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 지평선

[COC 플레이로그] 도밍시 타임아웃 Chapter3. 최후의 경례 본문

COC 플레이 로그 (캠페인)/12시의 도밍게즈 (로빈&호라)

[COC 플레이로그] 도밍시 타임아웃 Chapter3. 최후의 경례

CB_PL_ 2023. 11. 1. 02:19

시나리오 링크: https://posty.pe/ssk3k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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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을 하나 하죠"
 
"■■를 죽이고자 하면 당신도 죽고, ■■를 살리고자 하면 당신도 살 것 입니다."
 
"그래도, 당신이 ■■를 위해 행한다면......"
 
"당신의 사후, 다시 한 번 기회가 찾아올 겁니다."
 
유언은 오직 구원자만이 베풀 수 있는 구원.
 
망령은 한낱 인간만이 탐낼 수 있는 영원이었다.
 
 
 
:언젠가 말하지 않았던가.
 
가장 사랑한 것을 두고, 마땅히 해야할 일을 향해 옮기는 그 걸음.
 
그 걸음이야말로 진정한 구원자의 순례라고.
 
 
12시의 두밍게즈 ~Time out~
 
 
Chapter 3. 최후의 경례
 
 
 
:"안 들어오세요?"
 
뒤에서 운전사가 두 사람을 부릅니다.
 
그 목소리를 눈치채고 고개를 돌리자, 등대도, 세계와 장미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바람이 붑니다.
 
파도가 들썩입니다.
 
여기는 평온한 해안가입니다.
 
 
 
:떠나간 아이의 발자국이 작달막합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새로운 모래가 그 위를 덮으며 자취를 감춥니다.
 
숙소의 입구에서, 운전사가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로빈:
정신
기준치: 50/25/10
굴림: 98
판정결과: 실패
 
 
 
:손은 텅 비어있고, 상자와 앰플, 서류도 자취를 찾아볼 수 없었으므로, 꿈이 아닌가 싶은 허탈함이 몰려옵니다.
 
「손가락에 얽을 수 있는 것은 같은 손가락뿐.」
 
「다각도 시뮬레이션 결과, 지구의 타이머에게는 문제가 없으리라 판단됨.」
 
자연히 옆에 선 사람과 시선이 마주칩니다.
 
호라 아트로포스, 도밍게즈의 타이머는 지구의 타이머에게 묻습니다.
 
 
호라 아트로포스:......방금 그거, 꿈 아니었지?
 
 
로빈:...아닌 것 같은데?
 
 
 
:그리 대답하노라면, 기분 나쁜 기시감이 듭니다.
 
잘못된 시점에 불시착한 우주인처럼 발밑이 붕 떠오릅니다.
 
제 13구역의 등대에서 목격한 진실이 아직도 손에 잡힐 듯 생생한데,
 
어쩐지 '방금'이라는 시제는 입에 붙지 않습니다.
 
호라도 '방금, ...방금? 방금이 맞는데...' 하고, 몇 번이나 되뇝니다.
 
 
로빈:방금...맞지...근데...
 
 
 
:두 사람은 넘치는 기시감을 꾹 눌러담으며, 숙소를 향해 걸음을 옮겼습니다.
 
스물여덟 송이 장이로 단장한 천장
 
열네 장의 시든 꽃잎만 바스러진 바닥의 대칭.
 
그때, 우리는 이미 어떤 규칙을 관측해냈습니다.
 
어떤 숫자의 규칙.
 
신의 손가락은 각 손에 14개였음을.
 
 
 
:끼익, 끽.
 
당신은 추위에 몸을 떨며 깨어납니다.
 
정신을 차리면 눈을 머금은 북풍이 거칠게 창틀을 흔들어대고 있습니다.
 
낡은 침대와 흔들리는 탁자가 고작인 좁은 방은 등골이 시릴 만큼 냉골입니다.
 
땔깜이 떨어졌는지 벽난로의 불씨는 까무룩 죽어 잿더미로 만든 무덤만 남겼습니다.
 
 
로빈 , 잠시 멍을 때리다가 현재까지의 일을 회상합니다.
 
 
 
:현재 위치는 도밍게즈 제 6구역의 숲. 그 중심부입니다.
 
제 5구역과 밀접해서 겨울이 유달리 거칠고 포악합니다.
 
곧 3월이 될텐데도 날씨는 누그러질 기미가 없습니다.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냐면......
 
 
 
:"로빈!"
 
이번에도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면, 딱딱하고 차가운 뿔이 뺨 옆에 처박힙니다.
 
회상은 싸라기눈이 흩날리는 음울한 검은 숲을 배경으로 시작합니다.
 
이파리를 떨구고 빈 가지만 남은 앙상한 나무 위, 소복하게 쌓인 흰 눈.
 
설원이라고 불러도 모자람 없는 넓은 공터.
 
새하얗게 언 바닥을 딛고 섭니다.
 
 
 
:시작부터 과격하게도 맞은 편에는 거대한 눈 괴물이 버티고 있습니다.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옆에 다가와 서는 것은 익숙치 않은 복장의 호라입니다.
 
4개월 전, 진실게임이 시작한 이래로는 단 한번도 직접 마주하지 못한 얼굴입니다.
 
 
로빈:호라?
 
 
호라 아트로포스:...임무 나온거지?
 
 
로빈 , 그 말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로빈:너는 왜 여기있어?
 
 
호라 아트로포스:어쩌다보니 저거랑 동선이 겹쳐버려서.
 
 
로빈:아...
 
 
호라 아트로포스 , 잠깐 뜸을 들이는 듯 싶다가도, 눈을 마주하며 묻습니다.
 
 
호라 아트로포스:...간만에, 같이 처리할까?
 
혼자서는 힘들테니까. 너나, 나나.
 
 
로빈:...나야 도와주면 괜찮지만, 너는? 괜찮아?
 
 
호라 아트로포스:이대로 도망가봐야 쫓아올게 뻔해.
 
정말 잠깐만 도와주고, 바로 떠날거니까 상관없어.
 
 
로빈:...알았어. 그럼 부탁할게.
 
 
 
:두 사람의 눈 앞에서, 게이트를 통해 나타난 괴물이 포효합니다.
 
팔이 네 개, 다리가 두 개 달린 인간도 짐승도 아닌 여섯 발 괴물.
 
온몸을 뒤덮은 털은 곰의 가죽처럼 거칠고 뻣뻣한데다가, 악귀를 닮은 머리에는 얼음 송곳처럼 흉흉한 뿔이 치솟았습니다.
 
그것은 곧, 두 사람을 향해 돌격합니다.
 
우지끈, 와장창, 뚝, 쿠당탕.
 
요란한 소리와 함께, 서로 간의 전투가 시작됩니다.
 
 
로빈:
칼바람
기준치: 75/37/15
굴림: 72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36
 
 
 
:당신과 호라의 손끝에서부터 비롯되는 바람은 질긴 자국과 털을 북북 찢어버립니다.
 
고통도 통증도 느끼지 못하는 것들은 우는 대신 윤활유 따위를 흘리며 바닥을 더럽힙니다.
 
어렵지 않게 달려든 노프케를 처리해내고 나면, 주변은 엉망이지만 그에 상반되는 적막이 내려앉습니다.
 
호라는 더이상 DOT에 보고할 필요도, 이유도 없지만, 당신은 여전히 DOT의 소속. 보고를 하는 것이 좋을 타이밍입니다.
 
 
로빈 , 무전을 이용해 DOT에 보고합니다.
 
 
로빈:여기는 7시의 타이머 로빈, 신화생물 사살 완료.
 
 
로빈 , 예전과 달리 무미건조하고 짧은 보고를 합니다.
 
 
 
:보고를 하는 당신을 불안한 눈으로 쳐다보던 호라가 곧 등을 돌리고, 또 다시 작별의 시간을 맞이하려는 찰나,
 
 
로빈:
민첩
기준치: 70/35/14
굴림: 7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꽝꽝 언 눈덩이가 정확히 뒤통수를 노리고 날아들었습니다.
 
아슬아슬하게 피했지만, 쉭 날아가는 소리가 첨예한 것이 명백한 공격성을 띄고 있습니다.
 
[DOT는 침묵하지 말고 타이머의 존재를 낱낱이 밝혀라!]
 
[애먼 사람들은 무슨 죄로 죽어야 했는가!]
 
관사 앞에서 하루가 멀다고 벌어지던 진실 규명 시위.
 
직접 목격했고, TV 너머로도 접해왔던 장면은 퍽 잔인했습니다.
 
 
 
:출동을 위해 나서던 당신에게, 그리고 어쩌면 도망치던 호라에게,
 
사람들은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손에 쥔 무언가를 내던졌습니다.
 
삿대질부터 시작해, 날달걀, 돌멩이, 설익은 사과, 쓰레기......
 
자리를 피하려는 듯 하던 호라는 그 자리에 서서 바닥에 떨어진 눈덩이를 내려다봅니다.
 
하지만, 주변을 돌아봐도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평소라면 진작에 따라왔을 비난과 야유도 목소리를 잃었습니다.
 
 
 
:하긴, 죽기를 각오하지 않은 이상 제 5구역과 맞닿은 숲 한복판에 민간인이 얼씬거릴 리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눈덩이는 어디서 날아온 걸까요?
 
주변을 둘러보아도 눈을 든 것은 끝없이 펼쳐진 거무죽죽한 나무들 뿐입니다.
 
비로소 인기척이 없음을 확신한 순간, 눈덩이가 다시 날아옵니다.
 
 
로빈:
회피
기준치: 70/35/14
굴림: 90
판정결과: 실패
 
회피
기준치: 70/35/14
굴림: 67
판정결과: 보통 성공
 
회피
기준치: 70/35/14
굴림: 72
판정결과: 실패
 
 
 
:퍽, 퍽, 날아오는 수많은 눈덩이에 속절없이 맞고 맙니다.
 
그러는 와중에 알아낸 것은,
 
눈덩이들의 형태가 울퉁불퉁하고, 크기가 들쑥날쑥해서, 인위적으로 만든 것 같지 않아보인다는 사실입니다.
 
건조한 눈 냄새가 납니다.
 
술렁거리는 공기는 꼭 짐승의 울음소리 같습니다.
 
 
로빈:
자연
기준치: 10/5/2
굴림: 46
판정결과: 실패
 
 
 
:불길한 마음 탓인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세계는 눈치채지 못한 일과 눈치챈 순간에는 이미 늦은 일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휘잉,
 
거센 눈보라가 밀려오고, 시계가 하얗게 물듭니다.
 
이리저리 둘러봐도 온통 순백 일색이라 원근감이 사라집니다.
 
흰 세상에 오점처럼 남은 두 점.
 
눈을 깜빡이면 근처에 있던 호라마저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부름에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목소리마저 잡아먹는 대자연의 백색은 이토록 깨끗하고 순수합니다.
 
 
로빈:
듣기
기준치: 70/35/14
굴림: 87
판정결과: 실패
 
 
 
:아무리 귀를 기울여봐도, 대답은 커녕 바람 소리만 먹먹하게 귀를 메웁니다.
 
완벽히 조난당했다.
 
당신이 현실을 직시한 순간,
 
 
호라 아트로포스:ㅡ괜찮아?
 
 
 
:목소리와 함께 당신의 손을 붙잡는 손길이 느껴집니다.
 
 
로빈:.! 호라!
 
 
호라 아트로포스:...화이트아웃이야.
 
바람이 잦아들면 나아질테니까... 그때까지만 같이 있자.
 
 
로빈 , 알았다고 하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로빈 , 일단 텔레미터를 사용해봅니다.
 
 
로빈:
손놀림
기준치: 10/5/2
굴림: 90
판정결과: 실패
 
 
 
:눈보라 탓에 손이 얼어붙은건지, 뚜껑을 열려고 해도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습니다.
 
계속 미끄러지고, 흔들리는 탓에 사용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로빈:쯧...
 
 
로빈 , 주위를 둘러봅니다.
 
 
로빈: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90
판정결과: 실패
 
 
 
:주변은 온통 백색. 보이는 것이라고는 당신의 옆에 꼭 붙어있는 호라가 전부입니다.
 
호라도 이 눈보라를 피할 곳을 찾는지 눈을 이리저리 굴리고 고개를 돌려보고 있지만, 보이는 것은 아직 없는 모양입니다.
 
 
로빈 , 한숨을 쉬며 호라에게 말합니다.
 
 
로빈:불편한거는 알지만 그대로 일단 본부에 무전 좀 해볼게.
 
 
로빈 , 그렇게 말하며 무전을 시도합니다.
 
 
로빈:
기준치: 60/30/12
굴림: 85
판정결과: 실패
 
 
 
:눈보라 탓에 전파가 잡히지 않는지 지직거리는 소리만 무력하게 넘어옵니다.
 
 
로빈 , 미간을 짚습니다.
 
 
호라 아트로포스:......이대로 계속 눈을 맞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피할 곳이라도 찾아다닐까?
 
 
로빈:그래야 할 것 같아...
 
 
 
:두 사람은 결국 앞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합니다.
 
어느새 가득 쌓인 눈에 발이 푹푹 빠지고, 하얀 눈이 시야를 가려 한치 앞도 알 수 없습니다.
 
그렇게 얼마나 걸어나갔을까.
 
눈 앞에 흐릿하게,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들어옵니다.
 
백색 광경에 선 칠흑.
 
빛이 들지 않아 거무죽죽한 고목 아래 작은 오두막.
 
 
 
:가파른 지붕, 비뚤어진 창문과 뒤틀린 현관을 억누르는 한계치의 눈더미.
 
눈을 치우고 간신히 실내로 들어서면 케케묵은 먼지 냄새가 납니다.
 
한 칸짜리 별장은 난방시설이라곤 벽난로와 기름 난로가 전부입니다.
 
그나마도 푹 꺼져 있으니 그나마도 안팎 온도가 똑같이 냉혹합니다.
 
추위를 실감하자, 새삼스럽게 체온이 떨어집니다.
 
우선 불을 피우는 것이 좋겠네요.
 
 
로빈 , 창고를 먼저 봅니다.
 
 
 
:모포, 땔감과 공구 따위가 있는 창고입니다.
 
사냥꾼이나 쓸 법한 긴 장총도 나뒹굴고 있습니다.
 
그것들을 가만 바라보던 호라는 모포 하나를 꺼내, 몸을 덮는 데에 사용합니다.
 
 
로빈 , 땔감 몇 개를 챙긴 채로 벽난로 쪽으로 갑니다.
 
 
 
:땔감을 챙기고 나서려는 차, 가장 높은 선반에 스케치북 모서리가 삐죽 튀어나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로빈 , 잠깐 땔깜을 내려놓고 스케치북을 봅니다.
 
 
 
:도밍게즈의 각 구역이 그려져 있습니다.
 
제 1구역의 기상 관측소, 제 2구역의 가장 높은 굴뚝, 제 3구역의 세계수.... 마지막으로 제 12구역의 등대까지.
 
특출난 솜씨는 아닌지 거친 펜 터치지만 제법 특징을 잘 잡아냈네요.
 
 
로빈:으음.
 
 
 
:그 신성하다는 기둥 아래에는 언제나 익숙한 인물이 서 있습니다.
 
남색과 흰색을 배치해 깨끗한 느낌을 풍기는 디자인.
 
목을 꼼꼼하게 둘러싼 차이나 카라,
 
상체의 절반을 덮는 망토와 은색 시계.
 
낯을 읽을 수는 없지만...... 분명히 타이머 입니다.
 
손가락을 거두어내면 거친 바람이 페이지를 챠라락 넘깁니다.
 
 
 
:고정된 그림은 빠른 속도로 교차하며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굽니다.
 
기상 관측소, 가장 높은 굴뚝, 세계수, 시계탑, 얼음 기둥, 갈대밭, 풍차, 전망대, 놋뱀 기둥, 최초의 우주선, 예언의 탑, 등대, 그리고-
 
버려진 등대.
 
...버려진 등대?
 
스케치북에 그려진 건 딱 열 두 개의 신성한 손가락이었습니다.
 
그야 육안으로 식별 가능한 상징은 그뿐이니까요.
 
 
 
:그런데 어째선지 망막에 맺힌 마지막 상이 잊히지 않습니다.
 
잘못본 것이 분명한데, 다시 페이지를 들춰봐도 그런 그림은 없는데도.
 
 
로빈:
정신
기준치: 70/35/14
굴림: 5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섬의 테두리, 질척한 회색 모래, 쓰러진 배, 굴러다니는 사람의 뼈.
 
검고 자욱한 먹구름이 드리우고 성난 파도가 흔들리는 외딴 섬.
 
그곳에 홀로 서 있던 제 13구역의 등대.
 
알 턱이 없는 풍경이 기억을 스칩니다.
 
호라도 같은 상황인지, 혼란스러운 표정을 띄고 있습니다.
 
그저 단편적인 장면에 불과한데도, 제 13구역이라고 확신하는 자신이 낯설지가 않습니다.
 
 
 
:숲 한복판에서 부는 바람에 짭조름한 소금기가 배고......
 
 
호라 아트로포스:...우리, 제 13구역에 가본 적이 있었나?
 
 
 
:호라가 더듬더듬 물어옵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억을 공유합니다.
 
 
로빈:...가본 것 같기도하고...아닌것 같기도...
 
모르겠어.
 
 
로빈 , 그렇게 말하며 다시 땔깜을 챙겨 벽난로 쪽으로 갑니다.
 
 
 
:명색이 벽난로인데, 불씨가 죽어 냉골입니다.
 
창고에서 찾은 땔감은 겨우 하루 이틀을 견딜 분량에 불과합니다.
 
 
로빈 , 일단 땔감을 놓습니다.
 
 
로빈:(불의 타이머가 아니라는 사실이 안타깝군...)
 
 
로빈 , 일단 테이블을 살펴봅니다.
 
 
 
:통나무의 원형을 살려 다듬은 테이블입니다.
 
반지르르하게 마감한 상판에는 머니가 소복하게 쌓여 있습니다.
 
산지기가 차를 끓이던 주전자나 낡은 커틀러리, 꽤 오래된 신문 몇 부가 굴러다닙니다.
 
 
로빈 , 신문을 봅니다.
 
 
 
:4년전의 신문.
 
이때까지만 해도 상황은 나쁘지 않았스비다.
 
온 별이 당신의 안위를 걱정했고, 당신의 부재를 그리워했으며, 당신의 복귀를 환영했었죠.
 
문득 비교하고 맙니다.
 
지금은 어떨까?
 
 
로빈:... ...
 
 
 
:당신이 위험에 처한다면 걱정할까요?
 
당신이 행방불명이 된다면 찾으러 나설까요?
 
당신이 돌아온다면 환영할까요?
 
대답해 줄 이는 여기 존재치 않습니다.
 
그리고, 1년전 신문.
 
클리커 프로젝트가 인류의 반격이 되리라 믿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4개월 전, 진실 게임의 신호탄이 터지기 전까지는.
 
도래솔 광장에 출동했던 클라커는 총 다섯 명.
 
그 중 세 명이 사망, 두 명이 중태에 빠지는 치명상을 입었습니다.
 
전부 고등 쇼고스의 포식으로 인한 결과였습니다.
 
생중계 후, 사람들은 DOT를 의심했습니다.
 
타이머를 먹으러 왔다는 선언 앞에, 클라커를 묘사하는 수식어들이 '가짜', '부족함', '모자람'이었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비탄에 빠진 얼굴로 신문 모서리를 만지작거리던 호라가 중얼거립니다.
 
 
호라 아트로포스:...차라리 이게 나을지도 몰라.
 
클라커들이 잡아먹힌 건 '정말로' 우리 때문이었을테니까.
 
 
로빈:... ...그래.
 
 
호라 아트로포스:......어쩌면, 애초부터 시작하지 않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르지.
 
 
 
:고등 쇼고스야 어차피 식인을 통해 형체를 유지한다지만, 그 외의 것들은 오직 타이머만 탐한다고 밝혀졌습니다.
 
신화생물들의 침략은 원인을 파악할 수 없는 거대한 재난이었는데, 진실을 알고 보니 명확한 인과가 드러납니다.
 
어떤 외우주의 종도 타이머를 두고 피난 행렬에 눈독 들이진 않았다고......
 
방벽을 자처했건만 실체는 미끼ㅡ 아니, 생크림 케이크 위의 딸기였던 것입니다.
 
 
로빈 , 4년 전 신문을 바라보다가 그대로 엎어둔 채 싱크대를 봅니다.
 
 
 
:수도가 얼었는지 레버는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찬장을 열어보면 생수와 통조림 몇 개가 남아있습니다.
 
 
로빈:
기준치: 60/30/12
굴림: 40
판정결과: 보통 성공
 
 
 
:유통기한이 아슬아슬하게 남은 것들이네요.
 
 
로빈:(성냥이나 라이터는 없나?)
 
 
 
:여기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로빈:(흠...)
 
 
 
:창고를 뒤져보면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칩니다.
 
 
로빈 , 창고를 뒤적거려봅닏다.
 
 
로빈:
기준치: 60/30/12
굴림: 4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창고의 구석께에서 연료가 많이 남은 라이터를 발견합니다.
 
 
로빈 , 그걸 이용해서 벽난로에 불을 피웁니다.
 
 
 
:좁은 오두막인지라, 불을 때면 금세 훈기가 돌기 시작합니다.
 
산소를 태우며 뭉근한 연기, 그을린 냄새가 굴뚝 안으로 피어오릅니다.
 
붉은색, 노란색, 그 사이 주홍색.
 
따뜻한 빛이 당신과 옆 사람의 얼굴을 물들입니다.
 
모닥불을 나른하게 바라보고 있자니 세상 모든 근심이 사라진 것 같아서ㅡ
 
눈보라 속에 단절되고서야 비로소 짧은 평화를 누립니다.
 
 
호라 아트로포스:...거기서 뭐 해?
 
 
 
:멍하니 벽난로를 바라보던 당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다시 현재로 돌아옵니다.
 
불씨는 죽었고 장작은 다 떨어졌으며 눈보라는 여전히 그칠 줄 모르는 조난 이튿날.
 
한 박자 늦게 깬 호라는 뼛속을 파고드는 오한에 어깨를 떱니다.
 
올해 겨울 조짐이 영 심상치 않더라니 노프케의 저주도 쉬이 끝날 생각이 없어보입니다.
 
 
로빈:...아무것도.
 
 
로빈 , 그렇게 말한 후 땔감을 떼오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바깥은 아직도 눈보라가 거세고, 창고에 남은 땔감은 다 떨어졌습니다.
 
자기전에 쓴 장작이 마지막이었던 모양입니다.
 
심지어 밤 새 눈이 내렸을테니, 바깥의 나무를 잘라온다 한들 장작으로 쓰기는 글렀겠죠.
 
 
로빈:(한숨)
 
 
로빈 , 다시 돌아와 앉아서 잠시 꿈을 복기합니다.
 
 
 
:내용은 생생하게 떠오르건만, 의미를 종잡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꿈이 무의식을 반영한다해도 지나칠 정도로 생생했습니다.
 
당신은 뒤늦게, 세 번의 봄을 더 보낸 후에야 리베타가 했던 말들을 이해하게 됩니다.
 
'생각해보니까 그땐 내가 설명해줬었는데...'
 
아마도 리베타가 말한 '그때'는 이 꿈의 연장선이 아니었을까, 하고.
 
 
로빈:... ...
 
 
로빈 , 조금 씁쓸한 기분이 들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 금방 기분을 떨쳐냅니다.
 
 
 
:불을 때지 못한 실내는 시간이 흐를 수록 점점 더 추워져갑니다.
 
그나마 방한 효과가 있는 군복을 입은 당신조차도 몸이 떨릴 정도의 추위가 느껴지는데, 평범한 옷을 입은 호라는 또 어떨까요.
 
이대로 무작정 버티다가는 얼어 죽기 십상일 것입니다.
 
구조대를 기다리기에도 제때, 제대로 도착할지 모르겠고요.
 
창밖에는 아직 얼음송곳 같은 눈발과 날카로운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습니다.
 
당장 뚫고 가는 건 무리지만, 해가 그나마 높이 뜨는 정오 즈음이라면 이 기세도 한풀 꺾일텝니다.
 
 
 
:그때를 노린다면......
 
 
로빈: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40
판정결과: 보통 성공
 
 
 
:하얗게 겨울이 서린 숲 너머, 하늘로 솟아오르는 뭉게구름이 보입니다.
 
둥글고 따뜻한 훈김으로 구성된 기둥.
 
굴뚝에서 불을 때는 흔적입니다.
 
멀지 않은 곳에 민가가 있습니다.
 
 
호라 아트로포스:...저기까지만 갈 수 있으면 되겠는데...
 
 
 
:사람들과 마주하는 것은 썩 내키는 일이 아니지만, 여의찮은 마당에 더 가릴 처지도 아닙니다.
 
적당한 곳까지 이동하는 데에 성공하며 좀 더 온후한 구역으로 빠질 수 있을 겁니다.
 
그럼 DOT와 연락이 닿건, 형편이 나은 거점을 찾건, 무슨 수가 나겠죠.
 
 
로빈:...일단 내키지 않아도 살려면 저쪽으로 가야할것 같아.
 
 
호라 아트로포스:...그래야지.
 
일단 살아야하니까...
 
배만 좀 채우고 움직일까?
 
 
로빈:그래.
 
 
로빈 , 일어나서 통조림을 가져옵니다.
 
 
 
:두 사람은 남은 통조림으로 조촐한 식사시간을 가집니다.
 
차갑고 딱딱한 통조림은 혀 위에서 까슬까슬하게 굴러다닙니다.
 
체력을 비축하기 위해서라도 억지로 씹어 삼키노라면, 흐릿해져가던 꿈이 재부상합니다.
 
낯설면서도 낯익은 바다와 등대.
 
꿈이라기엔 손에 잡힐 듯 생생했던 기억.
 
꿈속에서 본 등대와 스케치북에 맺힌 잔상 속 등대는 매우 유사했습니다.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다보면, 대뜸 호라가 입을 열더니 말을 꺼내기 시작합니다.
 
 
호라 아트로포스:...이상한 꿈을 꿨어.
 
 
로빈:무슨 꿈?
 
 
호라 아트로포스:등대만 서있는 외딴섬에 가는 꿈.
 
너랑 다른 애들하고 등대 꼭대기에 올라갔던 것 같아.
 
천장이랑 바닥에 도밍게즈와 지구의 지도가 새겨져 있었고...
 
도밍게즈가 지구의 타이머를 훔쳤다고 쓰여 있었어.
 
...
 
손가락에 얽을 수 있는 것은 같은 손가락뿐.
 
 
호라 아트로포스:...이라고.
 
 
 
:들려오는 것은 과거인지 헛것인지 확신할 수 없는 무의식의 파편입니다.
 
 
로빈:
듣기
기준치: 70/35/14
굴림: 1
판정결과: 대성공
 
듣기
기준치: 70/35/14
굴림: 1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동시에 바람이 속살거립니다.
 
"그러니까, 네게 갈비뼈를 꺾어 준 순간부터 우리는 절대 함께 할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거야."
 
분명히 호라의 목소리입니다.
 
눈 앞의 입술은 조금도 벙긋거리지 않았지만.
 
호라는 그 기묘한 목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잠자코 당신을 바라봅니다.
 
 
로빈:
정신
기준치: 70/35/14
굴림: 92
판정결과: 실패
 
 
 
:눈이 마주치는 순간, 벌어진 간격 사이로 충동이 범람하여 폭풍처럼 휘몰아칩니다.
 
모든 감각과 기분, 생각과 언어, 마음과 본능이 상대를 향합니다.
 
닿고 싶어.
 
아니, 먹고 싶어.
 
...아니, 그것도 아냐.
 
하나가 되고 싶어......
 
 
 
:온전한 하나가 되면 모든 게 괜찮아질 것 같다는 확신.
 
모래를, 섭리를, 시간을 거스를 수 있을 것 같은 고양감.
 
외우주의 것들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토록 먹음직하고 보암직하며 탐스러웠구나.
 
 
로빈 , 호라를 빤히 바라보다가 자신을 손목을 붙잡은채 꾹 참습니다.
 
 
 
:불쾌한 충동을 억누르면, 그 충동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그라듭니다.
 
다시금 재난을 목전에 두고 열렬해지는 클라이맥스.
 
어쩌면 우리 운명은 나선형 모래시계를 맴돌고 있었는지 몰라.
 
그런즉, 벗어나려거든 통째로 부수는 수밖에.
 
 
 
:시간이 흐르거든, 눈보라도 차차 잠잠해집니다.
 
여전히 얼어붙어 죽을 것만 같고, 몸이 무겁기만 하지만,
 
지금이 아니라면 두번의 기회는 없을지도 모르죠.
 
 
로빈:...지금 가는게 좋을 것같아.
 
몸은 괜찮아?
 
 
호라 아트로포스:....괜찮아.
 
 
로빈:... 힘들면 말해.
 
 
로빈 , 그렇게 말하며 손을 내밉니다.
 
 
호라 아트로포스 , 덜덜 떨리는 손을 뻗어, 내밀어진 손을 간신히 붙잡습니다.
 
 
 
:이 오두막에서 민가까지 가는 길은 숲을 벗어난 후 과수원을 거치는 것일겁니다.....만,
 
세상만사 어디 마음대로 되는 법이던가요.
 
막상 숲에 들어오니 우뚝 선 나무들이 시야를 떡하니 차지합니다.
 
이정표가 되어주었던 굴뚝 연기는 아니 뗀 것처럼 코빼기도 보이지 않습니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죠?
 
 
로빈:
항법
기준치: 60/30/12
굴림: 2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오두막에서 발견한 나침반과 지도를 활용, 두 사람은 차근차근 길을 찾아 나갑니다.
 
발목이 푹푹 빠지는 눈길을 헤치며 한걸음씩 걸어나가다보면, 기이한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흑, 흑흑......
 
소리를 따라 고개를 들면 깃털이 온통 푸르른 새가 나뭇가지에 앉아 있습니다.
 
파랑새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어울리지 않는 소리로 또 울어댑니다.
 
흑흑, 흑, 흑흑흑......
 
 
 
:새 소리라기엔 불길할 정도로 선명한 발음.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이 시기에 새가 날아다니는 건 이상합니다.
 
진즉 겨울잠에 들건 따듯한 남녘으로 날아가건 했을 것인데.
 
파랑새는 바람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가뿐한 날갯짓으로 겨울나무 사이로 사라집니다.
 
 
로빈 , 가만 바라보다가 따라갑니다.
 
 
 
:파랑새를 따라 걸음을 옮기면, 갈수록 나무의 간격이 빽빽해집니다.
 
나무를 피하며 걷는게 꼭 구불구불한 미로를 헤매는 느낌입니다.
 
파랑새는 휙 떠날 듯 굴면서도 쉬이 떠나지 않고 적당한 간격을 유지합니다.
 
두 사람의 머리 위로 평행선을 그리는 활로는 작정하고 따라오라는 것처럼 인위적입니다.
 
잠자코 옆을 따르던 호라가 중얼거립니다.
 
 
호라 아트로포스:...DOT가 훈련시킨 새는 아니겠지?
 
 
로빈:그런건 못들었는데... 뭐, 숨기는게 많으니 숨긴 걸 수도 있지만...
 
...일단, 따라가보는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호라 아트로포스:...그래,
 
한번쯤이야...
 
 
 
:그렇게 얼마나 뛰었을까,
 
숲속에 숨겨져 있던 동굴을 발견합니다.
 
한껏 벌린 신화생물의 아가리처럼 새카맣게 벌어진 입구.
 
파랑새는 딱 그 위에 앉아서 깃털을 고르고 있습니다.
 
우주가 몰고 온 풍랑이 나뭇가지를 마구 흔들자, 괴물이 입맛을 다시는 효과음처럼 들립니다.
 
깜빡,
 
 
 
:딱 한 번 눈을 감았다가 뜨면, 파랑새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대신 파란 깃털이 팔랑팔랑 떨어집니다.
 
 
로빈 , 고민하는 듯 가만 바라보다가 들어가봅니다.
 
 
 
:파랑새는 희망 대신 석회동굴에 우리를 데려다 놓았습니다.
 
시간이 깎아낸 표면은 울퉁불퉁하고, 바닥엔 옅은 물기가 찰박거립니다.
 
억급을 머금은 물방울들은 낙하 직전의 순간을 박제하고 있습니다.
 
천장이 무너졌는지 심부로 들어갈수록 도리어 시야가 환해집니다.
 
표면에 낀 살얼음이 정오의 햇살을 머금지 못하고 온갖 방향으로 산란합니다.
 
빛이 방울진 종유석은 거꾸로 늘어뜨린 손가락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홀린 듯 걸음을 옮겨 끝에 다다르면, 높고 긴 종유석이 보입니다.
 
하나의 돌이 세월의 정에 맞아 깎여나간 건축물.
 
단면은 사각형이고 위로 올라갈수록 가늘어져 꼭대기에서 한 점으로 모이는.
 
기다란 피라미드 꼴의, 눈높이를 한참 벗어난 규모는 기둥이라 불러 마땅할 정도입니다.
 
태양이 쨍쨍하게 내리쬐고, 빛은 종유석의 표면을 따라 흘러 얄팍한 그림자를 바닥에 드리웁니다.
 
 
로빈:
정신
기준치: 70/35/14
굴림: 64
판정결과: 보통 성공
 
 
 
:사막의 아지랑이, 온통 새하얀 모래.
 
풍화된 군번줄, 나뒹구는 타이머의 유골.
 
쨍쨍한 태양이 내리쬐면 시곗바늘을 닮은 긴 그림자가 지던 제단.
 
모든 것의 중심축이던 제 0구역의 오벨리스크.
 
흰 바닥, 검은 그림자, 그리고 숫자.
 
알지 못하는 풍경이 또 기억에 물듭니다.
 
 
 
:가본 적도, 목격한 적도 없건만,
 
제 0구역이 분명합니다.
 
 
호라 아트로포스:... 이것도 본 적이 있어.
 
너도 그렇지?
 
 
로빈:...응. 본적 있어.
 
 
 
:우리는 이번에도 겪은 적 없는 경험을 나눠 갖습니다.
 
방언처럼, 자기도 모르는 새에, 봉헌의 명문을 소리내어 읽고 있는 것입니다.
 
 
호라 아트로포스:'그런즉 너희는 본분을 다하라. 자리를 지키라.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라.'
 
 
로빈:...'정확히 칠 년째 되는 날 문이 열릴 것이오, 순응하지 않는 자 저주받으리라.'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과정은 사람을 예민케 합니다.
 
온몸의 감각이 곤두서는 기분.
 
정수리부터 발바닥까지 위험을 감지한 생존본능이 날뛰어댑니다.
 
 
호라 아트로포스:제 13구역도, 제 0구역도 사람이 다닐 수 없는 곳이잖아.
 
가본 적도 없단말야. 거기에 뭐가 있는지 들은 것도 없고...
 
......그런데, 왜 이렇게 익숙하지?
 
 
로빈:... 모르겠어.
 
근데... 자꾸 내가 거기에 가본 것 같은 기분이...
 
 
호라 아트로포스:... 이상해.
 
뭔가가 잘못된 기분이야.
 
 
 
:호라는 그리 말하며 오벨리스크ㅡ ...아니, 종유석의 끝을 올려다봅니다.
 
그 시선을 자연스레 따라 움직이는 순간,
 
툭, 하고 당신의 발치로 무언가 떨어집니다.
 
 
로빈:?
 
 
로빈 , 줍습니다.
 
 
 
:이건, 종유석의 파편이네요.
 
...
 
 
로빈:...
 
 
 
:쨍하고 깨져 나와 한낱 돌이 아닌 보석처럼 투명하게 빛나는 수정.
 
깨진 모양새가 우연히도 사파이어 펜듈럼과 닮아서......
 
새삼, 일련의 과정이 익숙하단 사실을 깨닫습니다.
 
'생각해보니까 그땐 내가 설명해줬었는데...'
 
'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던 것 같은 거 있죠?'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던... '세계 멸망'에 대한 예언이 있어요.'
 
 
 
:'...아냐, 이건... 아직 끝난게 아냐.'
 
'아자토스는 돌아와!'
 
그 과정이 되풀이되고 있다고.
 
셀로판지를 겹쳐 더 깊고 진한 색을 찾아내는 것처럼......
 
어쩌면 이 모든 건 당신의 기억일지도 모릅니다.
 
 
로빈:
SAN Roll
기준치: 52/26/10
굴림: 54
판정결과: 실패
 
 
 
:4년 전, 호라ㅡ 리베타는, 도밍게즈에 불시착했습니다.
 
허나 그의 군복, 기억, 존재, 무엇하나 일치하는 것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과거 혹은 미래의 도밍게즈에서 온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블루 아버가 열린 후에는 지구의, 혹은 다른 우주의 타이머라고 생각했습니다.
 
눈앞에 선 당신이 그의 과거인지 미래인지 혹은 완전한 타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나, 답은 달리 외부에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과거도, 미래도 아니라,
 
평행선이나 은하수 너머가 아니라......
 
우리가 잊어버려 잃어버린 파편일지도 모른다고.
 
 
 
:―――――♬
 
가사 없는 노래가 뇌리를 파고들며 생각을 방해합니다.
 
느릿하면서도 쨍하게 울리는 소리.
 
잘못든 자개바람이 종유석을 때려만드는 공명입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빠르게 일어난 바람에 머리카락이 흔들립니다.
 
 
로빈: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3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일부러 음계를 짚지 않더라도 익숙한 멜로디입니다.
 
반사적으로 흥얼거리게 됩니다.
 
가사가 있었는데. 노랫말이 어땠더라.
 
차근차근 돌이켜보면 결국, 음질이 나쁜 스피커가 불러주던 노래에 도달합니다.
 
Ground Control to Major Tom.
 
관제실에서 톰 소령에게 알립니다.
 
 
 
:You’ve really made the grade.
 
당신은 이미 정해진 궤도에 올랐습니다.
 
Can you hear me, Major Tom?
 
들립니까, 톰 소령?
 
지구에서 들었던 마지막 노래였습니다.
 
따각.
 
 
 
:돌이 구르는 소리에 찬물을 맞은 것처럼 화들짝 정신을 차립니다.
 
종유석 아래에 선 사람들이 눈을 크게 뜬 채 당신과 호라를 바라봅니다.
 
"어, 어어."
 
"타이머다!"
 
"뭐? 타이머가 왜 여기 있어?!"
 
 
로빈:...아.
 
 
 
:사람들의 정체는, 꽁꽁 싸맨 제 6구역의 마을 사람들입니다.
 
 
 
:타이머라는 말에 분위기가 얼어붙습니다.
 
조난 당한 사람이 있는 것 같다더니, 타이머였단 말이야?
 
그래도 데려가야 하지 않을까요, 눈보라가 심해요.
 
아마도 산지기의 오두막에서 인기척을 발견하고 민간 조사대가 파견됐던 모양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두 사람의 눈치를 보며 갑론을박하기 시작합니다.
 
"무슨 큰일 날 소리를 해! 함부로 마을에 들였다가 거, 거 게이트라도 터지면 어쩌려고!"
 
 
 
:겁이 많아 보이는 사람이 꽥꽥 고함을 치며 강력하게 반발합니다.
 
 
로빈 , 그말을 듣고 표정이 안좋아집니다.
 
 
 
:"아, 거 과수원 아저씨는 왜 자꾸 소리를 질러요? 그러다가 곰 깨도 난 책임 못 집니다."
 
마지막으로 한 사람이 더 합류하며 유들한 목소리와 능청스런 말투로 중재를 나섭니다.
 
...익숙한 얼굴인데...
 
 
로빈 , 잠시 생각하다가 떠올린 듯 눈을 크게 뜬 채 바라봅니다.
 
 
로빈:... 조난 당한거 맞습니다.
 
 
호라 아트로포스 , 옆에서 눈치보다가, 당신의 팔을 잡아 당깁니다.
 
 
호라 아트로포스:... 다른 곳으로 가자.
 
 
 
:그리 말하는 호라의 눈도, 두 사람을 바라보는 마을사람들의 눈도, 공포와 불신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그 사이에서 유일하게 다른 표정을 지어보이는 것은 가장 마지막으로 온 청년입니다.
 
어떤지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군요.
 
표정도 몸도 바짝 얼어있지만.
 
그런 상황을 더 풀어낼 새도 없이, 지축이 흔들리고 종유석들이 불안하게 달그락거리기 시작합니다.
 
 
로빈: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67
판정결과: 실패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1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마른 눈 냄새가 쏟아지는 것과 동시에, 무너진 천장 너머로 눈사태가 밀려오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천재지변은 억겁의 세월이 조각한 종유석도,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도 개의치 않고 쓸어버릴 작정입니다.
 
요 며칠 노프케의 등장으로 눈보라가 거셌던 여파입니다.
 
사상 최악의 눈사태를 앞두고 마을 사람들은 혼비백산하기 시작합니다.
 
당신은 그들을 구할 수도, 그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권능을 사용한다면 어렵지 않겠지만......
 
 
 
:"사, 살려주시오!"
 
"어떻게 좀 해주세요! 타이머잖아요!"
 
이 사람들에게 마땅히 그럴 가치가 있는지는,
 
당신의 판단에 맡겨야겠죠.
 
 
로빈 , 고민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아직 DOT에 있는 이상 구하기로 결정합니다.
 
 
 
:당신이 그들을 구하기 위해 움직이려는 차, 눈사태는 동굴을 덮칩니다.
 
그리고 닥친 재난을 목격하기도 전에,
 
쾅!
 
발아래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세월 중 어느 날처럼,
 
 
 
:크레바스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를 통째로 잡아먹었습니다.
 
어쩐지 괴물의 아가리가 찢어진 꼴 같더라니.
 
이리되리란 예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떨어지고, 떨어지고, 떨어져서......
 
익숙한 패턴이 당신을 스쳐 지나갑니다.
 
지하의 흙 냄새, 먼지 냄새, 곰팡내 같은 것으로 케케묵은 공기가 호흡기를 뜨겁게 거머쥡니다.
 
 
 
:숨을 쉬기가 퍽 괴롭다고 느꼈을 때, 비로소 추락이 끝납니다.
 
 
로빈:
기준치: 60/30/12
굴림: 23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바닥과 신발 밑창이 맞닿으며 파삭, 하는 소리를 냅니다.
 
조금 비틀거리긴 했지만 두 발로 착지했습니다.
 
 
로빈 , 착지하고 난 이후 잠깐 균형을 잡다가 바로 호라를 찾습니다.
 
 
 
:바로 앞에 놓인 높고 긴 기둥 근처에 널브러져 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확인하면 여전히 의식이 없는지 숨소리가 희미합니다.
 
그림자가 드리운 얼굴은 시체보다 창백할 지경입니다.
 
그리고... 복장이 타이머 때의 옷으로 바뀌어 있네요?
 
 
로빈:-?
 
 
로빈 , 일단 호라를 데리고 높고 긴 기둥을 살펴봅니다.
 
 
 
:하나의 돌을 정으로 때려 깎아낸 건축물.
 
단면은 사각형이고 위로 올라갈수록 가늘어져 꼭대기에서 한 점으로 모이는, 기다란 피라미드꼴입니다.
 
입구도, 창문도 없고 벽면을 따라 세밀하게 글씨가 새겨져 있습니다.
 
 
로빈:
언어(모국어)
기준치: 70/35/14
굴림: 2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황금의 몸체에 빛처럼 흰 글씨.
 
엇비슷하게 밝은 배색인데도 한 자 한 자 적확히 읽을 수 있습니다.
 
<나는 시작과 끝이오, 알파와 오메가이며 우림과 둠밈이라.>
 
...신의 첫 번째 손가락.
 
반사적으로 이 오벨리스크의 정체를 깨닫습니다.
 
아까부터 당신을 뒤쫓던 기시감이 증거합니다.
 
 
 
:분명히 와본 적이 있다고.
 
무엇을 했는지, 어째서 잊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로빈 , 일단 호라를 오벨리스크 근처에 앉혀둔뒤 근처를 둘러봅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오벨리스크 너머에서 세모난 귀가 톡 튀어나옵니다.
 
곧 튀어나온 것은 날카로운 눈과 동그란 코를 가진 사막여우입니다.
 
제 0구역에는 물 한 방울, 풀 한 포기 없다고 햇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온 것일까요?
 
 
로빈:
동물 다루기 Roll
기준치: 5/2/1
굴림: 53
판정결과: 실패
 
 
 
:사막여우는 당신의 주변에서 잠시 머무르다가, 그대로 총총 뛰어서 저 너머로 사라져 갑니다.
 
그것 외에 주변에 달리 무언가 없을까, 잠시 주변을 배회하듯 걷던 중, 누군가가 발목을 잡아챕니다.
 
딱딲하고 버석버석하게 마른, 딱 불쾌할 정도로 미지근한 온도의......
 
뼈만 남은 앙상한 손아귀입니다.
 
살점이 내리고 피가 날아가 새하얗게 빛바랜 유골이 모래 무덤에 누워 있습니다.
 
 
로빈:
SAN Roll
기준치: 51/25/10
굴림: 73
판정결과: 실패
 
rolling 1d2
 
(
2
 
)
 
 
=
2
 
 
 
:유골의 차림새도 해진 터라 신변을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어쩌다가 제 0구역까지 들어온 걸까요?
 
 
로빈: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42
판정결과: 보통 성공
 
 
 
:그 시신의 품에서 군번줄을 발견합니다.
 
익숙하게 생긴 군번줄에는 익히 아는 양식으로 신변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Do■in■■ez at 1■
 
On ■he d■t― ■■e ■th Timer
 
■■■ ■■■■.
 
뭉툭하게 닳은 글씨는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하지만, 한 단어만으로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품없는 시체가...... 타이머라고.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만큼 닳고 닳아 이 죽음을 파헤칠 방법도 없습니다.
 
"로빈......"
 
당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머리 위로 내리쬐는 태양이 쨍쨍합니다.
 
빛은 오벨리스크의 표면을 따라 흘러, 얄팍한 그림자를 바닥에 드리웁니다.
 
 
 
:그 끝을 밟고, 호라가 서 있습니다.
 
 
로빈: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50
판정결과: 보통 성공
 
 
 
:샅샅이 살펴도 달라진 점은 없는데..... 어쩐지 상대의 존재 자체가 낯설게 느껴집니다.
 
바닥에는 오벨리스크의 그림자만 그어져 있고, 그의 발끝에는 한 줄도 매달리지 않았단 사실을 눈치챕니다.
 
...호라가 맞는건가요? 정말로?
 
무표정으로 당신의 반응을 살피던 그는 딱 한 마디를 건넵니다.
 
 
ㅡ:그거 전부 가짜야. 홀리지 마.
 
 
 
:그 말투는 오래된 책을 읽는 것처럼 부자연스럽습니다.
 
확실히 호라의 목소리인데도, 억양의 고저가 전부 삭제돼 차이가 두드러집니다.
 
호라에게 틈탄 것은 정체를 숨기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손가락을 부딪칩니다.
 
딱,
 
가뿐한 소리와 함께 유골도, 군번줄도 한 줌 모래로 스러지고, 호라가 거침없이 다가옵니다.
 
무게가 없는 유령처럼 군화는 모래에 빠지지 않습니다.
 
 
ㅡ:내가 불러놓고 늦었네, 미안.
 
이런 식으로 오는 건 너무 오랜만이라 좀 헤맸어.
 
 
로빈:-?
 
 
ㅡ:있지, 나 지금 제대로 말하고 있어?
 
 
 
:눈 깜짝할 사이 코앞에 당도한 그는 얼굴을 바짝 들이밉니다.
 
깜빡거리는 눈동자 저편에는 여태 쌓아온 시간 대신 단발적인 호기심만 비쳐보입니다.
 
내가 불렀다는 대사, 손끝으로 부리는 권능, 제 0구역의 주인.
 
상대를 간파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로빈:넌 누구야?
 
 
ㅡ:나는 호라이면서 너, 타이머이자 인류, 전부이되 아무것도 아닌 것.
 
그래, 너희가 신이라고 부르는 그거.
 
 
로빈:신이라고?
 
 
로빈 , 머리가 아픈지 미간을 꾹누릅니다.
 
 
ㅡ:왜, 이상해?
 
 
로빈:아니...상황이 물 밀려오듯 예고 없이 찾아와서 머리가 아파.
 
 
ㅡ:안됐네, 그거.
 
 
ㅡ , 어깨를 으쓱입니다.
 
 
로빈 , 짜증난 듯 인상을 구깁니다. 하지만 몸이 호라여서 가만히 있습니다.
 
 
로빈:신이라고 했지?
 
ㅡ:응. 너희들이 부르는 대로 말하자면-이지만.
 
 
로빈:그럼 타이머를 만든 의도가 뭐야?
 
 
ㅡ:별로 내가 만들고 싶어서 만든 것도 아닌걸.
 
어쩔 수 없이 남겨둘 수 밖에 없었던거야.
 
 
로빈:... ...
 
그럼 능력은?
 
 
ㅡ:말했잖아?
 
 
로빈:...
 
그럼... 아까 가짜라고 한건 뭐야?
 
 
ㅡ:진짜 그냥 가짜.
 
겁 좀 주려고 설치해둔거야.
 
잘 때 방해받는 건 질색이라서.
 
보통은 대상이 제일 두려워하는 미래를 보여주는데......
 
 
ㅡ , 위아래로 당신을 슬 훑어보더니, 가볍게 한숨을 쉽니다.
 
 
ㅡ:일이 좀 꼬였어.
 
 
로빈:...-?
 
 
ㅡ:내가 불렀다고 했잖아.
 
네가 좀 해줄 일이 있어서 말야.
 
이래서 평행선의 안전거리를 유지하라는 거였는데.....
 
 
로빈:짜증나게도 부른다.
 
호라는? 지금 니가 몸으로 쓰고있는 애는? 어떻게 됐어?
 
 
ㅡ:그냥 잠든거니까 걱정하지 마.
 
싱크로하느라 부하가 걸려서 그래.
 
이럴까봐 저번엔 거리를 뒀는데, 이번엔 직접 말해야할 것 같아서.
 
 
로빈:근데 왜 하필 호라야? 직접 오거나, 아님 다른 몸이어도 됐잖아?
 
 
ㅡ:...
 
두 번이나 날 깨웠으니까 조금 괘씸......했을지도.
 
민간인보단 타이머가 상성이 좋기도 하고,
 
본체가 직접 움직이기는 어려운 이유도 있고,
 
 
로빈 , 팔짱을 낀채로 아니꼬운 표정으로 바라봅니다.
 
 
로빈:
심리학
기준치: 10/5/2
굴림: 51
판정결과: 실패
 
 
ㅡ:... 왜 그렇게 쳐다봐?
 
나름 도와주려고 부른건데.
 
 
로빈:... 짜증나서. 기분나빠서. 화나서. 호라몸이 아니었다면 바로 걷어차고싶다는 생각중이다.
 
 
ㅡ:어쩐지 그럴 것 같긴 했어.
 
 
로빈 , 눈을 가늘게 뜹니다.
 
 
로빈:그래서, 용건이 뭔데?
 
날 여기까지 부른 이유가 있을거 아니야?
 
 
ㅡ:용건, 그래. 그걸 말해야지.
 
어디... 어느 순간부터 이야기 해줘야 할까.
 
 
ㅡ , 팔짱을 끼고, 시간을 되짚어보듯 시선을 올립니다.
 
 
ㅡ:완전한 시작점부터 이야기해주는 편이 이해하기 편하겠지.
 
너한테도 그렇고, 다른 사람한테도 그렇고.
 
영광으로 알아, 이 세상에서는 딱 하나, 너만 아는 이야기가 될테니까.
 
 
로빈:영광이라기에는 다루는 방식이 험악하다?
 
 
ㅡ , 짧게 인위적인 웃음소리를 내며 어깨를 으쓱입니다.
 
 
ㅡ:그건 어쩔 수 없었어. 미안.
 
아무튼...
 
 
ㅡ:나는 우주가 폭발했을 때 태어났어.
 
언제였는지는 묻지 말고, 아무튼.
 
모든 생명체는 성장기의 에너지가 가장 왕성하다는 거 알지?
 
그때의 나도 무럭무럭 자라났어.
 
인간의 성장에 비하면, 가히 폭발적인 속도로.
 
 
 
:신은 묻지도 않은 자신의 유년 시절을 묘사합니다.
 
28개의 손가락이 얼마나 길쭉했는지, 혼돈으로 가득한 피부가 얼마나 매끄러웠는지......
 
뻔뻔하게 자기자랑을 늘어놓는 말투에 반해 모든 억양은 한 음을 고수하니 좀 우습네요.
 
AI비서도 이보단 사람처럼 말할텐데.
 
 
ㅡ:태어났을 때부터 혼자였어도 외롭지는 않았어.
 
내게는 둘 이상이라는 개념이 더 낯설었으니까.
 
아니, 오히려 영원토록 나 혼자였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해.
 
 
 
:홀로 오롯한 신격은 외로움을 모르는 법.
 
외로움이란 결여가 있는, 불완전한 것들에게만 허락되는 하사품이므로.
 
 
ㅡ:내가 겪은 탄생 이래 위기는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타종이었거든.
 
 
 
:신은 자신이 겪은 위기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외부에서 느껴지는 시선, 자신을 포식하려고 눈독을 들이는 외우주의 신들.
 
그들을 피하기 위해 눈을 뽑고, 손가락을 꺾고, 피부를 다지고, 눈물을 쏟으며 작아지고자 했던 발버둥을 이야기합니다.
 
 
ㅡ:근데, 잠깐 졸았다 깼더니 난장판이더라고.
 
점과 점은 연결되질 않나, 손가락들은 끼리끼리 깍지를 끼고 있질 않나......
 
피하고 싶었던 최악의 상황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서 손 쓸 도리도 없었어.
 
 
 
:이채가 서린 시선이 오벨리스크로 향합니다.
 
감정을 배우지 못한, 배울 필요조차 없는 신치고는 인간다운 채도입니다.
 
 
로빈:
정신
기준치: 70/35/14
굴림: 1
판정결과: 대성공
 
 
 
:〈그런즉 너희는 본분을 다하라. 자리를 지키라.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라.〉
 
멀고도 가까운 미래에 받았던 예언과 명령.
 
...당신의 기억이 맞는지 이제는 혼미할 지경입니다.
 
관자놀이에 대고 못질을 하는 것처럼 날카로운 두통이 내리칩니다.
 
 
로빈:
SAN Roll
기준치: 49/24/9
굴림: 29
판정결과: 보통 성공
 
 
ㅡ:좀, 말했잖아.
 
그건 전부 가짜라니까.
 
네 것이 아닌 것에 홀리지 마.
 
 
 
:사막의 열기를 담은 손끝이 당신의 이마를 쓸어넘깁니다.
 
순식간에 통증이 흩어지고, 눈앞의 얼굴이 선명해집니다.
 
호라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호라가 아닌......
 
 
ㅡ:두 명의 '나'를 만났지?
 
나도 두 명의 너를 알고 있어.
 
너희는 두 번째거든.
 
 
로빈:....
 
 
 
:쌍둥이도, 형제도 아니고, 두 번째라는 말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도플갱어라도 되는 것처럼.
 
 
ㅡ:처음 만난 너희는 이미 단단히 결속해서, 외우주에게 숨길 수 없을 만큼 거대해진 상태였어.
 
존재만으로 멸망을 부르는 신격 덩어리들이었지.
 
뒤늦게나마 이편과 저편으로 찢어발기는 게 최선이었어.
 
 
로빈:
듣기
기준치: 70/35/14
굴림: 84
판정결과: 실패
 
듣기
기준치: 70/35/14
굴림: 2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ㅡ:그래, 그때는 그게 최선인 줄로만 알았지.
 
 
로빈:-...
 
 
ㅡ , 작게 속닥거립니다.
 
 
ㅡ:...그러고도 안전하리라 확신할 수 없어서 세계를 한 번 더 찢어냈어.
 
여기는 그렇게 재편성된...... 일컨대, 두 번째 세계야.
 
 
로빈:두번째...
 
 
로빈 , 생각에 빠진 듯 신이 한 말을 중얼거립니다.
 
 
로빈:그럼 첫번째 세계에서 일이 있어서 그 세계를 찢어 만든게 지금 세계인거야?
 
 
ㅡ:잘 이해했네.
 
 
로빈:그럼 내가 겪은 적 없는 기억이 떠오르는 것도 첫번째 세계의 영향이야?
 
 
ㅡ:뭐, 그런 셈이야.
 
찢어냈다고 생각했던 나선은 다시 이어져서, 같은 궤도를, 심지어 가속하기 시작했어.
 
처음에는 멸망까지 일곱 해가 걸렸지만, 이번엔 한 해를 채 못 넘겼던 것처럼.
 
아마 몇 번을 더 찢어도 마찬가지겠지.
 
죄를 지은 손가락을 찢어낸들, 원죄가 사라지는 건 아닌데.
 
내가 간과한거야.
 
 
ㅡ:...
 
나는 너희의 근원이야.
 
너희는 나의 일부고.
 
너희가 속절없이 이끌리는 것은 온전한 내가 되고 싶다는 욕망의 발현.
 
외우주가 너희를 노리는 원인 또한 그래.
 
 
 
:한 템포의 무거운 침묵 후,
 
 
ㅡ:그래서 나는 죽기로 했어.
 
 
로빈:-뭐?
 
 
 
:신은 담백하게도 자신의 자살 계획을 추억합니다.
 
슬픔을 거세한 목소리는 더이상 호라의 것과 헷갈릴 수조차 없을 정도로 이질적입니다.
 
 
ㅡ:필사즉생 필생즉사.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처음에도 그럴 작정이었어.
 
산 목숨을 탐내니 죽으면 해결되리라 생각했거든.
 
그때야 죽을 방법을 몰라서 찢어내는 게 고작이었지만...
 
지금은 달라.
 
 
 
:본능에 가까운 확신이 고개를 듭니다.
 
그때는 없었지만, 지금은 존재하는 것.
 
'죽을 방법'으로 신은 당신을 낙점했습니다.
 
 
로빈:...
 
 
 
:물은 거꾸로 흐르지 않고, 시간은 과거로 향하지 않는 것이 섭리라지만,
 
감히 피조물이 창조주를 죽일 방법이 여기 있습니다.
 
신은 당신을 불러들여 유언을 남깁니다.
 
신을 죽여, 구원 사역을 완성하라고.
 
지독한 신성모독이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사실...
 
 
로빈: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3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타이머는 '원래' 인간이잖아. 그런데 어떻게 인간과 근본부터 달라지는 걸까?"
 
닥터가 곱씹던 의문이 뇌리를 스칩니다.
 
타이머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닙니다.
 
각성하며 신격을 담는 그릇ㅡ 즉, 작은 신의 파편으로 완전히 거듭났습니다.
 
신이 죽는다면, 신격이 세상에서 말끔히 사라진다면,
 
텅 빈 그릇은 어떻게 되는 거지?
 
 
로빈:...아.
 
 
ㅡ:ㅡ아, 이런.
 
 
 
:동족상잔이자 동반 자살.
 
 
ㅡ:한계에 다다랐네.
 
 
로빈:...잠시만.
 
 
 
:해명을 구하기도 전에 신은 인상을 찌푸립니다.
 
감정이 물들자 퍽 익숙한 사람을 연상시킵니다.
 
고장 난 전구처럼 눈꺼풀이 깜빡거릴 때마다 신과 호라의 얼굴이 번갈아 교차합니다.
 
황급히 당신의 손을 거머쥔 신이 마지막 대사를 읊습니다.
 
 
ㅡ:아마도 이런 걸 죄책감이라고 부르는 거겠지.
 
미안해.
 
그래도 이번 만큼은.....
 
 
로빈:잠깐만-
 
 
 
:그 대사는, 퇴장할 준비를 마친 신의 초라한 유언.
 
거대한 탈력감과 함께, 호라가 당신의 품으로 고꾸라집니다.
 
 
로빈 , 그런 호라를 받아줍니다.
 
 
로빈:...그럼...신이 죽고나면 나는 어떻게되지...?
 
 
호라 아트로포스:아, 으.... 머리 아파.......
 
 
 
:미간을 좁힌 호라가 간신히 버티고 섭니다.
 
 
로빈:괜찮아?
 
어디 다른 아픈 곳은 없어?
 
호라 아트로포스:어, 으응... 괜찮은 것 같아.
 
 
로빈:...다행이네.
 
 
로빈 , 안도의 한숨을 쉽니다.
 
 
호라 아트로포스:...그래서-..... 이제 어떡하지?
 
이야기는 나도 다 듣긴 했는데...
 
 
로빈:...
 
 
로빈 , 듣고 있었다는 말에 당황한듯한 눈빛입니다.
 
 
호라 아트로포스:막상 우린 방법도 모르고, 여기서 나가는 법도 모르잖아.
 
 
로빈:(막말한 것도 들었나?)
 
...그러게.
 
일단...
 
주위를 다시 한번 둘러볼까...
 
 
호라 아트로포스:...그래.
 
 
로빈 , 근처를 둘러봅니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본들, 이 새하얀 사막에 덩그러니 선 것은 오벨리스크 뿐입니다.
 
황금의 몸체에 빛처럼 흰 글씨.
 
〈나는 시작과 끝이오, 알파와 오메가이며 우림과 둠밈이라.〉
 
한 치도 달라지지 않은.
 
그러나 그 순간ㅡ
 
 
 
 
 
:오벨리스크의 그림자가 시곗바늘처럼 보입니다.
 
당신은 이 다음에 해야 할 일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속한 시간에 선다.'
 
 
로빈 , 자신이 속한 시간위에 섭니다.
 
 
 
:7시. 당신에게 배정된 그 시간 위에 서자,
 
어떤 장면들이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사막의 열기가 피운 아지랑이.
 
망막에 맺히는 거짓된 환상.
 
그럼에도,
 
믿고 말게 되는 생생한 모습...
 
 
 
:정신을 차리면 두 사람은 4개월 전과 똑같은 구도로, DOT 관사의 소파에 앉아있습니다.
 
찌는 듯한 직사광선 대신 적당히 선선한 바람.
 
색이 없는 모래 대신 딱 알맞게 물든 창가의 단풍.
 
예상과 달리 위험하지도, 위태롭지도 않은 일상의 한 구간 같은데......
 
달력은 2035년 10월의 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정확한 날짜는 파악할 필요가 없겠죠.
 
 
 
:어차피, 스스로 켜진 TV가 DOT의 인터뷰를 떠들어대기 시작하니까요.
 
[신화생물은 타이머를 탐해 도밍게즈를 침략하고 있었다.]
 
[2032년 12월 경, 클라커 프로젝트의 총책임자였던 故 애벗 박사가 처음 발표한 가설입니다.]
 
[8개월의 연구 결과, 신화생물의 체세포가 타이머의 혈액에 반응한다는 데이터를 확보했습니다.]
 
[하지만 진실을 은폐하려던 것은 아닙니다. 단지 확신할만큼 사례가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증명 중인 가설에 불과했으며, 클라커 프로젝트를 병행한 것은 만약을 대비해 타이머의 활동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는 故 애벗 박사의 의견을 존중한 바......]
 
 
 
:미스터 블랙의 고발을 시점으로, 여론은 나날이 악화됐습니다.
 
온갖 음모설이 비탈을 구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가 하면, 목적을 잃은 분노와 원망은 눈사태처럼 쏟아져 나왔습니다.
 
여론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인터넷에 접속한다는 아주 간단한 행동만이 필요할 뿐입니다.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휴대폰이 멋대로 켜지고, 온갖 댓글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게시판이 화면에 나타납니다.
 
「와 씨, 감쪽같이 속았네. 그러니까 전부 타이머 때문이라고?」
 
「DOT와 정부는 당장 입장을 밝혀야 합니다. 몰랐을 리 없어요. 고의로 은폐해왔을 확률이 훨씬 높습니다. 언제까지 국민을 속일 작정이었는지…….」
 
 
 
:「타이머들은 알고 있던 거임? 아님 걔네도 몰랐던 거임?」
 
「이딴 삼류 사이트에 도는 음모론을 믿는 놈들이 있다니. 다들 머리는 어깨가 가벼워서 장식으로 얹고 다니나.」
 
「영상 보니까 얼굴 새하얗게 질리던데. 몰랐던 것 같긴 함. ㅇㅇ. 아는데 그런 반응이라면 연기자로 데뷔해야 할 듯.」
 
「헐, 영상 봤어? 어디서 봐?」
 
「가끔 연기도 하잖아 ㅋㅋ」
 
「타이머의 본 모습을 확인하고 싶은 분들은☞ http://xxxx.xxx
 
 
 
:「타이머는 거짓 선지자입니다. 오직 한 분, 주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로빈 , 인상을 구깁니다.
 
 
로빈:
듣기
기준치: 70/35/14
굴림: 1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브라운관 속에서 쩔쩔매며 변명하던 대변인은 곧 휴식을 선언합니다.
 
화면이 재조정되는 동안 음성이 소거되자, 창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새어 들어옵니다.
 
[DOT는 진실을 밝혀라! 무고한 희생을 묵과하지 마라!]
 
[이 사태를 책임져라! 타이머들은 DOT 뒤에 숨어있지 말고 나와라!]
 
청문은 두꺼운 커튼으로 가려져 있습니다.
 
한 뼘 틈으로 보이는 건 단풍나무의 가지가 전부였는데.
 
 
로빈 , 밖을 살펴봅니다.
 
 
 
:밖을 내다보면, 관사 앞에 해명을 요구하는 인파가 구름처럼 몰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로빈:
기준치: 60/30/12
굴림: 9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밖을 내다보며 드는 감정은ㅡ 회의감이 가장 클 것입니다.
 
여태껏 구하고자 백방 노력했던 날들은 무엇인가.
 
처음에는 존재를, 다음에는 태어난 별을, 종내에는 반쪽을 걸어서 구해낸 세계.
 
그것의 가치는 고작 이것이었던가.
 
하물며, 이번에 걸어야 할 대가는 목숨이라면.
 
조용히 당신에게서 두 발짝 정도 떨어진 곳에 서있던 호라가 한숨을 내쉬더니, 커튼을 힘주어 당겨 완전히 닫아버립니다.
 
 
호라 아트로포스:......왜 이런 장면을 보여주는걸까?
 
꼭 떠보는 것 같잖아. 저걸 보고도 구할 생각이냐고.
 
기분 나빠.
 
 
로빈:...
 
 
로빈 , 한숨을 쉽니다.
 
 
로빈:글쎄... 신이 하는 생각을 우리가 어떻게 알겠어.
 
 
 
:당신이 대답을 내던지자, 깜빡.
 
화면이 전환됩니다.
 
체코, 프라하.
 
하늘이 유달리 맑은 날.
 
천문시계 오를로이는 이제 막 내리기 시작한 노을을 받아 오묘한 황금색으로 빛납니다.
 
아래쪽 시계에는 황도 12궁을 테마로 타이머의 현신이 그려져 있고, 위쪽 시계에는 각종 시간을 열 네 등분해 두었습니다.
 
 
 
:오를로이를 마주보는 도로에 게이트가 열려 있습니다.
 
경보가 웽웽 울리자, 사람들은 황급히 대피하기 시작합니다.
 
"다들 밀지 마세요! 순서대로 움직이십시오!"
 
"지시를 따라야 빠른 대피가 가능합니다!"
 
도로로 쏟아진 사람들은 서로를 밀고 밀쳐댑니다.
 
톤이 높은 비명도 여러 차례 울립니다.
 
 
로빈: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42
판정결과: 보통 성공
 
 
 
:사람의 물결 사이, 아슬아슬하게 떠밀리기 시작한 구간이 눈에 띕니다.
 
버려진 차들로 길목이 좁아져 내보낼 머릿수를 소화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대로 두었다간 신화생물이 등장하기도 전에 인명 피해가 발생할지도 모릅니다.
 
차들을 치워준다면 행렬의 속도는 눈에 띄게 빨라지겠지만......
 
그들을 도울지, 돕지 않을지, 그것은 당신의 선택입니다.
 
이 시점에서는,
 
 
 
:도와줘봐야 좋은 소리는 커녕 욕만 듣겠지만.
 
 
로빈 , 호라의 눈치를 보다가 도와주기로합니다.
 
 
 
:당신이 먼저 몸을 움직이자, 호라도 마지못해 한숨을 내쉬며 당신을 따릅니다.
 
그래도 한때는 파트너였다고, 아직도 당신과 함께 하는게 좋다는 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걸지.
 
...
 
끼기긱, 거대한 울음소리와 함께 차들이 도로에서 밀려납니다.
 
인파 위로 차체의 그림자가 내리고, 한결 어두워진 얼굴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불특정 다수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쏟아집니다.
 
 
로빈:
심리학
기준치: 10/5/2
굴림: 68
판정결과: 실패
 
 
 
:얼추 상황을 마무리해 도주로를 활짝 열어두어도 인파는 쉬이 빠져나가지 않습니다.
 
팽팽한 침묵이 줄다리기를 이어갑니다.
 
그때였습니다.
 
엉망으로 일그러진 얼굴 하나가 손에 잡히는 것을 되는대로 집어 던진 것은.
 
 
로빈:
회피
기준치: 70/35/14
굴림: 93
판정결과: 실패
 
 
 
:퍽.
 
작은 돌멩이가 정확히 이마를 타격하고 떨어집니다.
 
신화생물의 공격에 비하면 별 볼 일 없는 위력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인간적이고, 치명적입니다.
 
지금 느껴지는 욱씬거리는 통증도 그저 환상통인 걸까요.
 
그것이 신호탄이 된 양 사람들은 분노에 떠밀려 손에 쥔 무언가를 내던집니다.
 
 
 
:당신의 앞으로 호라가 나서며 막으려 하지만, 채 막아지지 않은 것들이 바닥과 당신에게 부딪힙니다.
 
삿대질부터 시작해, 날달걀, 돌멩이, 설익은 사과, 쓰레기......
 
퍽.
 
날달걀이 깨지는 질퍽한 소리를 마지막으로 화면이 전환됩니다.
 
 
 
:자그마한 등대 안에는 나선 모양으로 계단이 쭉 뻗어 있습니다.
 
소라 껍데기처럼 둥글게, 둥글게.
 
한 칸을 오를 때마다 작달 막한 창밖의 색이 바뀝니다.
 
탁트인 바다에 밤이 내리는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그리고, 마침내 등대의 옥상.
 
난간에 걸터서있던 호라ㅡ 아니, 신은, 당신을 보고 말합니다.
 
 
ㅡ:나는 이런 세계라도 구하고 싶어.
 
거창한 이유가 있는 건 아냐.
 
희생이라고 부를 만한 일도 못 돼.
 
세계가 곧 나니까, 세계를 지키는 건 결국 나 자신을 지키는 일이지.
 
그러니까, 인간의 기준으로 내 죽음을 판단하려 들진 마.
 
 
 
:억양이 없는 비스듬한 목소리.
 
호라의 모습을 빌린 신은 나지막하게 속삭입니다.
 
 
ㅡ:나를 죽이는 법을 알려줄게.
 
전혀 폭력적이지도, 잔인하지도 않아.
 
그저-
 
네 몫의 권능에 대고 명령해.
 
세계의 모든 구성으로부터 나를 지우라고.
 
 
로빈:...
 
 
 
:관측되지 않는 것은 존재를 증명할 수 없는 법.
 
신 또한 신앙 없이 존재할 수 없으므로.
 
 
ㅡ:선택은 전적으로 너한테 맡길게.
 
 
 
:그리 말하며 신은 당신에게 가까이 오라는 듯 손짓합니다.
 
 
로빈:...
 
 
로빈 , 가까이 갑니다.
 
 
 
:당신이 지척에 다가온 그 순간,
 
신은 손을 뻗어 당신의 팔을 콱 붙잡더니, 그대로 당신을 난간 아래로 던져버립니다.
 
...떨어진다!
 
.!
 
 
 
:중력에 멱살을 잡혀 끌려가며, 생경한 부유감과 함께 장면이 종료됩니다.
 
 
로빈:
기준치: 60/30/12
굴림: 54
판정결과: 보통 성공
 
 
 
:환상은 거꾸로 선 당신에게 친절히, 그리고 부드럽게 다시 다가옵니다.
 
그것은 꼭, 죽기 직전 본다는 주마등을 닮았습니다.
 
 
 
:선언했던 휴식이 끝나고, 브라운관 속으로 돌아온 사람은 대변인이 아닙니다.
 
당신에게는 익숙할 얼굴.
 
하슬러 원수입니다.
 
거만한 태도를 지운 그는 단상을 차지한 채, 사뭇 엄숙하게 선언합니다.
 
[지금 도밍게즈는 명백한 전시. 타이머는 인류의 유일한 영웅, 아니, 아군입니다.]
 
[아군을 공격해선 안 됩니다. 맞서 싸워야 할 대상을 구분하십시오. 내부 분열은 최악의 사태를 불러들일 뿐입니다.]
 
 
 
:도밍게즈가 타이머를 의심해선 안 된다.
 
하슬러 원수의 전술은 여전히 망설임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판국에는 여론의 거센 반발을 끌어낼 뿐입니다.
 
기자들이 카메라 세례를 터트리며 무작위로 비난을 던지기 시작하자,
 
쾅!
 
단상을 내리친 그가 고함을 칩니다.
 
 
 
하슬러 원수:설사 타이머가 원인이라고 할지언정 어쩌란 말인가!
 
그들은 인류를 위해 목숨을 걸고 일하고 있어.
 
사지에 내몰린 것은 타이머라고 예외가 아니야!
 
영웅이란 이름 아래 누린 만큼 희생한 것을 알면서도 이러다니, 파렴치해도 정도가 있지.
 
그래, 터진 입이라고 그리 잘 떠드니 어디 말해보게.
 
당신은, 당신의 친구는, 연인은, 가족은.
 
 
 
하슬러 원수:결코 시간의 선택을 받지 않으리라 자신하나?
 
공포에 휘둘려 헛소리들 작작 지껄이고 정신들 차리는 게 좋을거야.
 
 
 
:카메라 세례가 뚝 끊깁니다.
 
하슬러 원수가 성질을 못 이겨 단상을 걷어차는 장면이 기자회견의 마지막 컷이었습니다.
 
...
 
그래요, 타이머는 DOT의 지지하에 여전히 영웅으로 남아있습니다.
 
설사 떠났더라도, 돌아갈 자리는 역시 남겨둘 것입니다.
 
세계가 적으로 돌아선 마당에, 고작 한 뼘짜리 홈그라운드가 위안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때로는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이 필요한 법이니까.
 
 
*
 
 
 
:퍽.
 
그건 분명히 날달걀이 깨지는 질퍽한 소리였는데.
 
어째서인지 달걀 비린내도, 기분 나쁜 질척거림도 묻어나지 않습니다.
 
다시 상황을 확인하면 당신의 앞을 가로막은 작은 등을 발견합니다.
 
"그만 좀 하세요!"
 
"타이머가 여태 우리를 지켜준 건 분명한 사실이잖아요. 누구 하나 도움받지 않은 적이 있어요?"
 
 
 
:"은인에게 비겁하게 굴지 말고, 이럴 시간에 차라리 뛰라고요!"
 
누군가가 울분에 찬 목소리로 인파와 마주 서 삿대질하기 시작합니다.
 
이제 막 사춘기를 지나는 소년답게 무모한 객기였으나,
 
어떤 객기는 계기가 되어 동의하는 이들을 일으켜 세웁니다.
 
"...그래요, 원망한다고 뭐가 달라지나요......"
 
"타이머도 원해서 타이머가 된 건 아닐텐데."
 
 
 
:사람들은 스스로 자정해, 내부의 분노를 추스르고 이동하기 시작합니다.
 
넘어진 사람은 일으키고, 노약자를 부축하고, 불안과 공포를 다독이며.
 
여전히 얼굴에 불만을 적어둔 사람도 있지만......
 
분위기가 바뀌어 쉽게 나서지 못합니다.
 
그래요, 모두가 타이머를 미워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건 그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그 행렬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뒷골목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립니다.
 
"원망하지 않아요."
 
로잘린입니다.
 
아니, 로잘린의 환상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두 팔이 온전한 로잘린은 클라커의 군복을 갖춰입은 채, 먼 시선으로 도피 행렬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울하고, 다정한 시선이 당신을 향합니다.
 
 
로빈 , 놀란 눈을 한 채 로잘린을 바라봅니다.
 
 
 
로잘린 애벗:언니도, 여러분도, 그리고 저도,
 
모두 할 수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것 뿐이니까.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아주 많이 있잖아요.
 
...
 
그러니, 돕고 싶다는 제 마음은 아직 온전해요.
 
외로울 때는 손을 잡아드릴게요.
 
 
 
로잘린 애벗:무너지지 마세요.
 
 
*
 
 
로빈: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4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아마도 이런 걸 죄책감이라고 부르는 거겠지."
 
"미안해."
 
"그래도 이번만큼은......"
 
...그 말을 곱씹던 당신은, 불현듯 깨닫습니다.
 
어쩌면, 그 말을 전하기 위해서 인간으로 임했던 게 아닐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눈을 깜빡거리면, 도로시를 쓸어간 태풍처럼 아지랑이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입니다.
 
환각에 시달린 머리가 일순 어지럽습니다.
 
가운데 놓인 오벨리스크는 여전히 건재하나, 봉헌의 명문만은 달라졌습니다.
 
 
로빈:
언어(모국어)
기준치: 70/35/14
굴림: 11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그런즉 너희만 할 수 있는 일을 하라. 자리를 떠나라. 왔던 곳으로 돌아가라.〉
 
〈순응하는 자 축복받고 순응치 않는 자 칭찬받으리라.〉
 
모래 뿐인 바닥에서 순식간에 파란 장미가 만개해 오벨리스크를, 당신과 호라의 발목을 휘감습니다.
 
파랑새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하늘을 메꾸고......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가 뜨면,
 
 
 
:마을에서 깨어납니다.
 
사람들이 걱정했는지, 침대맡은 온갖 꽃으로 덮여 있습니다.
 
방안을 훈훈하게 데운 온기와 코밑의 꽃향기.
 
머리맡에는 벚꽃 다발과 말린 과일, 종이 뭉치, 작은 인형부터 반짝거리는 돌멩이까지.
 
쓸모없지만 어딘가 다정한 것들이 쌓여 있습니다.
 
 
로빈 , 놀란듯한 표정으로 쌓여있는 것들을 바라봅니다.
 
 
로빈 , 벚꽃다발을 봅니다.
 
 
 
:겹쳐 핀 동그란 꽃잎 사이로 얇은 술이 벌어졌습니다.
 
자그맣고 분홍색이라 벚꽃이라고 생각했지만, 생각해보면 초봄에나 피는 꽃이 한겨울 병문안 선물로 가당할 리 없습니다.
 
 
로빈:
교육
기준치: 70/35/14
굴림: 49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건, 매화입니다.
 
어리석게도 가장 빨리 피어 추운 겨울을 버텨내는 꽃.
 
또 다른 이름은 봄의 전령사, 조춘 만화의 괴.
 
엄동설한을 두려워하지 않고 개화하는 기개야말로 다른 꽃에 비할 수 없는 아름다움입니다.
 
그 꽃말은 공교롭게도 '고결한 마음', '결백'.
 
 
로빈:...
 
 
 
:꺾인 가지임에도 달고 감미로운 향기는 여전합니다.
 
선물한 사람도, 담긴 의미도 알 수 없습니다.
 
단순히 겨울에 꽃을 구하느라 매화였던 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래요.
 
이런 순간에도 깨달음은 찾아옵니다.
 
블루베리와 닮은 독과가 있었다면,
 
 
 
:향기 옅은 꽃을 닮은 매화도 있노라고.
 
닮았어도 각기 다른 것들은 이렇게 지천으로 널려 있습니다.
 
어차피 모든 존재는 원치 않게 태어난 목숨.
 
우연과 필연이 난도질해 수십, 수백, 수천 갈래로 찢어진 괴로움이야말로 삶의 본질.
 
한낱 인간인 이상 태어날 이유도 죽는 순간도 고를 수 없지만,
 
한 가지.
 
 
 
:절대 침해받지 않는 신성불가침 영역이 있습니다.
 
 
호라 아트로포스:...어떻게 하고 싶어?
 
 
로빈:...글쎄.
 
복잡해서 잘 모르겠어.
 
호라 아트로포스:....나도 잘 모르겠어.
 
그때엔... 솔직히 무서워서 도망쳤는데.
 
어쩌면, ...괜찮아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로빈:...그때 돌아가고 나서도 억울하고 화가 났어.
 
나 때문에 그것들이 오는 걸 알고있음에도...
 
아무도 그 고통을 몰라주는 것 같아서...
 
근데... 나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
 
 
로빈 , 그렇게 말하며 종이뭉치를 봅니다.
 
 
 
:엉성한 그림, 단정한 글씨로 적어내린 편지, 색색의 종이학과 소원 종이가 겹쳐 있습니다.
 
 
로빈 , 그림을 봅니다.
 
 
 
:어린아이가 그린 엉성한 그림입니다.
 
스케치북을 찢어 납작한 크레파스로 당신과 호라를 그렸습니다.
 
둘 다 매화꽃을 엮은 화관을 쓰고 있습니다.
 
 
로빈:
예술 Roll
기준치: 5/2/1
굴림: 25
판정결과: 실패
 
 
 
:당신은 그 그림에 담긴 마음의 이름을 알아냅니다.
 
'나도 이 다음에 크면 꼭 타이머가 될래요'
 
그 이름은, 여전히 영웅을 향한 동경.
 
 
로빈 , 편지를 봅니다.
 
 
 
:단정한 글씨로 안부를 묻는 편지입니다.
 
 
로빈:
자료조사
기준치: 60/30/12
굴림: 1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당신은 그 글줄에 겹쳐진 목소리를 떠올립니다.
 
'TV에서 보던 것 보다 훨씬 어리구먼.'
 
'도움받은 처지에 이런 말을 해도 되는가 싶지만, 힘들지는 않으신가?'
 
'목숨을 건다는 건 어느 시대건 쉬운 일이 아니니 걱정이라오.'
 
그 목소리는, 여전히 영웅을 걱정하고,
 
 
로빈 , 소원종이를 봅니다.
 
 
 
:기다란 소원 종이에는 모두의 바람이 쓰여 있습니다.
 
「무사히 깨어나렴.」
 
「좋은 꿈을 꿀 수 있었으면.」
 
「다치지 않게 해주세요.」
 
「앞날에 축복이 가득하길 바라며.」
 
...
 
 
 
:'고마워요, 하필 게이트가 나타난 게 댐 상류라길래 걱정이 많았는데.'
 
'“아침부터 욕봤소. 고생이 많구먼.'
 
'이번 신화생물도 무시무시했어요? 댐보다 커요?'
 
'“다친 데는 없어요?'
 
그 마음들은 찰나가 아니라, 지금도 여기 남아있습니다.
 
'알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목숨을 걸라고 말하는 건 명령하는 처지에서도 늘 내키지 않지.
 
 
 
:어떤 위로도 소용 없겠지만, 이건 그대들만의 싸움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별의 운명이 달렸어. 온 도밍게즈가 함께 할 거야.'
 
...
 
`나는 이런 세계라도 구하고 싶어.`
 
`거창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야. 희생이라고 부를만한 일도 못 돼.
 
세계가 곧 나니까, 세계를 지키는 건 결국 나 자신을 지키는 일이지. 인간의 기준으로 내 죽음을 판단하려 들진 마.`
 
...
 
 
 
:살면서 구원자가 신으로부터 났음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면, 아마 지금이 아닐까요.
 
이런 세계라도 구하고 싶다는 게 어떤 마음이었는지 알 것 같습니다.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반드시 동의하겠다는 것도 아니지만.......
 
신이 저 자신을 소개하지 않았고, 이름을 부여하지 않았던 것은,
 
조금이라도 더 작아지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신은 신격을 조각내 작은 개체로 나누었습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혼자였어도 외롭지는 않았어. 내게는 둘 이상이라는 개념이 더 낯설었으니까.
 
아니, 오히려 영원토록 나 혼자였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해.`
 
그런즉, 더 이상 혼자가 아니게 되어버려서,
 
`나는 너희의 근원이야. 너희는 나의 일부고, 너희가 속절없이 끌리는 것은 온전한 내가 되고 싶다는 욕망의 발현.`
 
외로움을 하사받고 만 것입니다.
 
 
 
:`아마도 이런 걸 죄책감이라고 부르는 거겠지.`
 
`미안해.`
 
감정을 배우지 못한, 배울 필요조차 없는 신치고는 인간다운 채도라니.
 
이제는 그 문장의 어폐를 압니다.
 
세상 만물이 신으로부터 났다면, 이 마음또한 그에게서 났을 것입니다.
 
인류가 느끼는 공포와, 영웅이 느끼는 고독.
 
 
 
:결국 그것은 같은 원점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호라 아트로포스:......로빈,
 
나가자.
 
해야 할 일이 있잖아.
 
 
로빈:...그래. 해야할일이 있지.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집 밖으로 향합니다.
 
해야할 일을, 부탁받은 일을 끝마치기 위해.
 
 
 
:톡,
 
콧잔등에 차가운 감촉이 떨어집니다.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뜨면,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이 세상을 뒤덮고 있습니다.
 
바람도 숨을 죽이고, 빛도, 어둠도 얼어붙은,
 
시간이 움직이지 않는 세계에서, 눈만이 내립니다.
 
 
 
:문득, 주변이 어두워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식이 벌어질 때처럼 사위가 어둠에 침잠합니다.
 
 
로빈: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57
판정결과: 보통 성공
 
 
 
:고개를 들면, 멸망의 시작을 보게 됩니다.
 
떨어지던 건 눈송이 따위가 아니고, 벌어진 건 기상이변 같은 게 아닙니다.
 
하늘이 깨지고 있습니다.
 
차가운 조각들은 그 파편입니다.
 
 
호라 아트로포스:...세상에...
 
 
 
:누군가 잡아 뜯은 것처럼 길게 갈라진 하늘 사이로 거대한 그림자가 고입니다.
 
무대의 뒷편 따위가 아니라 그림자라고 확신한 건,
 
다닥다닥 달라붙은 눈알들이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 또 저 눈입니다.
 
탐욕으로 가득 찬 시선이 타이머를 주시합니다.
 
모든 눈알이 전부, 하나 같이, 한 쌍도 빼놓지 않고!
 
 
 
:지구와 도밍게즈를 잇는, 거대한 게이트의 등장입니다.
 
 
로빈:
SAN Roll
기준치: 49/24/9
굴림: 72
판정결과: 실패
 
아-
 
rolling 1d10
 
(
3
 
)
 
 
=
3
 
 
 
:깨진 틈새로 거대한 무언가가 기어나오기 시작합니다.
 
사사삭,
 
다리 많은 벌레가 어둠을 기는 소리를 시작으로 시간을 붙잡아둔 마법이 풀리고 세계가 소란해집니다.
 
비명이 난무하고, 두려움이 팽창합니다.
 
[제4차 코스모스 웨이브 발생!]
 
[제4차 코스모스 웨이브 발생!]
 
 
 
:[제4차 코스모스 웨이브 발생!]
 
동시다발적으로 시작된 무전.
 
웨엥, 웨엥, 웨에에엥ㅡ
 
경보를 울려대는 스피커,
 
도, 도망칩시다!
 
산을 내려가!
 
 
 
:타이머는 어디에......
 
온갖 마디가 뒤섞인 비명.
 
모래 대신 눈이 떨어집니다.
 
위에 펼쳐진 하늘이 아래로 쏟아지는 장면은 거대한 모래시계를 연상시킵니다.
 
선택의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로빈:...뭐, 이미 난 결정했어.
 
걔가 그렇게 말했듯이 나도 날 위한 선택을 하는거야.
 
신을 죽이겠어.
 
작은 신을.
 
 
호라 아트로포스 , 잠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속삭이듯 말합니다.
 
 
호라 아트로포스:이게 옳은 길인지는 모르겠어.
 
신을 죽이고도 저게 물러나지 않으면 어쩌나, 그런 걱정도 들어.
 
그래도... 뭔가 문제가 생길거였다면 얘기해줬겠지.
 
......설령 죽는다해도, 너랑 마지막만큼은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다면 좋을거야.
 
 
로빈:...그래. 이걸로 끝이 나길 빌어야지.
 
 
 
:작은 신은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죽기로 했어.`
 
신이 죽거든 외우주가 탐낼 신격은 사라지고, 창백하고 푸른 점들은 흔한 별로 전락할 것입니다.
 
그야말로 완전하고 안전하게 원죄를 청산할 방법이지만.
 
타이머의 안위는 보장하지 않습니다.
 
 
호라 아트로포스:... (후우-)
 
제군, 신을 죽일 준비는 되었나?
 
 
호라 아트로포스 , 옅게 미소지으며 말합니다.
 
 
로빈:그거 따라하는거야?
 
 
호라 아트로포스:조금이라도 분위기 풀고 가면 좋으니까.
 
 
로빈:하긴- 그렇지.
 
 
호라 아트로포스:마지막까지 진지하기만 하고 싶진 않았어.
 
그래서, 준비 됐어?
 
 
로빈:준비 됐어.
 
 
 
:두 사람은 겨울의 한복판에 섭니다.
 
저번 이별은 지독하게 평화로운 여름에 이루어지더니, 이번 이별은 혹독하게 얼어붙은 겨울에 이루어질 작정인가 봅니다.
 
대칭이라면 끝과 끝일 연출 방식에 조금 웃음이 날 것 같기도 하고......
 
신을 죽이고 용서받을 수 있을까?
 
한 가닥 불안은 가슴 깊은 곳에 묻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한 가지 입니다.
 
신성을 살해하기 위해서는 토대가 되는 신앙을 지워야 합니다.
 
 
 
:그런즉, 당신이 다스리는 권능에 명령하세요.
 
'세계는 신을 잊으라고.'
 
 
로빈:명령이야. 세계는 신을 잊어. 이제 신은 필요없어.
 
 
 
:명령과 함께 익히 휘둘러온 손을 뻗어 세상을 향해 권능을 불어냅니다.
 
평소에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힘이, 폭풍처럼 강하면서도 산들바람처럼 부드러운 힘이 온 세상을 향해 퍼져나갑니다.
 
작은 손가락 한 쌍에서 비롯된 신풍이 온 지면을 내달리니,
 
저주스러우면서도 축복에 가득찼던 신격이 흩어져나갑니다.
 
땅을 정복하고, 바다를 거느리고, 하늘을 다스려ㅡ
 
겨자씨 한 알만큼의 믿음도 남기지 않고 깨끗이 지워내면, 비로소 모든 장례 행렬이 끝납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되 두 사람은 확신합니다.
 
체내에 머물던 권능이 떠나기 시작했으니까요.
 
...
 
엄습했던 불안과 달리 예고된 패널티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하긴, 생각해보면 그때도 당신의 권능은 송두리째 사라졌다 되돌아오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때마다 목숨이 경각에 달했던 것도 아니었고.
 
 
 
:정답은 들을 수 없겠지만, 추측하자면...
 
신으로부터 이미 분리된 존재이기 때문이거나...
 
`그래도 이번만큼은.`
 
작은 신이 남긴 마지막 유산일지도 모르죠.
 
어쨌거나 걱정과 달리 상황은 무던하게 수습됩니다.
 
전부 끝났다.
 
 
 
:엔딩 스크립트가 올라올 때다.
 
싶을 즈음,
 
호라가 사망 플래그를 밟습니다.
 
 
호라 아트로포스:...진짜 해치웠네.
 
 
로빈:그거 플래그야.
 
 
호라 아트로포스:...아.
 
 
 
:최후의 클리셰, 사망 플래그가 발동합니다!
 
[제4차 코스모스 웨이브 발생!]
 
끝나야 했던 경보가 다시 외칩니다.
 
고개를 들면 하늘에 드리운 멸망도 여전히 건재합니다.
 
당신의 안에서 말라붙은 줄 알았던 권능도 딱 겨자씨 한 알만큼 남아있습니다.
 
왜, 신을 죽였는데도 끝나지 않지?
 
 
로빈: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2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죽은 계시가 빛의 속도로 심중에 꽂힙니다.
 
`여기는 그렇게 재편성된, 일컨대 두 번째 세계야.`
 
즉, 첫 번째 세계에는 아직 신격이 살아 숨쉬고 있을 것입니다.
 
이 나선에 꿴 창백하고 푸른 별은 총 네 점.
 
우리 우주만 구원해서는 궤도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로빈:...아.
 
첫번째 세계의 신격이 아직...
 
 
호라 아트로포스:...-거긴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잖아?
 
 
로빈:맞아...
 
 
 
:생각나는 수가 없습니다.
 
블루 아버를 여는 방법이라면 알지만, 우주 저편도 아니고 평행우주입니다.
 
어디로, 얼마나, 어떻게 가야 하는지.
 
무엇하나 겪어보지 못했습니다.
 
좌표가 정해진 것도, 경로가 기록된 것도 아닌데, 권능은 바닥을 드러내니, 그야말로 진퇴양난입니다.
 
혼란에 빠져가는 틈,
 
 
 
:무의식이 타인의 기억을 건져 올립니다.
 
우리는 이미 평행우주를 건너는 법을 알고 있습니다.
 
제 4의 벽의 규칙을 따라,
 
두 사람은 하나의 주문을 습득합니다.
 
떠나는 것은 둘 중 한 사람입니다.
 
결정하세요.
 
 
로빈:...내가 갈게.
 
 
호라 아트로포스:...괜찮겠어?
 
 
로빈:응, 괜찮아.
 
처음에는 '리베타'가 왔으니 이번에는 내가 가야지.
 
 
호라 아트로포스:...그렇네,
 
 
호라 아트로포스 , 부드럽게 웃어보입니다.
 
 
호라 아트로포스:잘 다녀와야해, 로빈.
 
 
로빈:다녀올게, 호라.
 
 
 
:평행선을 넘기 위해 주문을 외면,
 
 
12시의 도밍게즈
 
 
Chapter 3. 모래시계의 균형
 
 
세계는 멸망하지 않아. 도밍게즈는 새 계절을 맞을거야.
 
 
 
:느릿하게 눈꺼풀을 감았다 뜨자ㅡ
 
그곳은 수도였습니다.
 
푸른 하늘, 흰 길, 끈을 엮어 매단 색색의 깃발과 우산.
 
정처없이 부유하는 풍선과 꽃가루.
 
건국 축제를 맞은 수도에는 오직 사람만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창틀마다 핀 새파란 장미가 외우주의 침입자를 환영합니다.
 
 
 
:시계탑의 흰 벽에 새겨진 새파란 글씨가 다시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정확히 7년째 되는 날 문이 열릴 것이오,〉
 
〈순응하지 않는 자 저주받으리라.〉
 
그 아래에 나란히 선 두 사람.
 
당신이지만 당신이 아닌 존재와, 당신만 알고 당신을 모르는 호라.
 
흔들리는 머리카락이 친숙한 색을 띄고 있어 퍽 그리워지고 맙니다.
 
 
 
:혹독한 선택지를 눈 앞에 둔 호라는 그 시절 그대로, 같은 대사를 반복합니다.
 
 
호라 아트로포스:....헤어지고 싶지는 않아.
 
혼자 남으면, 분명 외롭고, 보고싶어질거야.
 
...어쩌면 평생.
 
...-하지만 너는 지구의 타이머잖아. 그래서, 돌려보내야 한다고도 생각해.
 
 
 
:호라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홀린듯이 상대에게 시선을 빼앗기고 맙니다.
 
우주를 건넌 대가로 기억이 재조정됩니다.
 
내 우주의 기억은 희미해지고, 네 우주의 기억이 물씬 밀려옵니다.
 
아, 다른 것은 아무래도 좋다는 식으로 이성이 뭉개지고......
 
 
로빈:
정신
기준치: 70/35/14
굴림: 79
판정결과: 실패
 
 
 
:밑바닥부터 가장 높은 곳에 이르기까지, 모든 감각과 기분, 생각과 언어, 감정과 본능이 상대에게 향하기 시작합니다.
 
가까이 가고싶은 욕구, 헤어지기 싫은 설움, 무정한 신을 향한 원망.
 
내 것이 아닌 기억이 날뛰기 시작할 때, 주머니에 든 종유석 파편이 쨍ㅡ하고 빛을 발합니다.
 
순식간에 호흡이 가라앉습니다.
 
자신의 기억이 부상하고, 당신은 아무것도 잃지 않았음을 직감합니다.
 
자, 이제......
 
 
호라 아트로포스:날 잊지 말아줘. 그거면 충분할 것 같아.
 
 
 
:〈그런즉 너희는 본분을 다하라. 자리를 지키라.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라.〉
 
아무것도 모르는 호라의 선택지는 한 점으로 한정되었지만, 모든 것을 아는 당신의 선택지는 무한대로 확장됩니다.
 
〈그런즉 너희만 할 수 있는 일을 하라. 자리를 떠나라. 왔던 곳으로 돌아가라.〉
 
 
로빈:...
 
 
로빈 , 호라의 손을 붙잡습니다.
 
 
로빈:아니, 그럴 필요 없어.
 
헤어지지 않아도 돼.
 
그리고 타이머로 있지 않아도 돼.
 
방법이 있어.
 
아무런 불이익도 없고 너랑 계속 있을 수 있는 방법이.
 
 
호라 아트로포스:...하지만, 돌아가야 한다고 했잖아.
 
본분을 다하라고.
 
 
로빈:아니. 그럴 필요 없어.
 
신을 없애면 우리는 더이상 불행하지 않아.
 
신이 없으면 더이상 괴물들이 오지 않을거야.
 
그러니까 내말 잘 들어.
 
우리의 능력에게 명령하면 돼.
 
세계는 신을 잊으라고.
 
 
로빈:그러면 우리를 헤어지게 만드는 것들은 더이상 없을거야.
 
 
호라 아트로포스 , 잠시 고민하는 듯 싶다가, 결연한 표정으로 당신의 손을 꼭 맞잡습니다.
 
 
호라 아트로포스:...해보자.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아.
 
 
로빈 , 그 말에 미소짓습니다.
 
 
 
:모래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자, 범우주적 구원 사역을 개시합니다.
 
 
로빈:
신성살해
기준치: 75/37/15
굴림: 2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피해: 67
 
 
 
:세계의 시작부터 끝까지, 나선의 이편에서부터 저편까지, 우주의 태초부터 종말까지.
 
시공간의 모든 곳을 점거한 권능은 마지막 한 알의 신격마저 찾아내 말살합니다.
 
새파란 장미가 어둠 속으로 머리를 떨구고 꽃잎을 토합니다.
 
빈자리에는, 눈부시게 빛나는 은매화가 피어납닌다.
 
 
 
:모든 것은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며,
 
길고도 괴로웠던 영웅 서사는 드디어 종장을 덮습니다.
 
.
 
.
 
.
 
.
 
 
 
:"로빈!"
 
겨울의 차가운 바람을 타고 급박한 외침이 당신을 깨웁니다.
 
목소리의 위치를 파악하기도 전에 거대한 탈력감과 함께 당신은 호라의 품으로 고꾸라집니다.
 
당신을 내려다보는 눈동자는 우주의 어떤 별과도 같지 않은 색.
 
두 번째 지구의 타이머가 분명합니다.
 
 
호라 아트로포스:성공한 것 같아. 게이트가 닫히고 있어.
 
 
로빈:...다행이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면 하늘이 닫히며 희미해지는 균열과 물러가는 무수히 많은 다리가 보입니다.
 
그리고 겨자씨 한 알의 부재도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이제 더는 영웅이 될 수 없겠죠.
 
세계를 구원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신앙을 잊은 인류가 당신의 공헌을 기억할지도 장담할 수 없지만,
 
......막연히, 괜찮으리란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한낱 인간이더라도,
 
나의 타이머,
 
나의 파트너,
 
나의 운명,
 
나의 세계.
 
외로울 때 손을 잡아줄 이가 있으니까.
 
 
 
:이곳의 설산에도 은매화가 만개합니다.
 
죽은 자가 두 영웅에게 보내는 꽃다발입니다.
 
 
ED 1. The Last Saluteㅡ 최후의 경례
 
 
확장된 모든 세계를 구해냈습니다.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이루어질 것입니다.
 
 
더이상 이 세계의 설정에 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나아가세요.
 
 
호라 아트로포스:...그런데...
 
 
로빈:응?
 
 
호라 아트로포스:...나 지구엔 어떻게 돌아가지?
 
 
로빈:아.
 
 
 
:한 박자 늦게 호라가 곤란한 얼굴로 묻습니다.
 
맞다... 우리 다른 별 사람이었죠.
 
복귀 방법을 고민하노라면, 설산 아래에 한 사람이 손을 흔듭니다.
 
"눈사태 끝난거 맞죠? 다들 나와도 됩니까?"
 
 
로빈:아, 끝났어요!
 
 
 
:신앙이 사라지고 신화생물이 떠난 자리를 메꾸기 위해 인과가 조정됩니다.
 
세계가 개편되고, 새로운 신화가 구축됩니다.
 
인류는 더이상 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신의 존재를 믿지 않지만,
 
"고생들 했수다. 빈번이 고마워서 어쩌나 몰라."
 
"밥이라도 드시고 가시든가. 다들 자기 집에 오라고 성화던데."
 
늘 우리를 구했던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고,
 
 
 
:또 우리를 구해줄 당신의 존재를 믿습니다.
 
관측되지 않는 것은 존재를 증명할 수 없는 법.
 
신 또한 신앙 없이 존재할 수 없다면.
 
관측된 즉, 존재를 증명 받는 것이 순리.
 
믿음이 존재하므로 기적도 잔재하는 순환.
 
이건, 인간이 인간을 구하는 이야기입니다.
 
 
Epilogue. NGC2392 ㅡ 성간구름
 
 
 
:.
 
.
 
.
 
그리고, 여기는 본편의 새로 쓴 엔딩 분기.
 
은매화가 흐드러진 도밍게즈의 풍경은 오늘따라 낯설게 느껴집니다.
 
곁에 선, 나와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이를 바라봅니다.
 
 
 
:먼 우주를 건너왔던 그는 이미 떠난지 오래입니다.
 
이별을 앞두고 돌아온 감상은 어떤가요.
 
묻고 싶은 말이 밤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무수히 많지만......
 
 
호라 아트로포스:...-그렇구나,
 
 
 
:호라는 울음을 머금은 얼굴로 고작 한 마디를 뱉습니다.
 
 
호라 아트로포스:난 너를 구하러 갔던 거야.
 
너만이 나를 구할 수 있어서.
 
 
 
:왜냐하면 우리는,
 
서로의 타이머,
 
서로의 파트너,
 
서로의 운명,
 
서로의 세계.
 
서로의 모든 것이니까.
 
 
로빈:...이제, 헤어지지 않아도 돼.
 
 
호라 아트로포스:-응, 이제 같이 있을 수 있어!
 
 
호라 아트로포스 , 기어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미소짓습니다.
 
 
로빈 , 같이 눈물을 흘리며 미소짓습니다. 그리곤 부드럽게 호라를 끌어안습니다.
 
 
로빈:이제... 정말로 지옥같은 삶에서 벗어났어...
 
이제 정말로 행복해질 수 있어...
 
 
 
:나는 당신에게 파묻히고, 당신은 내게 사무칠테니, 헤어지고 이별에 울지 않아도 돼.
 
세계는 사랑으로 구원받을 것입니다.
 
그저 사랑한다면, 그것으로 전부 괜찮아질 거예요.
 
정각에 다다릅니다.
 
시곗바늘은 돌고 돌아 자정이 지나면 정오를, 정오가 지나면 자정을 가리키겠죠.
 
단언컨대, 몇 번의 하루가 지나도 우리는 함께일 겁니다.
 
 
 
:영원히.
 
존재하지 않던 시간만큼.
 
 
Epilogue. Ode to 7 orbs ㅡ 궤도 공명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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