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 지평선

[COC 플레이로그] 도밍시 타임아웃 Chapter2. 치명적 벨라돈나 본문

COC 플레이 로그 (캠페인)/12시의 도밍게즈 (로빈&호라)

[COC 플레이로그] 도밍시 타임아웃 Chapter2. 치명적 벨라돈나

CB_PL_ 2023. 11. 1. 01:13

시나리오 링크: https://posty.pe/gk9o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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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들은 감히 확신할 수 없는 존재야. 언제 변덕을 일삼을지 모르지. 스스로 팔다리를 잘라내는 멍청한 짓을 저질러선 안 돼."
 
"핑계 삼아, 원인을 알면서도 방관하시겠다는 건 아니고요?"
 
"설마."
 
"그런 뜻으로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지구와의 정상 회담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곧 인류가 승리하는 시대가 열릴 거야. 미리 초조해서 일을 그르치지 말게."
 
애벗 박사는 날카롭게 항의했고, 하슬러 원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인간을 위하는 자와 인류를 이끄는 자의 첨예한 대립이었다.
 
"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죽였다."
 
"살인자 중의 살인자인 우리는, 어떻게 안식을 얻을 것인가?"
 
미치광이의 외침을 들으며 자신에게 반문한다.
 
우리는, 한낱 인간인가?
 
 
12시의 도밍게즈 ~Time Out~
 
 
Chapter 2. 치명적 벨라돈나
 
 
 
:"로빈!"
 
날카로운 겨울 바람이 뺨을 할퀴고, 외마디 비명이 어깨를 붙잡습니다.
 
 
로빈:
회피
기준치: 70/35/14
굴림: 91
판정결과: 실패
 
 
 
:쾅ㅡ!
 
놀라울 정도의 굉음이 바닥을 크게 울립니다.
 
명확하게 당신을 노리며, 거대한 나무 발굽이 땅을 찍어 눌렀습니다.
 
그것을 중심으로 대자연의 삼림이 여러 갈래로 쪼개지고, 채 피하지 못한 당신의 한 팔을 함께 뭉개버립니다.
 
* 체력 -1d3
 
 
로빈:
rolling 1d3
 
(
3
 
)
 
 
=
3
 
 
 
:멍했던 정신이 고통에 의해 억지로 끌어올려집니다.
 
여기는ㅡ
 
위치 좌표는 지구, 노르웨이, 달스니바산 중턱.
 
시간 좌표는 크리스마스가 막 지난 2032년 12월 26일.
 
검은 것, 나무가 아닌 것, 썩은 동아줄을 꼬아 세운 기괴한 괴물들은 다닥다닥 달라붙어 이 숲으로 밀려듭니다.
 
염소 발굽을 닮은 다리가 우악스럽게 바닥을 때려대고, 가지마다 달린 입들이 흰 이빨과 불쾌한 점액질을 내보입니다.
 
 
 
:남은 수는, 91 정도입니다.
 
상황파악을 마치고나면, 그것들을 피해 몸을 물리는 당신의 옆으로 호라가 따라붙으며 소리칩니다.
 
 
호라 아트로포스:괜찮아?!
 
 
로빈:(크흠)
 
괜찮아.
 
 
호라 아트로포스 , 공격받은 당신의 팔을 슬 내려다보고, 인상을 씁니다.
 
 
호라 아트로포스:끝나고 바로 가서 치료 받자.
 
 
 
:호라는 그리 말하고선 몸을 돌려, 어둠의 아이들을 마주합니다. 언제까지고 도망갈 수는 없으니, 반격을 해야하니까요!
 
 
로빈:
권능 Roll
기준치: 70/35/14
굴림: 50
판정결과: 보통 성공
 
rolling 1d10
 
(
6
 
)
 
 
=
6
 
 
 
:당신과 호라가 일으킨 날 선 칼바람에, 어둠의 아이 몇 마리가 거목이 쓰러지는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곤두박질 칩니다.
 
굉음과 이어지는 강한 돌풍, 땅울림 탓에 겨울잠 자던 토끼들도 놀라서 깨어나, 후다닥 반대 방향으로 도망칩니다.
 
백야 현상으로 희게 센 하늘에 검은 새 그림자가 푸드덕 날아오르고, 다른 숲동물들의 울음소리가 멀어집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귓가에 무전이 울립니다.
 
[여기는 지구 지부, 여기는 지구 지부. 제 7시의 타이머 응답하라.]
 
 
호라 아트로포스:지구의 제 7시의 타이머, 무전 받았습니다. 무슨 일 입니까?
 
 
 
:[즉시 블루 아버를 개방하라. 도밍게즈의 타이머와 함께 도밍게즈 제 10구역으로 지원 및 복귀 바란다.]
 
[연구기지 사정거리 내에 게이트가 발생했다. 우선순위를 변경한다.]
 
[즉시 블루 아버를 개방하라. 도밍게즈의 타이머와 함께 도밍게즈 제 10구역으로 지원 및 복귀 바란다.]
 
제 10구역 DOT 연구기지에는 외우주의 모든 데이터가 집약되어 있습니다.
 
진척이 없는 연구일지라도, 빼앗겼다가는 위기에 몰리고 말 것입니다.
 
이건 인류에게 불리하기 짝이 없는 게임이니까요.
 
 
 
:겨울을 입은 달스니바산은 순백의 한 폭.
 
동물도 겨울잠을 자고 식물도 언 땅 아래 움츠리고 있는 시기.
 
눈사태의 위험이 형형한 터라 도로가 폐쇄되는 비수기입니다.
 
확실히, 인명 피해가 가장 적은 파견지이긴 합니다.
 
하지만,
 
 
로빈: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46
판정결과: 보통 성공
 
 
 
:군대도 주둔하지 않는 지역인지라, 이대로 내버려두면 어둠의 아이들은 아무 방해 없이 숲을 벗어날겁니다.
 
저 아래 게이랑에르 피오르에 숨은 작은 마을까지도.
 
...연구기지를 수비한 후 시간을 맞춰 돌아올 수 있을까요?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로빈:어떡하지?
 
 
호라 아트로포스 , 어둠의 아이 반대편을 잠깐 돌아보나 싶다가 말합니다.
 
 
호라 아트로포스:빨리 다녀오자, 연구기지가 피해를 크게 입으면 앞으로가 위험할지도 몰라.
 
 
로빈 , 고민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다가 호라를 보며 말합니다.
 
 
로빈:갈라져서 가는건?
 
 
호라 아트로포스:...괜찮겠어?
 
혼자서는 벅찰지도 몰라.
 
알잖아, 요즘 게이트들 기세 만만치 않은거.
 
 
로빈:...그래도 양쪽 다 중요해.
 
 
호라 아트로포스:...그래, 그럼. 힘내보자.
 
도밍게즈 쪽을 내가 맡을게, 블루 아버만 열고, 지구 쪽을 부탁해.
 
 
로빈:알았어, 조심해.
 
 
 
:두 사람은 블루 아버만 열고, 각자 맡은 곳을 지키기로 결정했습니다.
 
블루 아버를 열기 위해선 세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신성한 손가락의 붕괴, 타이머 두 사람의 피.
 
현재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손가락은 독일 뮌헨의 시계탑, 글로켄슈필입니다.
 
가장 가깝다, 라고 해도 거리가 꽤 있으니 텔레미터를 써야겠군요.
 
 
로빈: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100
판정결과: 대실패
 
 
 
:차르르륵, 텔레미터의 바늘을 돌려 이동하면,
 
계산을 좀 잘못한 것인지, 글로켄슈필에서 몇 블럭 떨어진 곳에 불시착하고 맙니다.
 
오가던 사람들은 타이머를 발견하자, 손을 휘저으며 인사를 걸어옵니다.
 
... 이럴 시간이 없어요!
 
두 사람은 귓가에 울리는 목소리를 등지고, 사람들을 물린 뒤 시계탑을 부숩니다.
 
무너진 기둥과 문설주에 두 영웅의 피를 섞어 바르자, 만개한 장미가 눈 앞을 새파랗게 물들입니다.
 
 
호라 아트로포스:다녀올게, 나중에 꼭 다시 봐.
 
 
로빈:조심해!
 
 
호라 아트로포스:너야말로!
 
 
 
:블루 아버는 얼마 있지 않고 닫히고, 당신은 다시 산으로 돌아갑니다.
 
여전히 대단한 기세로 몰려드는 어둠의 아이를 막기 위해, 당신은 어쩔 방도없이 온 몸을 내던집니다.
 
...
 
제 3차 코스모스 웨이브, 그로부터 꼬박 삼 년.
 
인류는 새 국면을 맞이했습니다.
 
도개교가 되어준 블루 아버 덕분에 도밍게즈와 지구는 GEM 연합을 결성하고 공동 전선을 형성했습니다.
 
 
 
:역사 기록, 조사 자료, 연구 결과 등, 감히 값을 매길 수 없는 거대한 정보가 은하를 건넙니다.
 
외따로 떨어져 있던 인류에게 서로는 가장 든든한 아군이었습니다.
 
그러나, 빛이 드리우면 어둠이 도사리는 법.
 
게이트의 발생 빈도는 점점 빨라지기 시작합니다.
 
제 4차 코스모스 웨이브가 닥치려는 걸지도 모른다고,
 
쌍둥이 행성은 기약 없는 공포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다행히' 외우주의 신은 강림하지 않았으나......
 
[제 9구역 경계에 새로운 게이트가 생성됐습니다. 출동 지시를......!]
 
[타이머 전원, 이미 출동했습니다! 대기 중인 인력이 없습니다!]
 
[게이트 규모를 분석해, 인명 피해가 가장 적은 경우의 수를 찾아야 한다.]
 
...시대의 평화도 영 멀기만 합니다.
 
DOT는 더 이상 '모든' 위험지대에 타이머를 발령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동시 다발적으로 열리는 게이트를 감당하려면 최적의 효율을 따지는 과정이 필수불가결해졌습니다.
 
당신과 호라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눈 앞의 위험으로부터 등을 돌리거나, 피해를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신은, 매 순간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우리의 운명은 은하를 흘러, 어디쯤 도착했을까요?
 
그리하여,
 
세계는 지금, 얼마만큼 멸망에 가까워진 걸까요?
 
 
 
:[GEM 연합은 제 3차 코스모스 웨이브 이후 처음으로 위기 단계를 하향했습니다.]
 
[클라커 프로젝트 공개 10개월 만에 얻어낸 결과입니다.]
 
[DOT는 1주년을 맞아 클라커를 대폭 증원할 예정이며......]
 
2035년 10월 11일.
 
딱 기분 좋게 선선한 바람이 창틀을 쓰다듬는 시기.
 
가로수들은 울긋불긋한 옷으로 갈아입는 단장에 한창 바쁩니다.
 
 
 
:당신은 모처럼 관사에서 '한가롭게' '여유'를 만끽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다 클라커 프로젝트 덕분입니다.
 
때마침 뉴스도 클라커가 얼마나 대단한지 떠들어대고 있습니다.
 
곧 증원을 앞두고 있으니 단단히 관심을 끌어둘 작정이겠죠.
 
 
호라 아트로포스:요즘 저거 엄청 핫하더라.
 
 
 
:쇼파에 늘어진 호라가 툭 말을 던집니다.
 
꼭 자기 집 안방인 양 편한 모습입니다.
 
바로 이 장면이 GEM 연합 탄생 이후 가장 큰 변화입니다.
 
게이트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한 회차에 등장하는 신화생물 개체 수도 큰 폭으로 증가했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타이머는 2인 체제로 재편성되었습니다.
 
클라커들의 배치로 시간적 여유를 확보한 후엔, 이런 장면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지구, 혹은 도밍게즈의 관사에서 두 사람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살짝 낯간지러운 일상.
 
 
호라 아트로포스:덕분에 쉴 수 있어서 좋긴 하지만...
 
조금 찜찜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더라.
 
정말 안전한 거 맞겠지?
 
 
로빈:아니라고 해도 우리가 알아낼 수 있는것도 아니고.
 
 
로빈 , 마시던 음류를 마저 다 입에 털어넣습니다.
 
 
로빈:그래도 지금당장은 안전하니까.
 
 
호라 아트로포스:하아기인.
 
그래도 영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더라.
 
우리보다 한참 어린 애도 클라커라고 여기저기 불려나가잖아.
 
 
로빈:우리도 똑같잖아. 어릴 때 권능 발견돼도 바로 게이트 임무에 참여시키고.
 
그리고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우리가 출동하니까.
 
 
호라 아트로포스:생각해보니까 그랬네.
 
 
호라 아트로포스 , 당신에게 난 흉터들을 가만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쉽니다.
 
 
호라 아트로포스:솔직히 이러다가 진짜 죽나 싶었는데.
 
나중에 만나면 고맙다고 인사라도 해야겠다.
 
 
로빈:으음.
 
 
로빈 , 호라를 빤히 보다가 그저 웃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이야기를 주고 받다보면, 마침 뉴스에서 클라커의 전투 장면을 송출 중입니다.
 
평범한 소녀가 신화생물과 대치하는, 위기일발의 순간.
 
척추 대신 도드라진 뼛조각을 곤두세우던 오물 덩어리가 악의를 품고 달려들고,
 
[클라커가 게이트를 엽니다!]
 
소녀는 손바닥을 찢어 피를 냅니다.
 
담벼락에 피를 적시고 반 마디의 주문을 외우자 기하학과 어떤 숫자의 규칙이 섞인 원진이 피어납니다.
 
 
 
:눈 깜짝할 새 원진은 검은 구덩이ㅡ 게이트로 개화하고, 신화생물은 홀린듯이 게이트로 빨려들어갑니다.
 
시든 꽃송이가 낙화하듯, 게이트가 자취를 감추며 전투는 끝납니다.
 
카메라 렌즈 너머로 소녀가 이쪽을 바라봅니다.
 
앳된 얼굴, 이제 막 성인이 되었을까 싶은 모습.
 
단정한 군복은 타이머의 것과 달리 칠흑같은 검정.
 
그 모든 낯선 정보의 나열에서,
 
 
로빈: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99
판정결과: 실패
 
 
 
:어쩐지 미묘한 기시감을 느낍니다.
 
왜 익숙하지?
 
 
호라 아트로포스:...좋아, 진짜 클라커들이 다 좋아. 근데...
 
아무리 훈련을 받았대도 전투 능력은 일반인이랑 다름이 없던데.
 
그 '특수 훈련'이라는 거, 사실은 우리같은 군사 훈련이 아니라 다른 거일지도 몰라.
 
게다가... 왜 하필 피를 내는건지!
 
흑마법사 같고 왠지... 묘하잖아.
 
 
로빈:우리도 장미 아치열때 피로 하잖아.
 
 
호라 아트로포스:윽,
 
그렇긴 하네....
 
 
로빈:본인이 했던 것도 생각해.
 
 
로빈 , 그렇게 말하며 호라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누릅니다.
 
 
호라 아트로포스:그으치마안-
 
 
호라 아트로포스 , 눈을 지긋이 감으며 인상을 꾹 씁니다.
 
 
 
:호라가 걱정하는 마음도 잘 알겠지만, 저 프로젝트는 나름 10개월이라는 긴 시간동안 무던히 이어진 프로젝트입니다.
 
괜히 트집 잡기도 어려울걸요?
 
게다가, 이러니저러니 해도 클라커들 덕에 타이머들의 워라밸도 보장되고 있고요.
 
[지금까지, 제 1번 클라커의 첫 출전 영상이었습니다.]
 
[기억납니다. 오롯한 인간의 첫 승리였죠. 반응도 엄청 열렬했어요.]
 
아나운서들은 달뜬 분위기를 숨기지 못합니다.
 
 
 
:하기야, 쌍둥이 행성의 발견과 새로운 영웅의 등장이라니, 희망이 움트는 것도 당연하죠.
 
[타이머들만 고생하지 않아도 되는거잖아요.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DOT에서 공고 뜨자마자 지원할 겁니다! 친구들도 다 그러기로 했어요!]
 
[클라커가 되면 타이머의 파트너... 뭐 그런게 되는 건가?]
 
지구와 도밍게즈를 교차하는 인터뷰가 이어집니다.
 
사람들의 두 뺨에는 단풍의 붉은 색이 물들었습니다.
 
 
 
:창백하고 푸른 점들은 타이머를 사랑한다.
 
창백하고 푸른 점들은 타이머의 운명에 열광한다.
 
창백하고 푸른 점들은 타이머와 가까워지길 희망한다.
 
브라운관 안팎으로 선명한 명제입니다.
 
뭐, 타이머는 클라커와 우연히 마주친 적도 없다는 것이 현실이지만요.
 
클라커의 본적은 연구기지라서 동선이 거의 겹치지 않습니다.
 
 
 
:임무를 함께 수행할 일도 웬만해서는 없으니 파트너나 동료라고 부르기도 어폐가 있죠.
 
육군과 해군이 서로를 파트너라고 여기지 않는 것처럼.
 
현실은 원래 초라한 법입니다.
 
 
호라 아트로포스:어쩌면, 이대로만 가면 타이머가 필요 없는 세상이 올지도 몰라.
 
 
로빈:으음-
 
 
로빈 , 예전에 리베타가 얘기한 말이 생각납니다.
 
 
로빈:... ...그건 좀 그렇네.
 
 
호라 아트로포스:나름 괜찮지 않을까?
 
군대에만 콕 박혀서 이리저리 휘둘리지 않아도 될지도 모르는데 말이지.
 
하루종일 잠을 잘 수 있는 날이 생길지도 모르고.
 
 
로빈:...타이머가 전투 이외의 다른 방식으로만 안 쓰인다면 괜찮지만...
 
 
호라 아트로포스:권능 있는 것만 빼면 보통 사람이랑 다를 것도 없는 걸 뭐.
 
 
호라 아트로포스 , 별 생각이 없어보이는 표정으로, 손끝에 바람을 휘휘 감습니다.
 
 
로빈:...몰라. 차라리 그냥 클라커 호위로라도 일하고싶어.
 
이미 인생 대부분을 여기에 있었는데.
 
 
호라 아트로포스:음, 그래도...
 
정말로 타이머가 필요없어지는 날이 오면, 같이 여행이라도 다니자.
 
...사실 지구는 워낙 넓으니까, 시간을 오래 들여도 다 못 둘러볼 지도 몰라.
 
그래도 괜찮으면 세계일주 어때?
 
 
로빈:음-
 
그 말 플래그인거는 알지?
 
 
로빈 , 장난스럽게 얘기합니다.
 
 
호라 아트로포스:.
 
그, 그치만 진짜 여행 다니고 싶었단 말이야!
 
같이 가면 더 좋을 것 같고...
 
 
로빈:장난이야. 같이 세계일주하자.
 
 
로빈 , 그렇게 말하며 호라의 머리를 쓰다듬습니다.
 
 
호라 아트로포스 , 미묘하게 얼굴이 빨개집니다.
 
 
로빈:그러고보니 도밍게즈의 구역들은 다 가봤나?
 
 
호라 아트로포스:가보긴 했지만 싸우느라 바빠서 구경은 못해봤지.
 
 
로빈:그럼 도밍게즈도 한번 가보자. 거기는 내가 가이드해줄 수 있어.
 
매년 축제때마다 가니까...
 
 
호라 아트로포스:좋아!
 
 
로빈 , 그러다 문득 클라커가 궁금해져서 관련해서 검색해봅니다.
 
 
 
:제 1번 클라커부터 제 96번 클라커까지 사진과 이름, 나이 등을 정리한 블로그를 발견했습니다.
 
몇몇은 기사와 뉴스를 통해 접한 얼굴입니다.
 
음, 제법 익숙한 얼굴도 있는데...
 
DOT는 클라커의 신상 정보는 일절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세대교체 때마다 프로필이 업데이트되는 타이머와는 대조적인 행보입니다.
 
그러나 정보의 바다에는 사람들이 촬영한 사진, 영상이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듬성듬성 빈자리나 화질이 열악한 사진이 끼어있지만, 이 정도면 대단한 정보 수집 능력이네요.
 
무서울 정도로요.
 
 
로빈:
자료조사
기준치: 60/30/12
굴림: 41
판정결과: 보통 성공
 
 
 
:당신은 블로그의 또 다른 게시글들을 구경하다가, 왠지 꺼림칙한 문장을 마주합니다.
 
'게이트 소환설'.
 
 
로빈:음-...
 
 
 
:「2035.09.01. 익명의 투서를 받았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직 말할 수 없으나, 필자의 주장을 뒷받침할 거대한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모든 것이 확실해지거든, 필자가 알고 있는 게이트의 모든 것을 밝히겠습니다.」
 
블로그 포스팅은 그렇게 끝이 납니다.
 
댓글은 엉망진창입니다.
 
한 달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는 걸 보면 이대로 꼬리 말고 도망간 거라는 비난과, DOT가 손을 쓴 게 분명하다는 음모론이 혼재합니다.
 
클라커들을 두고도 갑론을박이 시끄럽습니다.
 
모든 국민이 의무적으로 특수 훈련을 이행해야 한다는 강경파,
 
 
 
:신화생물을 그저 쫓아내는 것으론 안심할 수 없다는 불안분자, 클라커들은 인체 실험 끝에 만들어졌다든다, 타이머의 클론이라든가......
 
SF가 가미된 망상이 끝없이 쏟아져 나옵니다.
 
창백하고 푸른 점들은 심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거스를 수 없는 변화의 물결, 피할 수 없는 혼란의 도가니에 점령당한, 바야흐로 혁명의 시대입니다.
 
그리고 그때,
 
[속보입니다.]
 
 
 
:뉴스 화면이 전환됩니다.
 
간신히 느슨해졌던 활시위가 다시 팽팽하게 긴장합니다.
 
[작일 저녁 8시 48분. 지구, 대한민국의 주택가에서 일가족이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시체는 심각하게 훼손된 상태지만, 도난의 흔적은 없는 것으로 보아 경찰은 원한 살인에 초점을 두고 수사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때아닌 속보는 비극적인 불청객이었습니다.
 
 
 
:띠링,
 
그런 오후를 와장창 깨트리는 방해꾼은 '또' 스마트폰이었습니다.
 
메시지는 당신과 호라에게 똑같은 내용을 적어 동시에 도착했습니다.
 
 
호라 아트로포스:벌써 주기가 돌아왔나봐.
 
 
 
:호라는 익숙하다는 듯이 중얼거립니다.
 
 
로빈:에휴...
 
 
로빈 ,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긴 복도를 따라 차례대로 연구실, 훈련실을 지나자 곧 의무실의 문패가 보입니다.
 
발소리를 듣기라도 했는지, 튀어나온 닥터 오프-화이트가 활짝 문을 열어줍니다.
 
늘 그렇듯 품이 넉넉한 흰 가운 차림입니다.
 
 
 
오프 화이트:어서 들어와, 기다리고 있었어!
 
 
 
:싸한 소독약 냄새, 커튼을 친 침대, 약이 진열된 선반, 출처 불명의 내용물이 찬 눈금 실린더와 플라스크, 비커로 꽉 찬 냉장고, 뼈와 근육으로만 이루어진 인체 모형과 두개골 시리즈까지......
 
닥터의 괴랄한 인테리어 취향이 눈에 띕니다.
 
거의 바로 체혈 준비를 마친 닥터가 두 사람에게 손짓합니다.
 
 
 
오프 화이트:자, 누구부터 할래?
 
 
 
:DOT는 건강 검진 겸 유전자 분석을 위해 주기적으로 타이머의 혈액을 채취하고 있습니다.
 
자세히는 몰라도, 타이머와 인간의 유전 정보가 다르다는 것 정도는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호라 아트로포스:나 먼저 할까?
 
 
호라 아트로포스 , 손가락으로 본인을 가리키며 당신을 바라봅니다.
 
 
로빈:어차피 둘다 하는데 순서는 상관없지 않나?
 
주사기를 무서워하는건 아닐거고...
 
 
호라 아트로포스:예전엔 좀 무서웠지만, 지금은 아니지.
 
닥터! 저 먼저 할게요!
 
 
 
오프 화이트:그래, 이리 와서 팔 줘봐.
 
 
 
:호라가 순순히 팔을 내밀면, 굵은 바늘이 호라의 피부를 파고듭니다.
 
소리없이 차오르는 혈액은 선명한 붉은색.
 
이렇게 보아선 뭐가 평범한 인간들과 다르다는 건지...
 
차라리 피도 푸른색이었으면 가시적으로 알 수 있었을텐데 말이에요.
 
 
로빈:근데 혈액 채취는 왜 하는거야?
 
 
 
오프 화이트:의료 목적도 있고, 연구 목적도 있고.
 
제 9시의 타이머가 없을 때를 대비해야지.
 
너희는 과다출혈의 위험에 쉽게 노출되는데 반해 수혈받을 수 있는 피는 한정적이니까.
 
미리미리 보험을 들어둬야 하지 않겠어?
 
그리고, 너희는 인간과 유사하면서 보다 우월한, 새로운 종이야.
 
현재 인류의 의학, 과학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기도 하지.
 
 
 
오프 화이트:연구할 가치가 차다 못해 넘친다는 뜻!
 
타이머는 병으로 죽지 않잖아?
 
그 원인을 밝혀낼 수 있다면 의료계의 콜럼버스가 될 수 있을걸?
 
 
로빈:으음... 화이트 치고는 너무 평범한 이유인데...
 
 
 
오프 화이트:'나치고는'?
 
나도 나름 평범한 연구원이거든?
 
 
로빈:어디가?
 
 
 
오프 화이트:반대로 물을게.
 
어디가 안 평범한데?
 
 
로빈 , 대충 지금까지 했던 이상한 실험들에 대해 얘기합니다.
 
 
로빈:이런게.
 
 
호라 아트로포스:아무래도 저런 것들은 평범이랑 거리가 멀죠.
 
제가 생각해도 닥터는 평범하진 않아요.
 
 
 
오프 화이트:그건 다 필요가 있어서 한 실험들이었는걸.
 
 
로빈:ㅡ"ㅡ
 
 
 
오프 화이트:아무튼, 로빈도 이제 팔 줘. 체혈하자.
 
 
 
오프 화이트 , 호라에게서 채취한 혈액이 든 팩의 입구를 꾹 밀봉하며 말합니다.
 
 
로빈:예예.
 
 
 
오프 화이트:아, 호라는 10분정도 가볍게 주먹 쥐었다가 폈다가 하고 있고.
 
 
호라 아트로포스:네에-
 
 
로빈 , 팔을 줍니다.
 
 
로빈:근데 클라커는 그냥 인간이야?
 
 
 
:당신의 팔에도 호라에게 꽂혔던 것과 똑같이 생긴 바늘이 꽂힙니다.
 
음,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혈액 색은 선명한 붉은색입니다.
 
 
 
오프 화이트:응?
 
당연하지?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서류는 훑어봐서 알아.
 
다들 평범하던데.
 
 
로빈:
설득
기준치: 40/20/8
굴림: 45
판정결과: 실패
 
그것말고는 없어?
 
 
 
오프 화이트:음, 딱히?
 
유전적으로도 아무 문제가 없었지?
 
 
로빈:으음.
 
 
로빈 , 잠시 말 없다가 무언가 떠올랐는지 화이트를 보며 말합니다.
 
 
로빈:너는 그 클라커 프로젝트의 특수훈련이 뭔지 알아?
 
 
 
오프 화이트:그으으으건 내 관할이 아니라서 나한테 물어도...
 
신체 향상 능력과 정신력 강화에 치중한다고 듣기는 했는데, 음. 자세히는 몰라.
 
뭐 우주비행사나 전투기 조종사들이 받는 그런 훈련이겠지.
 
 
 
오프 화이트 , 뚱한 얼굴로 빈 주사기의 피스톨을 당겼다 놓는 손장난을 반복합니다.
 
 
로빈:음-
 
 
 
:그리 긴 시간이 지난 것 같지도 않은데, 시간은 금방 흘러갔습니다.
 
당신의 혈액까지 채취가 끝난 닥터는 자리를 정리하며 중얼거립니다.
 
 
 
오프 화이트:사실, 재밌는 점은 그거라 생각해.
 
타이머는 '원래는' 인간이야.
 
각성하기 전까지는 건강 검진을 아무리 정밀하게 해봐도 특이점을 찾을 수가 없어.
 
그런데 각성한 후에는 왜 인간과 근본부터 달라지는 걸까?
 
만화 캐릭터처럼 진화라도 한 게 아닌 이상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한데.
 
 
로빈:신이 알려주지 않는 이상 우리가 직접 알아야지 뭐.
 
 
 
:무슨 사람을 포켓몬이나 디지몬 보는 듯한 눈으로 보는군요.
 
 
 
오프 화이트:그래서 계속 연구하고, 가설을 쓰는거지.
 
진화인걸까, 변화인걸까?
 
진화라면 트리거는 뭘까?
 
생존 본능? 환경 변화? 호르몬의 영향?
 
 
로빈:이제와서 그런거 신경쓰지도 귀찮아.
 
 
 
:난해하게 이어지는 의문들이, 이 사람이 왜 닥터가 되었는지 설명하듯 끝없이 이어집니다.
 
무수한 의문과 의문들에 파묻혀 진짜 질린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 간신히 진정한 닥터가 초콜릿을 건네줍니다.
 
수분 섭취에 신경쓰라든가, 식사를 거르지 말라든가, 격한 운동을 피하고 어지럼증을 조심하라는 진부한 잔소리를 곁들여서.
 
 
로빈 , 대강 고개를 끄덕입니다.
 
 
로빈:(귀찮음)
 
 
 
:볼일도 다 봤겠다, 의무실을 나서려하면, 평소보다 분주한 뒷정리 소리가 들립니다.
 
미묘한 기시감에 뒤를 돌아보면, 평소와 달리 유독 서두르는 듯한 닥터가 보입니다.
 
아주 옅은 장미 향기와 화한 소독약 냄새가 떠다니는 의무실.
 
출처를 알 수 없는 출렁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단 착각이 들고,
 
그 옆얼굴에 배어난 희미한 슬픔과 내리깐 눈동자를 적신 물기가 눈에 띕니다.
 
 
로빈:...화이트?
 
안좋은 일 있어?
 
 
 
:당신이 말을 걸면 황급히 뺨을 한 번 문지르더니, 표정을 지워냅니다.
 
다시 생글생글 웃는 표정으로 돌아온 닥터는 걱정해줘서 고맙다고 중얼거릴 뿐, 솔직히 털어놓을 생각은 없어 보입니다.
 
 
로빈:그렇게 말해도 이미 표정 안좋은거 봤어.
 
친한 사이끼리라도 조금정도 털어놔도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속앓이할까봐 걱정되서 하는 말이야.
 
 
 
오프 화이트:...그냥, 진짜 별 일 아니야.
 
아는 사람이 죽었거든. 게이트에 휩쓸렸대.
 
... 요즘같은 세상엔 흔한 일이잖아, 그치?
 
 
로빈:...
 
 
 
:그렇게 말하는 닥터의 표정과 목소리는, 내용과는 달리 아주 우울했습니다.
 
 
로빈 , 다가가서 화이트의 등을 몇 번 토닥인 뒤 머리를 헝클어트립니다.
 
 
로빈:별일 아니고 흔한 일이라고 해도 너한테 슬픈 일이고 충격적인 일이면 별 일이고 흔한 일이 아닌거야.
 
너무 축 쳐져있지마. 충분히 슬퍼하고 평소처럼 해. 너는 우울한 것보다는 웃는 게 어울리니까.
 
 
로빈 , 그렇게 말하고 아무렇지 않게 의무실 문으로 향합니다.
 
 
 
:의무실의 문을 향해 걸어가는 당신의 뒤로, 작은 감사 인사가 따라 붙습니다.
 
그리고 바로 옆에선 호라가 당신을 팔꿈치로 쿡 찌르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보입니다.
 
 
로빈:왜?
 
 
호라 아트로포스:역시 친절하고 다정하구나 싶어서.
 
 
로빈 , 고개를 갸웃합니다. 자각없어보입니다.
 
 
호라 아트로포스:...아잇, 정말이지!
 
본인이 자각이 없으면 어떡해!
 
 
호라 아트로포스 , 의무실 문을 열고 나가며 말합니다.
 
 
로빈:뭐가.
 
 
로빈 , 따라갑니다.
 
 
로빈:그냥 우울해보이길래.
 
 
호라 아트로포스:그걸 위로해줄 수 있는 것도 능력이라니까?
 
 
로빈:흠.
 
그런가?
 
 
호라 아트로포스:까딱 말 잘못하면 큰일나는게 위로잖아.
 
근데, 그런걸 잘한다는 건 확실히 능력이지.
 
난 종종 실패해서 엄청... 곤란한 적도 있었다구.
 
 
로빈:으음-
 
그런거라면 그런거지뭐.
 
 
 
:의무실을 나서서 복도를 잠깐 걸어가다보면, DOT의 직원, 레인이 두 사람 앞을 가로막습니다.
 
한참을 뛰어다녔는지 숨을 헐떡거리던 그는 대뜸 서류철을 코앞에 들이밉니다.
 
 
로빈:-?
 
 
 
레인:이미 끝났을까봐 한참 뛰었네요!
 
엇갈리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갑자기 죄송하지만, 새로운 임무입니다.
 
 
로빈:갑자기? 이렇게 급하게?
 
 
 
레인:DOT 지구 지부로부터 호출이 도착했거든요.
 
혹시 뉴스 보셨습니까?
 
 
호라 아트로포스:뉴스... 오늘 보기는 했는데, 클라커 관련 일인가요?
 
 
로빈:음- 일가족 살인사건?
 
 
호라 아트로포스:...아!
 
 
 
레인:두 분 다 아시는 눈치군요. 그럼 얘기가 빠르겠어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두 분에게 '일가족 살인사건'의 수사를 의뢰하고 싶다는 내용입니다.
 
 
로빈:...?
 
왜 우리한테?
 
 
:게이트도 신화생물도 아니고 살인 사건을 수사하라니.
 
이거는 경찰의 소관이 아닌가?
 
그런 황당한 기분도 잠시, 보고서를 읽으면 금세 납득하게 됩니다.
 
신화생물이 용의자라면 일반 경찰로는 확실히 역부족이겠죠.
 
 
 
레인:군이 비슷한 사례를 겪은 적이 있으니 익숙하리라는 상부의 판단입니다.
 
 
로빈:아-...
 
 
 
레인:보고서에 해부기록이나 검식 결과가 포함되어 있긴 한데, 우선 현장에 가보시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상대가 신화생물이면 놓친 흔적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로빈:(설마 그때 그 내 흉내낸...)
 
 
 
레인:아, 주소랑 좌표도 거기 적혀 있습니다!
 
 
로빈:음- 알았어.
 
 
호라 아트로포스:신화생물이 용의자라니.
 
살다보니 진짜 별 일도 다있다. 그치?
 
 
로빈:뭐... 한두번 겪을 수 있는 일이지.
 
 
호라 아트로포스:지구에선 아직까지 한 번도 없었던 일인데...
 
이래서야 쉬는 것도 여유롭게 있지는 못하겠네.
 
게이트 소리도 못 들었는데 신화생물의 등장이라니.
 
 
로빈:예전에 게이트에서 나왔는데 그때 발견 못한걸 수도.
 
 
호라 아트로포스:...그럼 더 큰일이잖아?!
 
빨리 가서 뭔지 확인하자. 더 늦으면 진짜로 큰일이 날지도 몰라...
 
 
로빈:알았어- 알았어. 바로 가보자.
 
 
 
:대한민국, 동해, 한적한 바닷가의 조촐한 별장.
 
DOT에서 적어준 좌표를 따라가면 텅 빈 모래사장과 철썩이는 파도가 객을 반깁니다.
 
성수기가 끝난 쌀쌀한 가을이라 바닷가에는 인적이 드문 편입니다.
 
별장 앞에는 흉흉한 폴리스 라인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소수의 경찰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로빈 , 보고서를 먼저 봅니다.
 
 
 
:목차는 세 분류로 되어 있습니다.
 
경찰에게 보내는 업무 협조 요청 공문도 동봉되어 있네요.
 
 
로빈:으음...
 
참 애매하네...
 
 
호라 아트로포스:뭔가 엄청 위험한 게 튀어나온 것 같은데...
 
그쪽엔 이런 괴물도 나타났던거야?
 
 
로빈:3년전에... 한번.
 
있었지.
 
 
호라 아트로포스:일반인이랑 구분하기 힘들었겠다...
 
뭔가 찾는 요령이라던가, 없어?
 
 
로빈:음...
 
 
로빈 ,인상을 쓰다가도 다시 풀며 말합니다.
 
 
로빈:그때는 거기 있던 사람이 그 괴물이랑 나랑...다른 한명밖에 없었어서.
 
그리고 모습만으로는 구별하기 힘들었어.
 
그쪽에서 먼저 공격해야 알게돼.
 
말하는 것도 꽤 유창해서...
 
 
호라 아트로포스:음... 어렵네...
 
모습만으로 구별하기 어려운거면, 진짜 작정하고 숨은 것들은 찾기 힘들겠어.
 
... 일단 조사하러 가볼까?
 
혹시 경찰로 위장했다거나, 그런건 조심하면서.
 
 
로빈:뭐 일단 경찰한테 물어봐야지.
 
대충 상황정도는.
 
 
로빈 , 그렇게 말하며 경찰쪽으로 갑니다.
 
 
 
:당신과 호라가 경찰들에게 다가서자, 타이머의 군복을 알아본 듯, 한 경찰이 앞으로 나섭니다.
 
경찰 수첩을 내민 그는 의례적으로 두 사람의 군번줄과 보고서의 업무 혐조 요청 공물을 확인합니다.
 
신분 증명이 끝나면, 그가 먼저 입을 엽니다.
 
 
 
경찰:고생이 많으십니다.
 
내용은 대충 전달 받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만......
 
뭐부터 해야 할지, 원.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서 저희도 당황스럽네요.
 
우선 현장을 살펴보시겠습니까?
 
용의자는 거, 신화생물......
 
 
 
경찰:무슨 고등생? 그런 이름이었는데.
 
아무튼 그쪽으로 확신하는 추세입니다.
 
 
로빈:고등 쇼고스...예.
 
 
 
경찰:타이머의 검증만 거치면 수사도 종결할 예정이고.
 
 
로빈:음?
 
수사 종결이요?
 
 
 
경찰:뭐, 정부랑 DOT 둘 다 평범한 살인 사건으로 종결되길 바라니까요.
 
대외적으로는 원한 살인 후 범인도 자살했다고 발표할 예정입니다.
 
확인되는 게이트도 없고, 그러니까 당연히 경보 발령도 안 울렸고.
 
그런 상황에서 신화생물한테 일가족 몰살이라니, 몰매 맞을게 뻔하잖습니까.
 
굳이 불안을 조장하지 말자는 윗선의 지시입니다.
 
그러니까, 신화생물의 소행이 맞는지만 확인해 주십쇼.
 
 
 
경찰:애쓰실 필요 없습니다.
 
 
로빈:으음...
 
근데 왜 신화생물의 소행이라고 확신하는건가요?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경찰:인간이 했다기에는 좀 석연찮은 부분이 있어서 말입니다.
 
시체들이 전부 녹았어요.
 
게다가 녹은 형태도 화상이라기보단...
 
용암 괴물이 잡아먹은 것 같다고 해야하나.
 
이건 직접 보시는 게 빠를 겁니다.
 
들어가시죠.
 
 
로빈:으음..
 
네.
 
 
 
:허리를 숙여 폴리스 라인을 걷어낸 그는 두 사람이 다가오길 기다리며 부연 설명합니다.
 
 
 
경찰:그리고 정원에 있던 CCTV 영상을 확보했는데, 인간이라면 불가능한 알리바이가 포착됐습니다.
 
 
로빈:으음
 
 
로빈 , 그쪽으로 다가갑니다.
 
 
 
:2층 구조의 작은 별장.
 
비극을 올릴 무대로는 적합하지 않은, 그윽한 도처입니다.
 
옥상에는 걷을 이 없는 빨래가 처연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현관을 여는 순간, 심한 악취가 풍깁니다.
 
피고 고이고 썩어 풍기는 불쾌한 낌새......
 
그 자취를 쫓아 바닥으로 시선을 떨구면, 피투성이인 시체가 쓰러져 있습니다.
 
 
 
:얼굴을 뜯어 먹힌 끔찍한 꼴로.
 
 
로빈:
SAN Roll
기준치: 52/26/10
굴림: 56
판정결과: 실패
 
으...
 
 
 
경찰:제 8시의 타이머가 복원해둔 시체입니다.
 
진짜보다 생생하더라고요.
 
뒤뜰로 이어지는 문은 주방에 있고, 거, 현장 훼손하지 않게 조심하십쇼.
 
 
 
:혀를 내두른 경찰은 곧 바깥으로 나갑니다.
 
 
로빈 , 현관부터 살펴봅니다.
 
 
 
:남편, A씨의 시체가 쓰러져 있습니다.
 
벽부터 바닥까지 온통 피가 굳은 흔적으로 뒤덮였습니다.
 
전두부 훼손으로 인한 실혈사.
 
치명상과 사인에 걸맞게 A씨는 안면이 통째로 사라진 상태입니다.
 
 
로빈:
응급처치
기준치: 50/25/10
굴림: 40
판정결과: 보통 성공
 
 
 
:뜯겨나간 안면의 경계가 특이한 것을 알아차립니다.
 
잇자국이나 자상은 없고, 뭉근하게 녹은 피부만 얼룩덜룩 뭉개져 있습니다.
 
그을린 자국도 없으니 화마보단......
 
염산같은 액체에 녹은 흔적 같습니다.
 
그 순간, 어떤 기억이 문득 머릿속을 스칩니다.
 
품에 안겨들던 부정형의 열기.
 
 
 
:거품처럼 일그러지고 액체처럼 흐르다가도 점액처럼 엉겨 붙던......
 
비정상적으로 뜨겁던 온기였습니다.
 
 
로빈:...
 
 
 
:고등 쇼고스에게 무력하게 노출되었다면 딱 이런 꼴로 녹고 말았을 겁니다.
 
현관에서 시작된 핏자국도 이상한 형태이긴 마찬가지입니다.
 
 
로빈 , 핏자국을 봅니다.
 
 
 
:범인의 족적은 온데간데없고 큰 붓으로 문댄 것처럼, 계단까지 이어지는 긴 핏자국이 보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시체를 끌고 간 흔적이겠지만...
 
 
로빈: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55
판정결과: 보통 성공
 
 
 
:A씨의 후두부나 몸은 비교적 깨끗합니다.
 
아무래도 이 혈흔은 시체를 끌고간 것이 아니라... 범인의 발자취인 모양입니다.
 
거대한 뱀의 허물마냥 휘청거리던 핏자국은 계단이 시작되자 사람의 발자국으로 바뀝니다.
 
피에 젖은 그 발자국을 따라가면, 2층 계단참에 도착합니다.
 
중간부턴 피가 마르기 시작했는지 형태가 불규칙하게 끊깁니다.
 
그래도, 도착지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방의 문설주가 온통 피칠갑이니까요.
 
B씨가 살해당한 안방입니다.
 
 
로빈:음.
 
 
 
:문을 열려고 해보아도, 문고리만 헛돌 뿐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로빈:
근력
기준치: 65/32/13
굴림: 71
판정결과: 실패
 
(아픔)
 
 
호라 아트로포스 , 옆에서 지켜보다가, 나와보라면서 본인이 문을 온 몸으로 밀어젖힙니다.
 
 
 
:문을 억지로 열자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B씨의 시체가 쓰러집니다.
 
문에 기댄 죽음이 그토록 무거웠나봅니다.
 
그 모습을 본 호라는 눈에 띄게 불쾌해하는 표정을 지어냅니다.
 
그래도, 생김새만 따지자면 아까보다는 사정이 낫습니다.
 
얼룩덜룩한 흉터는 남아있지만, 이목구비는 온전하거든요.
 
대신, 머리카락이 엉성하게 잘려 나갔습니다.
 
 
 
:아무렇게나 쥐고 잘라낸 것처럼 끄트머리가 우둘투둘합니다.
 
 
로빈: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2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음, 자세히보니 잘려나간 것이 아니라...
 
피부처럼 녹아내린 것입니다.
 
아마 범인ㅡ 고등 쇼고스는 1층에서 A씨를 살해하고, A씨의 모습으로 위장해 B씨까지 살해했을 겁니다.
 
그 다음 행적은, 뒤뜰이군요.
 
뒤뜰로 나가기 위해서는 주방을 거쳐야합니다.
 
주방엔 식사 준비가 한창이던 식탁이 고스란히 방치되어 있습니다.
 
 
 
:그 옆, 쪽문을 열면 한 폭 남짓의 좁은 뒤뜰로 이어집니다.
 
낮은 담벼락과 조화로운 정원수, 자물쇠가 걸린 자전거.
 
일상적인 풍경에 덩그러니 C군의 시체가 떨어져 있습니다.
 
등부터 떨어졌는지 뒤통수는 함몰됐고, 팔다리의 관절도 성하지 못합니다.
 
팔뚝에 비슷한 화상이 남아 있습니다.
 
 
로빈: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2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런 곳으로 떨어져 추락사할 만한 곳은 옥상입니다.
 
시선이 자연스레 옥상을 향합니다.
 
범인은 아마 저기서 마지막 살인을 저질렀을 것입니다.
 
혹은, 저지르기 전에 C군이 추락했거나.
 
 
로빈 , 옥상으로 올라가봅니다,
 
 
 
:계단을 두 번 올라 베란다 바깥으로 향하면 옥상에 도달합니다.
 
아담한 별장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층고가 높았네요.
 
지붕 아래를 내려다보면 바다는 노을을 받아 웅장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흙먼지가 가득한 발자국과, 핏물이 밴 발자국은 쫓고 쫓기며 엉망진창으로 얽히다가 장독대 옆에서 끝이 납니다.
 
옥상까지 도망쳤던 C군이 결국 죽음의 품에 떨어진 것입니다.
 
같은 곳에 서보면, 추락 지점의 바로 위입니다.
 
 
로빈:
추적
기준치: 10/5/2
굴림: 100
판정결과: 대실패
 
추적
기준치: 10/5/2
굴림: 55
판정결과: 실패
 
rolling 1d10
 
(
1
 
)
 
 
=
1
 
 
 
:발자국들을 이리저리 살피던 당신은, 그만 굳은 피 발자국 사이에서 우당탕 넘어지고 맙니다.
 
장독대 근처에서 아래쪽을 내다보던 호라가 깜짝 놀라더니 달려옵니다.
 
 
호라 아트로포스:무슨 일이야?!
 
 
로빈:... 아무일도 아니야.
 
 
로빈 , 툭툭 털고일어납니다.
 
 
호라 아트로포스:진짜?
 
 
호라 아트로포스 , 옆에서 같이 흙먼지를 툭툭 털어줍니다.
 
 
로빈:어. 별 일 아니야.
 
...대충 다 봤으니 CCTV 살펴볼까?
 
 
호라 아트로포스:응? 아, 그래야지.
 
워낙 상황이 충격이라 까먹고 있었네...
 
 
로빈:그럴 수 있지.
 
 
 
:두 사람은 CCTV의 녹화 영상을 확인하기 위해 경찰에게 협조 요청을 했습니다.
 
경찰은 안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영상 하나를 재생합니다.
 
흑백 화면은 화질이 열악해 간신히 형태만 식별할 수 있습니다.
 
 
 
경찰:보시다시피, 뒤뜰에 나온 건 피해자 중 한 사람인 아내 B씨 였습니다.
 
아내 B씨의 사망 추정 시각은 같은 날 오후 2시 경. 부검 결과 아들 C군보다 훨씬 먼저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죠.
 
그런데 이 CCTV에선 범인으로 등장한단 겁니다.
 
하필 배터리가 다 닳아서 이 다음 장면은 녹화가 되지 않았지만, 저녁 9시 경, 아들 C군이 차를 몰고 해안도로를 벗어나는 장면이 구간단속 카메라에 포착됐습니다.
 
인간이라면 불가능한 알리바이 아니겠습니까?
 
 
로빈:음...확실히.
 
 
 
:인적이 드문 곳이고, 별장 내부에는 CCTV가 없는 터라 이 이상의 증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일련의 상황이 시사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뜯어먹힌 시체, 죽은 자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배회하는 살인마.
 
인간이 능히 범할 수 없는 범죄입니다.
 
 
로빈:...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37
판정결과: 보통 성공
 
 
 
:불현듯, C군의 추락 후 B씨의 등장이 너무 빠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CCTV가 조작된 것이 아니라면 B씨는 C군이 떨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났죠.
 
옥상에서 바로 뛰어내린다면 모를까, 옥상에서 뒷문까지 그렇게 빨리 이동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로빈:음...
 
B씨가 나타나.. C군을 뜯어먹었다라...
 
 
호라 아트로포스:뭔가 알 것 같은거라도 있어?
 
 
로빈:음... 뭔가 B씨의 이동시간이 너무 말이 안되서.
 
 
호라 아트로포스:음... 확실히.
 
2층짜리 계단에 주방까지 끼어서 움직이는 건 10초만에 될 일이 아니지.
 
 
로빈:맞아.
 
 
 
:두사람의 대화를 듣고 경찰이 말합니다.
 
 
 
경찰:확실히 듣고 보니 빠르긴 합니다만...
 
뭐, 신화생물이라 그런거 아니겠습니까?
 
이쪽 입장에선 시체가 걸어 다닌다는 게 더 호러라서.
 
 
로빈:...하지만, 변신했을지라도 변한 쇼고스가 그렇게 빠르게 이동할 수는 없어요.
 
되려 인간으로 변해서 행동자체는 인간과 유사하고요. 아예 점액 상태로 돌아가는게 아닌이상에야...
 
 
 
:역사 이래 신화생물은 인류에게 몰이해의 영역이었습니다.
 
의심하지 않는 반응이야말로 인간답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떠올린대로 인간의 형태를 띈 고등 쇼고스는, 오히려 인간에 가까운 행동 수준을 보였습니다.
 
뭔가, 놓치고 있는 것 같은데......
 
명확하게 짚이는 구석이 없습니다.
 
 
로빈:음...
 
 
 
경찰:그래서, 어떻습니까?
 
신화생물의 짓이 확실한겁니까?
 
 
 
:취합한 단서에 따르면 범인은 분명 고등 쇼고스일 것입니다.
 
아니, 그 외엔 없다고 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하지만 떨칠 수 없는 의문은 여전합니다.
 
게이트가 열리지 않았다면, 고등 쇼고스가 아니라면, 아니, 고등 쇼고스라면……
 
 
로빈:...
 
일단 정황상...신화생물이 맞는것 같습니다.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지만... 직접확인하는 수밖에...)
 
고등 쇼고스의 짓이 확실해요.
 
 
 
:당신이 결론을 내리자, 경찰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합니다.
 
 
 
경찰:그렇다면 현 시간 부로, 본 사건의 수사 권한은 타이머 두 분께 이관하겠습니다.
 
세간에는 신화생물에 대해서는 알리지 않을 것이지만, 아직 범인인 신화생물이 도주중일테니 추적을 맡기겠습니다.
 
용의자는 저쪽 해안도로로 도주했습니다.
 
 
 
:쭉 뻗은 팔과 손가락은 별장 뒤편의 야트막한 언덕을 향합니다.
 
 
 
:당해 해안도로를 빠져나간 용의자ㅡ 그러니까, C군의 모습을 훔친 고등 쇼고스는 건방지게도 운전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차종은 틀림없이 차고에 주차되어 있던 하얀 아반떼였습니다.
 
 
 
경찰:피해자의 차량을 훔쳐서 도주한 것까진 확인했는데, 도로 중반부터 감쪽같이 자취를 감췄습니다.
 
늦은 밤이라 화질이 나빠서 운전자의 얼굴까지 식별하긴 어렵고요.
 
뭐, 식별해도 소용 없는 상대지만.
 
일단 추가 접수된 피해 신고는 없습니다.
 
직접 추적해야 할 겁니다.
 
 
 
:그렇게 말한 경찰은 당신에게 차 키를 건넵니다.
 
잠입 수사 때 쓰는 애마라면서 소개하는 차량은......
 
샛노란 스쿨버스입니다.
 
옆구리에 'On Time 미술학원'이라고 대문짝만하게 쓰인.
 
 
로빈:()
 
 
 
경찰:도움이 필요하면 이쪽으로 연락하시면 됩니다.
 
그럼, 다녀오십쇼?
 
 
 
:명함 하나가 비수처럼 가슴 주머니에 쏙 꽂힙니다.
 
... 타이머들은 텔레미터가 있어서, 운전할 기회가 많지 않은 편입니다.
 
 
로빈:(...)
 
 
 
:게다가 스쿨 버스라니, 흔히 몰 기회가 생기진 않죠.
 
둘 중 누가 운전대를 잡을지 결정하고 생각할까요?
 
 
로빈:운전할 줄 알아?
 
 
호라 아트로포스:어음...
 
운전은 면허도 없는데...
 
 
로빈:음...
 
일단 내가 운전해볼게.
 
사고 안난다는 보장은 없지만.
 
 
호라 아트로포스:...화이팅!
 
 
호라 아트로포스 , 주먹을 꾹 쥐고 응원합니다. 진심으로요.
 
 
 
:잔뜩 긴장한 채로 바닷가의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기 시작합니다.
 
긴장한 마음과는 별개로, 바다를 따라 휘어지는 해안도로는 달리기만 해도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는듯한 묘한 감상을 남깁니다.
 
앞으로는 겹겹이 일렁이는 물살이, 뒤로는 촘촘히 드리운 삼림이 야생의 광폭을 완성합니다.
 
...사실, 이 도로에 범인이 남아있을 확률은 아주, 아-주 낮습니다.
 
이미 어젯밤에 도주했으니까요.
 
한적한 곳이라 오가는 차량도 거의 없습니다.
 
 
 
:음, 이건 다행일지도요.
 
 
로빈:...
 
 
로빈 , 전투할 때도 안한 긴장을 하는 중.
 
 
호라 아트로포스 ,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다가 어깨를 두어번 토닥이고, 또 주먹을 불끈 쥡니다. 화이팅! 잘한다!
 
 
로빈:그냥 텔레미터로 가고싶다...
 
 
호라 아트로포스:나도 맘같아선 그러고 싶지만...
 
어디로 갔는지가 명확하지 않으니까.
 
......너, 너무 힘들면 운전 내가 할까?
 
면허...를 아직 안 따긴 했는데, 그래도 책은 읽어봤으니까...
 
 
로빈:...아니야. 그냥 내가 할게.
 
 
호라 아트로포스:어....으응,...
 
 
로빈:넌 뭔가...불안해.
 
(이런발언)
 
 
호라 아트로포스:(크흠,)
 
 
호라 아트로포스 , 무안함을 달래기 위해 글러브 박스를 뒤지며 혼잣말 합니다. 뭔가 들어있지 않으려나~...
 
 
 
:호라가 연 글러브 박스에서 튀어나온 것은 웬 책입니다.
 
호라는 당신의 눈치를 잠깐 보나 싶더니, 그 책을 소리내어 읽어주기 시작합니다.
 
 
호라 아트로포스:'사람의 본질은 위기가 극한으로 고조됐을 때 민낯을 드러낸다.'
 
'가령 두 사람이 치명적인 독을 마시고 죽을 위기에 처했다고 가정해보자. 안타깝게도 해독약은 딱 한 사람 몫만 남아 있다.'
 
'필연적으로 내가 살면 저 사람이 죽고, 저 사람이 살면 내가 죽는 딜레마에 빠지는 것이다.'
 
'죽음, 혹은 그에 준하는 시련 앞에서 사람은 가장 솔직해진다.'
 
'이 글을 읽는 그대. 당신의 본질은 어떤 낯을 띄고 있는가?'
 
 
 
:심리학, 철학, 인류학, 그 사이의 어느 모호한 부분을 다루는 책 같습니다.
 
영 어려운 이야기네요.
 
 
로빈:음...
 
난 어떤 낯일까...
 
 
호라 아트로포스:글쎄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항상 우리가 사지로 뛰어드는 역할 아니었어?
 
죽음을 앞에 두고 사람을 살리려고.
 
 
로빈:그렇지. 좋든 싫든 우리 일이니까.
 
 
호라 아트로포스:일이라고 해도, 한번도 도망치진 않았으니까...
 
나름 친절한 낯 아닐까 싶네.
 
 
로빈:그러다가 둘 다 흉터 생기고 상사의 잔소리도 생겼지만.
 
 
호라 아트로포스:크흠,
 
 
로빈:뭐 그건 내가 결정한거니까. 업보라 생각할래.
 
 
호라 아트로포스:나도 같이 결정했으니까, 나도 업보라 생각할래.
 
 
 
:소소하게 대화를 나누다보면, 노을이 내려오고 잿빛 방파제도 황금빛 단장을 하기 시작합니다.
 
드문드문 설치된 구간 단속 카메라가 눈도 깜빡이지 않고 아스팔트 도로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그 옆, 녹색 안내판이 분기점을 고지합니다.
 
4km 전방에서 도심지로 향하는 해안 도로와 섬으로 향하는 대교로 갈라지는 모양입니다.
 
도로를 둘러보아도 특별한 것은 없고, 바다의 풍경은 평화롭기만 할 때.
 
 
로빈: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98
판정결과: 실패
 
 
호라 아트로포스:로빈, 저기봐.
 
 
 
:호라가 갑자기 당신을 불러 세웁니다.
 
시선을 옆으로 돌리면서 운전을 할 자신은 없었기에 속도를 줄여 차를 세우고 호라가 가리키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스팔트 도로에, 부자연스럽게 그인 획을 발견합니다.
 
숲을 향해 다분히 고의적으로 휜 타이어 자국입니다.
 
그 궤도를 훑으며 시선을 옮기면 빼빼 마른 목본 사이 은밀하게 몸을 숨긴 차량이 보입니다.
 
 
호라 아트로포스:중간에 옆으로 빠져서 차를 버리고 움직인 것 같아.
 
가서 추적하자.
 
 
로빈:알았어.
 
 
로빈 , 차키를 빼고 내려 그쪽으로 갑니다.
 
 
 
:차량을 확인하러 그곳으로 향하면, 역시나 아무도 없는 차량이 두 사람을 반깁니다.
 
운전석 핸들과 쿠션에는 시체에서 본 것과 같은 녹은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시간이 꽤 지난데다가 새로 떨어진 낙엽도 많습니다.
 
쉽게 추격을 하긴 어렵겠어요.
 
 
로빈:
추적
기준치: 11/5/2
굴림: 34
판정결과: 실패
 
 
 
:보이지 않는 흔적을 찾아 당신과 호라는 점점 더 깊은 숲 속으로 걸어들어갑니다.
 
 
 
:기어코 흔적을 찾아 따라간 끝에, 두 사람은 산 정상에 도착합니다.
 
산책로도 내지 않은 야산 꼭대기에는 사람의 손길이 닿은 흔적은 전혀 없습니다.
 
정자도 전망대도 없이 불분명한 형태를 뽐내는 바위기둥이 전부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바위기둥 지척에서 발밑에 펼쳐진 장관을 음미하고 있습니다.
 
벙거지 아래 보이는 얼굴은 A씨도, B씨도, C군도 아닙니다.
 
지팡이까지 챙긴 본격적인 등산객인 것 같습니다.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성은, 석상인 것처럼 멈춰 서 있습니다.
 
 
로빈:-?
 
저기요?
 
 
 
:당신이 말을 걸자, 등산객은 화들짝 놀라며 당신을 돌아봅니다.
 
그리고, 당신과 눈이 마주치자 놀란 표정이 스르르 풀려나갑니다.
 
"죄송합니다, 험한 산이라 다른 사람을 만나는 건 처음이라 좀 놀랐네요."
 
 
로빈:아, 그럴 수 있...죠.
 
아프신줄 알고 말을 건거라서요.
 
가만히 서 있으시길래...
 
 
 
:"오, 걱정을 하게 만들었군요. 아프진 않지만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저..."
 
"이곳의 풍경은 제가 살던 곳과는 매우 다르거든요."
 
"그래서 넋을 놓고 보다보니 그렇게 보였나 봅니다."
 
"흥미로운 풍경이지 않나요?"
 
그리 말하는 남성은, 이제는 풍경이 아닌 당신과 호라의 군복을 훑어보고 있습니다.
 
 
 
:그는 꼭 온 일생을 기다린 것을 발견한 것처럼, 온갖 감정이 섞인 표정을 지어내다가, 두 사람에게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이야, 이제야 알아보다니. 이거 실례했네요."
 
 
로빈 , 그것을 보고 어쩐지 느낌이 좋지 않아 뒤로 물러납니다.
 
 
로빈:그런...가요.
 
 
호라 아트로포스 , 로빈의 눈치를 슬 보고, 마찬가지로 뒤로 조금씩 물러섭니다.
 
 
호라 아트로포스:괜찮습니다. 애초에 너무 잘 알아보면 더 곤란해서요.
 
 
 
:"그런가요? 하하,"
 
"그래도 좋은 일이네요, 이 산을 오른 덕에 흥미로운 풍경도 보고,"
 
"무엇보다도-...
 
점차 빨라지는 속도로 말을 뱉어내며 가까워진 그는 흥분으로 부글거리는 눈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곧, 인두겁을 뒤집어쓴 본질은 끄트머리부터 형체를 잃고 뭉근하게 녹아내립니다.
 
 
로빈:-!
 
 
 
:손끝에서 뚝, 땀방울도 핏방울도 아닌 살점이 떨어지고,
 
"꼭 다시 만나고 싶었던 사람을 만나게 되었네요."
 
 
 
:낯짝을 두 갈래로 쭉 찢은 고등 쇼고스가 당신에게 달려듭니다.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범주로 머리통이 갈라지자, 그 골짜기 깊은 곳에서 썩은 구정물로 말미암은 더러운 거품이 요란하게 들끓습니다.
 
 
로빈:
근력
기준치: 65/32/13
굴림: 71
판정결과: 실패
 
 
 
:끈적한 살점이 당신의 몸 곳곳을 붙잡고, 마치 한 뭉치로 뭉쳐지겠다는 듯이 의지를 표명하게 옷을 녹이려 들고, 피부를, 근육과 뼈를 녹이려 듭니다.
 
 
호라 아트로포스:로빈-!
 
 
 
:갑작스런 광경에 잠시 놀란듯 했던 호라가 급히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권능을 휘두릅니다.
 
당신에게는 닿지 않는 강한 권능이 채찍처럼 휘둘러지며 고등 쇼고스를 후려치고, 붙잡아, 당신에게서 떼어놓습니다.
 
바닥에 내팽개쳐진 고등 쇼고스의 몸 곳곳에 기다란 자상이 무수히 생겨납니다.
 
 
로빈 , 기분 나쁘다는 듯 잔뜩 인상을 쓴채로 반지를 꺼내듭니다.
 
로빈 , 그대로 쇼고스를 공격합니다.
 
 
 
:얇고 날카롭게 응축된 바람의 권능이 고등 쇼고스를 가르고 지나갑니다.
 
사경을 헤매는 그것의 형태가 들쑥날쑥 변화합니다.
 
등산객의 이목구비와 C군의 이목구비가 게임처럼 억지로 조합되었다가, 녹아내리는 괴물의 면모를 드러내고, 종내엔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바스러집니다.
 
“■■, ■ ■■ ■■■ ■……”
 
볼품없는 본질로 회귀한 그것은 유언을 남깁니다.
 
거품이 터지는 소리와 섞여 잘 들리지 않습니다.
 
 
로빈:
언어(모국어)
기준치: 70/35/14
굴림: 5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켁켁, 또 다시 만■고 싶......"
 
테킬리ㅡ리!
 
단말마와 함께 전투가 일단락됩니다.
 
DOT에 보고하기 위해 무전을 켜면, 지대가 높은 탓인지 신호가 잘 터지지 않습니다.
 
우선은 내려가는 편이 좋겠습니다.
 
 
호라 아트로포스 , 미묘한 표정으로 당신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몸 곳곳을 확인하기 시작합니다.
 
 
로빈:ㅇ,왜?
 
 
호라 아트로포스:잠깐만,
 
 
호라 아트로포스 , 한참을 그렇게 수색하다가, 살짝 개운해진 표정을 지으며 놓아줍니다.
 
 
호라 아트로포스:혹시라도 저거 흔적이라도 남아있을까봐 걱정돼서.
 
사람 먹는 괴물이니까.... 진짜로 혹시나 싶어서.
 
 
로빈:아...그건 괜찮아. 흔적 남아있어도 다시 살아나거나 하지는 않으니까.
 
(이번이 두번째로 공격받은 1인)
 
(행동이 예측이 안된단 말이지...)
 
 
호라 아트로포스: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아니다, 무사하니까 된거지.
 
 
로빈:?
 
 
로빈 , 고개를 갸웃합니다.
 
 
호라 아트로포스:일단 내려갈까?
 
보고도 해야하고, 더 여기서 해야할 일도 없잖아.
 
 
로빈 , 고개를 끄덕입니다.
 
 
 
:두 사람은 다시 해안도로로 내려옵니다.
 
보랏빛과 쪽빛으로 오묘하게 얼룩진 밤하늘에는 별이 총총 빛나고 있습니다.
 
서늘하게 식은 바람이 옷깃 사이로 목덜미를 쓰다듬습니다.
 
역력하게 소금기가 밴 공기가 혀 위에 짭조름한 풍미를 남깁니다.
 
어렴풋이 들리는 파도 소리는 울음처럼 서럽게 쏟아지고......
 
저 멀리, 덩그러니 선 등대 아래 낯선 인영이 보입니다.
 
 
로빈:?
 
 
로빈 , 혹시 싶어 낯선 인영쪽으로 갑니다.
 
 
 
:소녀와 숙녀 사이,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여성이 장미꽃을 한 송이씩 바다로 내던지고 있습니다.
 
파도의 방향이 바뀔 때마다 꽃송이는 정처없이 쓸려나갑니다.
 
마구 흩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얼굴이 익숙합니다.
 
평범한 소녀가 신화생물과 대치하는, 위기일발의 순간.
 
척추 대신 도드라진 뼛조각을 곤두세우던 오물 덩어리.
 
[클라커가 게이트를 엽니다!]
 
 
 
:제 1번 클라커, 로잘린 애버리지입니다.
 
단출한 흑색 군복 대신 평범한 일상복 차림이군요.
 
뉴스에서 본 것 보다는... 더 앳된, 어딘가 익숙한 인상입니다.
 
그의 표정은 깊게 살필 필요도 없이 우울을 감추지 못하는 얼굴입니다.
 
 
로빈:음...저기? 애버리지?
 
 
로빈 , 천천히 다가갑니다.
 
 
 
:당신이 말을 걸며 다가서자, 애버리지가 화들짝 놀라선 허겁지겁 거수경례를 합니다.
 
 
 
로잘린 애버리지:아, 안녕하십니까! 제 1번 클라커 로잘린 애버리지입니다.
 
임무 중이십니까? 고생이 많으십니다!
 
 
 
:품에 안은 꽃다발과 작은 상자. 어렵지 않게 무언가를 추모중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이상하네요.
 
그는 도밍게즈 출신이라고 알고 있으니까요.
 
무엇하러 지구까지 와서 추모하는 걸까요?
 
 
로빈:어차피 보는 사람 없으니까 편하게 얘기해...
 
근데 여기는 어쩐일이야?
 
 
 
:애버리지는 입을 달싹거리며, 난감한 표정을 짓습니다.
 
쉽게 입을 열 것 같지는 않은걸요.
 
 
로빈:말하기 힘들면 말 안해도돼.
 
그래도 아직 어린데 벌써부터 속앓이만 하고 말 못하면 나중에 더 큰 상처가 될 수 있어.
 
타이머랑 클라커가 만나는 일은 드물고 만나더라도 주변에 보는 눈이 많잖아?
 
인연이다 생각하고 나한테 털어보면 어때?
 
어디까지나 조언이지 다시 생각해봐도 말하기 힘들거나 싫으면 안해도 돼.
 
어떻게 할래?
 
 
 
:당신이 그렇게 말하면, 애버리지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입을 엽니다.
 
 
 
로잘린 애버리지:...언니한테 인사를 하러 왔어요.
 
최근에 게이트 사태에 휘말려서......
 
 
로빈:언니? 근데 넌 도밍게즈 출신아니야? 왜 지구에...
 
 
 
로잘린 애버리지:아, 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보니 얼떨결에 여기까지 오게 되었어요.
 
내일 복귀해야 하는데 마침 바다가 보여서 말입니다.
 
 
로빈:언니가 지구에 있었어?
 
 
 
로잘린 애버리지:그게... 연구차 지구와 도밍게즈를 오고가는 경우가 꽤 있었습니다.
 
근데.... 아무래도 제가 잘못 짚은 모양입니다.
 
다시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평범한 물건에도 괜히 의미부여를 하게 되네요.
 
 
로빈 , 그 말을 듣고 애버리지의 머리를 쓰담아줍니다.
 
 
 
:민망하다는 듯이 웃는 애버리지의 품에 작은 상자 귀퉁이, 필기체로 이름이 각인되어 있는 것이 보입니다.
 
Julia Abbott.
 
흔하다면 흔한 이름이다만...
 
 
로빈: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2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줄리아 애벗 박사. 클라커 프로젝트. 제 1번 클라커. 언니. 유품.
 
각기 흩어졌던 단어들이 단 하나의 귀결을 맺습니다.
 
"그냥, 진짜 별 일 아니야. 아는 사람이 죽었거든. 게이트에 휩쓸렸대."
 
"요즘같은 세상엔 흔한 일이잖아, 그치?"
 
오늘 낮까지도 언론은 클라커 프로젝트의 성공을 떠들어댔습니다.
 
증원을 앞두고 홍보에 전심전력이었고, 모든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기만 했는데.
 
 
 
:정작,
 
공로자의 죽음은 완전히 은폐되어 있었습니다.
 
 
로빈:그럼 언니가...줄리아 에벗이야?
 
 
 
로잘린 애버리지:...네.
 
언니가 클라커 프로젝트를 시작한다고 해서, 제가 첫번째로 지원했었어요.
 
 
 
로잘린 애버리지 , 로빈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애써 미소짓습니다.
 
 
 
로잘린 애버리지:3년전에... 두 분이 구해주신 이후로,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었거든요.
 
 
로빈:...-아.
 
 
 
:그 말을 듣고서야, 여태 느낀 기시감의 정체를 알아차립니다.
 
제 3차 코스모스 웨이브가 발생했을 당시, 대피 행렬의 중간에서...
 
"조, 조심하세요!"
 
당신에게 외쳤던 목소리.
 
그때의 그 아이가 이렇게 성장하여, 당신을 돕고 싶다 말하고 있습니다.
 
왜 여태까지는 알아차리지 못했던걸까요?
 
 
로빈:아...
 
아!
 
그때 그!
 
 
호라 아트로포스 , 고개를 갸웃합니다.
 
 
호라 아트로포스:아는 사람이야?
 
 
로빈:음... 아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그냥 응원해준 사람이지.
 
유독 강렬해서 기억났어.
 
그때 조심해달라고 얘기해서 고마웠었어.
 
 
 
로잘린 애버리지:저야말로, 기억해주신다니 영광입니다.
 
 
로빈:지금은 같이싸우고있는데.
 
위험할까봐 걱정되지만...
 
근데...
 
언니의 유품은 뭐야?
 
봐도 될까?
 
 
 
로잘린 애버리지:아, 네. 여기요.
 
 
 
:애버리지는 순순히 상자를 건네줍니다.
 
작은 상자 안에 든 내용물은 단출합니다.
 
반으로 접힌 종이, 시계, 편지.
 
 
로빈 , 종이를 펼쳐봅니다.
 
 
 
:지구의 세계 지도입니다.
 
시판되는 물건이라 특별할 것은 없지만,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에 동그랗게 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지도 끄트머리에는 몬테비데오 어드메의 주소 한 줄이 적혀 있습니다.
 
 
로빈:음?
 
 
로빈 , 시계를 봅니다.
 
 
 
:손바닥만한 청동 회중시계입니다.
 
뚜껑에 각인된 팔각별 때문에 텔레미터의 유사품처럼 보입니다.
 
둘레를 따라 줄리아 애벗의 이름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열어보면 시침, 분침, 초침 모두 멈춰 있습니다.
 
마지막 시각은 05시 10분 04초.
 
 
로빈 , 마지막으로 편지를 봅니다.
 
 
 
:보내는 사람은 대한민국 강원도에서 줄리아 애벗, 받는 사람은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의 토브바 아일루지.
 
내용물은 부둣가에 외롭게 선 등대가 찍힌 사진입니다.
 
 
 
로잘린 애버리지:그 주소로 가 봤는데 처음 보는 사람의 집이었어요.
 
언니 이름을 듣더니, 편지 한 통이 잘못 온 적 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편지에는 그 사진이 전부라서, 찾아보니 여기 이 등대였습니다만...
 
 
로빈:아...
 
 
 
로잘린 애버리지:여전히, 모르겠습니다.
 
언니는 왜 그런 편지를 보냈을까요.
 
중요한 걸 놓치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드는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습니다.
 
 
로빈:나도 직접 만난적이 없어서...
 
 
 
로잘린 애버리지:... 괜찮습니다.
 
반드시 알아야 하는 일이라면 언제라도 알게 되겠죠.
 
언니는 늘 모두를 구하기 위해 힘썼으니까, 저도 그럴겁니다.
 
...앗, 물론 타이머 분들에게 비할 바는 아니지만...
 
 
로빈:너희도 힘내고있는데 왜.
 
 
 
로잘린 애버리지:여태까지는 타이머 분들이 희생해서 기회를 만들어주셨던 거니까요.
 
다시 한 번, 그때 코스모스 웨이브 때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진심을 담은 인사가 말미에 붙습니다.
 
호라의 표정은 시시각각 미묘해집니다.
 
자신은 한 적이 없는 일에 대한 감사를 받은 탓이겠죠.
 
애버리지는 천진한 얼굴로 두 사람이 여전히 잘 지내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도 덧붙입니다.
 
그리고, 띠링.
 
메시지가 울리는 소리에 휴대폰을 들어올립니다.
 
 
 
:어라, 이번에는 두 사람이 아니라...
 
클라커를 부르는 것입니다.
 
익숙한 양식이지만, 다른 내용.
 
메시지를 확인한 애버리지는 이만 가봐야겠다며 상자를 되돌려 받고, 텔레미터를 조율합니다.
 
 
로빈:도와줄까? 호위라던가...
 
 
 
로잘린 애버리지:아뇨, 괜찮습니다.
 
저는 타이머를 돕기 위해 클라커가 된거니까요.
 
이 정도는 해낼 수 있습니다.
 
 
로빈:그렇다면야...
 
조심해.
 
 
 
로잘린 애버리지:걱정 감사합니다.
 
 
 
:고장난 시계와 달리, 텔레미터의 바늘은 핑그르르, 거침없이 돌아가고 순식간에 부둣가에는 둘만 남습니다.
 
 
호라 아트로포스:... 매번 내가 안한 일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을 볼 때면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모르겠어.
 
 
로빈:...;;
 
 
로빈 , 시선을 회피합니다.
 
 
호라 아트로포스:...딱히 뭐라 하는 건 아냐.
 
그냥, 음... 좀 어색해서.
 
 
로빈:사정이 있었어서...
 
 
호라 아트로포스:어쩔 수 없지 뭐...
 
 
로빈:뭐 때문인지 잘 몰라서...알게되면 그때 제대로 알려줄게.
 
 
호라 아트로포스:...아냐, 몰라도 될 것 같아.
 
자꾸 내가 아닌 사람한테 나를 맞추려고 하는 건 이상하잖아. 그치?
 
 
로빈:하긴...
 
그래도 난 같은 사람으로 안 보고 있는 건 알아줬으면 좋겠어.
 
 
호라 아트로포스:넌 안 그런거 알고 있었어.
 
 
호라 아트로포스 , 가볍게 웃습니다.
 
 
호라 아트로포스:그나저나. 임무도 끝났겠다, 등대라도 올라가서 잠깐 바다 구경 하다가 갈래?
 
발 담그기엔 슬슬 날이 추워져서 별로일 것 같으니까.
 
 
로빈:그래.
 
나도 추운건 싫어서...
 
 
 
:두 사람은 자그마한 등대를 오릅니다.
 
등대의 나선형 계단을 따라, 둥글게 둥글게.
 
한 칸을 오를 때마다 작달막한 창밖의 색이 바뀝니다.
 
탁트인 바다에 밤이 내리는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호라 아트로포스:아까 그 임무만 아니었으면 진짜 여행왔다고 해도 믿겠다.
 
 
로빈:그렇네.
 
 
호라 아트로포스:평소엔 여유가 없어서 구경도 못했던 풍경인데...
 
 
 
:창문에 달라붙은 호라의 표정은 꽤나 들뜬듯 보입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등대의 꼭대기엔 고장난 망원경과 먼지 가득한 난간이 고작입니다.
 
사람의 손길이 끊겼는지, 바닥에는 세월의 흐름을 간직한 발자국들이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천장에는 비교적 선명한 세계 지도가 펼쳐집니다.
 
 
호라 아트로포스:그동안은 숨 돌릴 새도 없이 바빴잖아.
 
그래서, 이건 비밀인데, 가끔은 일탈을 꿈꾸곤 했어.
 
실행으로 옮긴 적은 한번도 없지만...
 
 
로빈:음...
 
 
호라 아트로포스:...지금이라도 이렇게 쉬면서 세상을 보고 있으니까 좋다.
 
 
로빈:그러고보니... 집 나오고나서도 여러곳 갔지만 제대로 본건 또 처음이네.
 
 
호라 아트로포스:처음이라고?
 
...하긴, 너도 어지간히 바쁘긴 했겠구나.
 
 
 
:어느새 익숙한 감정을 담은 목소리에는 소금기도, 물기도 아닌, 웃음기만 한가득 배어 있습니다.
 
난간에 기대 바다를 바라보며, 두 사람은 소소한 이야기를 주고 받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점점 흐르고,
 
인적이 드문 모래사장.
 
외로움이 고인 바다.
 
어두움으로 가득 찬 하늘.
 
 
 
:밤과 맞닿은 수면은 칠흑으로 물들어 경계를 구분할 수 없습니다.
 
창공에 매달린 달은 심해에도 가라앉고, 흔들리는 파도와 똑같은 형태로 깃털 구름이 찢어집니다.
 
비로소 위와 아래가 똑같은 그림이 완성되면,
 
벼락같은 깨달음이 내려칩니다.
 
 
로빈: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89
판정결과: 실패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3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줄리아 애벗(Julia Abbott)과 토브바 아일루지(Ttobba Ailuj).
 
그 두개의 이름은, 양면이 뒤집힌 데칼코마니를 이루고 있다고.
 
...단순한 우연일까요?
 
왜 줄리아 애벗은 지도에 토브바 아일루지의 집만 표시해 뒀던 걸까요?
 
데칼코마니는 중심선을 기준으로 좌우가 대칭을 이룹니다.
 
그리고, 줄리아 애벗의 지도는 정확히 반으로 접혀 있었습니다.
 
 
로빈 , 지도를 생각하다가 동그라미 친 부분과 딱 겹치는 부분이 어디인지 찾아봐 살펴봅니다.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의 반대편은, 대한민국ㅡ
 
그것도 지금 있는 해안도로의 인근입니다.
 
 
로빈:...호라.
 
 
호라 아트로포스:...나랑 같은 생각 하고 있어?
 
 
로빈 , 고개를 끄덕입니다.
 
 
호라 아트로포스:찾아볼까?
 
 
로빈:그래. 찾아보자.
 
 
 
:그렇게 말은 하지만, 쉽사리 발을 떼기가 어렵습니다.
 
좋지 않은 예감이 온 몸을 억누르는 탓입니다.
 
은폐된 죽음, 숨겨진 비밀 장소, 파묻힌 진실.
 
그곳에 도달하면, 원래대로는 돌아갈 수 없을거라고.
 
 
로빈 , 그곳으로 갑니다.
 
 
 
:알아낸 주소로 향하면 한적한 바닷가, 낡은 간판이 달린 상가 건물에 도착합니다.
 
주변에는 시장 어르신 몇 분이 느릿느릿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습니다.
 
타이머를 알아본 것인지 힐끔힐끔 시선을 던지거나 애먼 말을 붙이기도 합니다.
 
... 주소는 이곳이 맞는데, 상가의 문은 단단히 잠겨 있습니다.
 
권능을 사용하면 쉽게 부술 수 있겠지만 보는 눈이 있으니 온건히 해결해야겠죠.
 
철통처럼 지키고 선 도어락은 여섯 자리 숫자를 요구합니다.
 
 
로빈:음...
 
음... ...
 
 
로빈 , 400150 입력합니다.
 
 
 
:숫자를 입력하면 무사히 상가 안으로 진입할 수 있습니다.
 
텅 빈 복도 종점에 엘리베이터가 서 있습니다.
 
문을 활짝 열고, 불청객들을 반기며.
 
버튼은 딱 하나만 불이 들어와 있습니다.
 
지하 2층.
 
 
호라 아트로포스:...왠지 불길한걸.
 
 
로빈:그러게...
 
하지만 돌아가기에는 이미 열었어.
 
 
호라 아트로포스:그...렇지. 응.
 
돌아갈 생각은 없었어.
 
그냥 마음의 준비가 좀 필요했을 뿐이야.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고, 지하 2층 버튼을 누르면,
 
기다렸다는 듯이 문이 닫히고, 도르래가 움직이고, 캄캄한 땅 아래 멈춰 섭니다.
 
전기가 나간건지, 불이 꺼진 건지, 한 치 앞을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위가 어둡습니다.
 
엇갈리지 않으려면 손이라도 잡고 있어야겠는데요.
 
 
로빈 , 호라의 손을 잡습니다.
 
 
호라 아트로포스 , 그 손을 꼭 마주잡고, 심호흡 합니다.
 
 
 
:고요한 어둠 속에서 싸늘한 소독약 냄새가 콧잔등을 간지럽힙니다.
 
병원, 연구소, 실험실.
 
그런 곳에 으레 따라오는 향취인지라 불안감이 한껏 고조됩니다.
 
잘못 어딘가에 부딪히지 않도록 벽을 짚고 천천히, 두 사람은 앞으로 걸어나갑니다.
 
 
로빈:
기준치: 60/30/12
굴림: 18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벽을 짚고 가던 손에 스위치가 툭 걸립니다.
 
불을 켤 수 있겠어요.
 
 
로빈 , 불을 킵니다.
 
 
 
:달칵,
 
천장의 형광등이 희게 달아오르고, 곧 모든 것이 밝은 빛 아래 들어섭니다.
 
그곳에는......
 
삭막한 연구실이 고스란히 구현되어 있습니다.
 
듬성듬성 책이 꽂힌, 구색만 갖춘 책장과 새하얀 실험대, 서랍도 의자도 없는 외톨이 책상이 전부입니다.
 
 
로빈 , 책장을 봅니다.
 
 
 
:과학 이론, 철학 사상, 수학 난제에 관한 책이 잡다하게 꽂혀 있습니다.
 
 
로빈:
자료조사
기준치: 60/30/12
굴림: 65
판정결과: 실패
 
자료조사
기준치: 60/30/12
굴림: 70
판정결과: 실패
 
 
 
:책을 한 권 한 권 넘기며 표지를 살피다가...
 
우당탕!
 
책이 흐트러지며 바닥에 우수수 떨어졌습니다.
 
 
로빈:
기준치: 60/30/12
굴림: 41
판정결과: 보통 성공
 
 
 
:떨어진 책들을 주워서 다시 책장에 꽂아놓던 당신은, 유일하게 분류가 엇나간 책을 한 권 발견합니다.
 
제목은, 《악마의 풀》.
 
쐐기풀, 은방울꽃, 복수초...... 흉흉한 제목대로 독초를 다루고 있습니다.
 
 
로빈:음...
 
 
로빈 , 그 책만 따로 빼놓은 뒤 실험대를 봅니다.
 
 
 
:스테인리스 스틸이 눈부시게 빛나는 실험대 위에는 현미경과 복잡한 계산식, 그래프가 가득한 연구일지가 흩어져 있습니다.
 
상부 선반에 나열된 표본 병은 대조적으로 가지런합니다.
 
 
로빈 , 연구일지를 봅니다.
 
 
 
:O'clock Serum. DOT에서 지을 법한 이름입니다.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Ⅰ) 제조 방법 / (Ⅱ) 작동 원리 / (Ⅲ) 부작용.
 
 
로빈 , 악마의 풀 책을 펼쳐서 벨라돈나를 찾아봅니다.
 
 
로빈:... ...
 
 
 
:O'clock Serum, 숙주, 피로 여는 관문. 헷갈릴 수도 없이 혈청의 숙주를 확신하게 만드는 단서들.
 
클라커는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을까?
 
타이머의 피와 신성한 파편, 그리고 치명적인 독.
 
그런 것들로 만들어져 있지......
 
96명의 클라커들은 당신의 피로 말미암은 인공적인 사역이었습니다.
 
 
로빈:
SAN Roll
기준치: 51/25/10
굴림: 88
판정결과: 실패
 
rolling 1d2
 
(
1
 
)
 
 
=
1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30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연구 일지 뒷장에 붙은 포스트잇을 발견했습니다.
 
「어쩌면, 죽일 수도 있지 않을까?」
 
주어나 목적어는 없는, 외마디 고뇌.
 
 
로빈:...
 
 
호라 아트로포스:...정말...
 
어느하나 믿을만한 정보가 없구나,
 
이게 사실일까?
 
조작된 거 아닐까?
 
 
로빈:글쎄...
 
조작이라기에는 이렇게 철저하게 조작된 정보를 알려주는건 이상하지 않아?
 
 
호라 아트로포스:근데, 하지만...
 
별로 믿고 싶지 않아.
 
결국은 DOT랑 정부가 인체 실험을 했다는 내용인거잖아.
 
 
로빈:..그렇지.
 
모르겠다...
 
 
로빈 , 불안한 마음을 뒤로 하고 표본병을 봅니다.
 
 
 
:투명한 병에는 각종 표본이 담겨 있습니다.
 
라벨링되어 있어 내용물을 식별하기 어렵진 않습니다.
 
블루베리를 닮은 열매가 총총 매달린 가지는 '벨라돈나', 불규칙하게 부서진 돌조각은 '신성한 손가락', 마지막 병은 깨져선 텅 비어 있습니다.
 
라벨의 명칭은......
 
......'고등 쇼고스'.
 
 
로빈:...
 
.......왜 이것만 비어있지?
 
추적
기준치: 11/5/2
굴림: 66
판정결과: 실패
 
 
호라 아트로포스:......이거,
 
그거 아냐?
 
아까 낮에... 그거.
 
 
로빈: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38
판정결과: 보통 성공
 
 
 
:'낮에 그거'라 함은, 일가족 살인사건 말일겁니다.
 
인간이 만들 수 없는 전개 탓에 신화생물, 고등 쇼고스의 짓이라고 확정된 사건 말입니다.
 
게이트가 열린 흔적도 없이, 어떻게 고등 쇼고스가 나타났나 했더니...
 
어쩌면, 이곳에서 탈출한 것 아닐까요?
 
 
로빈:...
 
근데 어디서 가져온거지...?
 
 
 
:가장 최근에, 유일무이하게 고등 쇼고스가 나타났던 것은-
 
3년전, 당신의 모습을 한 개체가 유일합니다.
 
 
로빈:... ...
 
.!
 
 
로빈 , 실험대를 쾅하고 손으로 내리칩니다.
 
 
호라 아트로포스:(깜짝이야)
 
 
로빈:설마... 다시 만나고싶다고 했던게... 그때 그...
 
 
호라 아트로포스:... 왜 그래? 뭔가 알았어?
 
 
로빈:게이트에서 쇼고스가 나타난적이 거의 없어.
 
근데 가장 최근에 게이트에서 나타난 쇼고스는...
 
3년전에 내 모습을 한 놈밖에 없어.
 
그리고 산에서 만난 그녀석이 또 다시 만나고싶었다고 한걸 보면...
 
그녀석의 파편이 여기있었던것 같아.
 
근데 왜?
 
 
호라 아트로포스:...빼돌린건가.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그런게 연구기지 외부에 있을 이유가 없어.
 
 
로빈:뭘 위해서 빼돌린거지...
 
 
호라 아트로포스:그건 모르겠지만...
 
 
로빈:... 그건 지금으로서는 못알아내고...
 
일단...
 
 
로빈 , 책상을 보기 위해 그쪽으로 몸을 돌립니다.
 
 
로빈:저기도 봐야 좀 더 단서가 나올 것 같은데...
 
 
호라 아트로포스:....그래, 마저 살펴봐야지.
 
 
 
:책상에는 마치 나를 열어보라는 듯 꽉 닫힌 노트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노트북을 열면 또 여섯 자리의 패스워드를 요구합니다.
 
 
로빈:( )
 
 
로빈 , 도어락에서 썼던 비번을 입력합니다.
 
 
 
:비밀번호를 입력하면, 잠금이 풀리고 배경화면이 펼쳐집니다.
 
깨끗하게 정리된 채, 인수 인계라는 제목의 폴더 단 하나만 남아있습니다.
 
폴더의 안에 든 것은 순서대로 텍스트 파일, 음성 파일, 이미지 파일입니다.
 
 
로빈 , 텍스트 파일을 봅니다.
 
 
로빈:...
 
... ...
 
 
로빈 , 음성 파일을 봅니다.
 
 
로빈 , 이미지파일을 봅니다.
 
 
 
:시계가 없는 방 안에 초침이 째깍거리는 소리가 요란합니다.
 
가빠지는 호흡 틈새, 화려한 장미 향기가 흠뻑 폐를 파고듭니다.
 
질식해 죽길 바라는 것처럼, 지독하게.
 
 
호라 아트로포스:......왜, 왜 우리가 숙적이라는거야?
 
 
로빈:...모르겠어.
 
 
호라 아트로포스:나는, ... 우리는, 여태까지 목숨을 걸고 싸워왔잖아.
 
사람들을 지키려고 싸운건 우린데, 왜 이런 말이 있는거야?
 
 
 
:호라는 명백하게 혼란스럽고, 괴로워하는 표정으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연구실을 아무리 더 뒤져보더라도 이 이상의 정보는 없습니다.
 
당장 하슬러 원수를 찾아가서 닦달해야 할까요?
 
DOT의 기밀 정보라도 빼돌리면 알 수 있을까요?
 
애벗 박사의 무덤에 대고 물음이라도 던져야 할까요?
 
"지금 도밍게즈는 명백한 전시. 타이머는 유일한 영웅이야."
 
 
 
:"그 상징성은 절대 훼손되어선 안 돼."
 
추호도 의심해 본 적 없건만.
 
「인류의 숙적은 신화생물이 아니라 타이머다.」
 
구원이라는 한 점을 믿을 수 없게 된다면.
 
오직 오류, 맹목, 허위만이 구원을 증명한다는 걸 눈치챘다면.
 
영웅이랴말로 인류가 눈치채지 못한,
 
 
 
:가장 오래된 거짓말이었다면.
 
"타이머가, 그리고 나아가서 카운터가 사라진다면 세계는 멸망할까?"
 
"잘 모르겠어요. 저도 분명 그렇게 배우고 자랐는데... 이제와서 돌이켜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았던 것 같아서요."
 
애매모호한 얼굴로 말하던 리베타를 떠올립니다.
 
왜, 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는 걸까요.
 
...
 
 
 
:[여기는 지구 지부, 여기는 지구 지부, 제 7시의 타이머 응답하라.]
 
[도래솔 광장에서 위기 사태 발생. 클라커로는 역부족이다.]
 
[지금 즉시 지원 바란다.]
 
자라난 의심이 존재의의를 흔들어대도, 세상은 당신을 부릅니다.
 
귓전을 울리는 소리가 촉박하기 짝이 없습니다.
 
돕고 싶다며 의연하게 굴던 로잘린이었는데, 변수가 생긴 모양입니다.
 
 
 
:지금, 이 순간, 망설임은 사치에 불과합니다.
 
 
호라 아트로포스:......가자.
 
가서, 우선은 할 수 있는 일 부터 하고...
 
말하러 가자. 이게 다 뭐냐고.
 
우리한테 뭘 숨긴거냐고.
 
 
로빈:...그래.
 
 
로빈 , 텔레미터를 꺼냅니다.
 
 
로빈: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8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차르르륵, 텔레미터의 바늘이 돌아가고, 두 사람은 정확히 광장의 정중앙, 분수대에 도착합니다.
 
어디에도 게이트나 신화생물은 보이지 않습니다.
 
시야를 휙휙 돌려보아도 로잘린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캄캄한 밤인데도 인파가 상당한 탓입니다.
 
 
로빈: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44
판정결과: 보통 성공
 
 
 
:거대한 분수대는 물을 뿜을 때마다 오묘한 색의 일루미네이션을 밝혀 달 무지개를 형성하고, 가로등은 보도블록 여기저기에 스포트라이트를 떨어트립니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타이머를 발견하곤, 동공을 확장시킵니다.
 
관제탑에서 쏘아 보낸 낡은 팝송이 적막한 밤에 착륙합니다.
 
 
 
:Ground Control to Major Tom,
 
Take your protein pills and put your helmet on. (Ten)
 
Ground Control (Nine)
 
to Major Tom (Eight, Seven).
 
가사 속 카운트 다운이 줄어들수록 초조한 기분은 배가 됩니다.
 
목표를 찾아 헤매던 중,
 
 
로빈:
듣기
기준치: 70/35/14
굴림: 2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타이머님-......"
 
주파수를 잘못 맞춘 라디오처럼 가냘픈 목소리가 들립니다.
 
분명히 로잘린 애버리지... 아니, 로잘릿 애벗의 목소리 입니다.
 
소리가 난 방향에는 시민들이 모여 있습니다.
 
버스킹을 감상하듯 둥글게 모인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낯선 신발 사이로 빠져나온 낯익은 소매가 보입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손등은 흉측하게 녹아내렸습니다.
 
이미 오른팔을 잡아먹힌 로잘린은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외칩니다.
 
 
 
로잘린 애벗:전, 전부 인간이 아니에요!
 
 
로빈:...
 
 
 
:Ground Control to Major Tom.
 
관제실에서 톰 소령에게 알립니다.
 
쏟아지는 시선은 익숙해서 괴리감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외마디 비명에, 찬물을 맞은 것처럼 화들짝 정신을 차립니다.
 
가로등을 빗겨선 사람들은 동공을 확장 시킨 채 당신과 호라를 바라봅니다.
 
You’ve really made the grade.
 
 
 
:당신은 이미 정해진 궤도에 올랐습니다.
 
노래 가사가 선명할 정도로 숨죽이고선.
 
게이트가 열렸다면,
 
신화생물이 등장했다면,
 
절대 불가능한 풍경입니다.
 
당신은 수많은 얼굴 사이에서, 익숙한 이들을 관측합니다.
 
 
 
:일가족 살인 사건의 피해자인 A씨와 아내 B씨,
 
제 1번 클라커 로잘린,
 
사진으로나 보았던 몇몇 클라커들.
 
여기있는 이들은 인간이 아닙니다.
 
그들은,
 
인두겁을 뒤집어쓴 고등 쇼고스 군집입니다.
 
 
로빈:
SAN Roll
기준치: 50/25/10
굴림: 34
판정결과: 보통 성공
 
 
 
:And the papers want to know whose shirt you wear.
 
그리고 군중은 당신이 어떤 셔츠를 입었는지 궁금해합니다.
 
쇼고스들은 당신을 한 점으로 두고 몰려듭니다.
 
똑같은 말을 되뇌며.
 
"부족해." "모자라." "이건 가짜야." "이게 아니야." "부족해." "이건 가짜야." "이건 가짜야." "모자라." "모자라." "이게 아니야." "부족해." "부족해."
 
Now it’s time to leave the capsule if you dare.
 
 
 
:감히 캡슐 밖으로 나올 시간입니다.
 
로잘린을 먹은 고등 쇼고스가 손에 쥔 고깃덩어리를 내다 버리며 불평합니다.
 
"우리는 너를 먹으러 왔어."
 
Can you hear me, Major Tom?
 
들립니까, 톰 소령?
 
입맛을 다시는 소리가 질척질척하게 고막에 달라붙습니다.
 
 
 
:토끼는 당근을 먹고,
 
여우는 토끼를 먹고,
 
사자는 여우를 먹고,
 
외우주의 신은 소우주의 신을 먹습니다.
 
작은 신격을 삼켜 강력한 신격을 얻기 위해.
 
그렇게 밝혀지는 진실 하나.
 
 
 
:타이머는 구원자도, 영운도 아닌,
 
그저 먹이였습니다.
 
권능도 이제는 고쳐 적을까요?
 
생존본능이라고.
 
영웅의 서사시는 갈가리 찢겨, 식탁 위 냅킨으로 전락합니다.
 
기실, 세계 멸망은 신의 부재가 아닌 신의 존재에서 기인했던 셈입니다.
 
 
로빈:
SAN Roll
기준치: 50/25/10
굴림: 46
판정결과: 보통 성공
 
 
 
:허기에 아우성치는 고등 쇼고스 군집들은 곧장 두 사람에게 달려듭니다.
 
 
로빈:
생존본능 Roll
기준치: 75/37/15
굴림: 80
판정결과: 실패
 
 
 
:얼어붙은 사고는 본능조차 억누릅니다.
 
의지와는 다르게 떨리는 손과 몸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충격받은 표정의 호라 역시 아무 행동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는 사이, 그들이 몰려들어 팔, 다리, 머리와 몸통, 목과 발, 손, 모든 신체 부위를 향해 식탐을 드러냅니다.
 
뭉툭한 치아에 군복이 찢기고, 열기를 머금은 거품에 피부가 녹아내립니다.
 
 
로빈:
생존본능 Roll
기준치: 75/37/15
굴림: 4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첨예한 고통에, 당신은 본능적으로 힘을 휘두릅니다.
 
29마리의 고등 쇼고스가 갈가리 찢기며 허공을 비상합니다.
 
너무나도 인간과 닮았고, 붉고, 끈적하고...
 
끔찍한 것들을 찢어발깁니다.
 
더 이상 분열할 수 없도록.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도록.
 
 
 
:말라붙어 부스러지도록.
 
더는 우리를 탐내지 못하도록!
 
Planet Earth is blue
 
지구는 이토록 푸른데
 
[이, 이것이 바로 필자가 고발하려던 타이머의 진실입니다!]
 
[그들은 영웅이 아닙니다.]
 
 
 
:[게이트를 소환하고 신화생물을 불러들인 주범, 인류의 숙적일 뿐!]
 
미스터 블랙의 고발에 생존자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합니다.
 
이게, 무슨 소리야?
 
통제 불가능한 생중계가 쌍둥이 행성을 혼란에 빠뜨립니다.
 
쏟아지는 시선은 벌써 피부를 따끔따끔 찔러댑니다.
 
And there’s nothing I can do.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군요.
 
노래의 마지막 소절이 떨어집니다.
 
창백하고 푸른 점들은, 타이머를 의심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진실을 깨닫고도, 인류는 우리를 필요로 할까요?
 
달이 저물기 전,
 
우리는 결단을 내려야만 합니다.
 
 
 
:이대로 떠나거나, 그대로 남거나.
 
 
로빈:... ...
 
...호라.
 
 
호라 아트로포스:......
 
로빈.
 
나, ... 어떻게 해야해?
 
 
호라 아트로포스 , 눈물 고인 눈으로 당신을 돌아봅니다.
 
 
호라 아트로포스:로빈,
 
이게 그냥 꿈이라고 해줘.
 
하룻밤의 악몽일 뿐이라고 해줘,
 
지금 일어나면, 평소같은 날로 돌아갈 거라고 해줘.
 
부탁이야, 제발.
 
내가, 난-
 
 
호라 아트로포스:여태까지 난 뭘 했던거야?
 
 
호라 아트로포스 , 기어코 눈물을 터트리지만, 그것과는 대조적으로 웃음을 흘립니다.
 
 
로빈:...
 
그러게...
 
난 지금 까지 뭘 한거지?
 
내가 타이머가 아니였으면...
 
 
호라 아트로포스:타이머가 아니었으면,
 
게이트에 휘말려 죽었겠지.
 
하지만, 타이머라고 해도?
 
결국은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신화생물들한테 뜯어먹히겠지.
 
우리는 영웅이 아니라 사냥감일 뿐이니까!
 
 
호라 아트로포스 , 악을 쓰듯 소리를 내지릅니다.
 
 
호라 아트로포스:우리가 뭘 어째야 했던거야, 응?
 
우리가 뭘 잘못했는데!
 
 
 
:소리를 내지르는 호라의 근처로 날선 바람이 너울거립니다.
 
도무지 맨 정신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 대뜸 눈 앞에 밀려넣어진 탓일겁니다.
 
 
로빈 , 그런 모습을 보고 호라를 끌어안습니다.
 
 
로빈:...진정...조금만 진정하자...
 
 
호라 아트로포스:진정하게 생겼어?!
 
타이머가 된 후로 아무리 힘들어도, 죽을 정도로 아파도, 사람을 구하겠다는 마음으로 살아왔는데,
 
그 사실을 전부 다 부정당했는데!
 
 
로빈:...
 
 
호라 아트로포스 , 거친 숨을 억지로 고르다가, 울음을 억지로 삼켜버립니다.
 
 
로빈 , 끌어안고 있던 것을 놓습니다.
 
 
로빈:그래... 역시 진정 못하겠지...
 
 
호라 아트로포스 ,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바들거리다가, 끝내 주저앉습니다.
 
 
로빈:... 난
 
모르겠어.
 
슬퍼해야할지 화를 내야할지...
 
나는...타이머가 되서 놀라면서도 기뻤어.
 
사람이 구할 수 있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
 
그냥 내가 자유로워졌다는 거에 기뻤어.
 
 
로빈:나도 아무리 힘들고 죽을만큼 아파도 꾹 참았어.
 
내가 제대로 인정 받을 수 있고 인형이 아니니까.
 
...근데 이제는 모르겠어.
 
하... 다시 자유롭지 못해졌네.
 
 
로빈 , 흉터가 생긴 부분을 만집니다.
 
 
로빈:호라.
 
이제 확신이 생겼어.
 
도망치고싶으면 도망쳐도돼. 나는 여기 남아있을게.
 
나는 내가 태어나고 타이머가 된 업보를 짊어질거야.
 
이제 죽어도 상관없어. 비난 받아도 모두가 나한테 등을 돌려도 상관없어. 전부 죄를 지은 내탓이고... 타이머가 되서...신화생물들을 불러들인 것을 처리해야하는게 내 업보니까.
 
그래도 후회되네... 내가 아니였으면... 내가 타이머가 아니였으면...
 
 
로빈:화이트도... 로잘린도...리베타도... 전부 슬퍼하지 않아도 됐었는데.
 
 
로빈 , 씁쓸한 미소를 짓습니다.
 
 
호라 아트로포스:......-아니야.
 
우리 잘못이 아니야.
 
타이머가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니잖아.
 
우리가 타이머라서 생긴 일이 아니라,
 
타이머가 있어서 생긴 일이잖아.
 
어떻게 이게 우리가 잘못한 게 될 수 있겠어......
 
 
호라 아트로포스 ,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호라 아트로포스:...난 갈거야.
 
더는 여기 있고 싶지 않아.
 
 
로빈:...
 
 
호라 아트로포스:어디론가 사라져서... 이 끔찍한 세계를 버리고 살거야.
 
 
로빈:여행가자는 약속은 못지키겠네. 아쉽다.
 
 
호라 아트로포스:......
 
 
로빈 , 땋은 옆머리를 풀고 그것을 묶고있던 노랑 방울을 호라에게 건넵니다.
 
 
로빈:잘가. 만나고나서 진심으로 행복했어. 살아있는 동안, 평화로운 하루 되길 바랄게.
 
 
호라 아트로포스 , 노란 방울을 받아들고, 손에서 몇 번 굴리더니 소중하게 양 손으로 감싸고, 끌어안습니다.
 
 
호라 아트로포스:나도,
 
정말 행복하고, 정말 좋아했어.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언젠가, 우리가 죽는 날이 온다면,
 
다시 볼 수 있길 바래.
 
 
로빈:응.
 
 
-
 
 
 
:"좋아, 자네 말대로 타이머들을 배제해보자고. 어떻게 하면 될까?
 
게이트가 열리면 기둥에 묶어 산 제물로 바치기라도 할까? 다 잡아먹거든 고이 돌아가라고?
 
타이머가 죽으면 새로운 타이머가 각성할텐데, 그때마다 족족 먹이로 내놓을 셈인가."
 
"이미 무고한 국민은 족족 먹이가 되고 있어요. 하다 못해 사실을 알려야 해요. 아무것도 모르고 타이머에게 감사하고 있어요. 이건 기만입니다."
 
"박사. 타이머를 먹이로 내놓겠다는 건 패배를 시인하는거야. 외압에 무릎꿇고 무력하게 조공을 바치는 것이나 다름없지. 그래선 안 돼."
 
"타이머의 목숨이 일반 국민 수백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애벗 박사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표면을 눈부시게 빛내던 전면 유리창은 산산조각, 위풍당당하게 섰던 기둥들은 깨진 돌멩이, 직전까지 분주하게 움직였을 사람들은 차가운 시체가 되어 한 데 섞였습니다.
 
참담한 상황을 몇 번이고 겪었으니까.
 
오직 타이머만을 믿었으니까.
 
우리가 받은 충격만큼, 인류가 겪을 배신감도 깊이깊이 사무치겠지요.
 
누구의 잘못도 아님에도, 상황은 누구든 탓하고 싶어지도록 극한을 내달릴 것입니다.
 
 
 
:구원자일 때도, 영웅일 적도, 그렇게나 외로웠는데.
 
숙적이자 위험요소가 되어선들 쉬울 리 없습니다.
 
그렇게, 죄인으로 남거나 도망자가 되어야만 하는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이 글을 읽는 그대,
 
당신의 본질은 어떤 낯을 띄고 있는가?
 
그것은, 인간이기에 존재하는......
 
 
 
:그리고 동시에, 영웅에게만 존재하는......
 
 
ED. 치명적인 영웅 심리.
 
 
탐사자 생존.
 
 
 
:당신은 DOT의 묵인하에 오류, 맹목, 허위로 만들어진 영웅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그러나, 확실히 알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예전과는 달라졌다고.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언제고 깨지고 만다는 걸.
 
 
ED. 절대적인 생존본능.
 
 
KPC 생존.
 
 
 
:호라는 영웅도, 먹이도 아닌 한낱 인간이 되어 세계 끝까지 도망칩니다.
 
그러나, 어렴풋이 알고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돌아오게 되리라는 걸.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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