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 지평선
[COC 플레이로그] 12시의 도밍게즈 Chapter3. 모래 시계의 균형 본문
COC 플레이 로그 (캠페인)/12시의 도밍게즈 (로빈&호라)
[COC 플레이로그] 12시의 도밍게즈 Chapter3. 모래 시계의 균형
CB_PL_ 2022. 11. 7. 23:19시나리오 링크(인포): https://posty.pe/v9g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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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가 도래했습니다.
:타이머와 카운터를 능가할 예언자는 없다. DOT의 의견은 예언의 탑보다 정확하다.
:'도밍게즈, 역사상 최악의 지진 발생!
:그 소식은 당신에게도 재빠르게 전해졌습니다.
:두 사람의 피할 수 없는 숙명입니다.
로빈 , 옷을 제복으로 갈아입고, 임무때 사용하는 물건을 챙긴 뒤 제 2구역으로 갑니다.
:제 2구역의 상공에 타이머와 카운터를 실은 헬기가 착륙합니다.
:광대뼈 주위가 홧홧하게 달아오릅니다.
로빈 :
:공장의 높은 기둥은 여전히 하늘을 뚫을 듯 치솟아 있습니다.
리슬러 부관: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로빈 :...네, 그렇군요. 그럼 그곳으로 바로 이동하겠습니다.
:리슬러 부관의 보고와 안내에 따라 불길 제압을 위한 활동을 시작합니다.
하인리히 장교:이제야 도착했군. 잠깐 앉아보게.
로빈 :...? 무슨일이죠?
호라 아트로포스 , 잠깐 눈치를 보다가, 로빈의 손을 잡고 의자로 가서 앉습니다.
로빈 , 그것을 보고 한숨을 한번 쉬며 의자에 앉습니다.
:어쩔 수 없이 앉은 의자는 푹신하지 않습니다.
:시선은 로비 유리창으로만 향합니다. 투명한 것은 여과없이 바깥의 광경만을 보여줍니다.
:그런 애먼 생각이 스쳐도,
하인리히 장교:...... 고생했네.
:그의 목소리가 유난히 케케묵은 라디오의 탁음처럼 들렸다면,
하인리히 장교:지진으로 인해 불규칙하게 바닥이 꺼지고, 싱크홀이 생기고 있다더군. 후일 있을 구호 활동시 유의하도록 하게.
:전달해야한다던 사항은 걱정인걸까요?
하인리히 장교:... 내일 아침에 보지. 푹 쉬도록.
:무어라 대답을 하기도, 질문을 하기도 전에, 무거운 발거음이 바닥을 밟습니다.
로빈 :(내가 어떻게 알아... 타이머를 만든건 신인데...)
:얼굴 위로 드리우는 불그스름한 음영이 괜스레 불길합니다.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로빈 :...
호라 아트로포스:... 일단은, 우리도 쉬러 갈까?
로빈 :그래... 그러자.
호라 아트로포스 , 걱정스럽다는 눈으로 한참 쳐다보다가 먼저 일어나서 손을 건넵니다. 자, 가자.
로빈 , 잠시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있다가 건네오는 손을 잡으며 일어납니다.
:두 사람은 나란히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호라 아트로포스 , 으아아- 하는 소리를 내며 침대 위에 늘어지게 눕습니다.
로빈 , 의자에 앉아 한숨을 한번 푹 쉽니다.
호라 아트로포스:...진짜 힘들다.
로빈 :오늘 하루 일했잖아.
호라 아트로포스:그래도 힘든걸 어떡해.
로빈 :수업은 그래도 안전하지만... 이건 아니잖아.
호라 아트로포스:... 하긴... 생각해보면, 지난 7년이 너무 평화롭긴 했어.
호라 아트로포스 , 끄으으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킵니다.
로빈 :그렇겠지.
:그렇게 소소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보면, 휴대폰 알림이 울립니다.
:이번 주차 연구 주제를 발송합니다.
로빈 :ㅎㅏ...(깊은 빡침)
:DOT는 여전히 타이머와 카운터가 긴밀해지기를 바라고 있고, 그로 인한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호라 아트로포스:음-
호라 아트로포스 , 도착한 메시지를 보다가,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칩니다.
로빈 , 눈이 마주치자 어깨를 으쓱입니다.
로빈 :글쎄. 솔직히 귀찮긴 하지.
호라 아트로포스:그럼 이번건 넘어갈까?
로빈 :부끄러워서 그런거 아니고?
호라 아트로포스:...-언제적 얘기야, 얘는.
로빈 , 그말을 듣고 호라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말합니다.
로빈 :정말?
호라 아트로포스:...
호라 아트로포스 , 네, 제가 졌습니다! 하면서 손으로 얼굴을 가립니다.
로빈 , 그걸보며 장난스럽게 웃으며 얼굴을 가린 손을 치워 뺨에 입을 맞춥니다.
로빈 :그럼 연구 보고 안하지 뭐.
호라 아트로포스:... 나중에 하자, 나중에. 아직 시간은 많으니깐,
로빈 :그래, 그럼.
:두 사람은 이번 주차 연구 보고는 넘어가기로 결정하고, 아침까지 푹 쉬기로 했습니다.
:아침이 밝도록 다행이 추가적인 호출은 없었습니다.
:또 DOT에서 발송된 지시사항입니다.
:「 2059-03-05, 22:00
:벌어진 틈새가 깊고 어두워서 무엇이 들었을지 도저히 감이 오지 않습니다.
로빈 :(한숨)
로빈 , 오라고 하니 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착잡한 마음과 함께 일어나, 낡고 낯선 숙소를 벗어나면, 거북이 등껍질처럼 다닥다닥 갈라진 흙바닥이 펼쳐집니다.
:정말 세계가 멸망한다면 이정도론 끝나지 않겠죠.
로빈 :
:악몽을 곱씹습니다.
로빈 :
:제 2구역은 3할 가까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탓에 어느 싱크홀의 탐사를 원하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어렴풋이 감이 옵니다.
:발소리 아래엔 흙먼지가 일어나며 요란을 떨어댑니다.
로빈 :
:우리가 이곳에 오기까지, 누군가를 마주쳤던가요?
:하인리히 장교는 특히 더 타이머와 카운터를 귀애했습니다.
하인리히 장교:지진으로 인해 불규칙하게 바닥이 꺼지고, 싱크홀이 생기고 있다더군. 후일 있을 구호 활동시 유의하도록 하게.
:머릿속을 헤집어 별로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를 되짚습니다.
:쾅!
:싱크홀은 마치 기다렸다는 것처럼 입을 벌렸고, 우리는 누구랄 것 없이 크게 벌린 아가리 속으로 떨어졌습니다.
:책장이 떠다니지도, 버섯이 날아다니지도 않았지만,
:먼지냄새가, 곰팡내와 같은 것이, 케케묵은 공기가,
:제일 먼저 바닥에 닿았던 것은-
로빈 :
:파삭!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가 바닥에 닿았습니다.
:긴 설명은 필요치 않았습니다.
:제 13구역에 떨어진 전적도 있느니만큼, 두번째는 퍽 익숙한 경험입니다.
호라 아트로포스:여기... 내가 생각하는게 맞지?
로빈 :그런거 같은데.
호라 아트로포스 , 혼란스런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봅니다.
호라 아트로포스:근데 왜 땅 밑에 이곳이...
로빈 :그러게나 말이다...
로빈 , 주위를 둘러봅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흰 하늘에는 눈으로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발광하는 태양이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로빈 :
:어른거리는 아지랑이 사이로 저 멀리, 기다란 탑이 보입니다.
로빈 :호라, 저기.
로빈 , 탑을 가리킵니다.
호라 아트로포스:-?
호라 아트로포스 , 가리켜진 탑을 보고, 어! 하며 소리를 냅니다.
호라 아트로포스:저거 그... 아- 뭐더라...
로빈 :그런거 같은데?
호라 아트로포스:그러는게 좋을 것 같아.
:두 사람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주변을 탐색하던 다른 타이머와 카운터가 뒤를 쫓습니다.
:걸어도 걸어도 제자리인 것처럼요.
:이대로 가다간 열사병에 걸릴지도요....
로빈 :
=
=
:걷고, 걷고, 걸어도 모래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로빈 :
:생각해보니, 선인장은 안에 물을 비축하는 식물이잖아요?
로빈 , 선인장을 잘라서 식수를 얻습니다
:선인장에게서 얻은 식수를 마시면 더위가 살짝 가십니다.
로빈 :(진짜 뭔고생이야)
:어쩌겠어요.
로빈 , 전갈을 발로 찹니다.
:콱, 하는 소리와 함꼐 전갈이 발목을 더 세게 물고 놓아주지 않습니다.
호라 아트로포스:괜찮아?
로빈 :...아마?
로빈 , 물린 부분을 확인하며 말합니다.
:피가 좀 나긴 합니다.
로빈 :(있으면 치유 애들이 도와주겠지)
:맞아요, 안 그래도 뒤쳐지던 치유 페어가 놀라서 달려오고 있는 걸 목격했습니다.
로빈 , 치료좀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9시의 타이머와 카운터가 거의 동시에 당신의 상처 부위를 향해 손을 내뻗습니다. 툭, 부딪힌 두 사람의 손 끝에서 연녹색의 아우라가 일렁이며 당신의 상처에 닿습니다.
로빈 , 내색하지는 않습니다.
:곧, 옷깃으로 슥 피를 닦아내면, 어느새 말끔하게 상처가 나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로빈 , 그것을 보고 둘에게 고맙다고 이야기합니다.
:"고맙긴, 동료인데 뭘."
호라 아트로포스:...
호라 아트로포스 , 살짝 로빈에게 가까이 섭니다.
호라 아트로포스:계속 갈까?
로빈 , 그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다, 가까이 서는 것을 보고 생각났는지 호라의 귀에 대고 속삭입니다.
로빈 :질투해?
호라 아트로포스:... 조금..?
로빈 , 그말을 듣고 머리를 쓰다듬어줍니다.
로빈 :그럼 더 질투나라고 다른애들이랑 얘기 많이해야겠다.
호라 아트로포스:...-?!
호라 아트로포스 , 슬픈 강아지 눈으로 쳐다봅니다.
로빈 :알아서 잘 생각해봐.
호라 아트로포스 , 시무룩한 표정으로 쳐다보다가 살짝 팔짱을 끼며 달라붙습니다. ...진짜로?
로빈 , 그것을 보고있다가 잠깐 주위를 보더니 입을 맞추며 말합니다.
로빈 :아니?
호라 아트로포스:...--
호라 아트로포스 , 와락 끌어안습니다.
로빈 :왜?
호라 아트로포스:... ... 그냥... 너무 좋아서...-
로빈 , 그말을 듣고 웃으며 손을 잡습니다. 이제 진짜 갈까?
호라 아트로포스 , 손을 꼭 맞잡고 대답합니다. 응, 더 더워지기전에 가자.
:얼마나 더 걸음을 옮겼을까요.
로빈 :
:사막여우는 서성거리기만 하다가 총총 뛰어서 가버립니다.
로빈 :진짜 뭐지.
:또 한참동안 걸음을 옮겨나갑니다.
로빈 :
:깊게 파인 구덩이에서 민첩하게 빠져나옵니다.
로빈 :
:푹푹 찌는 날씨에, 흔들리는 아지랑이- 여러 일들을 겪으며 나아가던 중,
:시체는 살점이 내리고, 피는 말라붙어 거의 뼈만 남은 상태입니다.
로빈 :
:시체의 옷 또한 헤지고 낡아서, 신변을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로빈 :짐승이라...지금까지 본 짐승은 여우밖에 없었는데.
:"여우...는 확실히 아닌 것 같아."
당신은 저 두 사람이 무언가를 말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챕니다.
로빈 :
:시체를 다시금 돌아본 당신은 그것의 품속에서 군번줄을 발견합니다.
:얼굴 가죽이 거의 남지 않아, 누구인지는 알아볼 수 없습니다.
로빈 , 그것을 듣고 고개를 들어올립니다.
:고개를 들어올리면, 아무리 걷고 걸어도 가까워지지 않던 탑- 오벨리스크가 코앞에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태양을 향해 선 것. 이것은 아까 들었듯이, 오벨리스크 입니다.
로빈 :
:태양을 숭배하고, 신을 찬양하기 위해 세운 우상. 봉헌의 명문을 기록한 기둥. 그리고,
로빈 :
:그렇다면, 각자에게 제자리가 있지 않을까요?
로빈 , 잠시 생각하듯 바닥을 보더니 다른 사람들에게 바닥에 자신의 시간에 맞춰서 서있으라고 말합니다.
:0부터 13.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나란히 서자, 총 14개의 시간이 모읍니다.
:기다란 것이 몸을 흔드니 천지가 뒤집히고, 지축이 뒤틀립니다.
로빈 :
:지진이라도 나는 것처럼 사정없이 사지가 떨립니다.
:〈나는 시작과 끝이오, 알파와 오메가이며 우림과 둠밈이라. 태초의 빛이 모든 것을 밝힐지니 있던 것들은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갈지라.〉
:모래 위를 따가운 햇볕이 긁고, 열기가 아지랑이를 피웁니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가운데, 기사의 굵직한 헤드라인이 눈에 들어옵니다. 1면을 장식하고 있군요.
:말이 되건, 되지 못하던, 그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곧이어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합니다.
:깜빡.
:칼날같은 바람이 제어를 잃고 피부를 저밉니다.
:눈을 떠도 꿈은 끝나지 않고, 비참한 현실이 이어집니다.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더 많은 판국입니다.
:목전에 다가온 멸망은 생생했고,
:외려, 인간이 멸종하지 않은 것이 더 놀라울 지경입니다.
:장례식장입니다.
:......
:죽음 앞에 예외란 없습니다.
:이루어지고 말 것이라고.
:로빈은 타이머를 붙들고, 기꺼이 어딘가를 찔렀습니다.
:제 4구역의 시계탑, 제 5구역의 녹지 않는 얼음벽과 제 6구역의 갈대밭 사이 솟대.
:비로소, 이토록 신속히 임한 멸망의 까닭을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장미 향기가 났습니다.
:새파란 장미가 만개했습니다.
로빈 :
=
:눈을 깜빡이면, 도로시를 쓸어간 태풍처럼, 아지랑이는 흔적도 없고 깨끗한 모래만 희고 곱게 누워있을 뿐입니다.
로빈 :
:〈안식년에 도래하여 가장 완벽한 날이 이르렀으니, 인과를 너희 앞에 보이고 기꺼이 좁은 문을 열겠노라.〉
:신의 형체도, 존재도 느낄 수 없었으나, 눈앞의 일이 증명합니다.
:그 어떤 산것도 다닐 수 없는 사막에 불길한 새의 지저귐이 깨진 자장가를 연주합니다.
:가장 높은 것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모든 것의 진실.
:멸망의 두려움에 시달리는 이들을 돕는 척, 지구의 타이머들을 훔쳐다 주었다.
:하늘에 뜬 태양을 검은 그림자가 잡아먹고, 빛이 서린 모든 곳에 밤이 내렸습니다.
:새의 형체도, 그림자도 확인할 수 없으나, 소리만이 선명합니다.
:끈을 엮어 매달아 둔 색색의 깃발과 우산, 그리고 손수건.
:하지만, 신은 도망갈 구석을 두지 않습니다.
:시계탑의 흰 벽에 새겨진 새파란 글씨가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가혹한 선택지를 위장하기에 적격이었습니다.
로빈 , 머리을 짚습니다.
로빈 :...맞나 이게...
호라 아트로포스 , 깊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이고, 손으로 얼굴을 가립니다.
로빈 :...호라. 뭘 봤어?
호라 아트로포스:... 로빈,
로빈 :...잘 모르겠어.
호라 아트로포스:...
로빈 :...어땠어?
호라 아트로포스:......
호라 아트로포스:카운터가 있었어.
로빈 :...그래서 어떻게 됐어?
호라 아트로포스:......
호라 아트로포스 , 느릿하게 고개를 저어댑니다.
호라 아트로포스 , 입을 몇 번 열었다가 닫기를 반복하다가, 짙은 한숨 소리를 낸 뒤에야 간신히 한 마디를 꺼냅니다.
호라 아트로포스:... 나야.
로빈 :...
호라 아트로포스 , 마찬가지로 고개를 저어댑니다.
호라 아트로포스:너랑... 닮은 사람은 있었어.
로빈 :... 그렇...구나.
호라 아트로포스:......
호라 아트로포스 , 울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한마디씩 천천히 내뱉습니다.
로빈 , 그것을 보고 손을 잡아주며 머리를 쓰다듬어줍니다.
로빈 :...아직, 돌아가고싶다는 마음은 안들어.
로빈 :나는... 집에서 인형이었어. 말도 안하고 가만히 앉아 꾸며지는 인형. 그래서 성도 받지 못했어.
호라 아트로포스:...
호라 아트로포스 , 로빈의 손을 양손으로 꼭 붙잡으며 느리게 숨을 내뱉습니다.
호라 아트로포스:네가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면 좋겠어.
로빈 :...지금은...일단 보류.
호라 아트로포스:...그래, 아직은, ..아직은...
:...
:장미가 피고, 다시 지는 날들이었습니다.
:선택을 종용하던 신은 다시금 영광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달도 별도 뜨지 않고, 구름도 잠잠한 저녁.
:모든 것이 부서졌을 때, 계단을 오르지도, 절벽에 매달리지도 않았으나, 우리는 또다시 싱크홀 앞에 서 있었습니다.
:하인리히 장교입니다.
하인리히 장교:다들 여기서 뭐 하는 건가! 싱크홀 주변에는 얼씬도 하지 말랬잖나!
:장교의 목소리가 멀게 들립니다.
:... 시간이 얼마나 흐른걸까요?
하인리히 장교:자네들이 하루종일 사라진 탓에 온 구역이 뒤집혔어!
:장교가 호통을 칩니다.
하인리히 장교:언제나 구원자의 사명을 가장 앞에 두라고 하지 않았나. 다들 복귀해. 화재는 다 진압했으니, 복구 작업만 남았어.
:한 걸음.
하인리히 장교:제 1시는 호수 아래 수몰된 시체가 있는지 찾아볼 예정이니 경찰에게 협조하고, 혹시 모르니 제 5시와 제 10시 페어가 합류해서 지원하도록.
:두 걸음.
하인리히 장교:제 7시 페어는 다시 불씨가 일지 않게끔...... 아니, 차라리 함께 가는 게 낫겠군.
:그리고, 정확히 세 걸음을 내디뎠을 때.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린 것처럼 눈앞이 화려하게 번쩍이고,
:SANC 1D3/1D20
로빈 :
=
:이계의 공포. 환각 속에서 계속해서 보았던 괴물 중 하나입니다.
:낯익은 군복과 그을린 땅마저 모두 울긋불긋하게 물듭니다.
:돼지 멱따는 소리가 요란스러워 생각을 정리하기가 어렵습니다.
:결국, 당신이 끔찍한 현실로 돌아오고 말았다고, 모든 감각이 알리기 시작합니다.
로빈 :
:유리의 벽면을 타고 부드러운 모래가 떨어집니다.
:시간이 떨어져갑니다.
:더는 그럴 수 없습니다.
로빈 :(고민에 빠짐)
호라 아트로포스:... 어떡할래?
로빈 :...어떻게 해야...
호라 아트로포스:난-
로빈 :...
호라 아트로포스:나도... 헤어지고 싶지는 않아,
로빈 :...같이
호라 아트로포스 , 잠깐 입을 벙긋거렸다가 입술을 한번 꾹 깨물고, 다시 입을 엽니다.
호라 아트로포스:가족도 가족이지만, 내가 없으면 도밍게즈는...
로빈 :...
로빈 , 고민을 하는 듯 꾹 입을 다물고 있다가 말합니다.
로빈 :나는- 돌아갈래.
호라 아트로포스:......괜찮아,
로빈 :안 잊을게.
:제 7구역의 가장 높은 것, 멈추지 않는 풍차 아래에서 서로를 마주보고 섭니다.
:멈추지 않는 풍차를 무너트리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었습니다.
:가장 높이 솟은 것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썩어들어, 땅 아래로 자취를 감추면......
:당신은 그래도, 건너가야 합니다.
:이제 돌아가면 영영, 다시는 볼 수 없을텐데......
호라 아트로포스:잘가, 로빈.
로빈 :잘있어, 호라.
:이별하는 처지에, 이 이상의 말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나의 세계.
:눈이 마주쳤다간, 후회하게 될 것 같아서.
:가장 소중한 것을 두고,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를 위하여 옮기는 그 걸음은,
:균형을 맞추기 위해 혹사당한 탓에, 꼭대기에 걸린 달이 앙상했습니다.
Chapter 3. 모래 시계의 균형
:그것은, 시간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너와 나, 영원히, 그리고 영원히.
수고하셨습니다.
-
신문과 뉴스, 인터넷 기사를 구별치 않고 모든 매체에서 도밍게즈의 평화를 떠들었습니다.
2053년 새해의 길거리는 유난히 사람으로 북적였어요.
멸망을 넘어, 새로운 계절.
꽃샘 추위가 채 가시지 못한 날씨에도 사람들은 신사에 들리고, 기도를 올리고, 골목을 뛰놀고, 벚꽃을 즐기며 삶을 찬미했습니다.
예언의 탑이 기운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신뢰는 녹지 않는 눈처럼 쌓였고, 타이머와 카운터, 덩달아 DOT의 입지까지 얼음처럼 단단하게 굳어갔습니다.
7년이 흐르는 동안 타이머와 카운터가 필요할 정도로 다급한 사태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당신과 호라는 자잘한 사건사고로부터 사람들을 구원하고, TV와 같은 매체에 얼굴을 팔고, 구원 외 다른 임무에 배정되며 한가로이 지냈습니다.
도밍게즈 건국 이래, 유난히 평화로운 한때라는 평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니까,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요!
-
호외요! 요란한 외침과 함께 신문이 쏟아집니다.
하나같이 제 2구역에서 일어난 커다란 지진 사건으로 1면이 가득합니다.
사진 속 제 2구역의 모습은 상상 이상으로 끔찍합니다. 원인 미상의 지진으로 인해 땅이 갈라지고, 공장이 무너져 각종 화재가 번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소식을 알아내기가 무섭게 메시지가 도착합니다.
호출이네요.
「 2059-03-04, 19:14
타이머, 카운터 제2구역 지원 요망 」
세계에 재난이 내리면 사람들은 구원자를 찾는 법.
하던 일이 있다면 마무리하고, 제복을 갈아입고, 필요한 것을 챙긴 뒤, 출동하도록 합시다.
총성같은 헬기의 프로펠러 소리, 착륭장을 찾지 못해 아슬아슬하게 흔들리는 기체, 공격적으로 물길을 쏟아붓던 소방차들과 허탈하게 대피소에 늘어진 난민들.
머리가 어지럽고, 귓속이 먹먹합니다.
제1시와 제 2시 페어의 합류로 간신히 불길이 잡히기 시작했다지만, 아직 잔재하는 불씨 탓입니다.
무너진 공장의 잔해, 그을린 땅, 잿더미가 되어가는 숲과 혼비백산 도망치는 사람들......
아이의 울음소리와 날 선 비명, 동물의 울부짖음이 창 너머로 열기와 함께 스며듭니다.
좋건 싫건, 익숙해진, 익숙해져야 할 광경이었습니다.
기준치: | 65/32/13 |
굴림: | 16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그 근처로 땅이 길게 갈라져 있는 것이 보입니다.
지진으로 인해 생긴 싱크홀입니다.
주위의 광경은 온통 엉망이지만, 신의 파편이라 주장하는 것처럼 저 높은 기둥만은 옅은 그을음을 얻었을 뿐, 완벽하다시피 안전했습니다.
헬기에서 내려 바닥에 발을 디디면, 리슬러 부관이 맞이합니다.
다른 페어의 힘으로 불길을 억제하고 있으나, 풍량이 강해 곳곳으로 번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에 대한 억제를 부탁한다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공기가 매캐한 탓에 제대로 숨 쉬기가 어렵고, 머리가 어질어질해질 정도였습니다.
얼마나 돌아다녔다고, 드러난 피부며 옷자락은 재투성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몇 시간에 걸쳐서 뜨겁게 타오르던 불길을 어느정도 억제하고서야, 두 사람은 장교의 호출 하에, 숙소로 향합니다.
도착한 곳은 제 2구역의 변두리에 위치한, 그나마 멀쩡한 숙소입니다.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의자에 앉아있던 장교가 말을 걸어옵니다.
...
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아주 어둡습니다. 불씨가 남아있긴 하지만, 두사람이 힘을 쓴 덕에 바람이 잦아들어, 더 번지지 않게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어쨌건, 시간이 너무 늦어져, 더는 누군가를 구할 수도, 찾을 수도 없을 정도입니다.
간신히 복귀 명령이 떨어진 마당에 불편한 소파에 오래 앉아있고 싶지는 않았지만요.
... ... 두 사람을 부른 장본인은, 정작 말이 없습니다.
참혹한 그 광경은 가히 종말이라 부름이 옳을 것입니다.
하늘이 녹아내리고, 체질이 불에 풀어지니, 발을 디딘 땅마저 말랑말랑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이대로 모든 것이 녹고 녹아, 바닥으로 꺼질 것만 같았었죠.
도밍게즈조차 이런 꼴인데,
지구, 나의 세계는 지금쯤 어떤 꼴일까-...
하인리히 장교는 여전히 같은 곳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참담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티가 역력합니다.
그가 선인이건, 악인이건, 도밍게즈를 향한 애정과 헌신만큼은 진실된 이니까요.
활동 내내, 그리고 복귀 내내 맡은 매캐한 연기 냄새 때문에 목 안이 까끌까끌합니다.
한참을 침묵하던 장교는, 곧 헛기침과 함께 입을 엽니다.
오랜만에 한 자리에서 보는 것 같은데, 상황이 영 좋지 않군.
그건 착각이 아닐겁니다.
애석한 인사말 후로, 그가 당부를 덧붙입니다.
되도록이면 탐사대가 확인한 위치로만 이동하고, 돌발행동은 절대 지양해야 해.
사태가 심상치 않으니 말일세.
이런, 이래서야 악어의 눈물이 따로 없는걸요.
군화 특유의 소리가 로비를 울립니다.
지친 것은 이쪽이나 저쪽이나 매한가지겠죠.
7년동안 쌓아온 것들이 수포가 되는 기분이니까요.
왜, 어째서.
멸망을 저지할 세계의 구원자가 이곳에 임하였음에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예언 속 한 장면 같은 멸망을, 무력하게 지켜만 볼 뿐입니다.
그날은, 카운터가 도밍게즈에 온 지 정확히, 7년째 되던 날입니다.
초봄의 바람을 탄 것이 꽃잎이 아닌 불꽃이 된 것은, 도밍게즈에 이토록 큰 재앙이 임한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타종의 삶과 세계를 갈아넣어 갈취한 평화마저, 온전하지는 않다는 뜻일까요.
아니, 어쩌면 ■■은 아무도 모를 때, 홀연히 임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많이 힘들었잖아.
침대는 딱딱하고, 의자는 다리의 아귀가 맞지 않아 흔들리고, 창 밖에 볼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서로를 제외한 -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을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 만큼은 만족스럽습니다.
휴가내고 싶어--
뭐라고 할까...
수업듣기 싫다고 했던거랑 비슷한 기분이야.
...7년동안 잠잠했다가 갑자기 이러는게 참...
지난 세대 타이머들은 맨날 이런 일들 해결하면서 살았겠지?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뜻입니다.
......설마 또 호출은 아니겠죠?
불길함을 뒤로하고 휴대폰을 확인하면...
아니나 다를까! DOT입니다.
「 2059-03-05, 02:41
(전체 보기) 」
정확히는, DOT의 동관에서 도착한 메시지 입니다.
DOT에서 호라와 처음만난 이후로 꾸준히 해오던 바로 그 '연구 보고'입니다.
이런 상황에도 예외는 없다 이거죠?
귀찮긴해도, 안한다면 무슨 후환이 일어날지...
메시지의 전문을 확인하면, 익숙한 연구 보고서가 나타납니다.
뭐, 물론, 무시해도 괜찮겠죠.
평소라면 연구원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잔소리했겠지만, 여긴 제 2구역이고, 달려들 연구원도 없잖아요.
어떡할래?
시간도 늦었고, 내일도 일하려면 좀 자둬야 할테니까...
이젠 별로 안 부끄러워,
말 잘 해야할거야.
너 진짜-...
침대도 하나 밖에 없는 탓에 옆자리에 누워서 자게 되었네요.
조금 좁은 것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날이 밝기를 기다린 것 처럼,
알람보다도 당신을 일찍 깨우는 것은-
띵, 익숙한 효과음입니다.
문자 메시지의 알람입니다.
화면에 깜빡이는 아이콘이 눈에 익네요,
하기사, 타이머와 카운터에게 동시에 쏟아질 메시지라면 그것 뿐이긴 하죠...
아직 채 벗어나지 못한 잠기운과 함께 슬라이드를 밀어서 잠금을 해제합니다.
텍스트가 들어찬 화면이 보입니다.
내용은 언제나처럼 간결하기 짝이 없습니다.
본론이 전부입니다.
타이머, 카운터 ‘전원’ 제2구역 싱크홀 탐사 요망 」
텍스트 마지막에 도착한 커서가 현란하게 깜빡입니다.
제 2구역의 화재를 일단락 지으니 문제로 불거진 것이 싱크홀인 모양입니다.
땅이 갈라지거나, 이유없이 꺼지거나, 멀쩡히 서있던 것이 와르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길게 금이 간 지반은 불안정합니다. 사람들은 되도록 밖에 나오지 않았고, 타이머와 카운터를 비롯한 구조 대원들도 근처를 지날 때는 상당히 신중을 가해야 했습니다.
그런 불길한 것을, 그냥 둘 수는 없었을겁니다.
이해 못 할 일도 아닙니다.
아스팔트가 갈라진 정도도 아니고 땅이 뒤틀린 상황이니까요.
타이머와 카운터가 '전원' 참여해야 할 정도의 일인가 싶지만서도...
어차피 판단은 개인의 몫이 아닙니다. 지난 7년간 깨달은 사실이에요.
물론 아스팔트 도로라고 사정이 다르진 않지만요.
노랗고 흰 금들은 모양이 어긋나 잘못된 짝을 찾고, 손을 자은 채 춤을 춥니다.
갈라진 바닥 아래로 드문드문 나무뿌리가 목이 졸린 채 매달려 있습니다.
아침 해 아래서 보니 더욱 적나라하네요.
기괴하게 비틀린 풍경은 종말의 한 조각을 담고 있습니다.
시간이 멈춘 그 날, 편의상 그것을 멸망이라고 불렀지만... 실제 멸망이란 이런 것들이 아닙니다.
기준치: | 70/35/14 |
굴림: | 49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건물은 무너지고, 사람들이 피가 도로를 적시며,
듣도보도 못한 괴물들이 산 것들을 모두 잡아먹고 찢어 죽이던 꿈을.
울음이 끊이지 않던 악몽을.
...
아픔도 슬픔도 고통도 없이 멎는 것은 멸망이라 부르기엔 너무 온건하고, 불타고 땅이 무너지는 것 또한 종말이라 부르기엔 유순합니다.
기준치: | 67/33/13 |
굴림: | 63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이거 빼줘)
가장 높은 공장의 굴뚝이 있는 곳. 장인이 세웠다기엔 주인과 출처를 알 수 없는 그곳.
공장은 터만 남고, 이제 와선 굴뚝만 외로이 자리를 지키는 그곳일겁니다.
왜나하면,
압도적인 깊이와 넓이 때문에 그 아래 싱크홀을 무저갱이라고 부를 정도였으니까요. 메꾼다면 제일 먼저 그곳을 메꾸겠죠.
느슨하게 바닥을 딛는 발걸음은 신중하지만 망설이지 않습니다.
...
싱크홀 앞에서 우리를 맞이한 것은, 침묵입니다.
하인리히 장교도, 리슬러 부관도, DOT의 연구원이나 직원, 혹은 제 2구역의 자체 군인까지도, 누구 하나 보이지 않습니다.
용케 무너지지 않은 굴뚝 아래, 타이머와 카운터- 우리 스물여덟이 전부입니다.
그러고보니...
기준치: | 65/32/13 |
굴림: | 72 |
판정결과: | 실패 |
기준치: | 65/32/13 |
굴림: | 9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오는 길목마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몇 번이고 시야를 되감아 보아도 그렇습니다.
세계가 사랑하는 타이머와 카운터.
이 한 줄의 정의란 재해 구역에서도 어긋나는 법이 없습니다.
임무를 나가는 길이건, 목숨의 사활이 걸린 상황이건, 타인의 시선은 늘 타이머와 카운터를 따라다녔습니다.
임무가 있을 때면 꼭 직접 찾아와선 지시하고, 독려했었죠. ...
그러고보니, 이곳에 온 첫날, 그가 뭐라고 당부했었죠?
되도록이면 탐사대가 확인한 위치로만 이동하고, 돌발행동은 절대 지양해야 해.
사태가 심상치 않으니 말일세.
비로소, 깨닫습니다.
아무도 없이, 우리만 이런 곳에 둘 턱이 없습니다.
그는 타이머와 카운터의 가치, 생명의 무게를 정확히 아는 이였으니까.
이토록 조용했던, 외따로 되었던 적은......
문득, 어느 날의 예감이 머릿속에 스쳤을 때,
발 아래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바람이 마치 등을 떠미는 것 처럼,
아래로 추락합니다.
흙이 무너지는 소리, 돌이 떨어지는 궤적, 피부를 할퀴는 나무 뿌리-......
온갖 요란한 감각이 시야와 생각을 교란합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어버린 것처럼 떨어지는 부유감이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꼭 시간만은 멈춘 듯 했습니다.
- - - - -
떨어지고, 떨어지고, 떨어져서-
익숙한 패턴이 당신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바다의 짠 내음 대신 지하의 흙냄새가,
뜨겁게 호흡기를 거머쥡니다.
숨을 쉬기가 퍽 괴로웠습니다.
목 안이 따끔거리고 피부가 까끌까끌해서,
아! 이대로 죽는걸까?
싶었던 그때,
기준치: | 60/30/12 |
굴림: | 70 |
판정결과: | 실패 |
꽤 오래 떨어졌건만, 어디도 아프지 않고, 다치지도 않았습니다.
온 몸을 감싸안는 감각이 부드러웠거든요.
깊은 곳에 떨어졌다고 생각했는데, 머리 위는 찬란하고 시야는 환합니다.
지하 아래 숨겨져 있던 것은,
흰 모래사막입니다.
주위를 둘러본 순간, 어디인지 확신했으니까요.
제 0구역, 빛이 스며든 사막.
도밍게즈의 동쪽, 해가 뜨는 끄트머리에 펼쳐진 365일, 24시간 내내 백야가 드리운 소금사막.
물도, 풀도, 사람만이 아니라 어떤 생명체도 발견된 바가 없는 미지의 장소.
이곳은 찍겠노라 길을 떠난, 수많은 젊은이가 무덤도 없이 시체가 되었다죠.
바닥의 모래는 이미 새하얗게 타버린지 오래고요.
사방이 모래밭인데다가, 숨막히는 더위가 엄습합니다.
기준치: | 65/32/13 |
굴림: | 32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탑과의 거리는 상당해보이지만요.
...오벨리스크? 그거 아냐?
일단 지금 보이는게 저것 밖에 없으니까. 저기로 가볼까?
여기 가만히 있는 것 보다야!
그래요, 다 각자 행동하는 것보단, 다 함께 움직이는게 안전할거에요.
무슨 진실이 눈 앞에 놓여져 있든, 그때처럼.
걸어가는 길에는 모래, 모래, 그리고 모래 천지입니다.
숨을 쉴 때마다 모래 알갱이가 입 안으로 들어오고, 걸음을 옮길때마다 신발로 들어온 불청객이 춤을 추듯 몸을 흔들어댑니다.
탑을 목표로 삼았음에도, 거리는 가까워지지 않습니다.
아니면 탑이 도망을 가고 있던지요.
주위 풍경도 다 엇비슷해서, 얼마나 걸은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정표도, 길잡이도 없이 사막을 헤멥니다.
사막을 헤메는 내내 더위는 모두를 괴롭힙니다.
머리 위를 쫓는 태양이 집요할 지경입니다.
rolling 1d10
(
)
4
4
기준치: | 60/30/12 |
굴림: | 24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기준치: | 60/30/12 |
굴림: | 78 |
판정결과: | 실패 |
기준치: | 60/30/12 |
굴림: | 48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기준치: | 60/30/12 |
굴림: | 63 |
판정결과: | 실패 |
rolling 2d6+2d3
(
+
)
+
5
6
(
+
)
3
2
16
그렇게 한참을 걸어가던 도중, 무릎 높이까지 오는 선인장을 하나 발견합니다.
그래도 제 0구역에도 뭔가가 있긴 있군요.
기준치: | 70/35/14 |
굴림: | 65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잘라낸다면 식수를 얻을 수 있을거에요.
덥지 않다고 하기엔 어렵지만, 이거라도 어디에요.
달리 빠져나갈 길도 없으니, 그저 앞으로, 계속 앞으로 걸어나갑니다.
...
꾸역꾸역 걸음을 내딛던 발목에 갑작스레 강렬한 통증이 스칩니다.
깜짝 놀라 내려다보면, 새까만 전갈이 커다란 집게로 발목을 깨물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발견한 호라가 조심스레 몸을 숙이더니, 전갈의 집게를 확 벌려서 떼어내곤 급히 저 멀리 모래 더미로 던져버립니다.
... 독은... 없겠..죠...?
아야.
살짝 따끔합니다.
그, 어... 진심으로?
(웃음)
로비이인--
모래 사이로 세모난 귀가 툭! 튀어나옵니다.
날카로운 눈과, 동그란 코를 가진 사막 여우입니다.
...제 0구역도 지역은 지역이다 이건걸까요? 여우정도나 되는 큰 생명체라니.
여우는 타이머와 카운터의 주변을 서성이며 킁킁거립니다. 뭔가 찾고 있는 것 같은데...
기준치: | 5/2/1 |
굴림: | 58 |
판정결과: | 실패 |
그 뒷모습을 가만 지켜보고 있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여우의 형체가 스르르 모래성처럼 무너집니다.
... 환상이었을까요?
...
...
그러던 어느순간, 푹- 발이 아래로 빠집니다.
그리곤 눈 깜짝할 새에 몸이 아래로 떨어집니다.
지반에 구멍이 뚫린 채, 모래로만 메워진 곳을 밟은 모양인데--
기준치: | 70/35/14 |
굴림: | 65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하마터면 크게 다칠 뻔 했어요.
기준치: | 60/30/12 |
굴림: | 3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툭, 발끝에 무언가 걸립니다.
딱딱하고, 구멍이 텅 빈... 결단코, 유쾌한 감각은 아닙니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마짝 마른 시체가 있습니다.
당신의 발은 시체의 두개골, 정확히는 눈이 있을 구멍 안에 꽂혀있습니다.
군데군데 성한 가죽이 보이긴 하는데......
SANC 0/1D3
기준치: | 67/33/13 |
굴림: | 66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겁 없이 제 0구역을 헤매던 젊은이였을까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옆에 있던 9시 페어가 뭔가 깨달은듯 숨을 흡 들이마십니다.
"이거... 짐승이 먹은 시체야."
"솔직히 늑대나 곰이라고 하기도 어렵고..."
"뭔가 더 크고... 위험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하지만, 구태여 물어볼 필요는 없겠어요.
저렇게나 사색이 된 표정이라면, 끔찍한 이야기일 것이 분명하니까요.
기준치: | 65/32/13 |
굴림: | 61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Do■in■■ez at 1■, On ■he d■t, ■■e ■th Timer…….
풍화된 탓에 군데군데 글씨가 보이지 않지만,
마지막 단어 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 타이머라니, 이렇게 형편없는 시체가?
대체 몇 기수일까요?
영문을 알 수 없는 죽은 자의 신원에 놀라고 있으면, 다른 타이머가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오벨리스크다!"
몇 발자국 앞에 선 그것은, 무척이나 이상하게 생겼습니다.
하나의 거대한 석재로 만들었는데, 단면은 사각형입니다.
위로 올라갈수록 가늘어져, 끝은 피라미드꼴로 지은 건축물.
입구도, 창문도 없고, 벽면을 따라 글씨가 잔뜩 조각되어 있을 뿐입니다.
표면의 글씨는 도저히 읽을 수 없습니다. 단 한번도 본 적 없는 문자입니다.
기준치: | 70/35/14 |
굴림: | 28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신의 첫 번째 손가락.
태양이 쨍쨍합니다. 당신을 비웃는 것처럼, 그것은 머리 위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빛은 오벨리스크의 표면을 따라 흐르다가, 바닥에 긴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그 모양새가 꼭-...
시곗바늘처럼 보입니다.
기준치: | 70/35/14 |
굴림: | 34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시간에 맞춰서 서는거에요.
흰 바닥, 검은 그림자, 그리고 숫자.
완벽한 조합이잖아요.
있어야 할 곳은 언제나 여기에 있었고, 우리는 우리의 있어야 할 곳을 압니다.
그러니, 퍽 쉬운 일이었죠.
14명의 타이머와 14명의 카운터가 나란이 자리를 잡자, 오벨리스크의 그림자가 한 바퀴를 돌기 시작합니다.
태양의 위치와 상관없이 움직이던 그것은, 느린 동작으로 결국 정각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종소리는 울리지 않았지만, 대신 오벨리스크가 울기 시작합니다.
SANC 0/1
기준치: | 67/33/13 |
굴림: | 65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제자리를 지키기가 퍽 어려웠습니다.
땅은 갈라지지 않았지만 저 멀리 모래로 쌓은 산등성이가 움푹움푹 꺼져 갑니다.
생리적인 공포가 고개를 듭니다.
진동하는 휴대폰처럼 한참 요란을 떨던 것이 모두 멈추고 나면!
새로운 글씨가 쓰여 있습니다. 황금의 몸체에 빛처럼 하얀 글씨였습니다.
망막에 맺히는 상은 모두 헛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믿을 수 없을 만큼 생생합니다.
완벽한 형태를 갖춘 환상이 세계를 펼칩니다.
-
제일 먼저 떨어진 것은 회색 신문이었습니다.
〈도밍게즈 멸망까지 초읽기 시작, 카운터의 행방불명!〉
흉흉한 기사에 누군가가 한숨을 내뱉습니다.
"그놈의 멸망, 멸망. 지겹다니까..."
상황이 바뀌고, DOT, 그러니까, 하인리히 장교가 책상을 내리칩니다.
"카운터를 잃어버리다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
카운터, 반쪽을 잃은 세계는 멸망을 가속합니다.
잠깐, 잠깐. 착각하진 말아요.
이건 미래의 이야기에요.
...
봄, 여름, 가을이 지나고.
하늘은 흐렸고, 눈은 칙칙한 회색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눈을 피해 삼삼오오 지붕 아래로, 우산 아래로 숨어들었지만, 멸망을 피하려 노력하지는 않았습니다.
카운터가 없더라도 세계는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이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했던가요.
소리소문없이 다가온 멸망은 겨울에 임했습니다.
당신이 눈을 감았다 뜬 사이, 세계가 멸망했습니다.
처음 보는 괴물이 누군가의 머리를 꿰뚫고, 목을 꺾고, 도망가는 사람들을 쓰레기처럼 깔아뭉갭니다.
길거리에는 시체가 즐비합니다.
하늘의 구멍으로부터 다리가 무수히 많거나, 피부가 벌레처럼 단단하거나, 날카로운 이를 가지거나, 거대한 괴물들이 계속 쏟아지고,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괴로움에 몸부림치다 죽음에 이르는 것뿐이었습니다.
툭하면 눈보라가 시작되어 도망갈 수도 없도록 길을 막습니다.
거세한 돌풍이 불면 그나마 남아있던 건물의 목이 떨어지며 지은 이들을 짓누릅니다.
악몽보다도 지독한 현실이었습니다.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도 잡아먹힙니다.
사람들은 괴물들이 보내는 꿈에 시달리며 팔이 떨어지거나, 몸이 꿰뚫리거나, 머리를 뜯어먹히는 꿈을 꾸었습니다.
괴물이 울어댑니다.
"테킬리 리!"
울음마저 부재한 작은 별에는 죽음만 가득했습니다.
기나긴 겨울이 이어졌고,
인간이 쌓아온 모든 문명은 무너졌습니다.
보고만 있는데도, 알 수 있었습니다.
이곳이 분명히 도밍게즈란걸.
제일 처음에 본 기사가 아니었더라면 도저히 믿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여태 누리던 평온이 거짓말처럼 완벽하게 무너졌습니다.
모래가 쏟아지는 속도가 지독히 신속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소서!"
누군가가 단말마를 내지르곤 쓰러집니다.
그러나 추위를 피해, 괴물을 피해, 달아나고 또 달아나도, 형편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식물은 말라 죽고 동물은 얼어 죽으며 물은 썩고 시체는 살아납니다.
모든 것은 바닥으로 꺼지고 맙니다.
현실이 무거워, 간신히 살아남은 이들의 걸음이 비척거립니다.
그나마 온전히 살아남은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곳이 비치고-...
"거짓말."
느리게 말을 더듬는 호라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새하야니 불길한 국화가 지천에 가득합니다.
제대로 상복조차 입지 못한 호라는 여전히 제복 차림이었습니다.
지친 기색이 역력하고, 상처가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도 느끼지 못하는 것 처럼, 무릎으로 기어, 차게 식은 관 앞에 엎드립니다.
아무도 누구라고 설명해주지 않았고, 지독한 환상에 자막 따위 존재하지 않았으나,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여태까지 보았던 이들이었고, 나의 타이머를 지독하게 닮아있었으므로.
고작 7일입니다.
도밍게즈에서 카운터가 떠난지 7일.
멸망이 도래하고, 종말이 임하기엔 너무 빠른 나날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태까지 참아왔던 것처럼, 쏟아진 괴물은 가을의 벌레떼처럼 지구를 뒤덮었습니다.
도밍게즈는 속절없이 무너졌고, 타이머의 소중한 이들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것은 어떤 신호였습니다.
암시이고, 예언이며, 확신입니다.
카운터가 돌아간다면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라는.
무슨 일이 있어도,
최초의 그 예언은
구원자가 품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참담함이 고개를 드는 순간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뒤집힌 화면에서, 당신은 여태까지 중 가장 낯익은 얼굴을 발견합니다.
아니, 낯이 익은게 아니죠.
거울 속에서 늘 보아오던 얼굴입니다.
'로빈'이 그곳에 서 있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인데,
환상속의 로빈은 분명히 그러고 있었습니다.
붉은 피가 바닥을 적십니다.
이미 무너진 기둥의 잔해가 바닥에 장난감처럼 흩어져 있습니다.
제 0구역의 오벨리스크, 제 1구역의 기상 관측 탑, 제 2구역의 높이 솟은 공장의 굴뚝과 제 3구역의 세계수라고 불리는 가장 오래된 나무.
제 7구역의 멈추지 않는 풍차, 제 8구역의 화려한 전망대와, 제 9구역의 화이트 루프 꼭대기에 매단 놋뱀, 제 10구역의 더는 작동하지 않는 최초의 우주선과, 제 11구역의 예언의 탑.
그리고, 제 12구역과 제 13구역의 등대까지.
세계를 수호한다는 신의 손가락은 모두 꺾여, 바닥에 쓰러졌습니다.
그것은 신을 향한 기만이 아닌, 돌아가는 방법이었습니다.
신이 세계를 나누고, 각 세계를 위하여 세운 것을 꺾어야만 돌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로빈, 당신이 무너트렸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사랑하던, 당신의 운명, 반쪽, 하나뿐인 파트너.
타이머의 피가 손을 타고 흐릅니다.
당신보다도 더 당신과 닮은, 환각 속의 로빈은 그 피를 무너진 잔해에 덧바릅니다.
붉은 피가 각기 다른 색의 벽돌들을 적시고, 문설주와 인방을 모두 칠한 순간-
신의 손가락을 꺾고, 구원자의 피를 훔치고서야 내내 찾던, 열고자 했던 그 아치문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호라가 바닥에 엎드려져 있습니다.
가련한 모습이었으나, 로빈은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시선은 그곳에서 떼어낼 수 없었는데.
환상 속의 로빈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아치문을 넘어섰습니다.
때를 모르는, 완벽한 모습입니다.
아! 그 문턱을 넘는다면-...... 비로소 돌아갈 수 있겠지.
참담한 깨달음이자, 모든 진실이었습니다.
SANC 1D2/1D4
기준치: | 67/33/13 |
굴림: | 97 |
판정결과: | 실패 |
rolling 1d4
(
)
2
2
환각에 시달린 머릿속이 어지럽기만 합니다.
아직 가운데에 놓인 오벨리스크는 건재했으나, 봉헌의 명문만은 달라진 채였습니다.
기준치: | 70/35/14 |
굴림: | 3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
이상한 일이죠.
전혀 모르는 글자였는데, 분명히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욱 이상한 일은 다음에 일어났습니다.
세계를 창조하는 것처럼, 안식에서 깨어난 신이 능력을 휘젓습니다.
눈부신 빛과 함께 태양이 순식간에 불타고, 비를 머금은 구름이 섬광을 가립니다.
모래뿐인 바닥에서 순식간에 푸른 장미가 자라나 오벨리스크를, 두 사람의 발목을 휘감았습니다.
천둥소리도, 번개의 형상도 없었는데 별처럼 다닥다닥 오벨리스크의 글자들이 조명을 켭니다.
부서진 태양은 떨어지며 눈이 되었습니다. 차가운 가루가 피부에 닿으면 만나처럼 부드럽게 녹습니다.
메추리의 울음소리가 하늘을 메꿉니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 모든 소리를 몰아낸즉, 봉헌의 명문이 보입니다.
〈태초에 낮과 밤을 짓고, 여자와 남자를 만들고, 하늘과 바다를 빚으니 모든 것들이 보기에 심히 좋았더라. 배필이 있어야 완벽하니 이는 세계 또한 마찬가지. 두 세계를 빚어 하나는 우편 하늘에, 하나는 좌편 하늘에 달아두었으니〉
〈끔찍하고 삿된 것들이 입맛을 다셨다. 아, 한낱 피조물들은 이토록 나약하고 연약하니 어찌 두고 잠들랴. 능히 대적하고 일어설 수 있는 것들을 세웠도다.〉
〈그러나 어리석은 것들이 끔찍하고 삿된 꿈에 현혹되어 기어코 금단을 범했더라. 우편의 것을 좌편에 끌어다 세우니 능히 대적할 자를 잃은 세계에 멸망이 임한다. 틈을 타 끔찍하고 삿된 것들이 기어들고, 혼돈이 가득하더라.〉
〈그런즉 너희는 본분을 다하라. 자리를 지키라.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라.〉
옛날 옛적, 신은 두 개의 세계를 빚었다.
지구와 도밍게즈를 각각 걸어두니, 이계 신과 위대한 옛것들은 틈틈히 무너뜰고 부수며 한입에 삼키려 들었다.
세계를 만들고, 지쳐 노쇠한 신은 마지막으로 손가락을 꺾어, 14명의 타이머와 14명의 타이머를 각각 보냈지만,
이계의 것들은 교활했다.
그것들은 신이 잠든 사이 신을 흉내내, 세계 멸망의 꿈을 전송했다.
방법만 알려주었을 뿐임에도, 일은 빠르게 일어났다.
지구의 타이머가 사라진즉, 이계의 신들이 배를 불리며 포식했다.
비로소, 도밍게즈가 불러온 지구의 멸망이었다.
...
장미가 피어나고, 어둠이 자라납니다.
모든 것을 읽고 나자, 눈앞에 남은 것은 암막뿐이었습니다.
위와 아래를 구별할 수 없었고, 좌우가 헷갈렸습니다.
오로지 실감하는 것이라고는 옆에 선 이의 존재뿐.
신이 직접 이 땅에 던지는 이야기란 어찌 이토록 선명한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다시금 새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신의 울음이거나, 우리를 위한 자장가였을 것입니다.
...
느릿하게 눈꺼풀을 감았다 뜨자,
그곳은 수도였습니다.
푸른 하늘, 희게 펼쳐진 길.
정처없이 부유하는 풍선과 꽃가루.
완벽하게 아름답고, 완전하게 꾸며져 있던 그 날의 수도.
건국 축제 당시의 모습입니다.
너무나 교묘해서, 완벽하게 돌아왔다고 믿었을 것입니다.
나쁜 꿈을 꿨다고 눈을 돌릴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수도에는, 오직 사람만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건물의 창틀마다 여전히 새파란 장미가 피어있습니다.
이제는 익숙해지다 못해 질릴 법한 장미 향기가 숨을 틀어막습니다.
불가능과 기적이란 모두 신의 영역이죠.
아치문이란, 신의 예비하심을 따라 운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입니다.
〈정확히 7년째 되는 날 문이 열릴 것이오,〉
〈순응하지 않는 자 저주받으리라.〉
분수의 물결을 따라 흔들리는 파란 장미는 목이 꺾인 채 가련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주위의 풍경은 모두, 신이 흡족히 여겼을만큼 아름답기 짝이 없습니다.
낙원의 끝에는 지옥이 있다고 하던가요.
모래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
시간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말해줄 수 있어?
돌아가고 싶어?
지금 지구가 어떤지도 모르겠고...가도 되는건지도 잘...
나, 지구의 모습을 봤어.
끔찍했어, 엄청.
사람이 많이 죽었고, 괴물들이 가득했어.
...지구는, 구원자를 찾고 있어.
아직 살아남은 사람들이 모여서, 누군가 자신들을 도와주길 바라고-
... ...
네가 지구에서 도밍게즈에 온 것처럼 억지로 만든게 아니라,
진짜 신이 만들어서 내려보낸...
진짜 카운터가 있었어.
그 카운터는...나였어?
네가 내 카운터라면,
네 카운터는, 나여야 하지 않겠어?
그렇네.
그럼 너가 본 곳에서는 내가 있었어?
널 애타게 찾아다니더라.
... 언니일거야.
돌아가, 로빈.
네 고향은, 집은 지구에 있잖아.
...
도밍게즈의 일원으로서, 모두를 대신해서 사과할게. 억지로 끌고와서 정말 미안해.
여긴 나랑 다른 타이머들이 힘내서 구할테니까, 너는 돌아가도 괜찮아.
아직은...
지구가 내 고향이고...집이지만...
7년전에 고향이 지구인걸 깨달았을때 든 생각은... 돌아가고 싶지 않다였어.
...나는. 지구의 타이머로서 기억이 제대로 있는 건 아니지만.
그전 기억은 있어.
그래서, 학교는 물론 집 밖에 나가본적이 없어. 한번도.
언니랑 오빠는...그래도 날 잘 돌봐줬지만... ...그래도, 난 다시 돌아가면 타이머이면서 다시 인형이 될거 같아.
그래서 돌아가기 싫다고 생각했었어.
물론...지금은 흔들리긴해.
결국은, 네가 선택해야하는 거니까.
...내가 뭐라할 자격은 없으니까,
아직... 아직은 선택 안해도 되니까.
최초의 낙원이 있다면 이런 곳이었을까요.
고요한 광경을 눈 아래로 내려다보며 그런 생각을 합니다.
마지막을 선포한 신이 어째서 이런 공간을 조성하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이나마 평화로운 시간을 만끽하고 이별의 슬픔을 나누란 뜻이었을까요.
유난히 시간이 더디게 흘렀습니다.
선택의 시간은 점점 다가만 옵니다.
한움큼, 혹은 그 이상의 불안과 눈물을 머금었던 것도 같습니다.
저울은 어느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고, 실은 끊어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모든 낱말, 문장, 이야기가 팽팽하게 부딪혔다가 나가떨어지길 반복합니다.
이 모든 일련의 사건이, 양측의 우리에, 사이에 쌓인 모든 것들은, 운명이라 하기엔 너무도 가혹했습니다.
바람을 놓아주거나 구름을 타지도 않고, 빛나는 얼굴을 내밀지도, 천둥이나 우레와 같은 목소리를 들려주지도 않습니다.
굉장히, 재수 없는 방식입니다.
짧은 하루는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가고, 환상은 천천히 부서져내립니다.
머리 위에서부터 하늘이 조각나고 구름이 찢어집니다.
새파란 모든 것들이 아래로, 아래로 추락하면, 검은 하늘이 드러납니다.
건조한 바람이 불고, 장미 향기 대신 탄내와 잿가루가 휘날립니다.
불씨는 보이지 않았지만 오래도록 타들어간 탓에 그을린 냄새는 통 가시질 않았습니다.
...
누군가가, 당신의 이름을 부릅니다.
퍽 익숙한 목소리입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시선을 돌립니다.
하나, 둘-...
묻지 않아도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소중한 구원자의, 머릿수를 헤아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제 12구역에서 되돌아왔을 때와는 무언가 다르군요.
아니, 애당초 복구 작업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단체로 어디를-
듣고 싶지 않은 탓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습니다.
시간은 멈추지 않았고, 우리의 부재는 들통났다는 것.
그때의 운전사는, 조금도 시간이 흐르지 않은 것처럼 우리를 불렀잖아요.
하인리하 장교처럼 당황하지도, 놀라지도, 겁먹거나 식은땀을 흘리지도 않았었으니까.
불현듯 고민에 빠졌을 때,
사실인 모양입니다.
하인리히 장교의 옆에는 항상 붙어있던 리슬러 부관 대신 처음 보는 사람들뿐이었거든요.
군복은 아니니, 구역의 정치인쯤 되려나요.
초조한 기색을 갈무리하고, 하인리히 장교가 큰 보폭으로 다가옵니다.
얼마 걸리지 않겠지. 제 2시와 제 3시 페어는 나와 함께 가고, 제 0시는 제 13시와 함께 폐기장으로 움직이게.
제 4시는 전력 센터부터 찾아가보게. 제 6시는 내일 동물 보호소에서 출동한다고 하니 숲에 남은 개체가 있나 확인해보고,
제 8시, 제 9시 페어는 잊지 말고 대피소에 방문해. 안정과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니야.
제 11시, 제 12시는 방화 의혹 용의자들 대면하고,
쾅!
커다란 굉음이 지나갑니다.
컴컴한 하늘이 희게 점멸하고, 요란한 비명이 머릿속의 뇌수를 뒤흔듭니다.
먹구름은 커녕 구름 한 점 없었는데.
정말로 마른 하늘에 떨어진 날벼락이었습니다.
다시금 눈을 뜨자 건물과 건물 사이, 바닥이 일렁이기 시작합니다.
아니, 아니야. 일렁이는 것은 바닥 따위가 아닙니다.
예리한 각에서부터, 그림자를 따라 솟아난 것처럼 순식간에 등장한 '어떤 괴물'의 잔상이었습니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 이글거리는 눈, 박동하는 푸른 피부를 지닌 그것은 무척이나 흉측하게 생겼습니다.
옛적에 멸종한 공룡의 사체가 지금 돌아다닌다면 저렇게 생겼을까요?
기준치: | 65/32/13 |
굴림: | 95 |
판정결과: | 실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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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림: | 98 |
판정결과: | 실패 |
'그것'이 이를 드러내는 것과 동시에,
하인리히 장교의 머리가 사라집니다.
의심할 여지도 없었습니다.
날카로운 이빨이 정확하게 목덜미를 찢고, 머리를 훔쳤으니까.
이빨과 머리를 잃은 시체를 타고 푸르고 붉은 점액질이 쉼없이 흘러넘칩니다.
쇠 비린내가 훅 끼칩니다.
콧속으로 파고드는 그 악취는 죽음이었습니다.
숨구멍을 턱 막는 끔찍한 감각입니다.
근처에 서 있던 노친네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거나 달아납니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습니다.
'그것'이 머리를 뜯어먹는 동안, 우득, 우드득, 하는 섬뜩한 소리가 들립니다.
퉤. 어디의 것일지 모를 뼈를 뱉은 괴물은 당신을 바라봅니다.
입맛을 다시는 것도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곧 할 일을 마쳤다는 냥 사라집니다.
눈앞의 죽음과 코밑의 비린내, 귓가의 비명과 손끝의 체온.
피가 바닥을 적십니다.
붉고 어둡게 물들어, 저주받고 있습니다.
젖은 흙이 축축한 소리를 내며 사그라들고,
기준치: | 65/32/13 |
굴림: | 91 |
판정결과: | 실패 |
뜬금없이 시야를 사로잡는 모래시계는 고개를 돌려도, 젖혀도, 숙이거나 휘저어도 끊임없이 쫓아옵니다.
피에 젖지 않은, 가장 곱고 순결한 흰색이었습니다.
떨어지는 소리가 사르륵, 귓속을 파고듭니다.
남은 시간은, 하루 남짓.
무엇을 향해 떨어지고 있는지, 모를 수가 없었습니다.
선택까지 남은 시간은 성큼성큼 다가옵니다.
떠나야할 시간은 눈 앞까지 훅 다가온지 오래입니다.
한때는 문 하나를 두고 만남의 설렘을 기대했던 우리인데,
이제는 문 하나를 두고 이별의 예감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선택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보류하고, 밀어왔지만,
새파란 장미가 어둠 속으로 머리를 떨구고, 꽃잎을 토합니다.
일어난 일과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평화로운 순간입니다.
비가 내릴 기미는 보이지 않고, 곧 찾아올 여름을 증거하듯 공기만 후덥지근합니다.
자, 선택의 시간입니다.
...너가 무슨 선택을 하던 이해할거야.
너랑 헤어지고싶지는 않아.
근데...
지구를...내버려두고싶지도 않아.
혼자 남으면, 분명 외롭고, 보고싶어질거야.
...어쩌면 평생.
...-하지만, 너는 지구의 타이머잖아. 그래서, 돌려보내야 한다고도 생각해.
같이 갈수는 없...겠지?
너도...여기에 가족이 있잖아.
...
미안해.
그냥- ...
날 잊지 말아줘. 그거면 충분할 것 같아.
반지 있잖아. 목걸이도 있잖아.
괜...찮을거야.
오늘만큼 호라가 낯설거나, 멀게 느껴진 것은 처음입니다.
시선은 한참 정착할 곳을 찾지 못하고 배회합니다.
이별밖에 남지 않았으니 망설여지는 건 당연한 수순일테죠.
...
호라의 손을 찔러, 기어코 피를 봅니다.
피 냄새가 짙어서, 평생이 지나도 이 순간을 잊지 못하리라고 확신했습니다.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을 때까지 무너뜨리고 부서뜨리면, 사막에서 보았던 환상이 스쳐 지나갑니다.
감히 신의 손가락도 꺾고, 구원자를 피 흘렸으니 어찌 세계가 온전하리오.
무너진 잔해에 피를 덧바르자, 익히 알고 있는 향기가 피어오릅니다.
피에 젖었는데, 쇠 비린내라곤 전혀 없습니다.
눈앞에 문이 열립니다.
철제를 두르고 피어난 새파란 장미는 기적과 불가능의 상징.
도저히 장미 향기가 지워지지 않습니다.
마지막을 예고하는 것처럼 진해지고, 덧칠해집니다.
문 너머에는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이 문을 넘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완전히 이별하겠죠.
다시는 만날 수 없을, 나와 같은 시간을 사는 이를 돌아봅니다.
울었나요, 혹은 웃었나요.
눈앞이 흐릿해서 제대로 볼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인데. 선명하게 보아두어야 하는데.
마음과 달리 야속하게도, 눈물은 멎지 않고 계속 눈 앞을 적십니다.
호라의 얼굴이 흐려집니다. 일렁입니다. 젖어 들어갑니다.
하고 싶은 말은 밤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무수히 많지만,
언젠가 내가 머물게 된다면, 꼭 네 곁이라 믿었던 때가 있었어.
왜나하면 너는,
나의 타이머,
나의 파트너,
나의 운명,
나의 모든 것이었으니까.
시간은 흐릅니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갈 때입니다.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억지로 옮기며, 등을 돌리고, 고개를 숙여,
다시금 돌아보지 않습니다.
애원하게 될 것 같아서.
날 보내지 말라고, 네 곁에 있고 싶다고.
저주받고 멸망할지언정, 그것만을 바란다고,
그렇게 말해버릴 것만 같아서.
사무치게 사랑했으니, 이별또한 가슴 깊이 사무칩니다.
진정으로 구원자의 순례였습니다.
시곗바늘은 다시금 돌고 돌아, 자정이 지나면 정오를, 정오가 지나면 자정을 가리킬 것입니다.
14개의 숫자는 낮과 밤에 각각 새겨져 있습니다.
해가 달을 좇고 달이 해를 좇아 넓은 하늘을 헤엄치듯이,
우리도 서로를 좇으며 우주를 헤매게 될 거에요.
섭리를 따라, 모래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우리는 멸망할 세계를 구하기 위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영원한 이별이었다.
시간은 교차할지언정, 함께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나는 내가 한 짓을 깨달았어.
상황을 바로 잡기엔 조금 늦어버린 것 같아.
네 이야기를 끝냈던 건 내 잘못이야.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너와 나, 영원히, 그리고 영원히.
항상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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