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 지평선
[COC 플레이로그] 12시의 도밍게즈 Chapter1. 시계 바늘의 방향 본문
COC 플레이 로그 (캠페인)/12시의 도밍게즈 (로빈&호라)
[COC 플레이로그] 12시의 도밍게즈 Chapter1. 시계 바늘의 방향
CB_PL_ 2022. 11. 7. 23:11시나리오 링크: https://posty.pe/lion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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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DOT의 14회의실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로빈:
:봄처럼 소리소문없이 드러난 시간의 각인을 발견했을 떄부터요.
:각인을 본 부모님이 놀라며 DOT에 연락하던 것이 기억에 생생합니다.
로빈:(...;;)
:그래요, 평범한 일상이 덜그럭덜그럭, 기묘한 소리를 내며 뒤틀리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 날부터 였습니다.
:흰 가운을 입은 연구원과 흐릿한 남색 제복을 입은 사무원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목소리- 그리고 감탄의 주인공은 하인리히 장교였습니다.
:당신은 세계를 구원할 새로운 구원자라는 명분하에 DOT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로빈:(.......)
:그들이 당신을 일컫기를- 당신은 호라 아트로포스, 제 7시의 타이머의 짝입니다.
:긴 밤 내내 당신이 운명의 짝, 당신의 파트너, 자신과 같은 시간의 타이머인 호라를 떠올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몰라요.
하인리히 장교:곧 도착한다는군.
:기나긴 회상을 깨고, 장교가 타이머들의 도착을 예고합니다.
:똑똑,
:당신이 눈을 깜빡이자, 호라 역시 똑같은 속도로 눈을 깜빡입니다.
:어째서일까요?
로빈:
:가까이 가고 싶다는, 어울리지 않는 욕구가 고개를 팟! 하고 쳐듭니다.
:무척 익숙한 웃음입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두 사람은 들이닥치는 서로의 존재감에 휘둘리고 있었을 겁니다.
로빈: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이머에게 홀린 듯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하인리히 장교:인사하게. 자네의 짝이 될 사람일세.
:어쩜 이리,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지.
로빈:(장교니임...;;;)
:군인이란 되묻지 않는 법이지만, 호라는 기어코 되묻고 말았습니다.
하인리히 장교:다시 말해줘야겠나? 인사하게. 자네들의 짝이 될 사람일세.
:뻐꾸기처럼 반복되는 대사가, 친절하게도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다시금 짚어줄 뿐이었지만.
하인리히 장교:세계 멸망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들었으리라고 생각하네.
하인리히 장교:멸망이 예정된 세계의 법과 도덕, 규칙 따위를 눈가 지키겠냔 말이야.
하인리히 장교:...-결론부터 말하지.
:장교는 수염을 가다듬고, 카운터들을 가리키며 말합니다.
하인리히 장교:지난 예언의 타이머는 매우 훌륭한 이였어.
하인리히 장교:반년 전쯤부터, 예언을 따라 새로운 능력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네.
:이 만남이 이미 예비된 만남이었다니.
하인리히 장교:세계 멸망의 초읽기를 앞둔 작금의 상황에, 썩 잘 어울리는 이름이 아닌가?
:그는 그리 말하며 웃었습니다.
하인리히 장교:연구 결과, 카운터가 타이머와 똑같은 능력, 자질이 있으며 시간의 선택을 받았다는 것이 입증됐어.
:장교는 웃는 얼굴로 통보합니다.
하인리히 장교:전달 사항은 이걸로 끝이라네. 서관으로 데려가서, 건물 소개도 좀 해주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친해지도록 해.
:마지막까지 일방적으로 명령한 장교가 절도있게, 그러나 한없이 가벼운 걸음으로 회의실을 나섭니다.
호라 아트로포스:... 안녕? 그러니까... 네가 내 카운터, 맞지?
:라며, 수줍은 표정으로 인사합니다.
로빈:네... 안녕하...세요...
로빈 , 손을 꼼지락거립니다.
호라 아트로포스:반가워, 이미 알고 있겠지만, 7시의 타이머인 호라 아트로포스라고 해.
호라 아트로포스 , 악수하자는 듯 손을 건넵니다.
로빈 , 그것을 보고 놀란듯 움찔하는 모습을 보이다, 이내 호라가 내민 그 손을 잡습니다.
로빈:저는... 카운터... 로빈이라고 해요.
호라 아트로포스:...-에... 장교님이 뭐하라고 했더라....
로빈 , 그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로빈:계속...본관에서만...있었어요...
호라 아트로포스:그래? 그럼 본관도 내가 소개해줄게.
로빈:아, 네...아니...그 ...응...
호라 아트로포스 , 작게 웃음소리를 내다가. 본관으로 먼저 가보자고 말하곤 앞장섭니다.
로빈 , 앞장 서는 것을 보다가 따라갑니다.
:14회의실을 빠져나오면 보이는 것은 DOT 본관의 복도입니다.
로빈:
:어쩐지 무척 그리운 풍경입니다.
로빈:혹시...
호라 아트로포스:훈련실?
로빈 , 고개를 끄덕입니다
호라 아트로포스:그럼 가자 ~
:두 사람은 사이좋게 훈련실로 향합니다.
호라 아트로포스:여기에서 능력을 써보거나, 이것저것 실험을 할 수 있어.
호라 아트로포스 , 장난스런 미소를 짓습니다.
호라 아트로포스:카운터에 있는 언니나 장교님한테 떼쓰면 가져다줘.
로빈:...그래도 돼...?
호라 아트로포스:안될게 뭐 있어?
호라 아트로포스 , 방 한쪽 꼭대기에 있는 CCTV를 가리킵니다.
로빈 , CCTV가 있다는 얘기에 딱히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로빈:...원래... 당연히 있는거... 아니야?
호라 아트로포스:그렇긴한데-
로빈:뭘...부셨길래...?
호라 아트로포스:...... 거울...?
로빈:에... ...
호라 아트로포스:능력 가지고 이것저것 실험하다가....살짝 부딪혔는데 와장창 부서져 버려서..-
로빈:... 조심해...
호라 아트로포스:그러고보니까, 너도 바람 다룰 줄 알지?
로빈 , 고개를 끄덕입니다.
호라 아트로포스:으응-
호라 아트로포스 , 양 주먹을 꽉 쥐고 눈을 빛내며 바라봅니다.
로빈 , 그 말을 듣고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시선을 피합니다.
로빈:...
호라 아트로포스:괜찮아괜찮아--
로빈:...
로빈 , 로빈은 시선을 바닥으로 둔채로 고민하다가 이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입니다.
로빈:대신... 너도, 보여줘... 궁금해.
호라 아트로포스:응, 물론이지!
로빈 , 그말을 들은 로빈은 안쪽 주머니에서 푸른 하늘이 그려진 부채를 꺼내듭니다.
로빈:...능력...써본적이 많이 없기는 하지만...
호라 아트로포스:(완전 기대!)
로빈 , 자신감 없는 말과는 달리 몸을 부드럽게 움직이더니, 팔 휘둘림과 함께 부채에서부터 커다란 강풍이 만들어집니다.
로빈:...이정도...?
호라 아트로포스 , 와아아아~ 하면서 박수칩니다.
로빈:이게 있으면...만들기 쉬운데... 부채가 없으면... 좀 불안정...했었어.
호라 아트로포스:그럼 도구만 있으면 안정적으로 능력이 써지는거야?
로빈:...응. 굳이...부채가 아니더라도...다른 물건으로도 할 수는 있어...
호라 아트로포스:(!)
로빈:...그래?
호라 아트로포스:도구에 따라서 힘이 달라지는거잖아?
로빈:...그런가...?
호라 아트로포스 , 뭔가 곰곰 생각하는 듯 하다가, 음! 하는 소리를 내며 끄덕입니다.
호라 아트로포스:다음에 외출하게 되면 이것저것 사와야겠다.
로빈:...뭔데?
호라 아트로포스:(히히.)
로빈:...(불안)
호라 아트로포스:걱정마! 거울은 또 안 깰거야.
로빈:... ...다른것도 안 부실거야...?
호라 아트로포스:... ... 아-마?
로빈:... ...
로빈 , 딱히 더 말은 하지 않지만 눈에서부터 불안의 눈빛이 느껴집니다.
호라 아트로포스 , 가만히 쳐다보다가 멋쩍은 듯 헤헤, 하고 웃습니다.
호라 아트로포스:여하간, 이번엔 내 차례지?
로빈:(꾸닥)
호라 아트로포스:할 수 있는건 많기는 한데-
호라 아트로포스 , 혼자 뭔가 결론을 내버리고, 끄덕이며 웃습니다.
호라 아트로포스:잘 안보이니까 집중해서 봐야해?
로빈:(끄덕끄덕)
:미소를 짓던 호라는 제 손을 합장하듯이 딱 모으고 심호흡을 합니다. 자신감 넘치는 태도와는 다르게 살짝 긴장한 티가 역력합니다.
호라 아트로포스:난 능력을 이렇게 사용해. 바람을 교묘하게 꺾고 틀어대다보면, 눈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공기를 물건처럼 만들 수 있지.
로빈:... 정말?
호라 아트로포스:...그럴걸?
로빈:... 나는... 이렇게 뭔가 해보는게 어색해.
호라 아트로포스:음-
로빈:집에 있을때는 항상...가만히 있었거든...
호라 아트로포스:그럼 어색하지 않게 앞으로 이것저것 많이 해보면 되겠다!
:저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 이야기다만... 어른들이 저렇게 부르는거면 썩 좋은 어감은 아니었겠죠.
로빈:...7시의 연구원...?
호라 아트로포스:7시의 타이머니까 7시!
로빈:... ....(신체검사때문에 만났던 연구원분들 떠올림)
호라 아트로포스:(히히)
로빈 , 고개를 끄덕입니다.
로빈:...교실은 어떤...곳이야?
호라 아트로포스:말 그대로 교실이야.
로빈:... 안다녀봤어.
호라 아트로포스:--?
로빈:... 집 밖을...못나가게 하셔서...
호라 아트로포스:(허어어어)
로빈:...그런가?
호라 아트로포스:(세상에)
로빈:...여기 오기 전 생활이...그리워?
호라 아트로포스:조금은?
로빈:... 난, 원래도...허락받아야 나갈 수 있었어서...
호라 아트로포스 ,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혼자 고개를 끄덕이곤 말합니다.
호라 아트로포스:장교님한테 떼 쓸일 늘어났다.
로빈:... ...
호라 아트로포스:... ...
로빈:... 안 혼나?
호라 아트로포스:혼나지?
로빈:... ...(벌써부터 저런 생각하는...)
:시설을 소개받고, 식사를 하고,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서관 2층에 있는 교실로 들어서면, 14개 뿐이었을 책상과 의자는 28개가 되어 있습니다.
:창틀 너머로 아침 햇살이 쏟아집니다.
로빈:
:그러고보니, 입학하고 나서도 딱히 교과서나 시간표를 안내받은 적이 없는데......
로빈:...
로빈 , 호라의 어깨를 툭툭 건들입니다.
호라 아트로포스 ,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칩니다. 왜?
로빈:...원래...수업에...교과서같은게...없어...?
호라 아트로포스:아-
로빈:...?
호라 아트로포스:정확히 말하자면, 시간의 부산물인 타이머에 대해서 배우지?
로빈:...평소에도 이렇게 수업해?..
호라 아트로포스:아무래도?
로빈:...그렇구나...
:다각다각 소리를 내며 분필이 칠판에 글씨를 새깁니다.
교사:자, 새로운 친구들이 왔으니 오랜만에 초심으로 돌아가볼까요.
로빈:...(부답스럽다...)
:다른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의 답을 내놓습니다.
교사:여러가지 좋은 의견들이 많습니다만, 저는 적어도 '타이머가 아닌 나와 타이머인 나를 분리하는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사:자,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보죠.
로빈:...장교님은... 카운터와 타이머가...없으면... 멸망할 것 처럼...이야기 하시는 것...같았는...데요.
교사:장교님의 견해는 그러했죠, 하지만, 개개인에게는 또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있는 법이죠.
교사:타이머가 시간의 아래서 태어나, 공간을 누비며 살아가는 것 자체로 세계라 불리는 공간을 구원하고, 역사라고 불리는 시간을 구원하는거에요.
교사:그러니까, 우리는 모두 여러분이 사이좋게 지낼 수 있기를 바래요.
로빈:
:멀리서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도밍게즈의 건국 신화를 읽고, 시간과 능력 사이의 상관관계를 생각해보라는 것이었죠.
교사:마지막 문제는 과제로 내도록 할게요.
:교사의 말에 교실 곳곳에서 탄성이 쏟아집니다.
교사:친해지라는 의미로 주는 휴식이니까, 되도록 자신의 파트너와 함께 다니세요.
:당부와 함께, 교사가 먼저 교실을 떠납니다.
로빈:
:어라, 이제 보니 이거...
로빈:...?
:심지어 제일 마지막 줄에 필수 제출이라고 쓰여있습니다.
로빈:...
호라 아트로포스 , 기지개를 쭈우우우욱 킵니다.
호라 아트로포스:빨리 가서 연구 보고 하고 놀러갈까?
로빈:...잠시만...
로빈 , 아까 무언가 떨어진 소리가 났던 쪽을 바라봅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로빈:...
:환각의 타이머가 장난이라도 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로빈 , 고개를 갸웃이다가 호라를 바라보며 말합니다.
로빈:...그래.
호라 아트로포스:안에서도 놀 수 있으니깐.
로빈:아...
호라 아트로포스:좋아, 가자!
로빈 , 고개를 끄덕인다 달릴거라는 얘기에 에. 한 표정을 지어보입니다.
호라 아트로포스 , 장난스런 미소를 지어보였다가! 요이! 하는 소리를 내며 달려나갑니다.
:호출을 따라 훈련실에 도착하면, 다른 타이머와 카운터는 보이지 않습니다.
애쉬 :보고서로 간략하게 설명하긴 했지만, 별로 어려운건 아냐.
:애쉬는 설명을 마치고, 호라에게 작은 패드를 부착해줍니다.
로빈:
애쉬 :제대로 좀 봐봐, 잘 됐어?
호라 아트로포스:본인이 붙여놓고 저한테 물어보면 어떡해요!
:저 두사람은 왜 저렇게.....다정한거죠?
애쉬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도 영향을 주지만,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좋은 영향을 준다는 가설이 유력해.
로빈:... 네.
애쉬 :자, 그럼 우리는 나가볼게.
:애쉬와 연구원들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두 사람의 등을 떠밉니다.
:긴장에 주먹을 꼭 쥐었다가 펴면, 문득 소독약 냄새를 맡습니다.
:천장도 바닥도, 반지르르하니 윤이 납니다.
로빈:... ...
:Baiser. 흔히 '비쥬'라고 알려진 프랑스의 인사법으로, 양 뺨을 번갈아 맞대며 마치 입을 맞추듯 '쪽' 소리를 내는 것이 특징입니다.
로빈:... ...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건만, 심장 박동이 점차 선명하게 들립니다.
로빈:
:"몇 가지 단계에 맞춰 진행 가이드를 띄워놨으니까 보고 따라가면……”
로빈:
:황망히 헤메던 시선이 스크린의 반대편 모서리에 ㄷ닿습니다.
호라 아트로포스:저기, 음.... 어쩔래?
로빈:... ...
로빈 , 잠시 스크린을 바라보다가 호라에게 손을 내밉니다.
로빈:...손.
호라 아트로포스:...
호라 아트로포스 , 손을 쥐었다 폈다가를 몇 번 반복하다가, 조심스레 손을 내밀고, 맞대어 옵니다.
로빈 , 손을 맞대어 오자, 그대로 호라의 손에 깍지를 낍니다.
로빈:...안익숙해?
호라 아트로포스:그으-...게....
호라 아트로포스 , 시선을 휙 피해버립니다. 왠지모르게 부끄럽단 말야.
로빈:...나는... 언니나...오빠랑...해본적...있어서.
호라 아트로포스:....난 외동이란 말야,
로빈:...
:덤덤하게 말은 했지만, 어쩐지 심장이 간질간질한 느낌이 듭니다.
로빈:...
로빈 , 손 깎지를 하던것을 풀고 당신을 바라보며 작게 팔을 벌립니다.
:호라는 대답없이 당신을 가만바라보고 있습니다.
로빈 , 그것을 보고 잠시 가만히 있다가 따라 안아줍니다.
로빈:
:끌어안은 품 속이 안락하기 짝이 없습니다.
로빈:
=
로빈 , 편안하다는 느낌을 받아서인지 끌어안은채로 놓아주지 않습니다.
호라 아트로포스 , 가만히 끌어안고 기다리다가, 꾸물거리면서 신호를 보냅니다. 저기........
로빈 , 신호를 보내자 아차 싶은지 안고있던 팔을 놓아줍니다.
로빈:...미안.
호라 아트로포스:아, 아냐-! 사과 할 것 까지는 없어,
로빈 , 그말을 듣고 잠시 바라보다가 살짝 미소를 보입니다.
로빈:...그렇구나.
호라 아트로포스:...-계속 할까?
로빈:...더할 수 있겠어?
로빈 , 그리 말하며 얼굴을 가리킵니다.
호라 아트로포스:... ...
호라 아트로포스 , 손을 꼼지락거립니다.
로빈:... 난 괜찮아.
로빈 , 그리 말하며 한쪽으로 치우쳐진 머리카락을 옆으로 치웁니다. 치우쳐진 머리카락사이로 흐릿한 눈동자와 작지만은 않은 흉터가 어렴풋이 보인것도 같습니다.
호라 아트로포스 , 그 흔적을 하나하나 눈에 담으며 의문과 걱정을 품은 것도 잠시, 앞머리를 살짝 치우며 조심스레 이마를 맞대어 봅니다.
로빈:
=
:시야에 닿는 모든 곳이 애틋하고, 완벽하고, 더할 나위 없어서-......
로빈:...
로빈 , 이마을 맞대고 있다가 고개를 뒤로 뺍니다.
로빈:...비쥬...도 지금 할거야?
호라 아트로포스:....-
호라 아트로포스 , 붉어진 얼굴을 손으로 살짝 가리며 말합니다.
로빈 , 그 말을 듣고 CCTV를 가리킵니다.
로빈:...그 거짓말이 될까...?
호라 아트로포스:......
호라 아트로포스 , 우아아아 하는 소리를 내며 양 손으로 얼굴을 가립니다.
로빈:...여기까지 할까...?
호라 아트로포스:....
로빈:...글쎄.
호라 아트로포스:......
호라 아트로포스 , 고민에 빠집니다. 그치...아무래도 이대로 나가면 다시 들어가서 하고 오라 할 것 같지 ......
로빈:...간단하게 빨리 끝내자.
호라 아트로포스:...그으--래-..
로빈 , 호라에게 대충...비쥬랑 비슷하게 합니다.
로빈:
=
:낯간지러운 소리가 떨어지자, 괜히 뺨이 달아오르는 것 같습니다.
로빈:...
로빈 , 호라를 바라봅니다.
:거의 죽기 직전이래도 과언이 아닐 듯한 얼굴입니다.
로빈:...
로빈 , 이럴때... 어떻게 진정시켰을까...하는 생각을 하다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습니다.
:어머.
로빈:...
호라 아트로포스:아, 으, 아마? 응,-
호라 아트로포스 , 어버버 거리다가 후들거리며 일어납니다.
호라 아트로포스:그, 러니까, 마저할...까...?
로빈 , 그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리곤, 호라가 먼저할 것 같지는 않은지 먼저 고개를 빼 호라에게 짧게 입을 맞춘 뒤 바로 뒤로 물러납니다.
로빈:
=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지는 순간마저도 길고 긴 찰나처럼 느껴집니다.
로빈:
:불안감과 외로움에, 저도 모르게 맞잡은 손에서 익숙하면서도 낯선 기류가 느껴집니다.
로빈 , 호라가 보여준 능력을 떠올리며 잠시 손을 모으더니, 이내 자신이 들고다니는 부채형태의 바람을 만들어냅니다.
:생각했던 것 이상입니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보다는 확실하게 가능하다. 라고 서술하는 것이 옳을 지경입니다.
로빈:... 되...네.
호라 아트로포스:...-어?
호라 아트로포스 , 그제야 정신차리고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상황파악합니다.
로빈 ,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충동적으로 해본것이기에 부채형태의 무언가를 바라만 보고있습니다.
로빈:... 호라도... 해볼래?
로빈 , 그말을 하며 자신이 가지고다니는 부채를 건네줍니다.
호라 아트로포스 , 조심스레 부채를 건네받고, 로빈이 보여주었던 자세를 따라 부채를 휘둘러 강풍을 만들어냅니다.
호라 아트로포스:--!
로빈:...그러게.
호라 아트로포스:.... 어쩐지 능력이 더 강해진 것 같은 느낌도 들고...
로빈:그러네...
호라 아트로포스:(아) 으, 그, 아마?
로빈 , 고개를 끄덕입니다.
호라 아트로포스 , 잠깐 손을 꼼지락거리는가 싶더니, 로빈의 손을 꼭 잡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합니다.
로빈 , 손을 잡는 것을 바라보다가 따라 꼭 잡고 호라를 따라 갑니다.
:밖으로 나가기 위해 문 앞에 서면, 훈련실의 문은 부드럽게 열립니다.
애쉬 :둘 다 고생했어.
애쉬 , 두 사람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다독이고 미소짓습니다.
로빈:...네.
:애쉬와 연구원들은 딱히 무엇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묻지 않습니다.
로빈:...(이게 맞는...건가?)
:연구 보고를 마치고, 점심 식사부터 저녁 식사 사이, 자유시간지 주어졌습니다.
로빈:...
로빈 , 호라 툭툭
호라 아트로포스:(( 엄마야 ))
호라 아트로포스 , 암 말 없이 눈 동그랗게 뜨고 쳐다봅니다.
로빈:...이제 진정됐어?
호라 아트로포스:아, 응? 아마도? 그런 것 같은데-?
로빈:아까...너무 힘들어하는거...같길래...
호라 아트로포스:아-아냐! 괜찮았어! 그냥, 좀, 응...
호라 아트로포스 , 배시시 웃습니다.
로빈:...다행이네.
로빈 , 그리 말하며 잡고있는 손을 내려다 봅니다.
:호라 본인이 자각을 하고 있는건지, 아닌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주 잡은 손은 놓아질 생각이 없어보입니다.
로빈:...이제, 뭐할래?
호라 아트로포스:....음-...
로빈:친선전...
호라 아트로포스:말이 자유시간이지, 적응하게 도와주라는 늬앙스였으니까.
로빈:... 그럼...해볼...까?
호라 아트로포스:그럼 애들 불러볼게.
호라 아트로포스 , 휴대폰을 들고 토도도도 여기저기로 메시지를 보냅니다.
:두 사람은 다른 아이들에게 메세지를 보낸 뒤 운동장으로 향합니다.
로빈:
:아까 있던 일 탓에 정신머리가 흐트러진 탓인지, 처음 맞춰보는 합이라 그런건지, 영 합이 맞지 않습니다.
로빈:(4위...)
호라 아트로포스:좀 아쉽긴 해도, 재밌었다!
로빈 , 호라에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로빈:...난, 능력 알게된지...오래된건 아니라서...
호라 아트로포스:앞으로 자주 쓰다보면 금방 능숙해질거야.
로빈 , 그말에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로빈:...열심히, 할게.
호라 아트로포스:나도 뒤처지지 않게 열심히 해야지.
로빈:...응.
:그렇게 시간은 흘러흘러, 바야흐로 두번째 밤이 찾아옵니다.
로빈:많이...복잡하고... 일이 많았어... 사람도 많고... 처음보는 것도 많았는데... 싫지는 않았어. 좋다고 말해야하나...
:그런 기분 좋은 마음을 속에 꼭 품은 채, 당신과 호라는 서관의 지하로 향합니다.
로빈:
:띵.
:음식은 이미 차려져 있고, 개인의 앞접시가 있어 원하는 만큼 덜어 먹을 수 있는 구조입니다.
로빈 , 액자를 봅니다.
:알록달록한 하늘, 푸른 장미 아치, 검은 호수를 촬영한 사진입니다.
로빈 , 왼쪽부터 순서대로 봅니;다
:알록달록한 하늘의 사진입니다. 건물과 건물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과 새하얀 구름이 대조적입니다.
:공원에 설치된 조형물인데, 연인과 함께 손을 잡고 그 아래를 거닐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더군요.
:사진 속 호수를 바라보던 당신은 문득 불안함과 불쾌감을 느낍니다.
로빈:
로빈 , 테이블을 봅니다
:테이블마다 배치된 네임카드와 은식기가 있습니다.
로빈:...(이게 맞나 싶은 생각중)
로빈 , 음식을 봅니다
:라코타 치즈 샐러드와 토마토 두부 카프리제, 잘 녹은 치즈를 얹은 스테이크 정식, 흰 소스를 곁들인 연어 스테이크와 색색의 과일 스프링롤, 참치를 깍둑깍둑 썰어 채소와 상큼한 드레싱을 곁들인 샐러드, 콩 특유의 고소한 냄새가 나는 두유 스무디.........
로빈:(많다...)
로빈 , 주섬주섬 자신의 자리에 앉습니다.
:자, 그럼 맛있게 식사하도록 할까요?
:마지막, 디저트를 먹을 무렵에-.....
로빈:
:"진짜 ■■가 그렇게 말했어?"
로빈:
:저 두 사람, 11시의 페어- 그러니까, 예언의 타이머와 카운터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시간은 끊임없이 흐릅니다.
:그러니까-
호라 아트로포스:좀 흐릿해지지 않았어?
:시선의 끝은 당신의 목, 각인이 있는 곳에 닿습니다.
로빈:
:능력의 효율이, 출력이 떨어지고 있는 현실은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타이머는, 어떻게 여기냐와 별개로 단 한번도 능력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자신의 변화를 기민하게 눈치챌 수 있습니다.
로빈:
:너의 타이머를 봐. 저 애가 네 모든 걸 뺏어갈거야.
:글쎄요.
:그 표현이 딱 맞네요.
:이부자리를 사이에 두고, 눈과 눈이 마주칩니다.
:서로를 어떤 얼굴로 보고 있었던가요?
:"세계는 멸망하지 않아. 도밍게즈는 새 계절을 맞을거야. 그리고-....."
:길함과 불길함, 두개가 공평하게 저울 위에 놓여 있습니다.
로빈 , 평소의 무표정이었던 것과 달리 예상치도 못했던 일을 겪어서인지 혼란스러움을 감추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뒤에 이어질 일이 어떻게될지 몰라 두려움도 섞여있습니다.
로빈:
:카운터의 존재가 능력의 필요 때문이라면, 능력이 없어진 카운터만큼 쓸모없는 존재가 또 있을까요?
:파도처럼 고민이 휘몰아칩니다.
:건국 축제에서는 무조건 등장시키려 들테니, 그날이 온다면 아무리 숨기려 한들 들키고 말겠죠.
로빈:
:소등한 서관과 달리, 창 너머의 본관은 아직 불이 환하게 켜져 있습니다.
:혼자 선택하고 결론짓기엔 퍽 무거운 문제입니다.
로빈:...
호라 아트로포스:...어....떻게 할까?
로빈:... ...모르...겠어.
호라 아트로포스:... 말 안했다가 들키면 더 혼날지도 몰라.
로빈:...그렇...겠지...?
호라 아트로포스:...아...마도..?
로빈:...그럼... 지금... 찾아봐야하나?
호라 아트로포스:......일단 본관으로 한번 가볼까?
로빈:...우리끼리 해결할 수 있을...까.
호라 아트로포스:...... 가보자,
:두 사람은 DOT에 보고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하늘에는 하얀 별이 촘촘하게 박혀 있습니다.
:하긴, 이 시간에 본관에 방문하는 경우가 워낙 드무니, 그럴 만도 했습니다.
로빈:그으...
:장교의 이름을 대자 아, 하고 잠시 곤란한 기색을 보인 직원이 엘리베이터를 힐끔 바라봤습니다.
:다행이라고, 안도하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칼같이 다린 군복을 입은, 하인리히 장교입니다.
:식사를 하거나, 음주를 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인리히 장교:이런, 며칠 전에도 본 것 같은데. 하룻밤 새 많이들 컸군.
:시답잖은 농을 던지는 사이, 엘리베이터의 숫자판은 완전히 점멸합니다.
하인리히 장교:그래, 무슨 일로 찾아왔지?
:그는 두 사람의 얼굴을 하나씩 훑어봅니다.
로빈:...그으...
로빈 , 그렇게 말하며 호라를 한번 보다가 아까 있었던 일을 이야기합니다.
:상황 설명을 듣고서도, 장교의 눈초리는 그다지 심각해지지 않습니다.
하인리히 장교:어린 아이들이 걱정도 많기는.
하인리히 장교 , 허허, 하고 웃습니다.
하인리히 장교:아트로포스 양이 텃세라도 부리던가?
호라 아트로포스:- 그럴리가요!
하인리히 장교:농담이었다네.
:녹이 슨 청동색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납니다.
하인리히 장교: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을 걸세. 도밍게즈는 언제나 평화로울 거야.
:하인리히 장교의 시선은 집요하게 당신을 향합니다.
:능력의 주인인 타이머와 카운터조차 되찾을 방법을 몰라 발을 동동 굴렀건만.
하인리히 장교: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되돌아갈걸세.
하인리히 장교:시간마저도 자네들을 갈라놓을 수 없을 만큼.
:세계에는 충성을,
로빈:
:그나저나, 본관에 지하 2층까지 있던가요?
로빈:...
로빈 , 인사를 한뒤 호라의 손을 잡고 본관을 나옵니다. 그리곤 본관에 완전히 나왔을때 호라에게 물어봅니다.
로빈:...본관에
호라 아트로포스:.....아니?
로빈:...그래도...2층을 본것 같은데...
호라 아트로포스:... 사실 나도 봤긴 했는데...
로빈:...
호라 아트로포스:잘 모르겠어.
로빈:...그래도 안되면... 멀리 떨어져있어보기도...해볼래...?
호라 아트로포스:...-음...
호라 아트로포스 , 잠시 얼굴을 빤히 쳐다봅니다.
호라 아트로포스:그래, 정 안 돌아오면 한번 그래보자.
로빈 , 고개를 끄덕입니다.
로빈:...방으로 갈까?
호라 아트로포스:...응, 돌아가자.
:하루, 이틀, 며칠이 더 지났습니다.
:시간이 흐릅니다.
:기다리는 것은 초조했지만, 점차 익숙해졌습니다.
:문가에는......
리슬러 부관:리슬러입니다.
:정중한 목소리로 말한, 옅은 색깔의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넘긴 남자는 정장 차림새로 누런 서류봉투를 들고 있었습니다.
리슬러 부관:아시겠지만, 건국 축제가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를 꺼냅니다.
리슬러 부관:도밍게즈 건국 축제의 마지막 순서는 타이머가 등장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리슬러 부관은 서류봉투를 뒤적이며 물었습니다.
리슬러 부관:준비는 잘 되어갑니까?
로빈:...
리슬러 부관:아, 그리고, 축제 때 일정이 정해졌습니다.
:카운터의 존재가 발각되어선 안된다며 DOT 지부 밖으론 한 걸음도 못 내밀게 했으면서, 상당히 파격적인 '허가'입니다.
리슬러 부관:만약 누군가 인터뷰를 요청하거나, 이야기를 걸어도 되도록 답변하지 마십시오.
:당부를 마친 부관은 서류봉투의 입구를 엽니다.
리슬러 부관:저녁에는 전원 전시회에 참여할 겁니다.
:전시회?
:'시간의 흐름과 섭리를 담았습니다'. 그럴싸한 홍보 문구는 지나치게 유치했습니다.
리슬러 부관:도밍게즈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타이머 전시회인 만큼, 첫 번째로 관람하고, 이후 DOT로 복귀할겁니다.
로빈:...아니...요.
리슬러 부관:그럼, 다음에 뵙죠.
:그는 형식적인 인사를 남기고 교실을 떠납니다.
로빈:...
호라 아트로포스:(고민에 빠진 침묵2)
로빈:능력을...어떻게...할까...?
호라 아트로포스:그러게... 건국 축제 전에 돌아올지도 몰라서 불안한데,
로빈:응...
호라 아트로포스:....들킬지도...
로빈:... 같이 손 겹쳐서... 호라손이 위로 가게하면,,,같이 쓰는 것처럼...보이지 않을까?
로빈 , 손으로 시늉을 하며 말합니다.
호라 아트로포스:음- 그것도 괜찮겠다.
로빈:...응.
호라 아트로포스:바람은 눈에 안보이니까 꽃잎같은걸 좀 뿌려도 좋을것 같고-
로빈 , 호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호라 아트로포스:그러고보니까 능력으로 나뭇가지 자른 적도 있댔지?
로빈:...위험할...것 같은데. 그건...
호라 아트로포스:엣. 그런가...
로빈:... ...
호라 아트로포스 , 눈 반짝이면서 쳐다봅니다.
호라 아트로포스:정말?
로빈:...응.
호라 아트로포스:그건 내가 한번 고민해볼게, 그럼!
교사:늦어서 미안해요,
:수학 교사가 뒤늦게 교실의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교사:오늘은 3단원을 할 차례였죠?
:수학 수업은 유난히 지루하고, 점심시간 직전이기 때문에 귀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로빈:
:무슨 이상한 주문이라도 외는 것 같아요. 도통 귀에 들어오질 않네요...
:따끔! 스파크가 튀기더니, 시간의 각인이 화끈화끈 달아오릅니다.
:능력이 돌아왔어요!
로빈:
=
호라 아트로포스:방금, 그거... ?
로빈:...돌아온...것 같은데...
호라 아트로포스:...!
로빈:...아마?
호라 아트로포스 , 잠깐 선생님의 눈치를 보다가, 책상 밑으로 손을 내리고 건네옵니다. 장난친다고 오해받으면 곤란할거같애.
로빈 , 그것을 보고있다가 손을 잡아줍니다.
:손을 맞잡으면, 손과 손 사이로 온기 뿐만 아니라 능력이 스멀스멀 건너오는 것이 느껴집니다.
로빈:
=
:호라는 조용히 기대감에 찬 눈으로 당신을 바라보다가, 앞을 바라보기를 반복합니다.
:비로소 완전하게 충족된 기분이 듭니다.
:편안하고, 안정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로빈:...
호라 아트로포스:괜찮아--
호라 아트로포스 , 웃음 소리를 내며 안은 팔에 힘을 줍니다. 너 진짜 인형같은거 알아?
로빈 , 인형같다는 얘기에 잠시 멈칫하다가 호라를 따라 꾸욱 안습니다.
로빈:...몰라.
=
호라 아트로포스:-아, 그, 미, 미안!
호라 아트로포스 , 스르르 놓아주며 어버버거립니다.
로빈 , 그만해달라는 뜻은 아니였는데...하는 생각을 하며 손을 한번 쥐었다 폈다 하다 팔을 내려놓습니다.
호라 아트로포스:그, 음, 능력은 좀 어떤거같아?
로빈:...응. 괜찮아졌어.
호라 아트로포스:다행이다아--
로빈:...
로빈 , 고개를 끄덕입니다.
호라 아트로포스:그럼 일단, 밥 먹으러 가자-!
:두 사람은 점심을 먹고, 축제날을 위해 연습을 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매해 봄의 가운데, 4월 19일이면 도밍게즈의 건국 축제가 열립니다.
:깃발, 손수건, 우산......
:말랑말랑한 치아바타와 세 종류의 치즈, 구운 햄, 부드러운 스크램블 에그.
로빈 , 건강주스 호롭합니다.
:건강해지는 맛이네요.
로빈:...마셔야해.
호라 아트로포스:그치만--
로빈:...마시다보면 맛있어
호라 아트로포스 , 으으, 하는 표정을 지어냅니다.
호라 아트로포스:그렇게 되려면 한참 걸릴거같애.
로빈:...오래 안걸려. 꾸준히 잘 마시면 돼.
호라 아트로포스:...-
호라 아트로포스 , 남은 주스를 마저 쭉! 들이킵니다.
:주스를 마시고, 식사까지 이어갑니다.
리슬러 부관:다들, 오늘 나갈 건지 쉴 건지 생각 해보셨습니까?
:타이머들과 카운터들이 외출할지, 외출하지 않을지 확인하러 왔나보네요.
로빈:...
:맞아요, 모처럼이 외출인데다가, 건국 축제는 매년 한 번 밖에 돌아오지 않으니까요.
리슬러 부관:잊지 마세요. 군들은 타이머와 카운터고, 세계의 구원자지만 동시에 개인입니다.
:타이머가 어딘가를 나갈때마다, 무언가를 할 때마다 따라오는 이야기였습니다.
리슬러 부관:누군가 바깥에서, 군들에게 무언갈 요구한다면 어떻게 할 거죠?
로빈:...거절해야...하죠...?
:당신의 뒤를 이어 다른 카운터들도 대답합니다.
로빈:......
:그것들이 정말 우리를 위한 조언일까요?
:두 사람을 내려다보는 부관의 시선에는 별다른 동경도, 애정도, 호의와 영광, 감사마저도 들어있지 않습니다.
호라 아트로포스:...그렇게 할게요. 됐죠?
:그런 대답을 듣고나서야 만족한건지, 그가 작은 종이를 내밉니다.
로빈 , 받습니다.
:좋아요, 이러면 모든 조건이 충족되었군요.
:때 이른 장미 향기가 은은하게 밴 탓입니다.
로빈:...
:도심의 풍경은 화려하기 짝이 없습니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쏟아지고, 광장과 골목, 공원으로 흩어집니다.
로빈 , 신기하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보고있습니다.
로빈:...축제 오늘 처음... 와봤어.
호라 아트로포스:정말?!
로빈:언니랑 오빠가... 선물을 가져오긴했는데... 그것말고는...잘...
호라 아트로포스:( 세상에 )
로빈:(꾸닥)
호라 아트로포스:(곰곰 ...)
로빈 , 고개를 끄덕이며 광장을 가리킵니다.
로빈:그럼...저기 부터.
호라 아트로포스:좋아!
:흰 돌이 깔린 광장의 정중앙에는 커다란 시계탑과 분수가 있습니다.
로빈 , 호라를 옷깃을 잡으며 의식을 하는 쪽을 가리킵니다.
호라 아트로포스:(음-!)
로빈:...응.
호라 아트로포스:그럼 잠깐만 기다려!
로빈:...응.
:호라는 저만치에서 장미를 팔고 있는 사람에게 가, 무언가 이야기를 하나 싶더니, 파란 장미 두 송이를 받아옵니다.
로빈 , 장미를 받습니다.
호라 아트로포스:이제 이걸 꺾어서-
호라 아트로포스 , 오독, 소리를 내며 장미의 목 부분을 꺾어냅니다.
호라 아트로포스:분수에 던지고 소원을 빌면 끝!
호라 아트로포스 , 손에 장미를 고이 든 채 눈을 꼭 감고 소원을 빈 뒤, 장미를 분수에 던져넣습니다.
로빈 , 호라가 하는 행동을 보며 따라 장미의 목부분을 꺾어낸뒤 눈을 감고 소원을 빕니다. 그리곤 장미를 분수에 조심히 넣어둡니다.
:분수에 놓여진 장미들은 동동 떠다니며 분수를 파랗게 물들입니다.
로빈:...소원, 뭐 빌었어?
호라 아트로포스:빈 소원같은건 이야기 하는거 아니랬어,
로빈:..그렇구나.
호라 아트로포스:소원이 이루어지면, 그때 이야기 해줄게!
로빈 , 그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호라 아트로포스:이제 다른 곳도 가볼까?
로빈:응...
로빈 , 그리 말하며 골목쪽을 가리킵니다.
로빈:다음...저기...?
호라 아트로포스:좋아, 얼른 가보자!
:수도의 골목 곳곳에는 노점상이 열려있습니다.
:들어선 골목마다 시끌벅적하고, 맛있는 냄새가 가득합니다.
로빈:...
로빈 , 호라를 봅니다.
호라 아트로포스 , 눈을 마주치고, 갸웃, 고개를 기울입니다.
로빈 , 호라를 보다가 호라인형을 봅니다.
호라 아트로포스:-?
로빈 , 호라인형을 가리킵니다.
로빈:...사...달라고...하면 사줄...거야?
호라 아트로포스:....... 그으으--
호라 아트로포스 , 고민합니다. 그으으러니까아아아....
로빈:...아님...다른거라던가...
로빈 , 파란색 장미모양 목걸이를 가리킵니다.
호라 아트로포스 , 잠깐 고민하다가, 끙, 하는 소리를 냅니다.
호라 아트로포스:둘 다 사자,
로빈 , 고개를 끄덕입니다.
로빈:... 목걸이는 두개...사서... ...같이...할래...?
호라 아트로포스:-!
로빈:...오빠랑 언니가...항상 그렇게 사왔어서...
호라 아트로포스:그럼 기왕 사는거, 안에 사진 넣을 수 있는 거로 사자.
로빈 , 고개를 끄덕입니다.
:두 사람은 사이좋게 거리를 돌아다니며, 물건도 사고, 간식도 사먹었습니다.
로빈:...이렇게 많이 사도...되나...?
호라 아트로포스:괜찮아! 그동안 안쓰고 모아둔건 다 이 날을 위해서니까!
로빈:... 용돈...많이 받는 편이야...?
호라 아트로포스:뭐 부순다거나 잃어버린다거나 하지만 않으면?
로빈:...
호라 아트로포스:좋아!
:산책하기 딱 좋은 공원입니다.
:스테인드글라스 너머로 떨어지는 색색의 빛은 꽤 장관입니다.
로빈:오...
로빈 , 호수를 봅니다.
:축제가 아니라도 유명한 관광지로 꼽히는 코마니 호수입니다.
:코마니 호수가 유명한 것은, 건국 축제 시즌이 되면 수면의 색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축제 전야부터, 호수에서 추모식이 거행됩니다.
:봄이 찾아오는 시기, 희고 노란 들꽃이 바람을 따라 고개를 흔드는군요.
:언젠간 그 추모의 당사자가 될 두 사람의 감상이 어떨지는 모르겠군요.
로빈:...
호라 아트로포스:글쎄다... 뭔가 미묘한 기분이긴 해...
로빈:...하는것도...나쁘지 않지.
호라 아트로포스:..-그래, 그럼!
호라 아트로포스 , 로빈의 손을 꼭 잡고 타박타박 걸어서, 종이를 파는 노인에게 다가갑니다.
로빈 , 호라의 발에 맞춰 걷습니다.
:얇고 흰 종이를 차곡차곡 쌓아둔 사람은 타이머인 호라를 알아보지 못하는 눈치입니다.
로빈 , 주섬주섬 꽃을 접어봅니다.
로빈:
호라 아트로포스:
:어정쩡하게 꽃을 접고 있으면, 옆에서 노인이 반듯하게 잘 좀 접어보라며 훈수를 둡니다.
:"딱 죽을 뻔 했다니까."
로빈:1시가...물...이었나...?
호라 아트로포스:응, 1시면 물이지.
로빈:...바람?식물?
호라 아트로포스:(우으음)
로빈:물을 얼려서...?
호라 아트로포스:음-....
로빈:...그렇지.
로빈 , 꽃을 다접었으나...어딘가 엉성한 꽃이 완성되었습니다.
:호라가 만든 꽃도 어딘가 엉성한 모양새입니다.
로빈:...종이접기 몰라...
:찢어지진 않았으니까요.
로빈 , 호수쪽으로가 종이꽃을 띄워보냅니다.
:당신과 함꼐 호라도 종이꽃을 띄워보냅니다.
로빈 , 옆을 슬쩍봤다가 아이가 난간에 매달려있는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다가가 아이를 잡습니다.
로빈:...(뒤늦게 행동자각해서 잠시 멍함.)
:아이는 어정쩡하게 당신에게 붙잡혀 난간에서 내려옵니다.
로빈:( )
:"옆에 있는 그 사람, 누구인지 나 알고있어요."
:...
로빈:......
로빈 , 호라한번봤다가 자기손을 봤다가 다시 호라를 봅니다.
로빈:...
호라 아트로포스:..그으....
로빈:...응.
:축제 곳곳을 둘러보다보면, 하늘이 슬금슬금 어두워지기 시작합니다.
로빈:...재미...있었어.
:재미있고 즐거운 시간이었어도,
로빈 , 돌아갑니다.
:시곗바늘이 아래로 비스듬하게 고개를 기울이는 때.
리슬러 부관:타이머 展은 내일, 축제 마지막 날에 정식 개장합니다.
:무해한 국민이라도, 타이머에게 집요한 팬심을 드러내는 경우가 적지는 않습니다.
리슬러 부관:공식 일정이라곤 했지만, 견학에 지나지 않으니 가볍게 다녀오면 됩니다.
:개인으로서! 무슨 말인지 이해했냐고 묻는 시선이 뺨에 달라붙습니다.
로빈:... ...
:설명을 마치고, 리슬러 부관과, 기다리고 있던 장교와 군인들이 먼저 앞서 걷기 시작합니다.
:"하인리히 장교도 있어."
:"그러게. 저런 교복도 있었나?"
:하긴, 그렇지 않다면 더 이상하죠.
:그럴 수밖에 없죠!
:호라의 곁에 섰던 당신에게도 성큼, 장미향이 다가옵니다.
로빈 , 머뭇거리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조심스럽게 받아줍니다.
호라 아트로포스 , 그런 로빈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마찬가지로 장미를 받아듭니다.
:그것을 계기로, 마치 누군가 총성을 울린 것 마냥 사람들이 하나둘 선물과 이야기를 안겨주기 시작합니다.
:인산인해. 그야말로 사람으로 이루어진 바다에서 낱말과 단어로 구성된 파도가 몰아쳤습니다.
:대답을 바라지 않는 일방적인 질문과 호의가 꽃가루처럼 허공을 떠다녔습니다.
:꽃향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는 것처럼 시선의 일부가 카운터를 향합니다.
리슬러 부관:잠시만요.
:기계적으로 날아오는 질문들에 대응하는 그는, 점점 포위망을 좁혀오던 사람들을 물리치고 눈짓합니다.
로빈 , 호라의 손을잡고 그자리를 벗어납니다.
:흰 돌이 깔린 바닥을 밟습니다.
리슬러 부관:받아주지도 말고, 대답하지도 말라고 했잖습니까.
:한 발 뒤에서 쫓아온 리슬러 부관이 한숨을 섞어 책망합니다.
로빈:... ...죄송...합니다.
로빈 , 부관의 말에 위축된듯 고개를 떨구며 말합니다.
:골목을 완전히 내려가고, 광장을 가로지르는 대신, 옆의 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합니다. 흘깃, 당신을 잠깐 바라보았던 리슬러 부관이 입을 엽니다.
리슬러 부관:세계가 군들에게 바라는 것은 모두 이상입니다.
:...
:순식간에 지나갔지만요.
로빈:
:어쩐지 무척 그리운 풍경이었습니다.
:손목시계를 확인한 리슬러가 이 속도라면 딱 맞춰 도착하겠다며 앞서 걷습니다.
:전시관은 금세 모습을 드러냈는데, 지나치게 익숙한 생김새였습니다.
하인리히 장교:이런, 생각해보니 주인공들이 먼저 들어가도록 양보를 해야겠었군.
:그가 옆으로 비켜서자, 아까 나섰던 문과 꼭 닮은 문이 보입니다.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공간은 단절되지 않는다.
:열린 문 너머로 들어서면 마찬가지로 익숙한 로비가 펼쳐집니다.
:뒤에서 어른들이 느긋하게 따라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립니다.
:문 너머의 상대.
:기둥 아래 진 그림자가 유난히 캄캄합니다.
하인리히 장교:이 그림은 세계를 상징하기에 앞서 하루를 상징한다네.
:뒤따라오던 장교가 아는체를 합니다.
:문에는 각각 패널이 붙어있습니다.
로빈 , 빤히 바라보다가 1부터 순서대로 가기로 하고 전시관 1로 갑니다.
:천장과 벽을 모두 남색으로 칠한 곳에는 흰 석고로 빚은 조각상들이 서있습니다.
로빈:
:전시관 곳곳에 배치된 구조로 시곗바늘의 방향을 따라 걸으면 차례대로 살필 수 있는 구조입니다.
로빈:
:당신의 옆에 서있던 호라가 탑을 한 번, 당신을 한 번 보더니 입을 엽니다.
호라 아트로포스:이 조각상, 책에서 본 오벨리스크랑 똑같이 생겼다. 그치?
로빈 , 곰곰히 떠올립니다.
로빈:기억...이...잘 안나...
호라 아트로포스:음- 그럴 수도 있지.
:오벨리스크의 그림자가 바닥으로 드리우면 꼭 시침같다고 느껴집니다.
:제 7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상징하는, 유일하게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흩날리는 조각상도 있었고, 제 8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상징하는, 꿈을 꾸듯 눈을 감은 조각상도 있었으며,
로빈:
:호라도, 당신도 전혀 닮지 않았습니다. 그저, 세계가 바라고, 열망하는, 가장 완벽한 구원자의 모습이 그곳에 서 있을 뿐입니다.
로빈:
:아슬아슬하게 앞을 막는 것에 부딪히지 않았습니다.
로빈:
로빈 , 전시관 2쪽으로 갑니다.
:전시관 2의 내부는 어두컴컴하기 짝이 없습니다.
:얼핏 스쳐본 영상에는 낯익은 얼굴이 담겨있습니다.
로빈:
:당신과 호라의 모습입니다.
로빈:( )
:"네... 안녕하...세요... 제가... 그... 카운터...? 입니다..."
로빈:(내...사생활...(흐릿))
:침해당한 사생활에 경악하는 것은 호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인리히 장교:타이머와 카운터의 일거수일투족은 늘 관심을 끌지..
:같은 말이나 하고 있습니다.
로빈:(전 하루이틀인데요...)
로빈 , 전시관 3으로 갑니다.
:턱없는 문을 넘어서자, 전시관 3의 내부가 훤히 보입니다.
로빈 , 액자들을 봅니다.
:흰 액자는 손바닥 두개를 합친 크기입니다.
:역대 타이머.
하인리히 장교:이곳에는 타이머의 사진이 걸릴 예정일세.
:천장이 유난히 높더라니, 1대, 2대쯤 되는 이들의 얼굴은 까마득해서 보이지 않을 지경입니다.
:아래쪽의 빈 액자들에 시선이 닿습니다.
:지금 살아가는 이 인생도 결국... 당장 내일, 새로운 부품으로 갈아치워질지도 모르는 운명이라는거에요.
로빈:...
로빈 , 잠시 액자를 바라보다가 전시관을 나옵니다.
로빈:
:전시관을 모두 살피고, 돌아 나오면, 아까는 미처 보지 못했던 문이 하나 있습니다.
:돌아가겠다고 고집부린들, 통하지 않을겁니다.
:지금, 우리가 가장 아름다울 때를 만끽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하인리히 장교:자네들, 거기서 뭐 하고 있는건가?
:장교가 우리를 부른 것은.
:아치문을 돌아보자,
하인리히 장교:거긴 아무것도 없어. 뭣들 하나, 돌아가야지.
:흰 벽이 시야를 가립니다.
:그러니까, 모든 타이머와 카운터들이.
로빈:
:관람은 끝났고, 조각에 불과한 타이머와 카운터에게 이별을 고할 때입니다.
:여름도 뭣도 아닌 계절에 핀 장미는 그야말로 불가능한, 기적의 상징이었어요.
:우연일까요?
로빈:...
호라 아트로포스:... 아까 그거 뭐였을까?
로빈:...그러게.
호라 아트로포스:바로 들어가볼걸.
로빈:...그러게.
호라 아트로포스:우리가 특별하니까?
로빈:...그런가?
호라 아트로포스:우리는 타이머랑 카운터잖아.
로빈:......
호라 아트로포스:나도 가끔은 그렇게 생각하긴 하는데...
로빈:...
로빈 , 말없이 호라의 옆에 붙습니다.
호라 아트로포스 , 잠깐 빤히 바라보다가 살며시 웃으면서 기대듯이 따라붙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주고 받은 두 사람은...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다음 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렌지 마멀레이드처럼 윤기가 도는 주황색으로 변해가고-
:오르내리는 흰 차양이 비스듬하게 하늘을 가립니다.
:어느 곳이랄 것 없이 빈 자리를 찾아볼 수 없을 지경입니다.
:인이어를 귀에 걸고, 마이크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이런저런 상황을 살핀 스태프 하나가 우리에게 묻습니다.
로빈 ,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입니다.
:"신호하면 제 0시 페어부터 순서대로 나오면 돼요."
:모두가 하나같이, 이 화려한 쇼를 완벽하게 성공시키려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거든요.
:무대로 올라가는 문을 통해 환한 조명이 떨어집니다.
호라 아트로포스:... 역시 긴장된다.
로빈:...잘할 수 있을거야.
호라 아트로포스 , 짧게 심호흡합니다.
호라 아트로포스:어차피 해야하는거면, 최고를 보여주고 싶어.
로빈:...
로빈 , 호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로빈:...열심히할게.
:서로 각오의 말을 짧게 주고 받았을 때,
:익숙하게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로빈 ,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신뒤 호라의 손을 잡고 올라갑니다.
:무대 위로 걸음을 옮기자, 숨 막힐 것 같은 광경이 펼쳐집니다.
:타이머가 부관을 들였다더라, 하는 입소문이 돈 탓인지 그다지 부정적이진 않지만....
로빈:
:도망치고 싶어요!
:꼭, 괜찮을거라고 말해주듯이.
:당신이 손에 든 부채와, 호라의 손에 들린 바람의 부채.
:그 이름을 증명하는 능력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존재에, 사람들은 모두 시선을 빼앗겼습니다.
:매해, 이 쇼맨십의 사회를 맡아오던 직원입니다.
호라 아트로포스:안녕하세요! 제 7시의 타이머, 바람의 타이머인 호라 아트로포스라고 합니다!
호라 아트로포스 , 몸을 쭉 굽히며 90도 인사합니다.
:가벼운 인사가 끝나고 나면, 사회와 호라는 당신에게 시선을 돌립니다.
:객석이 술렁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자, 우리의 새로운 구원자인 카운터. 마찬가지로 직접 자기 소개를 해줄 수 있을까요?"
로빈 , 로빈은 마이크를 받아드는 순간까지 손을 떨고있습니다. 하지만 무대에 올라오기전, 하기 싫다고 한 말과 달리 눈 한 번 깜박이는 사이, 평소에는 볼 수 없는 미소를 지어보이며 마이크에 대고 말합니다.
로빈:안녕하세요. 제 7시 바람의 카운터, 로빈이라고 합니다.
로빈 , 그말을 하며 짧게 묵례를 합니다.
:호라의 이름을 연호하던 외침 사이에, 당신의 이름이 자연스레 섞어들었습니다.
호라 아트로포스 , 질문을 듣고 잠시 로빈과 눈을 마주쳤다가, 마이크에 대고 말합니다.
호라 아트로포스:인사하기 전엔 좀 걱정스럽기도 했고, 신기하기도 했어요.
로빈 , 잠시 머뭇거리다가 눈을 한번 꾸욱 감았다 뜨며 말합니다.
로빈:...처음 DOT에 왔을때부터 계속 이야기로만 듣던 파트너를 직접 만나게 되니까... 새롭고, 기분이 묘했어요.
:두 사람의 대답이 끝나고, 이어서 다음 질문이 넘어옵니다.
로빈:...
:"음음, 좋아요. 훌륭한 카운터의 표본이군요. 그럼, 각자에게 파트너로서, 점수를 매긴다면 몇 점인가요?"
로빈:...몇점 만점으로요...?
:"100점 만점으로 한번 해볼까요?"
호라 아트로포스 , 그 말을 듣자마자 200점이요! 하고 대답합니다.
로빈 , 그말을 듣고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다가 머뭇거리더니 이내 저도...200...점...이요. 하고 대답합니다.
:"어머나~ 정말 멋진 답변들이네요! 그럼,"
로빈:...네에...?
호라 아트로포스:--?!
호라 아트로포스 , 확 얼굴이 빨개집니다.
호라 아트로포스:그, 그게, 저기--
로빈:... ...
로빈 , 침묵합니다.
:두 사람이 곤란해하는 것 같자, 사회자는 하하, 하는 웃음소리를 냅니다.
:이제 남은 순서를 기다릴 뿐입니다.
:누군가 내려오면 누군가 올라가고, 능력이 무대 위를 환하게 장식하고, 사람들의 환호성과 연신 쏟아지는 익숙한 이름들을 듣다가, 시시콜콜한 농담 따먹기와 QnA가 이어지는 식입니다.
:밤보다 안온하고, 검정보다 진한 어둠이 완벽히 무대에 내려앉았을 때,
:그리고 ...
로빈:
:대답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로빈:
:... ...
:붉은색 별이에요.
:산 사람도, 죽은 것들도, 움직이지 않고, 살아있지 않은 모든 것들마저......
:세계의 종말이라기에도, 축제의 마무리라기에도 어울리지 않는 고요함이었습니다.
로빈:......
호라 아트로포스:...... 이게...
:다른 타이머와 카운터들을 보며 말하지만, 그 누구도 웃고 있지 않습니다.
호라 아트로포스:...
호라 아트로포스 , 겁 먹은 표정으로 이곳 저곳을 돌아봅니다. 로빈의 손을 꼭 잡은 채로.
로빈 , 그런 호라를 보며 따라 이곳저곳 돌아봅니다.
:이곳저곳을 둘러보아도 실마리는 커녕, 공포심만 커져갑니다.
로빈:...괜찮아?
호라 아트로포스:......
호라 아트로포스 , 입술을 꾹 깨물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로빈:...
로빈 , 목소리에 떨림이 느껴지자 호라를 안아주며 등을 토닥여줍니다.
로빈:진정해. 괜찮을거야...
호라 아트로포스 , 꽉, 마주 끌어안고 심호흡합니다.
로빈 , 최대한 호라를 진정시킵니다.
호라 아트로포스:... ...
로빈:...다행이다.
로빈 , 떨리는 손을 꽉 잡아줍니다.
호라 아트로포스:...이제...
로빈:...
로빈 , 잠시 말 없이 곰곰히 생각해봅니다.
로빈:...숙소에 가서 자볼까...? 자고 일어나면 꿈에서 깬것 처럼...다시 돌아올 수도 있으니까.
호라 아트로포스:......응, 그래, 그러자, 어쩌면, 다 꿈일지도 모르고....
로빈:...일단, 돌아가자.
:두 사람은, 숙소로 돌아가 잠을 청하기로 했습니다.
:아침이 왔습니다.
:무구하고 기쁨에 찬 얼굴이 생생합니다.
:혹은, 생생하게 움직이며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지도요.
:시간은 왜 멈췄을까요?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떠들던, 일어날 리 없다고 부정한 세계 멸망.
:타이머와 카운터로서, 무언가 할 수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로빈:
:아치문을 넘어야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전혀 다른, 세계의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로빈:
:전시관의 모습은 지나치게 익숙한 생김새였습니다.
로빈:...
호라 아트로포스:본관? 거긴 갑자기 왜?
로빈:...거기에 가야할 것 같아.
호라 아트로포스:......(으음-?!)
호라 아트로포스 , 고개를 갸웃거리다가도, 금세 자세를 고쳐 끄덕이곤 말합니다.
호라 아트로포스:좋아, 한 번 가보자.
:...
:언제나 그렇듯, 점 없이 완벽하기만 한.
:엘리베이터입니다ㅏ.
:우연인가,
:들어오라는 것처럼, 문을 닫지 않고 내내 그렇게 서 있을 뿐입니다.
호라 아트로포스:... ... 다른 애들도 불러와야 할까?
로빈:...부를까?
호라 아트로포스:DOT의 시설은 엄청 좋으니까.
로빈:...대려오자. 우리끼리만 가기에는...좀
:두 사람은 다른 타이머와 카운터들을 불러모읍니다.
:.... 몇 층으로 가야하죠?
로빈:...
:어떤 위화감이 움틉니다. 능력을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잠잠하던 그것들이 요동칩니다.
:엘리베이터의 안내판에는 정확히 B2, 지하 2층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로빈:
:천천히, 천천히, 엘리베이터의 도르래가 소리 없이 움직이고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띵,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립니다.
:병원이라기엔 지독하게만 느껴집니다.
로빈:...?
:한걸음, 앞으로 내딛자 금세 주변이 환해집니다.
:어느 것 하나 수상쩍기 짝이 없습니다.
로빈 , 유리관을 봅니다
:천장에 닿을 듯 높이 선 원형 유리관에는 모두 정체불명의 액체가 꽉 차 있습니다.
:마침 수도 딱 14개고요.
로빈:
:네임태그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숫자 몇 개가 적혀 있습니다.
:네, 당신이, 그리고 그들이 DOT에 처음 발을 들였던, 바로 그 날짜들입니다.
로빈:... ...
로빈 , 컴퓨터를 봅니다
:엘리베이터와 센서들이 작동하기에 기대했는데, 컴퓨터는 작동하지 않습니다.
로빈:...
로빈 , 그냥 화면만 한번 살펴봅니다
:화면 보호기가 작동되던 모습 그대로 멈춰있습니다.
로빈 , 연구원을 봅니다
:어쩐지 얼굴이 낯익더라니.
로빈:...아.
로빈 , 책을 봅니다.
호라 아트로포스:...애쉬-?
로빈:
호라 아트로포스:
:호라의 도움을 받아 애쉬가 들고 있던 책을 빼앗았습니다.
로빈:
:확실한 것은, 연구원이 연구실에서 읽을 법한 책은 아닙니다.
로빈:...
로빈 , 원통을 봅니다
:빛나는 원통은 단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로빈:
:혹시나 싶은 마음에 책을 넘기며 이 물건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고, 알아 냈습니다.
로빈:
로빈 , 고민에 빠진 표정입니다.
로빈:...
로빈 , 뇌보관통의 내용을 봅니다.
:뇌 보관통의 내용을 보기로 마음먹고, 그것을 조작합니다.
로빈:
=
:...
:그 목소리는 예언의 타이머가 들었던 예언가 똑같았고, 당신은 다음에 올 문장의 정체를 알고 있습니다.
:자의 인가요, 타의 인가요.
:스스로 빚어낼 것이기에.
:말하지 않아도 알겠죠.
:내가, 너를 위해 예비된 운명이었던거야.
로빈:... ...
로빈 , 넋이 나간 상태로 화면을 바라보고만 있습니다.
호라 아트로포스:......저기-...
호라 아트로포스 , 막상 불러놓고, 말을 이어가지 못합니다.
로빈:... ...
로빈 , 깊은 한숨을 쉽니다.
로빈:...그래. 처음부터... 제대로된 나라는 건... 있지도 않았어...
호라 아트로포스:...로빈-...
호라 아트로포스 , 입을 몇 번 벙긋거리다가 조심스레 손을 얽어옵니다. 괜찮냐고 물어도.... 안 그렇겠지?
로빈 , 그것을 보고 호라를 바라봅니다. 허망하면서도 어이가 없는 듯한 표정입니다.
로빈:... 괜찮아.
호라 아트로포스:... ...
호라 아트로포스 , 어영부영 이야기를 채 끝맺지 못하고, 고개를 느릿하게 숙입니다.
로빈 , 그것을 보고 잠시 생각하더니 머리를 쓰다듬어줍니다.
로빈:진짜, 괜찮아.
호라 아트로포스:......
호라 아트로포스 , 기어코 저도 모르게 눈물을 뚝뚝 흘리고, 훌쩍이기 시작합니다.
로빈 , 그것을 보고 호라를 끌어안고 토닥여줍니다.
호라 아트로포스:...-미안해,
로빈:... 괜찮아. 아직 어리잖아. 나나... 너나.
로빈 , 호라를 충분히 토닥여주면서 위로 해준뒤, 진정한 것을 보고 철제문을 확인하려갑니다.
:단단히 잠겨있는 철제 문입니다.
로빈 , 아무런 거리낌없이 애쉬 주머니를 뒤적여봅니다.
:ID 카드와 담배 한 갑, 라이터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로빈 , ID카드랑... 라이터 줍줍하고 철제문으로 가 카드를 사용합니다.
:띡, 소리를 내며 카드를 인식한 문이 스르르 열립니다.
로빈 , 캐비넷 엽니다
:캐비넷 안에는 전 세대 타이머의 시체가 들어있습니다.
로빈:
로빈 , 병을 봅니다.
:선반에 세워진 유리병에는 끈적한 투명 액과 함께 이상한 것들- 눈동자라던가, 내장의 어딘가, 혹은 뼈 같은 것들이 들어있습니다.
로빈:
:참담함에 시선을 들자, 천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로빈:
:...
:이번엔 또,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려는 걸까요?
로빈 , 아치문을 바라보다가 그곳으로 들어갑니다.
:기적과 같은 존재가 기적의 아래를 건넙니다.
:분명히, 수면의 색이 밝아옵니다.
:꽃가루가 흩날리고, 사람들이 환호하며 웃고 떠듭니다.
로빈:
로빈 , 옆머리카락을 치우고 다시봅니다.
로빈:
:...아니, 딱 하나 다른 점이 있습니다.
:본능적으로 시선이 위를 향합니다.
:시계의 바늘을 움직이면 무언가 달라지지 않을까. 시선이 바삐 오갑니다.
로빈 , 시곗바늘을 보다가 호라를 바라봅니다.
로빈:시계의 바늘을 움직이면, 다시 돌아올 것 같아.
호라 아트로포스:......
호라 아트로포스 , 눈을 느리게 감았다 뜨며 심호흡합니다.
호라 아트로포스:... 돌려놓고 싶어?
로빈:음.
호라 아트로포스:왜?
로빈:나는, 만들어졌지만.
호라 아트로포스:... ...
로빈:괜찮아.
호라 아트로포스:......
호라 아트로포스 ,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가, 주춤하더니 다시 입을 닫습니다.
로빈:대신, 계속 나랑 같이 있기로 약속해줘. 응?
로빈 , 그렇게 말하며 새끼손가락을 들어보입니다.
호라 아트로포스:응, 물론이야,
호라 아트로포스 , 새끼손가락을 걸며, 울음기 섞인 표정으로 웃으며 약속합니다.
로빈 , 잠시 걸고있는 상태를 유지하다가 손을 놓고 시곗바늘을 움직입니다.
:바람이 멈춘 바늘을 떠밉니다.
:어제와는 분명히 다른 크기의 달과 다른 위치의 별이 머리 위에 찾아옵니다.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구원자의 이름을 부르짖고, 두 팔을 벌려 우리를 환영합니다.
:진실이 얼마나 비참하고, 끔찍할지언정......
Chapter 1. 시계 바늘의 방향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사람들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1년은 366일이 되어버렸고, 하루의 여백은 온전히 우리의 것입니다.
세계는 당신에게 구원받았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누구라고 설명하면 좋을까요, 살면서 무수히 많이 들어보았을 이름의 주인, 도밍게즈의 구원자, 사람이 사랑하고 시간이 선택한 - 타이머,
오늘부터 당신의 파트너가 될 호라 아트로포스를요.
이름을 떠올려보는 것 만으로도 미묘하게 기분이 들뜹니다.
이상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사실, 얼마전부터 당신의 삶에는 이상한 일만이 가득했습니다.
기준치: | 70/35/14 |
굴림: | 93 |
판정결과: | 실패 |
아무 일 없이 지나갔던 12살의 생일과 달리, 시간, 운명... 혹은 이름 모를 무언가가 당신을 붙잡는 것처럼,
각인을 따라 서늘한 감각과 희미한 열감이 두드러졌습니다.
당신이 거울을 바라보았을 때, 그곳에는 유일한 구원자, 타이머만이 가질 수 있는 시간의 각인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눈을 몇번이고 깜빡여도 사라지지 않았죠.
직접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 그 각인을 부모님에게 보여드렸던가요.
걷는 길엔 바람이 일렁이고, 닿는 물건 끝엔 공기가 모여들었었죠.
연락을 받고 도착한 담당자들은 저들끼리 무어라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당신을 DOT의 건물로 데려갔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 모두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죠.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자를 보는 양 황망하고, 황당함을 가득 담아 깜빡이던 눈꺼풀과, 다물지 못하던 입술 사이로 새던 신음소리......
"세계를 구원할, 새로운 구원자가 깨어났군.”
익숙한 얼굴이었어요.
그도 그럴게, DOT의 장교이자 실질적인 책임자로 종종 TV에도 얼굴을 비치던 사람이니까요.
장교를 비롯한 그 누구도 당신의 자격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에게 새겨진 두 자리의 숫자- '07'은 도밍게즈에서 그토록 절대적이거든요.
그리하여-
가끔은 집보다 나았고, 가끔은 집으로 가고 싶어졌었지만,
도밍게즈는 세계 멸망의 소문에 시달리고 있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DOT가 당신을 놓아줄리가요!
하루, 이틀, 사흘-......
시간은 흐르고, DOT에서의 생활은 평이했습니다.
당신의 존재는 호라에게도 비밀에 부쳐졌습니다.
정확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타이머를 혼란케 하지 않으려는 조치라더군요.
당신은 연구원들이 머무는 동관에서, 사무원의 질문에 대답하거나 연구원의 신체검사 따위에 응하는 것을 제외하면 쭉 혼자였습니다.
그도 그럴게, 아주 가까이, 바로 너머에 머물고 있었는 걸요.
... ...
기다렸다는 것처럼 타닥타닥, 바닥을 밟는 소리가 경쾌하게 복도를 가르고,
"왔어요? 저쪽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하고, 안내데스크에 앉은 직원이 상냥하게 건네는 안내가 문턱 너머로 들립니다.
호라가 그 복도를 건너 당신에게 오는 동안, 당신은 무슨 생각을 했던가요,
세계가 예비한- ... 운명을 마주하기 직전에!
형식적인 노크와 함께 14회의실의 문이 열리고, 익숙한 얼굴들이 들어섭니다.
도밍게즈의 구원자, 시간이 선택한 타이머.
어떻게 그의 얼굴을 모를 수 있겠어요?
그러나 당신이 그를 알아본 것은 눈에 익은 얼굴이라는, 그저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깜빡, 깜빡.
그래요, 분명 낯익은 얼굴이에요.
낯익기 짝이 없어요.
도밍게즈의 국민으로 태어난 이래 단 한 번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본 얼굴이었으니까.
TV도, 신문도, 휴대폰 속 무수히 많은 게시글마저 그를 주목했는걸요.
그러니, 하나도 특별할 것 없는 대면이건만.
이토록 그 '존재'에 시선을 빼앗긴 것은?
정반대에 서있는 사람에게서 도저히 시선을 뗄 수 없습니다.
누군가가 그러라고 명령한 것도 아닌데, 밑바닥부터 가장 높은 곳에 이르기까지,
모든 감각과 기분, 생각과 언어, 감정과 본능이 그곳으로 향합니다.
기준치: | 70/35/14 |
굴림: | 48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아, 그래요.
당신은 운명이 안배한 일련의 사건을 따라 새로운 구원자가 되었고, DOT에 도착해, 기어코 눈 앞의- 호라를 만나게 된거에요.
얼굴을 보자 새삼스럽게 사람들이 어째서 '운명'이니 '파트너'라느니 거창한 칭호를 붙여댄건지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기묘한 이끌림 사이에서, 그럴 줄 알았다는 웃음소리가 가볍게 새어나옵니다.
웃음소리는 방아쇠를 당기고, 지나간 기억을 꿰뚫습니다.
그야,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도 장교는 비슷하게 웃었으니까요.
당황스럽고, 놀랍고, 이끌리거나 밀어내거나, 도망가고 싶었을지도 모르는, 수많은 기분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쓸려가길 반복하겠죠.
기준치: | 65/32/13 |
굴림: | 31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호라의 목에 새겨진 각인이 눈에 띕니다.
당신의 것과 꼭 같은 곳에 있는, 똑같은 두 자리의 숫자.
그가 당신의 운명이자, 단 하나뿐인 파트너라는 증명.
고작 숫자에 불과하건만 - ......
하인리히 장교는 익숙하게 타이머들에게 카운터들을, 카운터들에게 타이머들을 소개합니다.
미리 설명을 들은 당신과 달리, 호라는 처음 듣는다는 것처럼 눈을 크게 뜨고 놀란 기미를 숨기지 못합니다.
설명이 지나치게 단촐하군요.
하인리히 장교는 타이머들의 당황한 얼굴을 한껏 즐기고 난 후에야 제대로 된 설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의 각인이 드러난 후, DOT로 부터 익히 들어왔던 익숙한 설명입니다.
물론,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을, 일어나서도 안될 일이지.
하지만, 예언의 탑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야. 이미 세간에서는 반쯤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어.
무슨 뜻인지 알겠나?
이건, 아주 좋지 못한 조짐일세.
멸망이 실재한다고 해도 문제지만, 그렇지 않는다고 하면 더 문제거든.
그렇지 않은가?
세계는 무너질테고, 점차 아수라장이 될 테지.
처리하기 곤란한 것들이 넘쳐날거야.
그래서 우리는 이전부터 세계 멸망에 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네.
어떻게 하면 이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하고 말이야.
세계는 멸망하지 않아.
도밍게즈는 새 계절을 맞을거야.
그리고, 눈 앞의 이가 그 증거일세.
눈과 귀가 밝고 입이 무거운 데다...
미래를 바꾸는 방법을 함께 점지받곤 했거든.
많은 이들이 세계 멸망의 예언이 예언의 탑으로부터 시작한 줄 알지만, 천만의 말씀.
DOT는, 타이머는 이미 그 미래를 알고 있었네.
그 예언이 퍼질 것도, 세계가 혼란스러워질 것도, 그리고, 새로운 구원자가 나타날 것 마저도.
바로 이들이지.
정확히 열네 명, 자네들과 같은 각인이 새겨져 있어.
우리는 이들을...... '카운터'라고 부르기로 했네.
이것은 당신도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세계를 구원하는 역할에 도취된 것인지, 예언의 ㅌ탑을 한 방 먹일 즐거움에 심취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인리히 장교는 하나씩, 카운터의 시간과 이름을 소개합니다.
제 0시부터 제 13시까지, 총 열넷의 이름이 연호되지만, 호라는 오직 당신에게만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타이머의 능력에 개입하거나 간섭할 수 있을거란 가설이 등장했지.
물론, 긍정적인 방향으로 말이야.
오늘부터 서관에서 함께 지내게 될거야.
수업부터 시작해서, 모든 타이머의 활동과 역할을 부여받아, 자네들과 동행할걸세.
그러니, 인사들 나누고 사이좋게 지낼 수 있도록 노력해보라고.
모든 것은 세계 멸망을 막기 위해서라고.
어떤 재난이 닥쳐와도, 어떤 재해가 밀려와도, 타이머와 카운터가 함께라면 세계 멸망을 막을 수 있노라고.
즉, 이것은...
대의이자 명령.
개인의 의견은 묵살하기 딱 좋은 명분이었습니다.
다음 달쯤, 건국 축제에서 정식으로 카운터의 존재를 발표할 예정이니 외부에 유출하지 말고.
회의실에는 침묵과 함께 타이머와 카운터, 두 개의 시간이 남았을 뿐이고요.
...... 14명의 타이머 중 누구도, 시간이 데려온 운명의 상대에게 표정 관리를 하는 법은 훈련받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타이머와 카운터가 짝을 지어 흩어지고,
당신의 앞에는 여전히 호라가 서 있습니다.
그는 당신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제가... 그... 카운터...? 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해!
-아, 서관 소개하라 그랬지 참,
서관, 와본적 없지?
본관에서도... 많이 돌아다닌 것도 아니기도 하고... 그래서, 잘 알지는 못해요...
그리고, 말 편하게 해도 괜찮아.
흰 대리석이 깔린 바닥과 열두 개의 별자리가 그려진 남색 천장,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붓의 흐름조차 눈치채지 못할 만큼 섬세하게 회칠을 한 벽.
DOT의 본관은 언제나 그렇듯 흠 없고, 점 없이 완벽하기만 합니다.
당연하게도 호라에게는 낯익은 풍경일테고, 당신에게는-
기준치: | 70/35/14 |
굴림: | 17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낯익기 짝이 없어서, 꼭 제자리를 찾아온 듯했습니다.
처음 발을 들였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공기마저 친숙했어요.
느껴지는 감각이 기시감인지, 괴리감인지는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
두 사람은 착실하게 건물 곳곳을 돌아다닙니다.
본관에...혼련실이 있다고 하던데... 어디인지 알고 있나요... 아니... 있어?
2층이랑 3층에 있는데-
... 가볼래?
엘리베이터는 저쪽에 있어, 따라와!
자연스럽게 걷는 호라의 발걸음을 따라 간 곳은 제 7번 훈련실입니다.
호라가 문 앞에 달린 기계에 눈을 가져다대면, 몇 초뒤에 삑삑,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립니다.
홍채 인식인가봐요.
훈련실에는 선반이 있어, 그곳에 여러가지 물건들이 비치되어 있고, 한 켠에는 큰 그물과 전신 거울 따위가 놓여져 있습니다.
필요한 물건도 다 준비되어 있긴한데,
없다 싶으면....
그래도 부수는건 안돼.
사용 내역도 기록되는데다가, CCTV도 있어서 다 들키거든.
... 아니 뭐, 좀, 부술 수도 있는데 그것 가지고 엄청 뭐라 그런다니까.
(부우우.)
거울은 왜...
...
거울이 약한거야.
(바람아니였나... 그걸로 그렇게 부실 수 있나...?)
나랑 같은 7시니까.
역시 여기까지 왔는데 안 보고 갈 수는 없지!
넌 평소에 능력 어떻게 쓰는지 보여주라!
별거...없는데...
나도 별거 없으니깐!
난 맨날 실수했는데. 나도 도구를 하나 들고 다녀야하나--
근데... 크기나 모양에 따라... 달라져서...되도록이면 부채를 써...
... ...반지로 했다가... 나뭇가지가...잘린 적이...있어서...
짱이다-!
이것저것 잔뜩 실험해보면 멋진 활용법이 많이 나올지도 몰라!
해보고 싶은게 생겼어!
그때까지는 비밀!
어쨌든 다 응용이니깐!
곧, 스르르 떨어지기 시작한 손과 손 사이에서 공기가 일렁이고, 가벼운 바람이 일어나는 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저건 꼭, 부채 모양 같은데- 하고 생각하는 사이, 호라는 바람으로 만들어진, 잘 보이지 않는 부채를 살랑거리며 당신에게 부채질해줍니다.
부채의 끝에서 작은 나비모양 바람이 나타나 허공으로 퍼졌다가, 기류에 휘말려 사라져가네요.
... 가끔 실수해서 바람이 튀어나가기라도 하면 곤란하지만, 뭐 어때!
아직 희생자는 거울이랑 사과인형밖에 없었어.
그래서...응용하거나 하는걸... 어떻게 할지 잘 모르겠다고 해야하나...
응용도 내가 많이 가르쳐줄게.
내가 괜히 7시의 연구원이라는 별명이 있는게 아니라구.
본인이 신나보이니까 된 것 같지만서도요.
연구 정신이 투철하니까 연구원!
이보다 완벽한 별명이 어디있겠어?
... ... ...(그만두기로함_
아, 이제 슬슬 다른 곳으로 갈까?
너무 늦으면 식사 시간 못 맞출지도 몰라.
밖에서 학교 다녀봤지?
똑같애. 지루하고 재미없고 .....
진짜? 왜? 어쩌다가??
집에... 과외선생님 불러서... 방에서 공부했어...
되게 빡빡하게 살았구나?
혼자...집 밖에 나가는 것도...이번이 처음이야.
난 여기 들어오기 전에도 맨날 나가서 놀았었는데.
집 앞에 공원이 있었거든.
4시만 되면 친구들이랑 다 모여서 우아악- 하고 뛰어다니면서 놀았었어.
DOT에 들어오고 나서는 연락도 못하고 살지만.
아- 잘 지내고 있으려나--
맨날 나갈거면 왜 나가는건지 이유도 물어보고, 허락 없이는 나가지도 못하고-
재미없잖아.
다른 타이머 친구들이 있으니까 그나마 덜한거지.
물론... 나갈일이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되냐는 듯한 표정)
히히.
그래도 안 무서워.
7시의 타이머는 나잖아, 나 아니면 타이머 모자를거면서 어쩌겠어?
개인실을 받은게 아니라 타이머가 지내던 방에 카운터가 들어가야만 했던 점은, 조금 불편했을지도 모르지만,
어쩌겠어요.
-
타이머와 카운터는 아직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정식 임관을 받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임무보다는 수업과 훈련이 주 일과를 이루죠.
이러니저러니 해도, 다들 자신의 타이머, 그리고 카운터와 짝을 지어 앉아있고요.
두 사람을 발견한 교사가 어서 자리에 앉으라 재촉합니다.
자리는 나란히, 딱 두개가 남아있습니다.
두 사람이 자리에 앉으면, 수업이 시작됩니다.
... ...
꽃샘추위도 누그러진 초봄은, 앉아서 수업을 듣기 아까울 정도로 완벽한 날씨입니다.
교사는 칠판 위로 분필을 움직입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부드럽게 흔들리는 커튼, 책상 위의 그림자...
아주 평범한 모양새지만,
단 하나, 옆에 앉은 사람만큼은 어제와 다른 특별한 모양새입니다.
기준치: | 65/32/13 |
굴림: | 7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교실에도 교과서는 커녕 공책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무슨 수업이 이렇담?
다른 카운터들도 비슷한 의문을 품고 있는 듯 보이지만,
타이머들은 익숙하다는 표정이네요.
가끔 그런 수업이 있어.
이번 과목은 '시간' 이거든.
DOT에 입학하면 초반에 듣는건데, 능력의 정의라던가, 사용법이라던가, 능력을 어떤 상황에 써야하는지 같은 것들을 배워.
따지고 보면 실전인 셈이지.
...그럼...지금은...시간에 대해...배우는거야?
.. 딱히 다른 말도 아니긴 하네,
응, 시간에 대해 배우는거라고 하자.
이론 수업도 있기는 해,
수학이나 국어같은거.
적혀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타이머와 카운터로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자질은 무엇인가?
2. 타이머가 사라진다면 세계는 멸망할 것인가?
3. 도밍게즈의 건국 신화를 읽고, 시간과 능력 사이의 상관관계를 생각해보자.
타이머와 카운터로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자질은 무엇인가?
별 것 아닌 문제같지만, 도밍게즈에서 타이머란 상당한 영향력을 가집니다.
따라서, 자신의 본분과 역할을 정확히 이해해야하죠.
카운터 또한 건국 축제를 기점으로 동일한 권리와 의무를 가지게 될 테니, 중요한 문제에요.
...잘...모르겠...습니다...
강한 능력이라던가, 자비로운 마음씨라던가...
하나같이 다 애매한 느낌도 들고요.
대답들을 듣던 교사는 부드럽게 미소 짓고선 입을 엽니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구원자라고 하더라도 결국 개인이에요.
언제나 구원자, 타이머, 카운터 라는 이름에 휘둘렸다가는 오래 버틸 수 없을거에요.
그러니, 힘들어진다면 '구원'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일'을 하는 중이라고 생각해보세요.
사회적인 껍질을 뒤집어쓰고, 개인으로서의 일은 잠시 차치해두는거죠.
정말 정의로운 사람이 되려고 기를 쓰거나, 훌륭한 사람이 되려고 발버둥치는 것보단 쉬울거에요.
타이머가, 그리고 나아가서 카운터가 사라진다면 세계는 멸망할까요?
사실 이건, 도밍게즈가 생겨난 이래 한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맞다 아니다를 나눌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충분히 가능성 있는 가설로 여겨지고 있어요.
세계 멸망은 세계에 부여된 시간이 다 되었기 때문에 임하는거라고들 해요.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고 떠나기 때문에, 시간이 전부 흘러간 세계는 어쩔 수 없이 멸망을 맞게 되죠.
그런 시간이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기 위한 이정표가 바로 타이머라는 가설이에요.
그말은 즉,
타이머가 있기에 시간이 존재한다는거에요.
타이머가 둘이라면, 시간은 더 안정적으로 존재하며 흘러갈거에요.
끝은 멀어질겁니다.
영원히 미룰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초읽기에서 벗어날 수는 있을 테죠.
기준치: | 70/35/14 |
굴림: | 42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정체불명의 소리네요.
그 소리의 정체를 파악하기도 전에, 유인물이 배부됩니다.
회색의 종이에는 익숙한 이야기가 쓰여있습니다.
도밍게즈 신화입니다. 이곳에서 나고자란 이들이라면 누구가 한번쯤 들어봤을.
마지막, 3번 문제.
유인물의 뒷장에 적어서, 다음 시간에 가져오면 돼요.
오늘은 첫 수업이니, 이만 마치도록 할까요?
조금 불편하더라도 건국 축제까지는 바깥에 나가지 않도록 하고요.
교실에는 타이머와 카운터, 그리고 유인물이 남았습니다.
기준치: | 65/32/13 |
굴림: | 23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한 장이 아니라 두 장이었네요.
꼼짝없이 붙어있을 수 밖에 없겠는걸요.
언제까지 하라는건지 의문이 들 때 즈음, 타이밍 좋게 문자가 도착합니다.
「 2052-03-08, 09:18
제 7시 페어 7번 훈련실 사용 가능.
연구 보고 협조 요망 」
정말로요, 아무것도 없어요!
근데...나가지 말라고...하지 않았나?
그럼...갈...까?
어딘지는 기억하지?
나 달릴거다?
페어 별로 진행할 모양이네요.
문 앞에서 흰 가운을 입은 연구원들이 두 사람을 반깁니다.
친숙하게 다가오는 사람을 보고, 호라가 '저 왔어요, 애쉬!' 하고 웃으며 말합니다.
애쉬는 호라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곤, 일지에 '제 7시 페어, 타이머 호라, 카운터 로빈' 이라고 적습니다.
그리고 설명을 시작합니다.
첫만남의 소감은 되도록 진솔하게 적어주고, 지금부턴 타이머와 카운터 간의 상관관계나 영향력을 검사해볼 거거든.
몇가지 단계에 맞춰 진행 가이드를 띄워놨으니까 보고 따라가면 되고, 힘들거나 불편하다 싶으면 너무 무리하지마.
어쨌건, 오늘은 처음이니까.
당신에게도 다른 연구원이 같은 위치에 패드를 붙입니다.
뺨, 귀 뒤쪽, 목덜미와 손목 안쪽......
피부와 엇비슷한 색의 그것은 눈에 띄지 않지만,
기준치: | 70/35/14 |
굴림: | 17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유난히 거리가 가까운 것 같습니다.
비정상적으로!
패드를 다 붙이고 나면, 애쉬가 마무리 설명을 이어갑니다.
실제로 다른 페어들의 결과도 좋았고.
자리를 비켜줄테니까, 테스트 해봐.
수치는 전부 기록될거야.
뭘 하고, 얼만큼 편차가 있었는지 보고서로 작성하면 끝.
어렵지 않지?
진행 가이드는 안쪽에 있으니까 확인하고.
연구 보고를 돕는 일이야, 어려울 것도 없습니다.
당신이 여태까지, 호라와 만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카운터라는 이름을 부여받기 위해서 몇 번이고 거쳤던 과정이잖아요.
심장박동과 능력의 효율을 확인하는 패드를 부착하고, 능력을 사용하거나, 하지 않거나, 그 이후의 신체변화를 검사하기도 했었죠.
건강검진이랑 비슷해서 조금도 여상히 와닿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처음으로 같이 하는 연구 보고라 그런지, 긴장되는 마음은 통 진정되지 않습니다.
짭조름하고 화한.... 약물 특유의 그 냄새.
능력을 쓰고 있는 것도 아니고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 것도 아닌데, 머리카락이 조금 흔들리고, 거세게 뛰지도 않는데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귀를 막습니다.
이래서야 긴장인지 설렘인지 구분할 수 없겠는걸요.
...
들어선 훈련실 내부를 깨끗하기 짝이 없습니다.
자리를 비운지 오래된건지, 한켠에 있는 스크린만 바닷속 풍경을 비춥니다.
거품이 일다가 흩어지고, 다시 일다가 부서지고......
달칵,
문이 완전히 닫히면 스크린은 그제야 정신을 차립니다.
... ...?
기준치: | 70/35/14 |
굴림: | 5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그러니까....
연구보고라는게, 지금... 생각하는... '그거' 맞나요?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흐릅니다.
이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호라 역시 마찬가지겠죠.
쿵쾅, 쿵쾅, 쿵쾅 ... ...
기준치: | 70/35/14 |
굴림: | 95 |
판정결과: | 실패 |
불현듯, 애쉬의 당부가 생각납니다.
연구원들이 결과를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압박감이 느껴집니다.
그...래요! 그래도, 세계를 구원하기 위한 일 치고는 가볍잖아요? 그쵸?
차라리 눈에 보이지라도 않으면 좋으련만, 복잡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스크린은 계속 같은 글씨를 출력하고 있습니다.
기준치: | 65/32/13 |
굴림: | 17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그러고보니, CCTV가 있다고 했었죠.....
물론, 부수면 혼날테고요.
한참을 붉어진 얼굴로 손을 꼼지락거리던 호라가 느릿하게 입을 엽니다.
첫날이니까, 그게... 나중에 해도 괜찮지 않을까?
깍지.
(우와악)
뭔가 기분이 묘하고... 간질간질해서-....
부모님이랑도 12살 이후로는...
......그리고, 쟤들이랑 이런걸 해볼 일이 있었을리가-
기준치: | 70/35/14 |
굴림: | 20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기준치: | 65/32/13 |
굴림: | 93 |
판정결과: | 실패 |
그래도, 나쁘진 않네요.
포옹까지만...할래?
점점 얼굴이 빨개지고 있어요.
그리고 와락, 당신을 끌어안습니다.
많이 부끄러운가봐요.
기준치: | 65/32/13 |
굴림: | 11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기준치: | 70/35/14 |
굴림: | 59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왜이리 완벽하게, 편안할까요?
rolling 1d20
(
)
17
17
(아와오악)
그... 모르겠어.
기준치: | 70/35/14 |
굴림: | 75 |
판정결과: | 실패 |
기준치: | 82/41/16 |
굴림: | 45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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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
12
놓기 싫어, 떨어지기 싫어. 욕심은 계속 커져만 갑니다.
아, 어쩌면 이 충동은-......■■도 아주 닮아있어요.
...했다고 거짓말할까?
그리고...비쥬 다음이...더...힘들것 같지 않아?
(우으으)
--나 역시 못하겠어, 부끄러워--
힘들면...?
... 애쉬도... 이해해주겠지?
아니면... 빨리 끝내는 것도... 방법이긴해...
기준치: | 70/35/14 |
굴림: | 70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기준치: | 94/47/18 |
굴림: | 17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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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
7
그리고 점점, 불안정했던 능력이 견고해져 가는 느낌이 강해집니다.
분명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꼭 빈구석이 남아있던 것처럼, 능력은 몸집을 부풀려갑니다.
그럼, 이제 마지막 하나 남았죠?
얼굴뿐만 아니라 목덜미나 귀같은 곳도 빨갛게 달아올라있어요.
흔들리는 시선은 그럼에도, 당신을 향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손이 머리에 닿자, 호라는 그만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주저앉아버립니다.
본인도 깨나 당황한 표정으로 아니, 라던가 그게, 같은 말만 버벅거리며 내뱉고 있네요.
(나 뭐 잘못했나? 하는 생각중)
...괜찮...아?요?
기준치: | 101/50/20 |
굴림: | 20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기준치: | 70/35/14 |
굴림: | 27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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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
17
당신은 저도 모르게, 호라에게 다시 입을 맞추고 맙니다.
가지 마. 떠나지 마. 이 ■■ ■■에 나만 두고 가면 안돼.......
절박한 심정이 되어 매달리게 되어버립니다.
...왜 이렇게 외롭고, 두렵지? 분명 무언가 이유가 있었던 것 같은데!
돌이켜보아도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기준치: | 118/59/23 |
굴림: | 16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손에 잡히는 느낌, 흔들리는 그 무언가를 따라 흩어지는 미약한 바람.
이건 분명, 서로가 사용하던 능력이었을테죠.
허나 어쩐지,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라는 생각이 견고하게 떠오릅니다.
일렁이는 공기를, 아니, 어쩌면 그 너머에 있는 당신을, 호라는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뭐, 뭔가 됐...다?
...-짱이다!
...이제 끝난...건가.
.... 나갈까?
점심 식사 전까지는 시간이 남았으니까, 쉬고 있어.
아마 연결된 모니터로 다 보고 있었을테니, 구태여 물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겠죠.
축하해요, 로빈. 이로써 구원자가 되는 한 걸음을 훌륭히 내디뎠군요!
카운터의 적응을 위해서라는군요.
(아까 한게 한거라 대화가 될지...)
(얼굴가리키며)
이젠 괜찮아.
손과 손 사이로 온기가 전해지는 것이 은근히 기분을 들뜨게 만드는 것도 같네요.
자유시간이라고...하던데.
다른 애들 불러서 친선전이라도 할까?
다치지만 않으면 괜찮겠지.
...될까?
능력도 많이 써야 손에 익는다구..
갑작스럽게 생긴 친선전이지만, 다들 흥미가 있었는지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사람이 너무 많으면 상황이 엉망으로 흘러가고 말거라는 (어쩐지 경험담 같은) 말에 따라, 친선전은 토너먼트 형식으로, 즉석에서 조를 짜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기준치: | 65/32/13 |
굴림: | 66 |
판정결과: | 실패 |
물론, 다른 페어들도 마찬가지인 듯 보이지만요.
결과적으로는 총 여덟 페어 중 4위로 친선전을 마무리 했습니다.
그래도 중간은 했네요!
다음엔 더 잘할 수 있겠지, 그치?
합도 맞추다보면 나아질거고-
그땐 우리가 최고의 페어가 될 수 있겠지!
같이 힘내보자!
DOT의 흰 건물 위로도 어김없이 밤하늘이 내려앉습니다.
12개라기엔 터무니없이 많은 수의 별들이 하늘을 수놓고, 선선한 봄바람이 공간을 전부 훑으며 지나갑니다.
오늘 하루는 어땠나요?
오늘 하루를 보내며, 기분은 어땠나요?
좋았...던것 같아.
이런 기분으로 갖는 저녁 식사 시간은 분명 즐거울거에요.
기준치: | 60/30/12 |
굴림: | 16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때마침 도착한 엘리베이터가 입을 크게 벌리고 두 사람을 기다립니다.
벌써 맛있는 냄새가 가득 찼습니다.
오늘 저녁은-...... 음, 고기가 있네요.
식당은 28명, 아니, 어제까진 14명을 위한 곳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호화롭습니다.
남색 천장, 깨끗한 벽에 걸린 고풍스러운 액자들, 푹신푹신한 흰색 양탄자 (식당에 배치하기엔 정말 호화스럽지 않나요?)와 56명은 앉을 수 있을 만큼 길고 커다란 테이블.
이미 도착한 몇 명은 식사 중이네요.
창틀 따위에 단단히 매인 긴 줄에는 우산과 깃발, 손수건과 종이학 같은 것이 걸려 있습니다.
꽃이 핀 것처럼 화려하기 짝이 없는 풍경입니다.
도밍게즈 건국 축제의 장면이에요.
.
푸른 장미 아치의 사진입니다. 은색 아치문을 따라 피어난 푸른 장미가 유난히 화려합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수도의 연인에게는 꽤 명소입니다.
.
검은 호수의 사진입니다. 새까맣게 물든 호수에는 흰 종이꽃이 떠다닙니다.
수도의 유명한 관광지, 코마니 호수입니다. 건국 축제, 단 이틀간 호수의 수면이 검게 물드는 특이한 현상이 일어납니다.
축제 때면 타이머의 이른 죽음을 기리고자 많은 사람들이 손수 접은 종이꽃을 띄워보내곤 합니다.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이군요.
어째서인지 이유를 생각해보려 하면 할 수록 두통이 밀려옵니다.
중요한 걸 잊고 있는 기분인데...
SANC 0/1
기준치: | 70/35/14 |
굴림: | 14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침착)
당신과 호라의 네임카드는 서로 마주보고 놓여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타이머와 카운터, 페어끼리 가까운 곳에 배치한 것 같네요.
냅킨은 토끼모양으로 접혀있고, 음식 사이사이 푸른 장미가 꽂힌 화병이 있어서, 꼭 비싼 레스토랑에 데이트라도 온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러고보니, 푸른 장미는 도밍게즈의 국화였죠.
불가능을 넘어선 기적의 상징이라나.
디저트로는 바싹 구운 무화과 쿠키가 나왔습니다.
그들이 일컫는 구원자라는 이름이 얼마나 진실하고 진솔한지는, 풍성하고 호화로운 식단이 증거합니다.
집에 가고 싶다니, 같이 있기 싫다니 옥신각신 소란을 피우던 아이들도 식사 때만 되면 재깍재깍 테이블 앞에 앉곤 했으니 말 다했죠.
(물론 조용히 식사만 하지는 않았지만요.)
밥을 먹는 동안에는 개도, 애도 건드리지 않는 법이니까요.
식사시간은 평화롭게 흘러갑니다.
...
...
...
기준치: | 70/35/14 |
굴림: | 77 |
판정결과: | 실패 |
(())
"■■■■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던데, 재수 없게 뭐람?"
근처에 앉은 8시의 타이머와 카운터가 수군수군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기준치: | 70/35/14 |
굴림: | 47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무슨 이야기를 하는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남의 이야기를 엿들어서 좋을 건 없겠죠.
저녁 식사 시간은 그렇게 지나갑니다.
시간은 고장난 폭탄처럼 순식간에 터집니다.
그래, 사건이라고 불러 마땅한 '그 일'은 갑자기 일어났어요.
음, 언제냐면...
두 사람이 막 잠자리에 들 준비를 마쳤을 때였습니다.
저녁 식사 이후 평온한 시간을 맘껏 누리고, 하루를 마무리하던 그때쯤이요.
카운터의 능력이 삐걱거리기 시작한거에요.
DOT의 지시로 같은 방에서 지내게 된 탓에, 두 사람은 가까이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신을 시선으로 좇던 호라가 문득 물어옵니다.
거울을 통해 확인해보면, 그말마따나 다소 옅어진 것 같습니다.
한 번 새겨지면 죽을 때까지 평생 지울 수 없는, 각인이자 낙인인 바로 그것이요.
아, 물론 착각일지도 모르죠.
잘못 본 걸지도 몰라요. 눈을 깜빡이면 어제와 다를 바 없었거든요.
하지만-
기준치: | 65/32/13 |
굴림: | 28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사람은 호흡을 신경쓰지 않습니다. 누구도 가르치거나, 배우지 않았지만 때가 되면 알아서 숨을 들이켜고 내쉬기 마련입니다.
능력자가 능력을 다루는 꼴이 딱 그렇습니다.
시간의 선택을 받으면, 능력은 존재의 증명이 됩니다.
그것은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죽음에 이를 때까지 타이머와 함께합니다.
홀로 태어나 홀로 죽는 삶에서 유일하게.
싫든 좋든, 마음에 들든 아니든,
사라진다는 일은 있을 수 없어요.
카운터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의 각인이 새겨진 순간부터 능력은 온전히 당신의 것이었고, 당신의 것이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요?
얌전하던 능력이, 어딘가로 새고 있습니다.
당신에게서 도망치려는 것처럼, 자꾸만 어디론가 뛰쳐나갑니다.
그 종착지는-...
기준치: | 70/35/14 |
굴림: | 13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시간이 속삭입니다.
능력은 순식간에 당신의 몸을 빠져나갑니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순식간에!
타이머 또한 그 과정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느낄 수 있었냐고요?
당신의 표정에 드러나서? 행동이 이상해서? 아니면, 능력자 대 능력자로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서?
아뇨, 그저, 스스로가 증거였을 뿐입니다.
그 어느때보다 평온하고, 다루기 쉬워진, 당장이라도 넘칠 것처럼 넘실거리는 호라의 능력은, 누가보아도 완전하게 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타이머가 카운터와 함께 있으면 능력의 효율이 오를거라고 했죠.
누군가는 그 설명을 두고, 타이머를 위한 배터리, 소모품이라 부르기도 했고요.
그저 단순히 효율이 오르는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마치 컵의 물을 옮겨담듯이-
뒤섞인 능력은 물과 기름처럼 모호한 경계를 긋습니다.
...
능력이 사라진 것입니다, 단 하루 아침만에.
사라진 것이 저기 있고, 잃어버린 것이 여기 있습니다.
불을 끄는 것처럼, 그리고 불을 켜는 것처럼.
해가 지는 것처럼, 그리고 달이 뜨는 것처럼.
네가 ■■ ■ 것처럼, 그리고 내가 ■■■ 것처럼.
오롯이 두 사람만 숨쉬는 작은 방, 믿을 수 없는 상황 앞에서 두 사람은-
-
불현듯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이 있습니다.
세계가 무너지고, 하늘이 찢어지며, 건물이 붕괴하고, 별이 떨어지는-..... 요란하고 끔찍한 소리와,
"멸망이 신속히 임하리니, 아무도 멸망의 때인 줄 알지 못하리라."
평온하기 짝이 없던 눈앞의 세계와, 새순이 돋고, 꽃이 피며, 꽃샘추위가 콧잔등을 간지럽히는- 봄이 오는 소리. 녹은 눈이 아스팔트 도로를 적시고 스며듭니다. 겨울이 지난 후의 봄.
다정한 하나의 문장.
...
카운터를 소개할 때, 하인리히 장교는 분명히 세계 멸망에 관한 이야기를 곁들였습니다.
그렇다면 이것도, 그 멸망과 엮인 사건은 아닐까요?
스치듯 떠오른 두개의 예언은 어느쪽이 옳고 그른지 알 수 없습니다.
어두운 밤, 사위가 고요하고, 창 너머의 달만 밝습니다.
기준치: | 70/35/14 |
굴림: | 82 |
판정결과: | 실패 |
... 내쫓기는건 아니겠죠? 설마?
DOT에 보고해야할까요? 아니면, 조금 더 두고 봐야 할까요?
그들이 꾸민 짓은 아닐까요?
아냐, 아니에요. DOT가 이런 짓을 꾸밀리가요.
당신의 존재가 사실이라면, 세계를 구원할 유력한 방법인데도요.
절묘하게도- 내일은 이론 수업으로 꽉 찬 날입니다.
침묵한다면 하루, 이틀 정도는 무마할 수 있을거에요.
물론, 언제까지고 숨길 수는 없습니다.
건국 축제까지는 일주일도 남지 않았거든요.
하인리히 장교는 카운터의 존재만이 세계 멸망을 막고, 사회의 평안을 불러올 일인 것처럼 설명했습니다.
어떻게 해야할까요?
어느 쪽이 '옳은' 선태일까요?
이 상황을 묻어두고 해결하거나, 정직하게 보고하고 해결책을 받아내거나.
우선 커다란 선택지는 그뿐인 것 같습니다.
기준치: | 65/32/13 |
굴림: | 92 |
판정결과: | 실패 |
하필 이럴 때 눈에 띄다니. 이마저도 퍽 교묘한 배치입니다.
...
물론, 보고한다고 한들, DOT는 신이 아닙니다. 그들도 뾰족한 수 따위 없을지도 몰라요.
어쩌면 모처럼 찾아낸 파트너를 잃을수도 있고, 어쩌면 억지로 오게된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결국은,
...이걸...말해야...할까?
부, 분명 뭔가 방법이 있을거야- 어른들은 항상 그랬잖아,
아, 아니면, 그, 우리끼리 방법을 찾아볼 수도 있기는 할텐데,
...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
갑작스럽게...일어난 일이라... 어떻게 할지 잘...모르겠어.
......본관에... 갈까?
연구원분이나...장교님을 만날 수도...있을지도...모르잖아?
가서 물어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두 사람은 아직 어리고, 지고 있는 책임과 무게는 너무 무거우니까요.
때론 홀로선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있는 법입니다.
바로, 지금과 같은 일이요.
...
서관을 나서서, 인조 잔디가 깔린 운동장을 지납니다.
세계 멸망과는 어울리지 않게 수많은 별들은 떨어질 기미라곤 보이지 않고, 오히려 반짝반짝하니 내일 날씨도 좋겠거니, 하는 한가로운 감상만 일깨웁니다.
빠르고 느리게, 서두르고 미적거리며, 두 사람 몫의 발자국이 운동장을 가로지릅니다.
...
본관 안내 데스크에는 퇴근하지 않는 직원이 앉아 있습니다.
그는 어서오세요-하고 인사하면서도, 의외란 얼굴로 눈을 깜빡였습니다.
"찾는 사람 있어요? 누굴 불러드릴까요?"
장교님...이랑... 만날 수...있나요?
지하 2층. 층수를 나타내는 파란 글씨가 점등합니다.
곧, 그것은 지하 1층으로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정갈하게 웃은 직원이 설명합니다.
"마침 올라오시네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여전히 상냥하지만서도,
......아까 분명, 곤란해했었죠?
두 사람이 직원의 얼굴을 살피는 동안에도 웃음은 여전하고, 엘리베이터는 올라옵니다.
지하 2층, 지하 1층, 그리고, 1층.
띵.
날카로운 기계음과 함께 익숙한 남자가 내립니다.
왜냐하면, 음식 냄새도, 술 냄새도 묻지 않았거든요.
두 사람과 마주친 장교는 의외라는 듯 눈을 크게 뜨면서도, 기꺼이 반겨옵니다.
지난밤 사이좋게 지냈나, 지내지 않았나 감시하는 것 같은 눈초리입니다.
부담스러워요.
말씀 드릴게 있어서... ...
얼핏보면 엄숙하고, 얼핏보면 거만한 얼굴로 웃은 그는, 당신의 어깨를 툭툭 두드립니다.
걱정하지 말게. 이미 들어둔 바가 있어.
환경이 낯설어서 그럴 거라고, 마음을 편히 갖는 게 중요하다더군.
또래라 함께 있으면 좀 나을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도 않았나보지?
아무튼, 자네들의 존재가 세계의 평화를 좌지우지해.
그래서, 우리는 작은 문제도 괄시하지 않고 방비하지.
너무 걱정하지 말고, 내 말을 명심하게.
그러면-
그는 수염이 없는 제 턱을 쓸고, 당부합니다.
도밍게즈의 평화를 노려보는 것처럼!
그리고, 이 상황에 대해서는 전혀 심각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카운터의 존재를 그렇게 어화둥둥 하면서, 능력이 사라진 현 상태를 이토록 가볍게 여기다니.
정말, 이미 알고 있었던 걸까요?
그렇다면 어떻게 알고, 어떻게 확신하는걸까요?
그러니까, 더 가까이 있도록 해.
기왕이면 한 침대를 쓰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아니, 오히려 좋지.
더 가까이 있을수록, 가까워질수록, 완벽하게 적응할테니까.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꼭 그렇게 굴면 돼.
어렵지 않은 일이잖나?
어차피 자네들을 이해할 수 있는 건,
서로밖에 없으니 말일세.
명령에는 복종을.
군인에게나 딱 어울리는 요구사항을 목에 걸어주는 꼴이었습니다.
기준치: | 70/35/14 |
굴림: | 50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지하 2층이... 있어?
본관은 지하 1층까지 밖에...
...잘못 본거겠지, 뭐.
엄청 당황하고, 혼란스러웠잖아.
...
... 그냥, 피곤해서 그런거라고 생각하려고.
가까이 있으라고 했는데... 그걸로 돌아올까...?
그래도, 장교님 말이니까 믿을만 하다고 생각해.
능력은 딱히 차도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닌가? 어제보다 나아졌나? 싶으면 다시 한 움큼 사라지기를 반복합니다.
타이머와 가까이 있었던, 멀리 있었건 비슷했지만......
적어도 가까이 있는 쪽이 기분은 더 좋고, 안정적이란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
꺾인 손가락의 주위를 맴도는 그림자는 바닥을 천천히 기어다녔습니다. 시간이 얼마만큼 흘러는가를 문득 깨달으면, 뱀의 비늘이 스치는 것처럼 서늘한 기분이 들곤 했습니다.
그러나, 전부 기분탓이겠죠.
일상은 고요하고 평화롭습니다.
일어나고, 아침을 먹고, 수업을 듣고, 점심을 먹고, 시시껄렁한 시간을 죽이고, 농담도 따먹고, TV를 보거나, 훈련을 하는 평범한 하루의 반복입니다.
능력이 사라진 적따위 없었던 것처럼.
그리고 축제를 이틀 앞둔 날.
똑똑.
손님은 그때 찾아왔습니다.
교실에 앉아서 교사를 기다리던 타이머들과 카운터들의 시선이 모두 앞문으로 쏠렸습니다.
수업을 위해 드나드는 이들은 노크하지 않았으므로, 상당히 낯선 소리가 아닐 수 없었어요.
수업을 시작하기 전, 전달 사항이 있습니다.
뱀처럼 얇은 눈꼬리가 새로운 얼굴들을 훑곤,
능력을 선보여 시간이 건재함을 알리고, 세계가 평안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종의 쇼맨십이죠.
실제로 이 시기면 타이머의 얼굴을 보겠다고 수도로 향하는 관광객의 수가 대폭 늘어나곤 합니다.
보여주기식이지만, 절대 간과할 수 없는 이벤트죠.
더군다나 이번에는 카운터....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드러내는 자리이니, 더욱 중요하게 다워질 겁니다.
예년보다 화려하게, 완벽하게, 차질 없이 준비되어야겠죠.
장교님께서도 기대가 크십니다.
능력을 선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카운터...의 존재. 즉, 새로운 능력자의 등장입니다.
친밀하게, 다정하게, 모쪼록 완벽한 파트너의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고 하시더군요.
서로 간에 사이좋은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기왕지사, 능력을 '함께' 선보인다면 더할 나위 없고요.
첫날에는 자유 시간이 주어질 예정입니다.
아침을 먹고 외출할 수 있을거에요.
대신, 반드시 사복을 착용하고, 타이머와 카운터가 동행한다는 조건입니다.
축제이니만큼 어린 것들을 묶어두기가 안타까웠던 걸까요.
공식적인 발언은 언제나 DOT와 사전 협의 후에 진행되어야 합니다.
카운터에 대해서는 더더욱이요.
우르르, 안에서 쏟아지는 것은 팸플릿입니다.
건국 축제와 전시회라니, 상당히 동떨어진, 그러니까, 개연성 없는 조합입니다.
의문을 채 내뱉기도 전에, 부관은 모두에게 팸플릿을 나누어줍니다.
표지에는 타이머 展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아, 그러니까....
구원자에 미친 이 작은 행성은, 굿즈와 장난감, 드라마와 애니메이션, 기타 여러 창작물을 넘어서, 이젠 전시회마저 열 모양입니다.
시간의 흐름이니, 섭리니 알 게 뭐에요.
거창하게 구원자라고 부를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둘째 날은 축제의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서 대기하고, 세팅하고, 리허설에 참여하게 될 거에요.
눈코 뜰 새 없이 바쁠테니, 첫째 날 실컷 쉬거나, 하고 싶은 걸 해두는 게 좋을 겁니다.
이상입니다만,
무언가 문제라던가, 할 이야기 있습니까?
달칵, 문이 닫히고......
수업을 알리는 종이 커다랗게 울립니다.
수학 시간이에요.
수학 교사는 늘 종이 치면 움직이니까, 한 10분 여유가 남았군요.
... ...
... ... ...
(고민에 빠진 침묵)
능력을 선보이라고 하면... 곤란하지, 역시.
... 둘이 동시에 보여주는... 척...해서...호라만...쓰는...건...
... 들킬려나...?
아니면, 구상만 살짝 미리 해보자.
만약 안돌아오면, 내가 어떻게든 같이 쓰는 것처럼 보이게 해볼게.
영 안 돌아오면, 계속 손 겹치고, 잡고, 시늉을 부리는거야.
만약 돌아오면-
첫날 서로 보여줬던 것들,
번갈아가면서 해도 좋을 것 같지 않아?
절단 쇼 같은것도 하면 즐거울 것 같은데!
(시모록)
간단한거라면...괜찮을것...같기도...하고.
안다칠만한거로...하면 되지 않을까...?
(야호!)
모두 자리에 앉았나요?
그는 교탁에 출력물의 모서리를 툭툭 쳐서 정리하곤 수업을 시작합니다.
교사가 무어라고 떠드는데, 아, 이런......
기준치: | 70/35/14 |
굴림: | 49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그래도 당신은 비교적 바른 자세로 앉아 수업을 듣습니다.
무지막지하게 졸리고, 나른하지만... 꾹 참습니다.
호라는 아무래도 잠에게 패배한 것 같지만요.
스르르, 호라의 몸이 기우는 가 싶더니, 책상에 올려져 있던 팔이 미끄러지고, 몸이 앞으로 확 기울어지는 것이 보입니다.
그러다가 툭, 하고 당신과 부딪혔을 때-
그리고, 당신을 떠나갔던 무언가가 다시금 당신에게 돌아옵니다.
텅 비었던 어딘가가 차오르는 느낌이 듭니다.
호라 역시 같은 것을 느꼈는지, 졸음이 가득하던 눈은 어디가고, 놀란 토끼눈으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착각이 아니에요!
방금, 정말로,
불을 끄는 것처럼, 그리고 불을 켜는 것처럼.
해가 지는 것처럼, 그리고 달이 뜨는 것처럼.
네가 ■■ ■ 것처럼, 그리고 내가 ■■■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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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이지만...
착각이 아닌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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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과가 있는...
수학 교사랑 눈이 마주쳤습니다.
우, 우아악! 수학 문제다!
...
수업 시간 내내, 호라는 초조함과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고, 당신에게 손장난을 걸어왔습니다.
손가락을 얽고, 흘겨보는 시선과 나란히 앉은 어깨가 유난히 가까워집니다.
드디어...
존재의 가치를 증명받은 것처럼.
...
한참의 기다림이 지나고 나서야, 수업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립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다는 수학 교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호라가 몸을 돌려 당신을 와락 끌어안습니다.
... ...그.
여기서...이래도 괜찮아?
(교실...)
무슨 상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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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이러고 있을거야?
아까보다 나아?
그럼, 능력도 돌아온김에,
점심 먹고나서, 예행연습 해볼래?
다음 날도 크게 다를 것은 없었습니다. 밥 먹고, 수업하고, 또 밥 먹고, 자유시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 시간 동안, 함께 능력의 합을 맞추고, 곧 있을 축제를 위해 준비를 착실히 해내갑니다.
... 잘 할 수 있겠죠!
이튿날동안 사람들은 꽃을 달고, 등을 띄우고, 술을 마시고,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냅니다.
'세계의 구성원'으로서 당연한 일입니다.
지독하게 깨끗한 하늘 위로, 매달릴 곳을 잃은 우산이 홀로 떠다닙니다.
창 너머가 왁자지껄합니다.
창밖을 내다보면 건물 사이 엮인 긴 줄마다 색색의 것들이 매달려있습니다.
다 나름의 소원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해와 달의 장막을 비유하는 깃발, 바람의 결을 따라 흔들리는 손수건, 날씨가 맑기를 기원하며 활짝 펴둔 우산.
건국 축제가 끝날 때까지 화창하기를 비는 거에요.
정말로 효험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올해도 날은 화창합니다.
식당으로 내려가면, 축제 때문일까요? 아침식사는 가볍게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것 외에도 우유와 시리얼은 상비되어 있으니, 배고프다면 그걸 먹어도 되겠죠.
오늘의 아침 주스는-
사과와 케일, 당근을 갈아넣은 건강 주스입니다.
옆에서 호라도 인상을 꾹 쓰고 건강주스를 쭉 들이키는 것이 보입니다.
항상 저런다니까요.
맛 없단 말야...
노력해볼게.
간단하게라도 아침은 꼭 챙기는 편이 건강에 좋으니까요.
...
식사가 끝날 즈음, 아침부터 반듯한 차림새의 리슬러 부관이 식당에 들어옵니다.
두 사람은 어쩌기로 했나요?
(나가본적이 없는 로빈은 바깥세상(??)이 궁금했다)
...외출할...겁니다...
축제에 다녀오겠노라 대답하면, 리슬러 부관은 별다른 반응없이, 당부합니다.
공과 사는 구별해야 하는 법이에요.
개인적인 행동을 할 때마저 '구원자처럼' 굴 필요는 없습니다.
부담을 갖지 말라는건지, 오히려 부담을 갖게하려는건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집요한 충고였지만, 그는 매번 빼놓지 않고 그 충고를 주장했습니다.
'타이머가 본인이 개인임을 이해하고, 행동해야 사회 또한 받아들인다는 것'을요.
세계의 구원자라며 추켜 올리는 장교의 언행과는 상당히 반대되는 행보죠.
뭐, 물론, 장교도 말리는 대신 '그래, 그래. 내 훌륭한 부관께서 그렇다고 하시는 군' 이라는 농담만 덧붙일 뿐이었지만요.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을 눈치챘는지, 리슬러 부관이 물어옵니다.
요구를 들어준다는 말도 있고, DOT에게 문의하라고 전한다는 말도 있고, 당신과 마찬가지로 거절하겠다는 말도 있습니다.
다채로운 대답들 사이로, 타이머들은 똑같은 대답을 내놓습니다.
'침묵하고 무시로 일관할 것, 어떤 이야깃거리도 흘리지 말 것, 최대한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날 것.'
꼭 그렇게 대답하라고 교육받은 것 같은 모습입니다.
아니면, 단순히, 문제가 될 상황에서 '그것은 타이머의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라며 발을 빼기 위한 수작일까요?
잘 모르겠습니다만은,
어렴풋이, 리슬러 부관이라면 후자를 의도했을 것 같단 의심이 ......
그래도, 상관없죠.
바깥에서까지 체통을 지키라고 요구받는 것 보다야 나을테니까요.
그래서 누군가는 그를 좋아했고, 싫어했고, 편히 여겼고, 불편하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가 바라는 대답이 무엇인지는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외출증이군요.
축제를 만끽하러 DOT를 벗어날 수 있겠어요.
경비실에 외출증을 제출하고, DOT의 정문을 나서, 긴 내리막길을 걷습니다.
수도 외곽이기 때문에 축제가 열리는 중심지까지 가려면 약 20분을 걸어야합니다.
-
DOT의 입구를 벗어나는 순간부터, 화한 향기가 밀려듭니다.
아파트 베란다며 학교의 창문마다 수놓인 새파란 장미가 시선을 훔칩니다.
눈군가 장미 다발을 한 아름 안고 지나가면, 미처 챙기지 못한 눈물처럼 꽃잎 몇 장이 바닥으로 떨어지곤 했어요.
아름다운 풍경이었습니다.
마주친 몇몇이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도 했지만, 정확히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건물 사이로 엮은 긴 줄마다 색색의 깃발, 손수건, 혹은 우산 따위가 걸려 화려하게 하늘을 수놓습니다.
도밍게즈의 국화인 새파란 장미가 창틀과 문지방마다 걸려 있고, 꽤 많은 사람들이 품에 안고 있디고 합니다.
늘 이맘때쯤이면 날씨가 좋아요.
하늘은 깨끗하고, 바람은 살랑이고, 때 이른 장미 향기가 향긋합니다.
운이 좋게도, 길가에서 풍선을 나누어주던 사람에게 파란 풍선을 하나씩 선물 받았습니다.
그럼 뭐 하는지도 잘 모르겠네?
그럼 오늘 밤이 되기 전에 다 보러 다니자!
시계탑은 분침과 초침이 존재하지 않으며, 시침만 존재합니다.
타이머의 존재를 기념하는 시계입니다.
정각이 될 때마다 긴 종소리가 울립니다.
이곳에 있는 분수에 새파란 장미의 목을 꺾어 던지며, 어떤 소원을 비는 것은 도밍게즈의 흔한 의식입니다.
광장에는 장미를 파는 사람과 가족 나들이, 데이트를 나온 사람들로 북적거립니다.
우리도 소원 빌러 가자고?
해보고싶어...
가서 장미 사올게-!
의기양양한 표정이군요!
그리고, 한 송이를 당신에게 건냅니다.
파란 장미의 줄기는 잘 손질되어 있어, 가시가 돋혀있지 않습니다.
안심하고 잡아도 괜찮아요!
온갖 곳에서 날아드는 장미들 탓에 이젠 분수(噴水가 아니라 분화(噴花)라고 해도 믿을 지경입니다.
입 밖으로 말하면 이뤄지지 않는다나봐.
온갖 축제 음식은 다 접할 수 있겠는걸요?
여러 종류의 소스를 바른 꼬치구이라거나, 과일을 정교한 모양으로 깎아 설탕물을 입힌 사탕, 바람에 흔들리는 색색의 솜사탕과 캐러멜을 입혀 튀겨냔 과자들.
보기만 해도 입이 다 행복해요!
음식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기념품이나 악세서리, 수공예품도 팔고 있습니다.
가장 인기인 것은, 이번 세대의 타이머를 본떠 만든 봉제인형이에요.
(엇)
(와악!)
대신, 인형은... 나랑 닮았으니까, 들킬 수도 있고...
종이 가방같은 곳에 숨겨두고 다니자.
그럴까?
이따가 돌아가서, 사진 찍고 출력해서 꽂아놓는거야.
우정 목걸이로!
인형은 어떻게든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종이 가방 안에 꼭꼭 담아서 숨겼지만,
목걸이는 각자의 목에서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을 냅니다.
그나저나, 이 츄러스라는거.. 꽤 맛있네요!
...
한참의 골목길 탐험 끝에, 두 사람은 양 손 가득 물건과 간식거리를 들고서야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돈? 바라봄)
그럼...이제...공원...?
...갈까?
꽃과 나무를 잘 가다듬어 조경이 아름다운 곳이에요.
공원의 한 편에 설치된, 파란 장미로 장식한 아치 모양의 터널을 걸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소문이 있는데, 진짜인지는 모르겠어요.
조건은, 반드시 손을 잡고 끝까지 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원의 구석에는 낡은 교회가 남아있습니다.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곳이라 드나드는 이가 거의 없습니다.
먼지 냄새가 묻어나지만, 기도를 올리는데 장소는 중요치 않죠.
그 밖에 공원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는 코마니 호수입니다.
바닷물이 드나드는 호수라서 물에서 짠맛이 나고, 물살이 둥글게 돌아가는 것이 특징입니다.
호수의 바닥은 반짝입니다. 자갈과 모래 사이에 묻은 소금기 때문입니다.
평소에는 바닥이 비칠 정도로 투명한데, 보기보다 수심이 깊어 성인도 발을 딛지 못합니다.
그런 탓에 쉽게 생각하고 뛰어들었다가, 빠져 죽는 경우가 왕왕 생기곤 했었다나.
지금은 보안관이 들어가지 못하게 막고 있으니, 그런 사고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1년 365일 중 단 이틀, 호수의 물은 새까맣게 변합니다.
바닥을 볼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색을 띠는 호수는, 무엇을 탄 것도, 섞은 것도 아닌데 그저 그렇게 어둠에 물듭니다.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고, 사람들은 신의 섭리라고 여깁니다.
제 13구역을 연상시켜서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
역대 타이머의 이른 죽음을 안타깝게 여기며, 손수 접은 종이꽃을 호수에 띄우는 방식입니다.
검은 죽음 위에 떠다니는 종이꽃들은 마치 등불처럼 희게 빛납니다.
종이꽃은 아주 얇고 부드러운, 물에 잘 녹는 재질을 사용합니다.
때문에 걸핏하면 찢어지곤 하는데, 찢어진 꽃을 띄우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여겨지므로 주의해야 해요.
호숫가에는 옅은 색의 잔디가 자랐습니다.
호수는 온통 검고,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종이 꽃이 몇 송이 떠다닙니다.
호수에 들어갈 수 없도록 세워둔 울타리에는 '매달리지 마세요' 라는 글귀가 붙어있습니다.
이 무렵, 호수에 들리는 이들의 목적은 단연코 '타이머의 추모' 입니다.
감히 도밍게즈의 모든 국민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꽃을 띄웁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에겐 추모의 마음이겠지만....
...
호수의 둘레를 따라 쭉 걷다 보면, 종이를 파는 노인이 보입니다.
함게, 종이꽃을 접는 연인과, 난간에 매달려있는 아이도 보입니다.
할거야?
추모...
...그래도 기왕 여기까지 온거, 하는게 좋겠지?
...우리도...추모의 의미로...
대신,
"어이, 자네들도 꽃을 접고 가게!"
라며 종이를 건네는 군요.
기준치: | 10/5/2 |
굴림: | 46 |
판정결과: | 실패 |
기준치: | 18/9/3 |
굴림: | 92 |
판정결과: | 실패 |
정말이지.
두 사람을 옆에 두고, 노인은 주절주절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합니다.
"자네들은 타이머를 본 적이 있나?"
"내가 젊었을 적에 말이야, 그래, 딱 자네들만 했을때."
"그때 우리 마을에 큰 홍수가 났어. 그리고, 나도 물을 잔뜩 먹고 판자에 매달려가 정처없이 쓸려다니고 있었지."
"1시의 타이머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날 꼼짝없이 죽었을겨."
"그 뒤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축제마다 추모의 꽃을 띄우러 온다네."
하긴, 물 아니면 누가 홍수를 막을 수 있겠어?
바람이랑 식물이면......얼음도 가능성 있으려나?
모르겠다!
DOT가 알아서 하겠지.
뭐, 어쩌겠어요. 처음이잖아요, 그쵸?
어서 호수에 띄워보냅시다.
곳곳에서 띄워지는 다른 종이꽃들과 함께, 두 사람이 띄워보낸 순백의 꽃은 검은 호수의 위를 부유합니다.
예쁘다는 감상이 새삼스레 듭니다.
...위험해.
아슬아슬해보이던데, 내려와서 다행이라 해야할지...
아이는 빤히 두 사람을 쳐다보더니 입을 열고 제 할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나, 아빠를 만나러 왔어요. 아빠가 수도에서 일하시거든요."
"파란 언니, 타이머맞죠?"
"태어나서는 안 될-"
아이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아리아! 또 어디갔나 했더니! 얼른 이리와!"
라며, 어머니로 보이는 사람이 아이를 챙겨서 데리고 갑니다.
아이는 어머니에게 질질질 연행되어가면서도, 두 사람을 한 번 돌아봅니다.
뭔가 찝찝한데요.
뭘...들은...걸까?
모르는 척 하자, 응.
댕, 댕, 댕....
광장의 시계탑이 울려댑니다.
시계를 확인하면, 벌써 저녁 8시입니다.
오늘 하루는 어땠었나요?
즐거웠어...
이젠 돌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저 멀리 DOT의 꼭짓점이 보입니다.
우리가 떠나온,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이.
자, 이만 돌아갈까요.
모두가 DOT의 로비에 모여있습니다.
눈대중으로 인원을 전부 헤아린 리슬러 부관이 서류철에 무언가 적습니다.
아마 전원 출석이라거나, 문제없음, 이런 걸 쓴 거겠죠.
오늘 군들에게 먼저 시간을 내준 것은, 정식 개장 후 방문하기엔 상황이 여의치 않기 때문입니다.
꽤 많은 사람이 몰려오리라고 예상 중인데, 이런 곳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러분에게' 위험하잖습니까.
이런 곳을 놓칠 턱이 없죠.
카운터의 존재가 소개된 후에는 훨씬 더 유난스레 들끓을거라고, 무미건조한 우려가 덧붙었습니다.
...
전시관은 DOT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설립되었습니다.
차를 타고 가기도 우스울 정도로 가까운 거리입니다.
검은 철창을 넘어, 아침에 걸었던 야트막한 내리막길을 다시 걷자면,
"타이머다."
누군가의 입술 사이로 새어나온 말이 도화선이 되어 이목을 집중시킵니다.
아침보다 선명한 시선이 따라옵니다.
호감, 호의, 온갖 곱고 귀한 것들을 모아 가루를 낸 것 처럼 부드러운 시선들이......
"그런데, 쟤네는 누구야?"
채 떨어지기도 전에, 누군가가 묻습니다.
"본 적 없는데. 다음 기수의 타이머 아니야?"
"그럴리가 있어? 타이머는 한 세대에 하나뿐이잖아/"
"그럼......타이머의 부관이라던가?"
질문의 꼬리가 꼬리를 물고, 꼬리가 꼬리를 잘라, 계속해서 새로운 꼬리가 돋아납니다.
타이머의 근처에서 걷는 카운터의 존재가 퍽 이질적이었던 모양이에요.
시선은 어느새 호기심으로 점철되고,
"어, 어, 언니!"
소란 사이로 툭 튀어나온 것은 어린 목소리였습니다.
어딘가 낯익은 여자아이 둘이 앞을 막고 두 사람을, 아니, 정확히는 호라를 물끄러미 올려다봅니다.
쌍둥이처럼 차려입은 아이들은 처음보는 상대였지만, 어쩐지 낯이 익었습니다.
DOT의 교복과 유사한 옷에, 한쪽 뺨에는 반창고를 붙이고 머리를 내려묶은 모습은, 척 봐도 호라를 흉내 낸 꼴이었으니까.
다른쪽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분명 부모님을 신나게 닦달했을거라고 예상할 수 있을 정도로, 쏙 빼닮았습니다.
무려 타이머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하자, 두 뺨을 발갛게 붉힌 아이들이 잔뜩 긴장한 채로 장미 다발을 내밀었습니다.
꽃송이가 활짝 만개한 푸른 장미입니다.
두 사람에게 각각 장미를 건넨 어린 눈동자들은 오직 두 사람이 그것을 받아주기를 바라며 간절함으로 반짝거립니다.
... 어떻게 할까요?
호라는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듯,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당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직 따뜻한 애플파이, 빨간 풍선, 손수 엮은 사탕 목걸이와 흰 리본을 묶은 파란 장미 수십 송이.
구름보다 큰 것 같은 솜사탕이라거나, 갓 짠 우유와 치즈까지!
누군가가 당신의 목에 사탕 목걸이를 걸어주며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고, 또 다른 누군가가 호라의 어깨를 팡팡 두드립니다.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낫구먼!"
꺄악, 꺄아악, 환호성도 끊이지 않습니다.
"올해도 무사히 넘길 수 있기를! 더 평온한 내년이 찾아오기를!"
누군가 예언의 타이머를 끈질기게 쫓으며 소리칩니다.
"세계 멸망이란 게, 진짜인가? 무언가 신의 계시를 받지 못 했냐고?"
"자네들만 믿고 있어, 우리는 언제나 그래."
언니, 오빠, 형, 누나! 저기요! 타이머! 온갖 호칭이 물거품처럼 귓가에 스칩니다.
그 사이를 헤치고 나가는 것은 꽃다발에 얼굴을 파묻는 것처럼 향기로웠어요.
향기로웠지만, 숨을 쉬기 어렵단 점에서도.
"그런데, 옆에는 누군가?"
순간, 세차게 바람이 붑니다.
희고 고운 바람과 함께 쏴아아, 파도 소리 같은 것이 일렁이고, 줄에 매달린 것들이 일제히 몸을 흔듭니다.
"처음 보는데, 역시 부관을 들이기로 한 건가?"
곤란한 질문이 당도합니다.
무어라 대답해야할까요?
아니, 아니지. 주의 받은대로 입을 딱 다물어야 할까요?
잠깐의 고민 사이, 익숙한 목소리가 파고듭니다.
지금 다음 장소로 이동중이라 답변이 어렵습니다.
기억하나요?
침묵하고 무시로 일관할 것,
어떤 이야깃거리도 흘리지 말 것,
최대한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날 것.
지금 필요한 것은 세번째 것이겠군요.
건물 사이사이로 난 골목과 도로는 아주 깨끗했습니다.
캐러맬 냄새가 설탕 냄새처럼 느껴질 정도였어요.
시끌벅적한 인파를 물리치며 걷는 사이, 점점 걸음이 빨라졌습니다.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도 장교와 군인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미 거리가 꽤 벌어졌던걸까요.
하지만, 그도 그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아는지 크게 탓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가끔은 깨트릴 필요가 있습니다.
현실을 보여주는거죠.
그건 나쁜 일도, 잘못된 일도 아닙니다.
그저-...... 필요한 일일 뿐.
의외로 도로에는 사람이 없어 한적합니다.
술에 취한 이들이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를 떠들긴 했지만 그 뿐이었습니다.
차도 거의 다니지 않았어요.
드물게 지나가는 차량의 창문이 열리고, 또래로 보이는 아이가 손을 흔들곤 했습니다.
타이머를 알아본 거겠죠.
...
곳곳에서 타이머를 부르고, 외치고, 눈짓하고, 손짓하며, 끌어 당깁니다.
단순히 개인을 향해 쏟아지는 호의와 호감이라기엔 지나치게 두터운 것입니다.
그리고 옆에서 지켜본 그 모든 것들은...
기준치: | 70/35/14 |
굴림: | 55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낯익기 짝이 없어서, 꼭 제자리를 찾아온 듯 했습니다.
제게 쏟아지는 호의와 호감, 관심인 것인 냥,......
목소리마저 친숙했어요.
당신은 기시감인지, 괴리감인지 모를 감각을 느낍니다.
...
도밍게즈의 달은 휘영청 밝기만 합니다.
하늘에 뜬 달이 너무 밝아서, 전시관이 아니라 달을 향해 걸어가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검은 하늘에는 소원 대신 별이 떠서, 흰 별이 촘촘하게 달려 있었고요.
그 밤, 걷는 길은 왜 그렇게 길게만 느껴졌던가요.
감상과 달리, 실제로는 도로를 따라 오분 가량 걸었을 뿐인데도요!
DOT의 본관을 본떠 지은 것처럼, 똑같이 생겼거든요.
마중을 나온 전시관의 담당의 말에 따르면,
일부러 그렇게 지었다는군요.
본관의, 아니, 전시관의 문을 넘기 위해 얉은 계단을 오르려던 장교가 문득 멈춰섭니다.
좌우로 나뉜 문은 청동으로 빚고, 남색으로 덧칠했는데, 무척 크고 두꺼웠습니다.
상당한 무게를 자랑했지만, 누구도 문을 여느라 씨름을 할 필요는 없었어요.
언제나 열린 문이었으니까.
DOT의 모든 건물은 현관을 닫지 않습니다.
그것이 전통입니다.
문은,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한다.
전시관은 생각보다 더 정교하게 베껴다 둔 것 같군요.
흰 대리석이 깔린 바닥과 열두 개의 별자리가 그려진 남색 천장,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붓의 흐름조차 눈치채지 못할 만큼 섬세하게 회칠을 한 벽.
DOT의 본관처럼 흠 없고, 점 없이 완벽하기만 합니다.
타닥타닥, 바닥을 밟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립니다.
다른 점이라면...... 안내 데스크에 아무도 없다는 점일까요.
그야, 전시관의 근무시간은 DOT보다 훨씬 짧고, 일찍 끝날 테니까요.
"잘 만들었군."
"장교님이 많이 도와주신 덕분이죠. 저희도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둘씩 나란히, 복도를 거닙니다.
이렇게 걷자니 첫 만남이 떠오릅니다.
영문도 모른 채 걸었던 복도, 괜스레 뛰던 심장, 수런거리던 목소리, 그리고......
... 그러나 이곳은 DOT가 아니고, 두 사람은 이미 만났죠.
벽 좌우에는 섬세한 벽화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해와 달이 뜬 하늘과 끝을 알 수 없는 넓은 바라, 희고 고운 모래사막, 얼어붙은 땅과 바람이 머무는 들판..
곳곳마다 열네 개의 기둥이 서있습니다.
신의 손가락이건, 최초의 시곗바늘이건, 혹은 그 둘 다일 기둥들이.
섬세하게 신경을 쓴 티가 납니다.
왼쪽을 보아도, 오른쪽을 보아도, 그림은 똑같습니다.
다른 점이라고는 해가 떴는가, 달이 떴는가의 차이입니다.
왼쪽 복도는 아침을 맞은 세계였고, 오른쪽 복도는 저녁을 맞은 세계였거든요.
아침과 저녁, 하루는 둘로 나뉘어 있지 않은가.
열 네개의 구역을 따라 그린, (정확히 말하자면 구역의 최초, 첫 모습을 그렸을) 벽화가 끝나자, 전시관의 입구가 펼쳐졌습니다.
문은 세개입니다.
전시관 1. 구원의 시간
전시관 2. 쌓아온 역사
전시관 3. 지나간 생애
어디부터 둘러볼까요?
조각상의 수는 스물두개 입니다.
두 명의 사람이 한 쌍을 이루는 구조입니다.
하나하나 섬세하게 조각한 것으로, 유려한 곡선이 진짜 사람같습니다.
기준치: | 5/2/1 |
굴림: | 90 |
판정결과: | 실패 |
기준치: | 5/2/1 |
굴림: | 67 |
판정결과: | 실패 |
정중앙에는 높은 탑이 하나 서 있습니다.
탑은 하나의 거대한 석고를 깎아 만든 탑으로, 그저 새하얗습니다.
단면은 사각형이고, 위로 갈수록 가늘어져 끝은 피라미드 꼴입니다.
기준치: | 70/35/14 |
굴림: | 94 |
판정결과: | 실패 |
딱히 중요한 것도 아니고.
(헤헤)
그것을 중심으로 조각상들은 각자의 시간에 맞게 제 자리를 지키고 서 있습니다.
제 1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상징하는, 유리구슬이 쏟아진 바다에 선 조각상.
제 2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상징하는, 불붙지 않은 성화에 화살을 겨눈 조각상.
제 3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상징하는, 세계수라 부를 법한 커다란 고목 아래 선 조각상과 제 4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상징하는, 번개를 쥐고 휘두르는 조각상.
제 5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상징하는, 얼음처럼 투명한 유리 속에 갇힌 조각상이라든가, 제 6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상징하는, 발아래 온갖 동물을 거느린 조각상.
제 9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상징하는, 발아래 해골을 쌓은 조각상.
제 10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상징하는, 각각 허공과 구덩이 안에 서 있는 조각상과 제 11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상징하는,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입을 닫은 조각상, 제 12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상징하는, 차마 잊지 못한 무언가를 돌아보는 조각상……
정확히 열두 개. 시작과 끝이 없는 불완전한 조각상들이 서 있습니다.
석고로 빚었다지만 전체가 하얗다는 것을 제외하면,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생동감이 넘칩니다.
그것의 얼굴은,
기준치: | 65/32/13 |
굴림: | 12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마지막 조각상에서 시선을 떼고, 다음 관으로 가기 위해 걸음을 떼는데, 무언가가 앞을 막아섭니다.
기준치: | 60/30/12 |
굴림: | 36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문 좌우에 태양과 달을 끌어안은 조각상이 나란히 서있었는데, 어찌나 반질반질하게 닦아두었는지, 지독하게 투명해서 존재를 눈치채지 못할 지경이었던 것입니다.
제 0시와 제 13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상징하는 조각상이 분명합니다.
0과 13은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수.
그럴싸한 연출이네요.
기준치: | 5/2/1 |
굴림: | 31 |
판정결과: | 실패 |
기준치: | 5/2/1 |
굴림: | 68 |
판정결과: | 실패 |
암실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요!
여러 개의 의자가 놓여 있고, 전면에는 커다란 스크린이 흘러내렸습니다.
때마침 스크린에는 어떤 영상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시청각실이에요. 타이머와 관련된 뉴스 영상이나, 애니메이션 따위를 볼 수 있죠. 시간이 없으니 우리는 생략할겁니다."
"원한다면 수업 시간 중 여유가 있을 때 틀어달라고 요청해두죠."
기준치: | 65/32/13 |
굴림: | 18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뭔가 이상한데요.
뉴스, 애니메이션 따위라고 했는데....
저건 진짜 당신들이잖아요!
때마침 영상 속 두 사람이 입을 엽니다.
"... 안녕? 그러니까... 네가 내 카운터, 맞지?"
맙소사!
두 사람이 처음만난 그 날이에요!
언제 촬영한거죠?!
(물론 집에서도 비슷했지만...그래도 사생활...)
당신과 다르게 입 밖으로 이래도 되는거냐고 꺼내고 따지고 들었지만,
장교도 부관도 귓등으로조차 듣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문제가 없는 수위로 편집해서 보내고 있으니 걱정말게.
하루 이틀도 아닌데 새삼스럽다는 듯이!
복도가 없고, 벽도 없는 전시관은 한눈에 모든 곳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다만, 천장이 무척 높아서 고개를 다 들어도 위를 볼 수 없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그중에서도 제일 눈에 띄는 것이라면... 전면의 액자들일까요.
만, 어찌나 개수가 많은지 한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눈을 들어 세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많은 수였어요.
수백, 수천 개는 되어보였으니까.
그리고 액자 속에는...
익숙한 얼굴이 걸려 있습니다.
여태까지 우리가 나고 자라며, 혹은 책과 영상을 통해 보았던 이들의 사진이 액자 속에 갇혀 있습니다.
까마득하게 기억나지 않는 얼굴도, 교과서에서나 보았던 얼굴도 있습니다.
장교를 비롯한 어른들은 짧게 묵념합니다.
죽은 이들을 잊지 않도록.
사진속에 갇힌 얼굴들은 하나같이 비슷해보였습니다.
서로간에 닮아서가 아니라,
모두 타이머라서.
사진이란 피사체를 바라보는 이의 시선을 담는 법이니까요.
조각상과 마찬가지에요.
아마 저 중에는 두 사람의 액자가 될 것도 있겠죠.
그런 생각을 해버리고 나니, 걸음을 쉬이 옮길 수가 없었습니다.
평균 연령이 반백살이라고는 해도, 어디까지나 평균, 통계일 뿐입니다.
사진 속에는 상당히 앳된... 또래의 얼굴도 여럿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기준치: | 65/32/13 |
굴림: | 18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안내 데스크 옆에 딸린 문은 특이하게도 아치 형태를 하고 있는데, 철제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을만큼 빼곡하게 장미가 덮여 있습니다.
장미 향기가 전시관의 바닥으로 가라앉습니다. 죽음을 추모하는 것처럼.
지치고, 돌아가고 싶습니다.
숙소건, 집이건, 어디든 좋으니 이곳을 나가고싶어요.
그러나, 어른들은 이미 보여주기 식의 묵념을 마치고 다음 전시관으로 넘어간지 오래잖아요?
목적을 빨리 해치우는 것이야말로 휴식으로의 지름길이겠죠.
얼른 보고, 돌아가자.
체념과 퍽 닮은 생각에 이끌려 아치문을 향해 걸음을 옮깁니다.
장미는 활짝 만개한 탓에 내일이면 시들기 시작할 것 같았습니다.
밤 내내 화려하게 피어있다가, 찾아오는 사람들에겐 꽃잎을 떨구겠죠.
그렇게, 아치문 아래에 섰을 때였습니다.
목소리는 분명, 등 뒤에서 들렸습니다.
뒤를 돌아보면 하인리히 장교와 리슬러 부관, 그리고 다른 일행들은 입구 근처에 서 있었습니다.
마치...
그곳으로 나가려는 것 처럼요.
이쪽은 보이지 않는걸까요?
마치 귀신에 홀렸던 것 처럼,
새파란 장미도, 은색 아치도 없는 평범하고 흰 벽.
... 이상한 일입니다.
이럴 리가 없는데, ...환각일까요?
하지만, 8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도 영문을 모르는 얼굴입니다.
굉장히 얼떨떨해 보이는 표정으로, 아치문이 있었던 흰 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다들, 그 광경을 목격한거에요.
.......
단체로 미치기라도 한걸까요?
바깥에선 어른들이 "빨리 나오라"며 우리를 재촉합니다.
SANC 0/1
기준치: | 70/35/14 |
굴림: | 69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달리 말하면,
돌아갈 시간입니다.
걸음을 옮기는 내내, 잊을 수 없는 장미 향기가 발목을 붙잡습니다.
타이머의 상징은 그저 시간일텐데, 이곳의 시간은 멈춘 듯 했고 오히려 때 이른 장미만 만개했습니다.
이상하기 짝이 없네요.
...
전시회를 벗어나, 도로를 걸어, 달에서 멀어지는 동안,
때마침 광장의 시계탑이 정각을 알리며 울어댑니다.
밤이 깊어 하늘은 어두컴컴합니다.
방금 그건 뭐였을까요.
혹은, 이 또한 어떤 운명일까요?
(잘못...본걸까...?)
다른 타이머랑...카운터도...본것 같은데...
...왜 우리한테만 보인걸까?
(헤헤)
언제나 딱 14명 밖에 없는 특별한 아이들.
카운터는 더 특별하고?
잘모르겠어.
처음에는...능력이 있으니까...사람들을 도와줄려고...온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냥...남들에게 잘보일려고...우리를 앞에 내보내는...것 같아.
우리가 뭐라 한다고 고쳐질 건 아닌거같애.
어른들이란!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따위 알지 못했습니다.
내일의 '그 일'이 훗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도 알 수 없었어요.
만약 알았더라면...
오늘의 우리는, 결단코 그 문을 열어젖혔을 테니까.
축제가 한창인 날이에요.
거리는 떠들썩하게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하늘은 구름과 흰 새, 손수건과 종이 가루 따위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고, 타이머의 교복, 제복과 비슷한 흰옷을 입은 사람이 유난히 많습니다.
희고 고운 색으로 점철된 세계란 어찌나 완벽하던지.
땅거미가 건물을 기어다니기 시작하면, 하늘은 딱 좋은 색으로 물들어갑니다.
갈기갈기 찢어진 구름은 어렴풋하게 사라졌다가 드러나기를 반복하고-
모든 것이 순조로웠습니다.
그래요, 날이 저물고 밤이 찾아올 때까지만 해도 꼭 그랬죠.
수도의 광장에는 커다란 무대가 설치되었습니다.
매해 이맘때쯤이면 설치하고 철거하기를 반복하는 것이에요.
가장 어두운 밤이 찾아오는 시간, 세상 모든 것들이 가라앉는 시간을 기다리며.
"언제 시작한대?"
"곧 시작할걸. 이제 10시잖아."
"나 너무 기대돼! 실물을 보는 건 처음이야!"
객석에는 사람들이 빼곡하게 들어찼습니다.
무대 뒤편에 서 있는 타이머와 카운터의 귀에도 그들의 소리가 확연히 들릴 정도였으니, 말 다했죠.
밤하늘의 별처럼 무수히 많은 존재가...... 이 너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네! 오늘은 바야흐로 축제의 마지막 밤!
타이머의 모습을 드러내고, 카운터의 존재를 증명하는 순간입니다.
'사이좋은 파트너'의 모습을 연출하라고 내내 요구받은 그 순간이에요.
"준비됐나요?"
"두 사람이 함께 나와야 하고, 되도록 친한 티가 나게. 친밀하게. 무슨 듯인지 알겠죠?"
"손이라도 잡으면 더 좋고요."
그 외에도 스태프는, 카메라는 정중앙의 2번을 보라던가,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사회자의 지시를 잘 따르기만 하라는 시시콜콜한 이야기와 함께 한참 무언가를 떠들어댑니다.
그러다가 곧, 누군가의 호출이 떨어졌다며 잠시만 기다리라고 당부한 뒤 사라집니다.
무대 뒤편은 어수선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곳에서만큼은, 그 누구도 두 사람에게 관심이 없어보입니다.
그 어느 곳보다 타이머와 카운터를 위한 자리인데도요.
시곗바늘 역시 평소처럼 움직입니다.
하나, 둘 셋...
공연 시작은 10시까지는 3분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시끌시끌한 목소리가 가득한 곳에서, 옆에 선 사람의 존재감만 뚜렷하게 느껴집니다.
잘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이런거 하고싶지는 않아...
실수 하지 않게 조심하고... 잘 해보자.
"자,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제 0시 페어부터, 무대 위로 불러보겠습니다!"
하는, 쩌렁쩌렁 마이크를 타고 울리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스태프가 손짓하며, 호명된 타이머와 카운터를 무대 위로 올립니다.
그렇게 제 0시부터 순서대로 소개가 이어집니다.
사람들은 환호하고, 찬양하고, 기뻐합니다.
우리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이 팔려나간다면, 이 순간 또한 온갖 곳에서 부티나게 팔리리라고.
"다음은 제 7시 페어입니다! 무대 위로 올라와주세요-!"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느덧 두 사람의 순서입니다.
발 아래에 선 사람들의 수는 도저히 눈으로 헤아릴 수 없을 지경입니다.
너무 많았고, 골목에서 겪은 인산인해는 아이들 소꿉장난처럼 보일 지경이었습니다.
환호성이 터지고, 마치, 마법의 주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사람들은 호라의 이름을 연호합니다.
그중에는 종종 당신을 향한 시선이 섞여 있기도 했습니다.
타이머를 위한 자리에 등장한 새로운 사람이라니! 이상히 여길만도 하죠.
기준치: | 70/35/14 |
굴림: | 78 |
판정결과: | 실패 |
모든 것이 부담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시선과 관심에 압도당할 지경입니다.
당장 이대로 뒤돌아서 무대를 뛰쳐나가고 싶다는 충동이 불쑥 떠오릅니다.
그런 충동에 못 이겨 걸음을 뒤로 한 발자국 물렸을 때,
호라가 당신의 손을 꼭 잡고 당신과 눈을 마주합니다.
잡은 손은 조명 탓인지 홧홧했습니다.
손을 맞잡고, 한 걸음, 두 걸음, 무대의 중앙으로 나아갑니다.
가장 완벽한 중앙에 섰을 때,
우리가 준비한 것을 보여줄 시간입니다.
스르르 놓아진 손은 준비한 소품을 향해 갑니다.
한 쌍의 날개같은 것이 동시에 흔들리며 강렬한 바람을 일으킵니다.
이어서 뿌려지는 봄의 꽃잎들은 하늘하늘 공중에 떠오릅니다.
바람으로 된, 보이지 않는 나비의 등을 타고, 하늘에 한 점의 그림을 수 놓으며, 꽃잎들은 춤을 춥니다.
당신이 그것들의 중앙, 온전한 모양으로 날고 있는 푸른 꽃다발을 향해 날선 바람을 보내면, 활짝 펼쳐져 있던 꽃들이 흐드러지며 관객석을 향해 꽃비를 내립니다.
시간의 현신, 세계의 구원, 타이머와 카운터.
두 사람이 모든 것을 끝낸 후에도, 잠시간 침묵이 맴돕니다.
분홍빛의 꽃은 관객석의 사람들의 머리 위로, 손 위로, 콧잔등 위로 하늘하늘 내려앉습니다.
긴 침묵을 깬 것은, 무대 한 편에 비켜 서있던 어떤 사람이었습니다.
"도밍게즈가 가장 사랑하는 타이머가 드디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오, 그리고 가장 사랑하게 될 타이머도요."
"호라, 우리에게 직접 자기 소개를 해주겠어요?"
그는 사근사근 웃으며 자연스럽게 소개를 요구하고, 호라는 방긋 웃으며 마이크를 받아듭니다.
"이 자리에서 소개될, 타이머의 새로운 파트너를 오매불망 기다렸답니다."
사회자는 타이머와 함께 나타난 이는 카운터이며, 타이머의 곁에서 세상을 함께 구원할 자라는, DOT의 진부한 대본을 아주 그럴싸하게 연기합니다.
새로운 구원자, 타이머의 파트너.
시간이 선택한 - 또 다른 증명.
당신의 능력을 두 눈으로 보고, 카운터의 존재를 실감한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멍청하게 입을 벌린 채 무대 위를 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구원자라는 말에 눈을 홉뜨고, 숨을 들이켜기도 했어요.
세계 멸망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모두에게 눈엣가시같은 존재였으니까.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고, 무시하려 해도 무시할 수 없으며, 빼내기엔 너무 두려운.
그런 세계 멸망의 징조를, 정확하게 깨부수는 존재의 등장인걸요.
술렁이던 관객들은 곧, 다시 환호성을 내지릅니다.
사회자의 말에, 호라가 들고 있던 마이크를 당신에게 건네옵니다.
태초부터 두 사람이 짝이었던 것처럼.
누구도 그 존재에 의문을 표하거나 반감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카운터의 존재를 실감하는 것도 잠시, 시회는 익숙하게 다음 순서를 진행합니다.
"DOT의 말로는 타이머와 카운터는 서로 선택받은 운명이라던데, 처음 만났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특별한 무언가가 느껴졌나요?"
그런데, 몇 번 이야기를 나누고 보니까, 이게 운명이라는거구나- 싶더라고요.
근데...만나니까... 제 자리를 찾은 기분...이 들었어요. 이런 것도... 운명이라고 하는것...같더라고요.
"그나저나, 로빈. 타이머가 되었을 때 상당히 놀랐겠어요."
"어떻게 능력을 자각했는지, 어떤 일이 있었던건지 모두 궁금해할 것 같은데, 짧게라도 이야기를 들려주겠어요?
그게...
창문도... 열지 않은 방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그냥 살짝 휘둘렀을 뿐인데 물건이 쓰러질 정도로 강한 바람이 생기고... 그리고 목에는... 타이머한테만 있다는 각인이 생겨서... 알게되었어요.
"애인으로서는, 몇 점 일 것 같아요?"
짓궂기는!
그 뒤로도 몇가지 상냥한 질문들과, 몇 가지 짓궂은 질문과 대답들이 오고갑니다.
...
탈탈 소리가 날 정도로 털리고 난 후에야 두 사람은 무대를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계단을 내려오는 내내 다리가 후들거렸다면, 필시 긴장이 풀렸기 때문이겠죠.
무대 뒤편으로 내려오자, 스태프가 의자와 마실 것을 갖다 줍니다.
"수고하셨어요."
라는 의례적인 인사말과 함께요.
...
다음 순서도 무탈하게 흘러갑니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차례입니다.
제 13시, 어둠의 타이머와 카운터의 차례에요.
두 사람은 오래 기다린 것이 지루했는지 긴장한 기색 하나 없이, 금세 계단을 오릅니다.
그들이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무대의 조명이 먹히고, 어둠이 몰려듭니다.
완전한 어둠 속에서, 제 0시 페어가 띄운 빛이 별처럼 반짝입니다.
파직!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무대 뒤편의 조명이 꺼집니다.
정전이라도 온 것처럼, 혹은 능력에 잡아먹힌 것처럼 사방이 어두컴컴합니다.
두 사람이 주위를 두리번 거리면, 다른 타이머와 카운터들도 놀랐는지 하나 둘씩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뭐야, 무슨 일이야?"
기준치: | 70/35/14 |
굴림: | 100 |
판정결과: | 대실패 |
기준치: | 70/35/14 |
굴림: | 61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주변엔 온통 침묵만이 가득합니다.
... 갑작스런 고요함에 불안감이 머리를 들고 등을 타고 기어오르기 시작합니다.
SANC 0/1
기준치: | 70/35/14 |
굴림: | 71 |
판정결과: | 실패 |
주변은 어둡기만한 것 뿐만 아니라 쥐죽은 듯 고요합니다.
사회자는 더 말을 하지 않고, 무대 뒤편에서 바삐 소리치던 사람들도 모조리 조용해졌습니다.
똑딱똑딱, 끊임없이 흘러가던 시계 소리도 멈춰버렸어요.
제 13시 페어가 어둠을 거두자, 인공적인 조명도 태양도 없는 온전한 밤이 찾아왔습니다.
희미하게 보라색이 섞인 하늘에는 불온한 별들이 총총 떠 있습니다.
어쩐지, 달도 붉은듯 했어요.
그리고 달빛 아래 드러난 광경은 더욱 믿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모두 멈춰버린 것입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정말 그랬습니다.
구름도 흘러가지 않았고, 달도 지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꽁꽁 얼어버린 것처럼 멈춰 서 있습니다.
12시를 알려야 하는 광장의 시계탑도 조용하기만 합니다.
이 순간이 소설이라면, 아마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았을 겁니다.
4월 20일, 도밍게즈의 건국을 축하하는 마지막 날.
타이머와 카운터만을 남겨두고, 세계가 멸망했다.
.... 라고!
누가 장난 치고 있는건 아니지?
당황, 혼란, 공포. 그것이 전부입니다.
시간이 멈춘 것 마냥, 모든 것이 얼어붙어 있습니다.
종종 호라가 누군가를 알아본 것 처럼 뛰어갔다가, 놀라기를 반복합니다.
당신이 아는 얼굴은, 단 하나도 보이지 않지만.
무서워.
...고마워, 덕분에... 조금 진정된 것 같아.
어쩌지?
피곤하기도 하고...
자고 일어나면, 이 모든 것이 꿈이었던 것 마냥 사라지기를 바라며.
아침이 밝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은 밝아지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하늘은 여전히 어두컴컴했고, 해는 고개를 내밀지 않았습니다.
달과 별은 그 자리에 풀칠한 것처럼 불온한 색으로 빛날 뿐입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멈춰 서 있어요.
웃고 떠들던 그대로, 손을 잡고 걷던 그대로, 돌아서건 그대로, 박수갈채를 보내던 그대로.
자신의 시간이 멈췄다는 걸 전혀 모르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문득, 전시관에서 보았던 조각상들이 떠올랐습니다.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퍽 닮았거든요.
사람이 육신과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그들의 영혼은 어디로 갔을까요?
그마저 멈추어버린 걸까요?
어느쪽이라고 확신할 수 없습니다.
겪어보지 않은 일을 확신하는 건 인간이 이루어낼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니까요.
그저 우리는... 고민할 따름입니다.
시간이 왜 멈췄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다시 돌이킬 수 있을지.
구원자로서, 우리가 처음 가진 사명이니까요.
답을 아는 이는 없고, 신은 응답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문제를 맞이했으니, 답을 내놓고, 그것이 정답인지 오답인지 스스로 확인해야 합니다.
자, 이상했던 징조를 돌이켜볼까요?
세계 멸망의 예언과 전 세대 예언의 타이머가 내놓았던 해결 방법, 갑자기 나타난 카운터와 홀연히 사라진 새파란 장미의 아치문......
불가능과 기적이 순서대로 교차하는 배치입니다.
시시각각 다가오던 세계 멸망으로부터 세계를 구해낸, 한 줄의 예언.
타이머는 오직 하나 뿐이라던 세계의 섭리를 깬 카운터의 등장과,
기적을 상징하는 새파란 장미의 아치문.
데칼코마니처럼 좌우의 아귀가 딱 들어맞습니다.
이것이 만약, 정말로 예정된 멸망이라면......
그래서 예언의 타이머는, 카운터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세계가 멸망에서 벗어나리라 예언한 걸지도 몰라요!
시계는 울지 않습니다.
세계는 고요합니다.
새파란 장미는 무르익었지만, 꽃잎을 떨구진 않습니다.
문득,
기준치: | 69/34/13 |
굴림: | 66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그것은 생각이라기보단, 사명감에 가까운 감각이었습니다.
어째서일까요? 혼란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 어디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미 사라졌던 전시관의 그곳에?
아니라면, 흡사한 공원의 장미 터널로?
예를 들면......
기준치: | 70/35/14 |
굴림: | 51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DOT의 본관을 본떠 지은 것처럼, 똑같이 생겼었거든요.
마중 나온 전시관의 담당자가 일부러 그렇게 지었다고 했던 것이 떠오릅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전시관이 아니라......
DOT...본관으로 가자.
아치문이...있을 것 같아,
뭐라도 있을 것 같으면 가봐야지!
DOT 본관은 언제나처럼 문이 활짝 열려있습니다.
시간이 멈춘 지금도 그렇습니다.
청동으로 빚은, 남색으로 덧칠한 문을 지나면, 익숙한 풍경이 펼쳐집니다.
본관의 로비입니다.
흰 대리석이 깔린 바닥과 열두 개의 별자리가 그려진 남색 천장,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붓의 흐름조차 눈치채지 못할 만큼 섬세하게 회칠을 한 벽.
안내 데스크에 앉은 직원도, 로비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직원도 모두 멈춰선 상태입니다.
그때, 전시관의 구조가 어땠던가요.
전시관을 모두 돌고난 후, 안내데스크의 옆에 세워졌었죠.
빙그르르, 한 바퀴를 돈 시선이 비로소 장미 아치가 있던 곳에 다다릅니다.
그곳에 있던 것은,
띵,
멈춘 시간을 깨트리고, 요란한 소리가 울립니다.
때마침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소리였습니다.
엘리베이터는 1층에 선 채, 내려갈 채비를 마치고 있습니다.
열린 문이 어쩐지 우리를 기다리는 괴물의 입속인 양 께름칙합니다.
혹은 운명인가.
새파란 장미는 한 송이도 보이지 않고, 엘리베이터의 문설주는 둥굴긴 커녕 네모나지만, 위치는 분명히 같습니다.
때마침 도착한 것도 수상하기 짝이 없어요.
시간이 멈췄다면 엘리베이터 또한 움직이지 않아야 하는데, 어째서 이것만은 움직이는 걸까요?
그러나, 장미 아치와 달리 눈을 깜빡여도 엘리베이터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타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시간은 계속 멈춰있고, 엘리베이터는 문을 활짝 열고, 언제까지고 기다릴겁니다.
...근데... 다 탈 수 있을까...? 28명이...?
저렇게 보여도, 최대 정원 수는 50명이 찍혀있던걸?
하나같이 의문과 두려움, 설렘 따위의 감정으로 똘똘 뭉친 표정을 하고 있군요.
그러나, 타이머와 카운터가 모두 탄 후에도 엘리베이터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몇 층으로 갈지, 버튼을 눌러주어야 움직일 모양입니다.
지하 1층부터 4층, 그리고 옥상까지.
총 6개의 버튼이 있습니다.
(지하 2층...버튼이...)
기준치: | 65/32/13 |
굴림: | 85 |
판정결과: | 실패 |
그러나, 이유도, 종착지도 알 수 없는 파도일 뿐입니다.
의미없이 움직이지도 않는 시간을 쿡쿡 찔러대는 것이 길어지려던 때, 8시의 타이머와 카운터가 말합니다.
"이거... 비상 호출 버튼이 아닌 것 같아."
"버튼에 환각이 걸려있어!"
그 말을 듣고 비상 호출 버튼을 누르면, 파란 LED 램프가 점등합니다.
듣도 보도 못한 공간입니다.
기준치: | 60/30/12 |
굴림: | 48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평소보다도 훨씬 깊게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지하 2층이라니, 이런 곳이 있었다니!
그리고, 구태여 그 존재를 숨긴 이유는 무엇을 위함인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일 투성이입니다.
...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칠흑같은 어둠이었습니다.
불이 꺼진 탓일까, 옆에 선 사람의 위치를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주변이 어둡습니다.
제 13시 페어가 내린 어둠만큼이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 소독약 냄새가 싸하게 코끝을 스칩니다.
한 걸음 내딛는 것도 내키지 않는 냄새입니다.
여긴 대체...?
불이 켜지고, 지하 2층의 모든 곳이 밝은 빛 아래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14개의 원형 유리관과 멈춘 컴퓨터와 연구원,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커다란 원통이 놓여 있습니다.
안쪽에는 철제문이 딸려 있습니다.
여러 대의 CCTV가 모서리에 매달려 있었지만, 모두 멈춘 것인지 움직이거나 액정을 빛내진 않습니다.
DOT 본관 지하에, 이런 것들이 왜 필요로 한단 말인가요?
투명한 파란색으로 물든 그것은 꼭 장미의 색을 훔친것처럼 흐릿합니다.
각 유리관에는 숫자와 간단한 낱말이 적힌 네임태그가 붙어있습니다.
〈제0시, 빛〉, 〈제1시, 물〉, 〈제2시, 불〉, 〈제3시, 식물〉, 〈제4시, 전기〉, 〈제5시, 얼음〉……
굳이 다 읽어볼 필요도 없습니다.
전부, 시간이 부여한 숫자와 능력을 적어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타이머는 물론이요, 카운터도 처음 보는 것들입니다.
기준치: | 65/32/13 |
굴림: | 41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2051. 10. 08〉, 〈2052. 02. 27〉, 〈2052. 01. 01〉, 〈2051. 12. 17〉......
공통점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날짜들은, 대략 반년 전부터 일주일 사이의 어느 날들이었습니다.
이날이... 무슨 날이었더라.
고민은 길어지지 않았습니다.
카운터들이 곧 익숙한 날짜들을 찾아갔기 때문입니다.
불길하게도 유리관은, 딱 한 명의 사람이 들어가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마우스를 움직이려고 해도 딱딱하게 굳어서 움직이지 않네요 ......
연구 보고를 설명하고 지시하던 연구원, 애쉬입니다.
그 역시 커다란 책을 든 채, 조각상처럼 꼿꼿하게 멈춰버렸습니다.
...여기서 뭘 하던거지?
기준치: | 65/32/13 |
굴림: | 83 |
판정결과: | 실패 |
...
기준치: | 75/37/15 |
굴림: | 75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미묘한 색의 가죽 표지를 지닌 책입니다.
어쩐지 서늘하고, 끈적거리며, 희미하게 사향 냄새가 납니다.
불길한 감촉입니다.
SANC 0/1
기준치: | 69/34/13 |
굴림: | 29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무언가를 사용하기 위한 설명서라는 것 까지는 알겠는데, 어떤 문장도 지금 가진 의문에 대한 해답이 되어주진 않습니다.
이런건 왜 읽고 있던 걸까요?
높이 30cm 정도에 지름은 그보다 약간 작고, 볼록한 앞부분에 신기한 소켓 세개가 이등변 삼각형 모양으로 배열된 생김새인데, 유리창도 없어서 내용물을 종잡을 수 없습니다.
라벨에는 낯선 이름이 쓰여 있습니다.
'아르고.'
원통 뒤에는 렌즈와 진공관, 금속 원반을 연결한 작은 상자 라던가, 그 외에는 통 용도를 알 수 없는 것들이 매달린 기다란 기계가 서 있습니다.
도저히 도밍게즈의 것이라기엔 믿을 수 없는, 수상쩍은 물건들입니다.
기준치: | 60/30/12 |
굴림: | 16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이건... '뇌 보관통' 이라고 하는 물건입니다.
그렇다는건...
안에 들어있는 게, 사람의 뇌라는 건가요!?
SANC 0/1D2
기준치: | 69/34/13 |
굴림: | 9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렌즈를 통해 어떤 장면이 투영되고, 단조로운 나레이션이 시작됩니다.
흑백 영화처럼 모두 회색인데다 상당히 화질이 좋지 못해서, 더더욱 도밍게즈의 것이 아님을 실감하게 됩니다.
TV도, 녹화한 영상도 아니므로 장면의 조절은 불가능합니다.
그저, 흘러나오는 것들을 훔쳐보고 주워들을 뿐입니다.
기준치: | 69/34/13 |
굴림: | 85 |
판정결과: | 실패 |
rolling 1d5
(
)
2
2
연구소는 결백합니다. 천장도, 바닥도 온통 하얀색이었습니다.
건조한 공기에는 날 리가 없는 소독약 냄새가 빽빽하게 차 있었고,
문득,
하인리히 장교의 목소리가 떠올랐습니다.
“세계는 멸망하지 않아. 도밍게즈는 2053년의 새 계절을 맞을 거야. 그리고……”
"눈앞의 이들이 그 증거지."
*“지난 예언의 타이머는 매우 훌륭한 이였지. 눈과 귀가 밝고 입이 무거웠어. 무엇보다 가장 훌륭한 점은, 미래를 바꾸는 방법을 함께 점지받곤 했단 거야. 많은 이들이 세계 멸망의 예언이 예언의 탑으로부터 시작한 줄 알지만, 천만의 말씀.”
미래를 바꾸는 방법이란 이런 식이었던건가요?
눈과 귀가 밝고, 입이 무겁다는 것은 도덕과 정의의 죽음을 의미했던건가요?
전 세대 타이머는 어떤 심정으로 그 명령에 순응한건가요?
진정으로, 그들은 구원을 사명으로 삼았던가요.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의문만 떠오릅니다.
“DOT는, 타이머는 이미 그 미래를 알고 있었네. 그 예언이 퍼질 것도, 세계가 혼란스러워질 것도, 그리고, 새로운 구원자가 나타날 것마저도!”
쏟아지는 깨달음은 선명합니다.
신은, 인간의 탄생을 확신합니다.
그렇다면 하인리히 장교가 그토록 확신에 차 있던 것 또한 당연한 일이 아니겠어요?
그들은 스스로, 카운터의 창조주를 자처했으므로.
깨끗한 대리석 벽변에 얼핏 인영이 비칩니다.
서있는 것은 스물여덟인데, 비치는 것은 열넷 뿐입니다.
제대로 비치지 않는 쪽이 누구인진,
가지고 있던 기억들은 무엇인가. 왜 축제에서 아는 이들을 찾아볼 수 없었는가. 어째서 DOT에 도착한 이래로, 단 한번도 가족이나 지인의 연락을 받지 못했던가.
그 모든 답을 깨닫는 순간.
'운명'이라는 말을 실감합니다.
그래, 우리는 서로의 운명이었던거에요.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시간이 멈춰버린 기분입니다.
내내 멈춰있었던 것이지만, 귀가 먹먹해서, 유난히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인형이니...카운터니... 지들 마음대로 이렇게 만들어놓고... 결국 구원자라고 하면서 과시욕이나 채우고 있고...
... 전부 부실 수는 없나? 이렇게된거 다 없던걸로 하면 안되나?
... ...
아마도.
나, 나는, 그래도 로빈은 로빈이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그게 .... 내 말은- ....
대신, 화나는건 여전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이런, 이런 상황에 내가 울면 안되는건데-, ...
뭔가 ID 카드같은 것을 태그하면 열릴 것 같은데...
소독약 냄새가 무척 짙고, 온도가 서늘하기 짝이 없습니다.
추위가 뼈를 파고들 정도입니다.
이상한 약품과 수술대, 생체 바이오리듬을 확인하는 기계같이 수술실에서나 쓸법한 장비들로 가득하고......
캐비넷 위에는 이상한 것들이 담긴 병이 줄 서 있습니다.
기록에서 본 대로, 신체 일부가 없습니다.
시체를 마주한 몇몇 타이머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옵니다.
SANC 0/1
손톱, 머리카락 따위는 티나지 않지만, 눈, 손가락 같은 것은 상당히 눈에 띄는 결여점입니다.
기준치: | 67/33/13 |
굴림: | 40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어렵지 않게 정체를 알 수 있습니다. 분명, 사람의 것이겠죠.
주인을 고민할 필요도 없습니다. 병에 정확하게 쓰여 있었거든요.
4시, 7시, 8시, 11시 ...
이름 따윈 없지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수 없습니다.
기준치: | 65/32/13 |
굴림: | 39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흰 천장에는 검붉은 것들로 모독적인 무언가가 쓰여 있습니다.
읽을 수도, 깨달을 수도 없는 글자와 무늬입니다.
어떤 주문처럼, 주술처럼 선명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SANC 0/1
기준치: | 67/33/13 |
굴림: | 66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곳곳의 풍경이 참담합니다.
할 말을 찾기 어려워 숨을 크게 들이켰을 때, 소독약 냄새 대신 새파란 장미 향기가 흠뻑 폐를 파고 들었습니다.
질식할 것처럼 짙은 향기는 엊그제 맡았던 그것과 똑같습니다.
고개를 돌리면, 엘리베이터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다시금 새파란 장미로 장식된 아치문이 서 있습니다.
멀찍이 서 있는 이들을 유혹하는 것처럼 장미 향이 짙어지고, 바람이 불지도 않는데 너울, 너울, 꽃송이가 흔들립니다.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숙이고, 아치문을 넘어서면,
그곳은 코마니 호수였습니다.
검게 물들어있던 호수가 달빛을 받아 순간 반짝이고, 종이꽃의 그림자가 드리웁니다.
축제가 끝나기라도 한 것처럼 어둠은 물러가고, 희고 투명한 물결이 찰랑거립니다.
잘못 본 것이 아니에요.
둥글게, 둥글게, 원만한 원을 그리며 물결이 칩니다.
호수 바닥이 반짝이는 것과 동시에 종이꽃이 소금기에 녹아 물 속으로 스며들고...
두 사람은 호수 아래에서, 어떤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
수도입니다.
어떤 사람은 연인의 손을 잡은 채로, 어떤 사람은 가족의 손을 잡은 채로,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의 양 손을 모아쥐어 기도하며.
그 상태 그대로, 모두 멈춰있습니다.
호수에 비춰야 할 것은 밤하늘이어야 할텐데,
호수에 담긴 모습은 어젯밤 무대의 장면입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
기준치: | 65/32/13 |
굴림: | 76 |
판정결과: | 실패 |
기준치: | 65/32/13 |
굴림: | 55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무대 뒤에, 원래의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거대한 시계탑이 서 있습니다.
광장에 서 있는 바로 그 시계탑이에요.
당신의 시선을 느낀 것 처럼, 호수 속의 시곗바늘은 보란듯이 움직입니다.
결국, 닿은 곳은 정확하게 12시 정각입니다.
그 순간 다시 꽃가루가 흩날리고, 빛이 산산이 부서지며, 타이머와 카운터들이 무대 위에서 손을 흔듭니다.
광장의 시계탑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바늘은 11시와 12시 사이에 애매하게 멈춰있습니다.
호수 아래의 세계는 소란스레 움직이고, 화려하게 춤을 춥니다.
자정을 기점으로 풀리는 마법이라니.
신데렐라의 이야기가 생각나는군요.
물론, 세계를 구할지, 그러지 않을지는,
온전히 두 사람의 선택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아니.
되돌리고싶지는 않아.
...근데, 돌려놓을거야.
되돌리고 싶지 않다며,
너는 아니잖아.
너는 가족도 있고, 친구들도 있으니까.
내가 싫다고 너의 소중한 걸 뺐고싶지는 않아.
이건 구원자여서 돌려놓는게 아니야.
처음 사귄 친구를 위해 돌려놓는거야.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난 원래부터 이러라고 만들어진거니까.
파트너잖아.
절대 떠나지 않을게.
파트너니까.
똑, 딱.
시곗바늘과 함께, 정각을 알리는 긴 울음 소리와 함게,
세계는 다시 순환을 시작합니다.
어두웠던 밤하늘은 급격하게 색을 바꾸어 청명한 새벽이 되었다가, 새파란 아침이 되고, 자줏빛 노을을 지납니다.
재빠르게 회전한 도밍게즈가, 다시금 어두운 밤하늘을 그러안았을 때,
눈을 깜빡이면 다시 무대입니다.
타이머와 카운터를 향한 환호성이 객석에서 터져나옵니다.
무대 위건, 뒤편이건, 그 광경을 똑똑히 볼 수 있었습니다.
마치 시간을 되감은 것처럼......
시간이 멈추기 직전으로 돌아온 것 같습니다.
누군가가 놓친 풍선이 저 멀리, 하늘 위로 두둥실 날아오릅니다.
익숙한 밤하늘을 가르는 풍선은 붉은색.
너머에 뜬 별은 마냥 희고 곱습니다.
...
세계를 구원한 것을 후회하나요, 아니면, 후회하지 않나요?
현실은 이토록 당신에게 다정합니다.
구원받은 것들은 구원자를 잊었지만, 그럼에도 맹목적으로 호라와 로빈을, 타이머와 카운터를 사랑합니다.
눈 아래 사람이 가득한 탓에 광장의 시계탑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날 선 바늘의 끝은 정확히 우리를 가리키고 있었을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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