 
뭐 하나라도 붙잡을 게 있으면 덜 힘들지 않을까하고...
 
너를 찾아서 치료제를 투여한다는 편지를 받고 일주일 동안은 거의 다시 만날 생각만 했어.
 
 
김예아:인간이 아니여도 좋으니까 그냥 제발 다시 만나고 싶어서...
 
다시 이렇게 만나서 나는 너무 좋은데, 너가 그렇게 얘기하니까 괜히 예전 생각나서 슬프기도 했어... 내가 인간이 아닌 상태로 기억 잃었을 때...
 
그때도 너처럼 내가 여기 있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도 참았어, 옆에 너가 있었으니까.
 
... 그렇게 말하고 보니 이걸 말 안 했었네 싶네.
 
 
김예아 , 헛웃음 소리와 함께 침대 위에 머리를 대고 엎어집니다. 그 상태에서 고개만 네오쪽으로 돌립니다.
 
 
네오 샤프슈체 , 만지작거리고 있던 인형을 내려놓고, 손을 허공에서 몇 번 휘적거리더니 당신의 머리 위에 툭 내려얹고선 천천히, 머리를 쓰다듬어주기 시작합니다.
 
 
네오 샤프슈체:이렇게 듣고 보니까 왜 전에 화가 나있던건지 알 것 같은걸.
 
내가 너였으면 나 엄청 싫어했을 것 같은데?
 
자기가 가지 말라고 붙잡아놓고 홀라당 사라져버리고,
 
툭하면 떠날 사람 처럼 굴고,
 
뭐든 혼자 하려고 하고.
 
근데, 왜 계속 옆에 있으려 하는건지, 참.
 
 
네오 샤프슈체:아무리 같이 한 시간이 길어도, 서운한게 쌓이면 터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거든.
 
... 솔직히 말하면 이 태도는 바뀌려면 엄청 오래걸리거나, 못 바꿀 것 같아.
 
그때도 말했지만 천성이 어디 한군데 잡혀있질 못하는 편이라.
 
 
김예아:...
 
 
네오 샤프슈체:그런 주제에 누굴 잡아두려고 하는게 좀 웃기긴 하지?
 
 
김예아:그때처럼? 내 손이랑 니손이랑 같이 칼 찌른거.
 
 
네오 샤프슈체:습.
 
그땐 진짜 좀 미친 상태였던 것 같은데.
 
 
김예아 , 웃음소리를 냅니다.
 
 
네오 샤프슈체:근데, 뭐... 다를 것 없긴 해.
 
 
김예아:...-너 말처럼 나보고는 떠나지 말라면서 정작 혼자 사라지고, 떠날 사람처럼 굴고, 혼자히려고 해서 화나고 싫지만...
 
난 그래도 네오가 좋은데...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은데...
 
좋아하는 사람 끝까지 옆에 있을려고 하고 다시 보고싶어 하는게 잘못은 아니잖아.
 
 
네오 샤프슈체:좋아하는 건 잘못이 아니지.
 
누가 너 잘못이래?
 
잘못을 한 사람이 있으면 되려 나라고 생각하거든?
 
 
김예아:그건 맞지-
 
 
네오 샤프슈체:그치?
 
 
김예아:나쁘니까 이제 붙잡고 안 놔줄래.
 
 
네오 샤프슈체:... 보통은 버리지 않아?
 
 
김예아:...버리기는 싫어. 몇 년 만에 만난건데.
 
 
네오 샤프슈체:헤에.
 
나 여기서 또 허튼 말 하면 싫어할거지.
 
 
김예아:뭐할건데-
 
 
네오 샤프슈체:별로 알고 싶지 않아할 것 같아서 물어본건데.
 
해줘?
 
 
김예아:...- 궁금해.
 
 
네오 샤프슈체:역시 몇 번을 생각해봐도 아깝단 말야.
 
 
김예아:-?
 
(이해 못한 강아지 표정)
 
 
네오 샤프슈체:너 말이야, 너.
 
뭐 어쩌다 나한테 저당잡혀 사는 것처럼 그러냐고.
 
나 딱히 해준 거 없는 것 같은데.
 
해봐야 목숨 몇 번 살린거?
 
몇 번 죽이기도 했으니까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도 들고?
 
 
김예아:솔직히 같이 세상 구하고 서로 죽고 죽이고 다했는데- 그럴만 하지 않아?
 
나이아랑 질리를 봐.
 
(?)
 
 
네오 샤프슈체:걔들은.
 
솔직히 그럴만한 애들 같아 보이던데.
 
 
김예아:우리가 걔네보다 더하다 더 해-
 
 
네오 샤프슈체:-?
 
에이.
 
 
김예아:뭐가 에이야.
 
나 살린다고 크리쳐 핵 집어넣고- 같이 신 때려잡고-
 
나 떠나니까 나 찾는다고 차원 넘어서 오고-
 
 
네오 샤프슈체 , 흠칫합니다.
 
 
네오 샤프슈체:그러게 누가 약속깨고 도망가래?
 
 
김예아:너도 내 말 제대로 안 들어줬잖아...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내가 무슨 말 하든 믿어준다 해놓고 기억도 못하면서-
 
 
네오 샤프슈체:그으-거어언-
 
... 변명의 여지가 없네.
 
기억 못했다고 하기도 좀 그렇잖냐.
 
 
김예아:...
 
 
네오 샤프슈체:근데, 솔직히,
 
너 같으면 믿겠냐고.
 
 
김예아:난 믿어줬잖아.
 
감염된 거 아니라고 한 거.
 
 
네오 샤프슈체:그러니까, 너가 이상한 거라니까?
 
왜 이렇게 사람을 잘 믿어.
 
 
김예아:너라서 믿는거라고 해주면 안돼?
 
물론 내가 잘 믿어서 당한게 있지마안... ...그래도.
 
 
네오 샤프슈체:...-싫지는 않기는 한데,
 
은근 거짓말도 많이하고 숨기는 것도 많으니까 다 믿지는 말라고.
 
 
김예아:... 안 믿는다고 하면 싫어할거잖아.
 
 
네오 샤프슈체:딱히?
 
나도 100% 다 믿어주질 못하는데, 너라고 안 그럴리가 있냐 싶기만 할 것 같은걸.
 
 
김예아 , 우으으음하는 소리를 냅니다.
 
 
네오 샤프슈체:그러는 너야 말로 싫지 않냐고.
 
제대로 믿지도 않아- 말은 안들어-
 
나한테 뭐라할게 아닌 것 같은데.
 
 
김예아:나는-...
 
 
김예아 , 말할까말까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짓습니다.
 
 
김예아:나아느은... ...
 
... 좋으니까 그냥 믿는거지...
 
 
김예아 , 그러고 고개를 돌려 이불에 얼굴을 파묻습니다.
 
네오 샤프슈체 ,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쉽니다.
 
 
네오 샤프슈체:그래, 맘대로 해라.
 
대신 내가 거짓말한거 멋대로 믿어놓고 나한테 뭐라 그러지나 마.
 
 
김예아:믿으라고 한 사람이 누군데요. 나쁜놈아.
 
 
네오 샤프슈체:그래서 지금 믿지 말라고 하는거잖아.
 
원래 세상은 요모양 요꼬라지란다.
 
그리고, 내가 언제 너 등쳐먹으려고 거짓말 한 적 있냐?
 
내가 그냥 기억을 못하는 걸 수도 있기는 한데,
 
적어도 지금 떠오르는 것 중엔 없거든?
 
네가 좋으니까 그냥 믿는 것처럼,
 
 
네오 샤프슈체:너 반대할거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지켜주려고 거짓말하는 이유가 뭐겠어?
 
 
김예아:그러니까 믿는거 아니야- 나한테 나쁜짓한다고 거짓말 한적 없으니까.
 
 
김예아 , 불만스러운지 잡고 있던 손을 놓더니 네오의 손을 꼬집습니다.
 
 
네오 샤프슈체:(아야)
 
 
네오 샤프슈체 , 대충 소리 들리던 쪽으로 팔 휘적거립니다. 너 이리 안 와?
 
 
김예아 , 피합니다.
 
 
네오 샤프슈체 , 잠깐 더 휘적거리다가 잡히는 게 없으니 포기하고 얌전해집니다.
 
 
네오 샤프슈체:내가 눈이 이 모양인걸 다행으로 생각해.
 
 
김예아:어차피 눈 보여도 힘으로는 내가 이기잖아
 
 
네오 샤프슈체:어허.
 
그런 건 모르는 척 하는거야.
 
 
김예아:><
 
 
 
:함께 즐겁게 떠들고 장난치다보니, 남은 시간은 어느새 10분 남짓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오래 지났나? 돌이켜보지만, 영 시간 감각이 없습니다.
 
이상할 정도로 빨리 지나간 기분이에요.
 
시계를 보는 사이 생긴 찰나의 침묵을 알아챈 네오가 먼저 입을 엽니다.
 
 
네오 샤프슈체:이제 한 10분 남았나?
 
 
김예아:?
 
보여?
 
 
네오 샤프슈체:아니? 그냥 감이지.
 
 
김예아:으음...
 
 
네오 샤프슈체:약 맞은건 나잖냐.
 
이정도도 모르게?
 
 
김예아:그럴려나... 맞아. 10분 남았어.
 
 
네오 샤프슈체:이제 10분 뒤면 여기 있을지, 나갈지, 결정 나겠네.
 
 
네오 샤프슈체 , 잠깐 무언가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지어냅니다.
 
 
네오 샤프슈체:내가 여기서 나갈 수 있게 되면, 좀 기쁠 것 같아?
 
너,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계속 묘하게 가라앉은 분위기 있었거든.
 
답지않게스리.
 
 
김예아:...-그런가.
 
몰라아...
 
너가 살기 싫다고 하니까 기분 안 좋긴해.
 
 
네오 샤프슈체:그럼, 살고 싶다고 하면 좀 낫겠어?
 
솔직히 나간다고 예전처럼 살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만서도...
 
 
김예아:나 때문이 아니라 진짜로 그렇게 말하는거면 나을 듯.
 
 
네오 샤프슈체:음-
 
그건 좀 오래 걸리겠는걸.
 
 
김예아:너무해, 나빴어.
 
 
네오 샤프슈체:뭘 새삼스레.
 
 
김예아:(입 삐쭉)
 
 
네오 샤프슈체:그래도, 고민해봤는데,
 
찾아올거 기다리겠다고 해놓고 내가 도망가는 건 진짜 좀 아닌 것 같아서.
 
 
김예아:... 그럴 줄 알았어.
 
솔직히 용케도 자살 안했다 싶어-...
 
나랑 약속해도... 내가 빌어도 넌 죽을거 같았는데...
 
 
네오 샤프슈체:솔직히 동감.
 
 
김예아:진짜 네오 나쁜놈.
 
 
네오 샤프슈체:어어. 나쁜놈 맞아서 별로 타격 없다.
 
 
김예아:보라돌이.
 
 
네오 샤프슈체:그건 좀.
 
 
김예아:견뎌
 
 
네오 샤프슈체:안 견딜건데?
 
매번 싫어할거야.
 
 
김예아:ㅡ"ㅡ
 
 
네오 샤프슈체:...뭐, 하여튼.
 
마지막으로 확신을 좀 받고 싶어서 그런데,
 
진짜 내가 같이 돌아가면 좋겠어?
 
 
김예아:응, 같이 돌아가고 싶어. 오늘 못 돌아가도 같이 돌아갈 수 있을 때까지 올거야.
 
 
네오 샤프슈체:-그래, 그럼.
 
부적도 안 깨진김에 좀 더 살아보지 뭐.
 
 
김예아:잘 가지고 있어서 다행이라 해야할지...
 
 
네오 샤프슈체:다행이라고 생각해.
 
홀라당 잃어버렸어봐. 마땅히 이유 댈 것도 없다고.
 
 
김예아:그렇긴한데-...
 
몰라... 너 나빴어.
 
 
네오 샤프슈체:그래그래,
 
그 나쁜 사람이랑 같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보자고.
 
 
 
:삑, 삑, 삑--
 
책상 위의 전자시계가 요란하게 울리며 100시간의 종료를 고하는 알람이 울립니다.
 
겉보기엔, 네오에게 아무 변화도 생기지 않은 것 같아 보입니다.
 
얼마 후, 병실로 레나 리센이 들어오더니 말합니다.
 
 
레나 리센:시간이 됐습니다. 몇 가지 검사를 하고 결과를 말씀드릴테니, 잠시 방 밖에서 대기해주세요.
 
 
 
:그 말에 따라 방 밖으로 나와 기다리다보면,
 
한참이 지난 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열린 문으로 나오는 것은 레나 리센,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네오입니다.
 
 
네오 샤프슈체:야,
 
돌아가자.
 
 
 
:익숙한 미소를 지으며, 그는 당신에게 손을 내밉니다.
 
 
김예아:진짜 나빴어.
 
 
김예아 , 그렇게 말하면서도 웃으면서 손을 잡아줍니다.
 
 
 
:사이좋게 손을 잡고, 몇 가지 퇴원 절차를 밟은 뒤, 두 사람은 병원 밖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밤의 장막이 드리우며 어둡게 그림자 진 도시의 건물들 너머, 해가 지는 것이 보입니다.
 
3년 6개월 하고도 100시간을 넘어, 마침내, 두 사람은 함께 돌아가는 길에 올랐습니다.
 
집으로 가면 같이 저녁을 먹고, 잠이 들고, 언젠가 시력이 완전히 회복되면,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고-
 
잃어버린 친구들을 찾는 길 위에도 올라볼까요.
 
온전히 예전과 같은 삶을 다시 살 수는 없다고 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눈 앞에 놓인 길이 춥고 어둡더라도, 맞잡은 손의 온기는, 다시 떠오를 태양의 빛은,
 
당신에게 무엇이든 다 괜찮아질 것이라 말하는 것만 같습니다.
 
... - 이만 돌아갈까요,
 
오늘 밤은 못 다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잠이 들도록 할까요.
 
 
ED1. 네가 내게 되돌아온 100시간
 
 
오랜 기다림의 보상 | SAN +5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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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즐거우셨나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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